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돌봄 0순위 여성비정규직 임금, 남성정규직의 37.7%"
"해고·돌봄 0순위 여성비정규직 임금, 남성정규직의 37.7%"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5.18 13:42
  • 수정 2020.05.25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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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임금격차 해소 위한 '제4회 임금차별타파의 날'
"코로나19 극복, 성평등노동 실현과 돌봄의 사회적 가치 제고가 핵심"

"제가 일하던 인천국제공항 VIP라운지에도 항상 일손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2명분의 인건비를 감축하라’는 롯데GRS의 요구가 내려왔습니다. 저와 동료들은 무급휴가를 돌아가며 사용하는 것으로 인원감축만은 피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2~3일씩 돌아가며 쓰던 무급휴가가, 점차 큰 폭으로 확산되는 코로나19로 10일씩 돌아가며 사용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부족한 인원 때문에 무급휴가를 사용하면서도 직접 출근해 일을 도왔습니다. 저는 직원끼리 돌아가며 무급휴가를 계속 연장해 사용하다 보면 언젠가는 코로나19 사태가 정상화되어 안전하게 다시 일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저희에게 돌아온 것은 단체카톡방을 통한 해고통보였습니다."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이브릿지 VIP라운지 캡틴 이정원 노동자)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얼마나 많은 할머니들이 손주 돌봄에 차출되었을까요? 다른 가족들이 아이를 봐 줄 수 있는 상황은 그나마 나은 것일 테지요.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경력단절로 어렵게 어렵게 구한 일을 그만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을지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혹자는 가족만이 한국 사회의 유일한 안전망이라는 사실이 이번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드러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족 안의 어떤 성별에게 돌봄이 맡겨지고 가중되었는지입니다. 코로나 위기에 잘 대처했다고 세계적으로 칭송받는 한국 사회, 그 이면에는 여성들의 무상 돌봄노동이 있습니다." (김지현 프리랜서 노동자)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2020년 제4회 임금차별타파의 날 기자회견 전 5.18 민주항쟁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2020년 제4회 임금차별타파의 날 기자회견 전 5.18 민주항쟁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코로나19 위기 속 해고 0순위로 일터에서 쫓겨나지만, 돌봄노동에서는 0순위로 호명되는 여성노동자들이 18일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아 모였다. 재난 상황에서 드러난 여성의 취약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성차별노동시장이라는 구조적 문제임을 지적하고, "성평등 노동과 돌봄 민주주의 실현"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전국여성노동조합과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제4회 임금차별타파의 날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노동이 저평가되고 있던 사회에서 재난 속 여성노동자는 해고 1순위이자, 돌봄노동을 떠안아야 하는 현실에 놓여있다"며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성평등노동 실현과 돌봄의 사회적 가치 제고가 핵심"이라고 밝혔다. 

'임금차별타파'의 날은 지난해 8월 기준 남성정규직 대비 여성비정규직 임금이 '100 대 37.7'로 차이 나는 데 항의하는 뜻으로 한국사회의 성별임금격차 문제를 드러내고자 제정한 날이다. 이 차이대로라면 오늘인 5월 18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여성비정규직은 무임금으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모인 여성노동자들은 코로나19 재난이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나지현 여성노조 위원장은 "코로나19는 가난을 공격하고 여성을 공격하는 차별의 양상을 가졌다"며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는 이 두 가지 타격을 모두 겪고 있다"고 말했다. 

나지현 위원장은 지난 4월 고용동향을 증거로 설명했다. 나지현 위원장은 "여성노동자가 많은 도소매 음식 숙박, 보건 및 교육서비스의 고용이 악화되었고, 특히 20대와 50대 여성에게 그 타격이 더 커서 20대여성은 3.8%나 취업자가 감소해 같은 나이 남성 1.3%의 3배나 감소율을 기록했다"며 " 최근 몇 년 동안 여성 취업자가 계속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큰 타격인지 알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여성노동자들은 위기에 몰렸지만 사회안전망에서는 배제됐다. 김재순 전국가정관리사협회 협회장은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헐고, 대출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가사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보험 가입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기에 실업급여는 꿈도 못 꾼다"고 토로했다. 또한 김재순 협회장은 "가사노동자들 중에는 아직도 현금으로 노동의 댓가를 받는 사람도 있고, 개별적으로 일하는 가정에서 서류를 준비해주는 건 불가능하다"며 "생계 위협 앞에서 증명서를 떼지 못해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해 막막하다. 우리는 노동의 사각지대에서 다시 재난의 사각지대로 이동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재난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노동자들은 돌봄도 떠맡았다. 이들은 "고용노동부에 지난 3월 16일부터 이달 8일까지 접수된 가족돌봄휴가 지원금 신청자 중 여성이 64%로 남성(36%)보다 훨씬 많았다"며 "여성들은 증가된 가사·돌봄노동에 허덕이고 있지만 분담해줄 이 역시 다른 여성 가족 구성원"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여성노동자들은 재난으로 드러난 "여성의 취약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라며 "코로나19 위기는 여성노동과 돌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지현 여성노조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은 안이하다. 정부는 현장의 반발과 절박한 요구 뒤에 적은 액수의 무급휴직 지원금을 주겠다고 발표했고, 전국민고용보험 등 제도적 대안도 멈춰있고, 일자리 대책에 젠더는 보이지 않는다"며 "코로나19의 피해가 집중되는 여성의 현실을 기반으로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지현 여성노조 위원장은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이런 현실에 한탄이나 비판만 하고 있지 않겠다"며 "생생한 현장의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 조사사업을 진행할 것이다. 코로나 고용위기와 노동조건 저하에 대한 상담창구를 열어서 문제 해결을 지원하고, 여성노동자의 조직적인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