노동체제의 변화, 이제는 2020체제가 필요하다
노동체제의 변화, 이제는 2020체제가 필요하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5.18 00:00
  • 수정 2020.05.20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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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존중사회’ 슬로건은 노동을 주체 아닌 대상으로 설정
87년 체제 ‘한계’ 분명 … 코로나19 위기를 변화의 기회로

커버스토리 ➐ 노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노동의 미래

87체제 넘어서는 2020체제가 필요하다. 코로나19의 팬데믹 바람이 세계에 미친 영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노동도 예외는 아니다. 콜센터 노동환경의 문제부터 시작해 재택근무, 노동시간 단축, 공공노동영역의 강화 등 수많은 변화가 목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이 변화가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변화인지, 아니면 노동의 미래를 바꿀 변화인지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우리 노동체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의 노동체제는 이른바 87년 체제로 불리는 시기에 여전히 갇혀 있다. 세계적 흐름이었던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 노동의 힘이 세지면서 충돌과 갈등을 전제한 체제였다. 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유연성’을 강화하려는 흐름과 ‘전투적 협조주의’가 맞서는 시대 또한 겪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2020체제가 필요하다고 제기한다. 그래서 새로운 노동체제가 과연 가능할 것인지를 진단한다.

2017년 촛불시위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직후 학자들 사이에서는 사뭇 진지한 토론이 벌어졌다. 촛불시위가 ‘항쟁’인지 아니면 ‘혁명’인지에 대해서다.

혁명은 기존 체제를 전복시킨다. 그런 점에서 학자들은 그날의 촛불을 ‘미완의 혁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적폐로 상징되는 구체제는 여전히 남아있으며, 새로운 체제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체제의 이름을 ‘노동존중사회’라고 명명한 바 있다.

어느덧 문재인 정부의 임기는 반환점을 넘어섰다. 하지만 노동존중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오히려 노동의 주체가 아니라 존중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노동을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고 객체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87체제가 뿌리 깊게 지배하는 노동체제, 이를 뛰어넘어 한국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동은 과연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성찰해야할 때다.

ⓒ 청와대

노동존중사회, 새로운 노동체제의 이름이었나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노동존중사회’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노동존중사회를 뒷받침하는 철학은 소득주도성장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수출중심에서 내수중심으로, 성장중심에서 분배중심으로의 경제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뜻한다. 박근혜 정부 퇴진이라는 정치적 성과에 힘입어 한국사회의 심각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경제민주화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경제민주화는 ‘소득격차’ 해소뿐만 아니라 대-중소기업 격차 해소인 ‘공정거래’ 또한 포함한다. 이는 포용성장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된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의 설계도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상징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논의하고 완성하겠다고 계획했다. 하지만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체제가 되기 위해서는 비전과 로드맵과 주체설정이 필요하다”면서, “노동존중사회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은 노동을 노동존중사회 구축의 주체로 삼은 게 아니라 존중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동존중사회라는 슬로건이 노동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설계도는 제시했지만, 그렇다고 기존 1987년 노동체제를 대체하기에는 주체설정 면에서 “결격사유”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는 2017년 이후 3년 동안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기 위한 각론에서도 결과적으로 큰 실효성을 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최저임금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통해서 소득격차를 줄이고 하위 노동계층의 삶의 질을 향상해 소득주도성장을 이어간다는 논리를 폈어요. 그런데 지난 3년을 보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죠. 지속가능한 해법이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최저임금 인상이 2년 만에 속도조절로 선회한 이유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2차 노동시장의 지위를 높이는 게 안 된다는 이야기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이야기했지만 자회사 방식으로 선회하면서 완전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민간부분에 확장이 안 돼요. 이러한 방식으로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질서를 바꾸려는 게 어렵다는 거죠.”

87년 노동체제와 노동양극화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를 통해 87년 노동체제가 형성한 모순을 해결하려 했다. 바로 노동양극화라는 모순이다. 박태주 선임연구위원은 “87년 노동체제는 누가 뭐래도 다른 말로 바꾸면 신자유주의 노동체제”라며, “신자유주의 노동체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사관계에서 사실상 자본과 권력이 동맹관계를 맺으면서 노동을 배제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형성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1987년 이전에는 노동은 물론 자본까지 국가로부터 압박을 크게 받았다. 노사관계의 자율적인 규범이 없는 상태였다. 1987년 이후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시민권’을 쟁취했다. 자본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자율성’을 획득했다. 노동과 자본이 참여하는 한국 노동체제의 원형이 1987년에 시작했다고 보는 이유다.

정치적으로 한국은 1987년에서야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로 이행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1980년대는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어닥칠 때였다. 세계적으로 노동에게 불리한 시기에 한국 노사관계의 첫발이 떼진 것이다. 그렇게 사용자는 신자유주의적 ‘신경영 전략’을 노사관계에 도입했고, 노동자들은 ‘투쟁일변도’로 맞섰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노사관계의 균형은 사용자 쪽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경제위기에서 정부가 자본의 손을 굳게 잡은 것이다. 이는 김대중 정부의 2.6합의부터 박근혜 정부의 9.15합의까지 ‘노동의 유연화’라는 키워드로 표출된다. 유연화로 탈락하는 노동자를 위해 사회안전망이 확충되지만 미약했다. 사회적 대화의 핵심이 ‘노동보호’가 아닌 ‘기업 성장’이었기 때문이다.

박태주 선임연구위원은 “자본과 권력이 사실상 경제성장을 동력으로 동맹을 맺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노동조합은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한국의 대립적 노사관계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형성된 조직노동은 ‘투쟁’을 통해 유연화 흐름에 맞섰다. 하지만 기업별 노동조합체제 아래에서 투쟁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1987년 이후 10년 동안 노동운동은 비약적인 성취를 이뤘지만, 노동조합의 성취가 전체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아니었던 것이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1997~1998년 즈음 여러 노동조합들은 87년 체제의 부작용을 알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던 불평등을 양산했고 확대되는 문제점을 발견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이 소위 산별노조, 산별교섭운동”이라면서, “임금의 표준화를 지향하기 위해 산별체제 건설을 추진했지만 IMF가 터지면서 중단됐다.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고 평가했다.

파편화되는 노동자,
어떤 방법으로 보호할 것인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은 한국사회 노동양극화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비정규직을 넘어 특수고용형태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 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노동자라고 칭할 수 없는 서얼과 같은 존재다. 이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노동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사용자들은 비정규직(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중간업체에게 전가했다. 또한 특수고용형태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 등에 대한 책임을 개인사업자 계약으로 은폐하고 있다. 더불어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에서 합법적으로 배제된 존재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제도적 보호 방안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이들을 노동자로 적극적으로 인정해 기존 노동법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는 방향이다. 양대 노총에서 주장하는 ‘전태일법’(민주노총)이나 ‘5.1플랜’(한국노총) 방식이다.

두 번째는 이들을 ‘유사’ 노동자로 보고 특별법이나 공정거래법 등 다른 수단으로 보호하는 방향이다. 현재 정부가 특수고용노동자의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을 지원해주거나,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를 위해 공정거래 관행 등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세 번째는 이들을 ‘또 다른 형태의 노동자’로 보는 방향이다. 기존의 개별적 노사관계법이 적용될 수 없는 사항은 별도로 처리하되, 집단적 노사관계법을 보장하는 방향이다. 대표적으로 최근 출범 준비 중인 플랫폼유니온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최영기 교수는 두 번째 방향을 지향한다.

“기존 노동규범은 산업화시대에 형성되고 지금까지 축적돼왔기에 굉장히 높은 보호수준을 가지고 있어요. 노동자라고 규정되는 순간 사회적-제도적으로 얻는 권리와 보호수단들이 엄청 많아요. 새로 형성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과 규율할 수 있는 새 노동규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완전히 노동3권 다 보장하는 쪽이 아니라 고용보험 확대, 계약의 공정성 강화 등 별도의 유연한 법률체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노동자든 독립 자영업자이든 상관없이 일을 하고 있으면 사회안전망이나 기본적인 계약의 공정성이라든가 불이익을 당했을 때 구제할 수 있는 수단들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줄 필요가 있죠.”

이와 관련해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플랫폼노동 운동,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에서 “지난 수년간 고용관행에 있어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새로운 현실은 노동법을 그 목적과 다시 조응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요구한다”면서, “고용 상 지위나 계약의 형태와 무관하게 자신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자에 대해 최소한 보호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 노동자는 당연히 노동자가 아니라고 전제하고 이들만을 대상으로 별도의 특별법을 입법하는 것은 플랫폼노동자가 누려야 할 노동법상 보호로부터 배제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둘 모두 기존 노동법의 한계와 더불어 사각지대에 위치한 노동자에게 일정한 수준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공감한다. 하지만 그 방식을 ‘노동법’의 틀에서 출발하는지 아니면 다른 법제도적 장치에서 찾는지에 갈린다.

코로나19, 위기냐 기회냐

코로나19는 한국사회 노동체제의 변화를 강제하는 외부적 힘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 변화의 방향이 재택근무 도입이나 유연근무제의 확대 같은 근무형태의 변경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공공부문의 강화와 같은 산업분야의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한 자동화 등을 통해 현장의 변수를 줄이려는 노력으로 고용불안이라는 형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변화가 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에 놓여 있는 현재에 적용되는 일시적 변화일 것인지, 아니면 한국 노동의 형태를 확연히 바꾸는 촉매제가 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을 계기로 30년 넘게 공고하고 한국의 노동체제를 지배해 왔던 87체제와의 작별을 고할 시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사회 노사정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노동체제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우선 정부는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그림을 제시하는 일을 해야 한다. 어떤 사회를 꿈꾸고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체들과 대화해야 한다. 그 과정이 지난하고 진통을 겪을지라도 지금이 아니라면 아예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파장이 기업과 노동 모두에게 고통이 될 것이라는 점을 공감하고 있는 현재 상황이 적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을 이 논의의 주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업은 기존의 이윤추구 방식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비용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해법이 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때다. 노동의 참여가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노동도 변화가 필요하다. 박태주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를 잘 대응하지 못하면 87년 체제를 더 강화시킬 수 있는 기제가 될 수도 있다고 느낀다. 실업이 증가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이 있는 판국에 노동조합의 교섭력은 떨어진다”며, “노동체제 전환을 어떻게 시도할 것인가에 대해 노동조합의 고민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코로나19 보호 요구가 아닌 제도변화까지 연결시키는 과제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세상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우리가 상상하던 바로 그 세상일 수도 있다. 노동의 미래를 위해 지금 2020체제를 만들기 위한 첫발을 내디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