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대, ‘노동의 개입’이 시작됐다
변화의 시대, ‘노동의 개입’이 시작됐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5.18 08:57
  • 수정 2020.05.18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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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 ‘직무 전환’으로 맞서다
“교육이 있다면 노동의 자리는 건재”

커버스토리 ➋ 기술 변화에 대처하는 노동의 자세

포스트 코로나 시대, 노동의 미래

87체제 넘어서는 2020체제가 필요하다. 코로나19의 팬데믹 바람이 세계에 미친 영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노동도 예외는 아니다. 콜센터 노동환경의 문제부터 시작해 재택근무, 노동시간 단축, 공공노동영역의 강화 등 수많은 변화가 목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이 변화가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변화인지, 아니면 노동의 미래를 바꿀 변화인지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우리 노동체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의 노동체제는 이른바 87년 체제로 불리는 시기에 여전히 갇혀 있다. 세계적 흐름이었던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 노동의 힘이 세지면서 충돌과 갈등을 전제한 체제였다. 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유연성’을 강화하려는 흐름과 ‘전투적 협조주의’가 맞서는 시대 또한 겪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2020체제가 필요하다고 제기한다. 그래서 새로운 노동체제가 과연 가능할 것인지를 진단한다.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 ⓒ 참여와혁신 DB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 ⓒ 참여와혁신 DB

사물 인터넷(IoT),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노동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자동화와 무인화로 노동이 배제되는 것은 물론,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있는 반면, 산업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나고 고된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도 따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현재로선 새로운 기술 도입이 만들어낼 노동의 미래를 단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간의 ‘경험’ 때문일까? 어쩐지 노동이 배제되는 양상으로 진행될 거라는 전망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다. 누군가는 ‘근거 없는 의심’이라며 반기를 들 수 있겠으나, 우리나라 신자유주의 노동체제에서 신기술은 노동 중심이 아닌 이윤 중심으로 도입돼왔다. 때문에 디지털화(Digitalization), 신기술(New Technology), 4차 산업혁명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앞으로의 기술 변화, 기술 혁명 속에서 노동이 배제될 것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고된 장시간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기대보다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내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은 이 거대한 물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과거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과 같은 저항으로 맞서야 할까? 아니면 노동이 배제되고, 소외되는 것을 손 놓고 보고 있어야 할까?

“거부와 외면만이 능사는 아니다”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의 개입

제조업은 ‘노동절약형’ 기술 도입이 일어나고 있는 산업 중 하나다. 과거 사람이 직접 수행했던 작업과 공정은 상당수 기계화 설비로 바뀌었다. 이제 품질 검사는 사람의 눈이 아닌 카메라가 대신하며, 촬영된 사진은 로봇으로 전달돼 실시간으로 불량 여부를 판단한다.

기술 도입은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는 ‘단순 기계화’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자동차산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전장화(기존 기계부품이 전기·전자 및 정보기술 관련 부품으로 바뀌는 현상)가 대표적이다.

국내·외 자동차산업은 친환경차로 불리는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의 등장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엔진과 변속기가 핵심 부품인 내연기관차와 달리 배터리 기반의 전기모터가 이를 대체한다. 조사기관마다 약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자동차업계에서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할 경우 기존 3만 개에 달하는 자동차 부품 중 1만 개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부품 수 비교조사에 따르면 내연기관차는 3만 개, 전기차는 1만 9,000개, 수소차는 2만 4,000개의 부품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자동차부품공업협회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전환으로 소멸되는 부품수가 1만 1,000개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자율주행 기술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자동차산업 진출을 낳았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ICT 박람회 ‘세계 가전 전시회(CES, Consumer Electronic Show) 2020’에서 자동차 기술 관련 전용 전시관이 따로 마련될 정도로 ICT 기업의 자동차산업 진출은 활발히 진행 중이다. ICT 기업이 자동차 부품시장에 뛰어들면서 완성차업체보다 규모가 크고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부품사업체가 등장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산업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자동차산업의 구조뿐만 아니라 생산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국내 자동차산업은 완성차업체 중심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발전해왔다. 엔진, 변속기 등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완성차가 피라미드 맨 위를 차지하고 그 아래에 있는 1차, 2차, 3차 협력사에게 부품을 공급 받아 제품을 조립해 판매까지 담당했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완성차업체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성장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 등 기술의 변화로 자동차산업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렇다면 노동은 이 같은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예상되는 자동차 부품사의 폐업 및 구조조정, 일자리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과제가 생겼다. 기술이 곧 경쟁력인 상황에서, 노동의 변화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기술 도입으로 인한 노동 소외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긍정적인 신호는 노동조합의 대응이 변화를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고 반대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노동계에서는 대공장을 중심으로 기술 도입에 알레르기 반응만 보인다고 해서 현재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노동이 소외되는 것을 경계하고 기술 변화에 노동조합이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노사가 함께하는 미래발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변화를 거부할 수 없다면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연착륙시키고 숙련을 통한 전환 배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고용유지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목소리다.

실제 지난해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한국지엠 완성차 3사 노동조합의 임원선거 당시 후보자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기술 도입에 따른 노동조합의 고민이 무엇인지, 조합원들의 요구는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3사 모두 당선인 공약을 기준으로,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지부장 이상수)는 ‘인원 40% 구조조정, 공포분위기 사(死)차 산업 OUT’을 구호로 들고 나왔으며, 해외공장 U턴을 통한 국내 30만 대 신공장 증설, 30만 대 신공장 증설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정년연장 수용·청년 일자리 근거 마련, 4차 산업시대에 따른 완전 고용보장 합의서 도출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지부장 최종태)는 노동강도 완화와 친환경차 물량 국내 공장 유치에 주목했다. 주요 내용은 노동강도완화특별위원회 구성을 통한 노동강도 완화 사업 전개, 고용안정을 위한 미래 고용보장 협약 체결, 전기·수소차 전용라인 및 핵심부품 국내 공장 내 생산, 차세대 엔진·변속기 개발 등이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지부장 김성갑)는 ‘끌려갈 것인가? 주도할 것인가?’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나왔다. 주요 공약으로는 한국 공장의 친환경차 생산기지화, 미래차 대책위원회 구성, 부평2공장·창원공장 발전방안 마련, 한국GM 발전전망 마련 등이 있다.

아직까지 미래 대응에 대한 뚜렷한 해답은 나오지 않은 가운데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교섭에서 노사가 합의한 미래발전위원회를 올해부터 운영한다. 자동차산업의 변화를 노사가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다. 현대자동차는 기아자동차보다 먼저 노사 미래발전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기아자동차지부가 ‘미래형 자동차 발전동향과 노조의 대응’ 공동 연구용역을 발표했다.

이들은 연구용역 결과를 통해 “국내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우리만의 특기를 활용하는 전략으로 노사는 물론 국가의 산업정책까지 포함하여 수립돼야 하며, 완성차는 물론 최하부의 부품사까지 모두 포함하는 전략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산업 4.0, 노동 4.0, 공동결정 4.0 등 사회적 합의를 모색한 독일 사례를 들며 “소수의 경영진이 의사결정하면 일사천리로 수행되던 경제개발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며 “시급한 것은 노사정이 하나로 의견을 모을 수 있는 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 ⓒ 참여와혁신 DB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 ⓒ 참여와혁신 DB

“교육, 노동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
디지털 전환에 맞선 직무 전환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산업은 제조업뿐만이 아니다. 금융산업은 디지털 전환이 타산업과 비교해 빠르게 도입됐으며, 자동화, 무인화 등 새로운 기술의 도입 경험도 타 산업에 비해 훨씬 많다.

금융산업의 대표적인 자동화는 2000년대 초 은행권에서 시작됐는데, 바로 현금자동입출금기(ATM, Automated Teller Machine)의 도입이다. ATM은 은행의 핵심 기능인 현금출납 및 계좌이체, 공과금 납부 등 현금을 취급하는 은행 업무를 자동화시켰다.

ATM 도입을 시작으로 2010년대에는 비대면 거래가 대폭 늘어났다. 인터넷뱅킹과 텔레뱅킹이 등장했으며, 인공지능(AI)과 정보화 기술을 이용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은행에 방문하지 않고도 현금 취급 업무는 물론, 대출 상품 가입 및 해지 업무가 가능해졌다. 최근에는 은행 창구 업무의 80%를 수행할 수 있는 ‘고기능 무인자동화기기’가 늘어나고 있어 ATM을 대신하고 있기도 하다.

금융산업의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빅데이터 플랫폼이 도입되면서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엄청난 양의 데이터에 분석이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소비자 지출 분석을 통한 고객 맞춤형 상품 추천이 가능해지고, 맞춤형 마케팅이 가능해졌다.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 Robotic Process Automation) 도입으로 수기로 작성하던 은행조회서 발급 등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가 자동화됐으며, AI 기술을 활용한 챗봇 상담 서비스는 은행 업무시간과 상관없이 간편하고 신속한 금융 상담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은행의 송금·결제망을 표준화하고 개방한 오픈뱅킹을 통해서는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에서 모든 은행의 계좌를 조회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모든 금융 서비스를 인터넷상에서 제공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급격한 성장은 금융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최근 금융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을 봤을 때, 과거 은행 영업점이 사라진 것과 같은 대규모 구조조정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과거 사람이 직접 수행했던 업무들이 상당 부분 자동화, 무인화를 통한 비대면 서비스로 전환되면서 노동자들이 일자리 위협을 느끼고 있을 거라는 추측으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 만난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위원장 김형선)에서는 예상과는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정현석 기업은행지부 정책국장은 “디지털 전환으로 노동자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 금융권이나 은행권에서는 디지털 관련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오히려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인원 감축은 발생하지 않을뿐더러 각 은행들이 디지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인력을 추가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기업은행에서는 올해 상반기 250명 신규채용을 계획하고 있다. 하반기에도 이와 비슷한 규모로 이루어진다면 올해 약 500명의 신규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때, 디지털 직군을 채용하는 비율은 매년 늘어나고 있는데, 이태용 기업은행지부 정책국장은 “5년 전만 하더라도 신규채용 인원 200명 중 IT, 디지털 쪽 담당은 6명 밖에 뽑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40~50명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지부에 따르면 기업은행 내 자동화 업무는 적용 범위가 매우 넓어 정확한 비율을 산출하기 어렵지만, 인터넷뱅킹, 스마트뱅킹 등 비대면 서비스를 통한 업무 처리 비중은 전체의 약 80%에 달한다.

인력 감축이 자연스러운 상황임에도 인력 감축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은행지부는 “제한된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의 경우, 자동화로 인한 유휴 인력 재배치가 어려워 인력을 줄여야 하는 요인이 존재하지만, 은행은 다양한 사업영역으로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유휴 인력이 발생할 경우 재교육을 통해 고부가가치 업무로의 재배치가 가능하고 신규인력 채용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영업점 창구에서 단순 업무를 처리하던 노동자는 재교육을 통해 심층상담, 재무 설계, 전략 마케팅 등으로 업무 및 직무 전환이 가능하다.

이때 중요한 핵심은 노동자 교육 및 훈련에 있다. 기업은행에서는 희망하는 직무로 전환할 수 있는 ‘드래프트 제도’가 운영되고 있어 노동자의 직무 전환이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교육·훈련을 통한 직무 전환이 가능하다. 이에 발맞춰 최근에는 디지털 관련 교육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으며, 노조에서도 교육과 관련된 요구를 사측에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때문에 기업은행에서는 새로운 기술 도입, 디지털 전환과 관련해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디지털 전환 관련 노동자 임금 및 처우에 변화가 없는 한 노사 충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전환의 시기, 노동은?

디지털 전환을 맞이해 새로운 노동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과 교수의 목소리다. 앞으로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일자리 문제를 다룰 때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볼 게 아니라 직무가 변한다고 봐야 한다는 게 최영기 교수의 설명이다. 이는 앞에서 다룬 기업은행 사례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자동차산업과 금융산업 사례에서 보았듯이 최근 새로운 기술 도입, 디지털 전환을 바라보는 노동의 움직임은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조건적인 저항이 아니라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면 직접 개입하고 준비하자’며 거대한 물결에 뛰어드는 모습이 포착되는가 하면, 교육훈련이라는 강한 무기를 갈고 닦아 변화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도 포착된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서, 노동은 이 거대한 물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만약 이 거대한 물결을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노동은 자문해야 한다. ‘전환’의 시기, 노동은 기술 변화에 따른 새로운 노동체제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