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 SNS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2020년 올해는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여 돌아가신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자의 인권은 보호되지 못하고 있으며, 노동자의 건강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녹색병원은 노동을 존중하고, 약자를 배려하고, 연대하는 전태일 정신을 받들어 노동자병원, 전태일병원이 되겠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녹색병원은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피해자들이 세운 병원입니다. ‘이 땅에 원진 노동자와 같은 불행한 노동자가 다시는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것, 적어도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없도록 하는 것’이 녹색병원의 사명이며, 전태일 정신입니다."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의 글이었다. 임상혁 원장의 글대로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의 일터는 얼마나 안전하고 건강할까. 공교롭게도 ‘아니다’라는 답을 사회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지난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화재참사로 38명의 건설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 5월 10일에는 입주민의 갑질과 폭력에 시달리다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동자를 위한 안전망 병원을 지향하는 녹색병원의 임상혁 원장에게 여러 가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화재참사로 38명의 건설노동자가 죽고 10명의 건설노동자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5월 10일 입주민의 갑질과 폭력에 시달리다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자살했습니다. 일터에서 일어난 최근 두 사건을 어떻게 보시나요?

한익스프레스 화재참사와 같은 참사가 12년 전에도 있었잖아요. 더 중요한 건 12년 전에만 있었던 사고가 아니라는 거예요. 도장 작업을 하거나 우레탄 발포 작업을 하다 유증기로 인한 폭발 사고는 굉장히 많았죠. 어떤 경우에는 작은 단신으로 나왔고, 어떤 경우에는 큰 걸로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지만 사회적 관심은 어떤 것 같아요? 점점 떨어지죠.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죽었음에도 이런 사고들이 반복되는 거예요. 사고가 반복된다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래서 정말로 이번 기회에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와야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어요. 이전처럼 몇 사람에 대한 징계로 마무리되는 그런 식이 되지 않을까, 우려해요.

그 다음,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자살을 하셨는데 이건 새로운 양상이죠. 우리 사회가 어느 때서부터 약한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천대하는 일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고도 경제성장을 하면서 계층 간의 문제들이 더 나타났죠. 동시에 이런 일이 새롭게 나타나는 거죠. 대표적인 것이 잘 알려진 감정노동입니다. 아파트 경비하시는 분들도 같고요. 우리나라의 자본주의가 이상하게 발달해서, 이른바 계급과 계층 사이 갈등을 더 확산하는 모습들이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거죠. 부자들에게 필요한 윤리가 있는데, 부자들이 가진 힘만 자기 것이라 생각하기도 하고요. 이런 문화가 팽배하다 보니 남보다 조금만 잘 살아도 자기가 가진 힘을 과시하려 하죠. 학습이죠. 이러한 것들로 봤을 때, 두 가지 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죠.

두 가지 사건을 두고 기존의 제도로는 처벌이 약하기 때문에 반복되는 사건들이 터진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나 갑질 가해자에 대한 강한 처벌법 등이 꼭 필요한 시점일까요?

강한 처벌이 예방효과 있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아마 우이동 아파트 경비노동자 사건 경우에는 형법으로 충분히 처벌 가능할 거예요. 한익스프레스 화재참사 경우는 처벌 근거 법이 산안법(산업안전보건법)뿐이죠. 그런데 산안법은 벌을 주는 법이 아니라 예방하는 법이에요. 예를 들면 안전모를 어떻게 씌워라, 사망 유무를 떠나 안전모를 안 씌웠다면 벌금을 내리는 거죠. 발생한 중대재해에 책임을 묻는 데 한계가 있죠. 그래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죠. 갑질 관련해서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있지만 고객의 갑질에 대한 사업주의 보호 조치를 담은 법이죠.

일각에서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사실상 해결 방안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집행력이 관건이다”라고 말입니다. 특히 한익스프레스 화재참사를 두고 그러한 분석이 많습니다. 왜 우리 사회는 해결 방법을 알면서도 사회에서 작동시키지 못했을까요?

우선 우리나라 노동안전보건에 관한 법 수준이 상당히 높아요. 적용받는 영역도 많고요. 그런데 산재사망은 세계 1위입니다. 바로 집행력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집행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해요. 고용노동부가 집행 주체인데, 별로 의지가 없는 것 같아요. 노동안전보건에 관해 뚜렷한 의지를 집행에서 보이는 것 같지 않고요. 물론 문재인 정부 들어서 조금은 좋아졌지만 부족하죠. 두 번째로 근로감독관 수가 너무 적어요. 유럽이 노동안전보건에 성공을 한 나라에요.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근로감독관 수가 우리나라 전체 근로감독관 수보다 많아서죠. 유럽에서 노동안전보건이 성공한 것은 근로감독관의 능력과 헌신으로 성공했다고 이야기해요. 우리나라가 법은 잘 만드는데, 어떻게 집행할까에 대한 계획이 약해요.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아프면 쉬자’라는 슬로건이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노동자들 아프면 쉴 수 있을까요?

참여와혁신은 어때요? 쉴 수 있다면 좋은 회사예요. 학문적 용어로 앱센티즘(absenteeism)과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이라고 해요. 앱센티즘은 아파서 쉬는 것, 프리젠티즘은 아픈데도 출근하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면 돼요. 이것을 비교하면 한국이 월등하게 프리센티즘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요. 아픈데도 출근하는 문화를 바꿔야 해요. 제도적으로는 상병수당 도입으로 쉬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쉴 수 있게 할 수 있고요.

그런데 노동자의 기본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요. 영세사업장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특수고용노동자들 그런 사람들이 과연 아픈데도 출근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정부가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각 사업장을 계도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들고, 시민들 전체적으로는 아프면 쉬는 사회문화를 형성하고 노력을 해야죠. 아파도 회사에 나오는 사람이 너무 많고, 죽어도 회사의 귀신이 돼야 한다는데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 말합니다. 그 삶 속에서 노동안전 분야도 달라질까요?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가치는 민주, 연대, 투명이죠. 코로나발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 말하는데, 경제위기가 있었던 때가 두 번 있었잖아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 그때 경제성장률도 떨어지고 실업자도 많이 생겼죠. 민주, 연대, 투명의 가치를 살리지 못한다면 코로나 이후의 경제위기는 이전보다 더 많은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칠 거예요. 그 안에 있는 노동안전 분야도 영향을 받겠죠.

세부적으로 보면 제일 큰 문제로 대면 작업하는 노동자들이 취약하다는 게 밝혀졌어요. 콜센터가 대표적이죠. 그런데 네이버나 다음도 전화 업무를 많이 하는데, 집에서 할 수 있었어요. 대기업은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는 능력이 되지만 영세한 곳은 아니었던 거죠. 포스트코로나시대에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가 노동안전에서도 과제겠죠.

그리고 현재 정부에서는 4차 산업혁명 기술과 빅데이터 기술 활용해 비대면 산업을 활성화할 계획이죠. 산업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서 안전보건이 변화할 것이니, 거버넌스를 형성해 계속 논의하면서 준비해야 하겠죠.

사회경제적 격차 해소가 노동안전에서도 과제라는 말을 하셨는데, 원장님의 경험에 비춰 이야기해 주세요.

우리나라 산업재해는 영세사업장 노동자들, 노동권 사각지대 노동자들에게 상상할 수없이 많이 일어나요. 노동보건안전이 계층화되고 차별화되는 거죠. 최근에는 배달노동자를 치료했어요. 빨리 배달할 수밖에 없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 교통사고가 많죠. 특수고용노동자, 자영업자니까 산재보험 가입이 안 되잖아요. 자동차 보험도 비싸니까 대부분 안 들어요. 사고 나면 보호 받을 길이 없어요. 치료했던 배달노동자가 더 안타까웠던 게 검사를 하니 간염이 발견됐어요. 노동자들은 건강검진이라도 받으니 미리 조기에 발견할 수 있잖아요. 산업재해뿐 아니라 건강권 자체가 취약하죠.

녹색병원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겠네요.

녹색병원이라는 곳이 원진레이온 직업병 인정 투쟁의 연장에서 만들어진 병원이죠. 노동자의 보건안전은 녹색병원의 기본적인 사명이죠. 그런 사명을 가지고 역할을 했지만 부족했어요. 왜냐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었어요.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하고. 그런데 이제 경영이 어느 정도 안정됐어요. 개인 병원이면 개인이 이윤을 가져가겠지만, 아주 간단하게 우리는 노동자들한테 쓰면 되겠다. 그러면서 2020년 전태일병원이 되겠다며 사업들(영세노동자 사업·특고노동자 사업·비정규노동자 사업·이주노동자 사업)을 공표했습니다. 올해가 전태일 열사 50주기이기도 하고, 노동자들에게 진짜 병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전태일 열사 정신을 배려와 연대라고 생각하는데, 취약노동자들에 대한 배려와 연대가 필요하겠다라는 거죠. ‘적어도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없도록 하는 것’이 녹색병원의 사명이며, 전태일 정신이죠. 더불어 전태일병원 사업을 위해서 후원도 받고 있고, 노동조합의 지원도 받을 예정입니다. 노동조합이 지원을 결정할 수 있도록 제가 돌아다니면서 사업 설명을 하기도 하고요. [후원_바로가기]

보통 병원은 홍보대사가 없지만 우리 병원은 홍보대사가 있어요. 두 분인데, 배우예요. 이정은 씨랑 권해효 씨이고요. 이정은 씨는 천만 원을 기부까지 하면서 홍보대사를 했어요. 그래서 병원 차원에서 기부금에 돈을 더 모아서 요즘 코로나로 문화예술 쪽이 많이 힘든데, 문화예술노동자 건강 지원 사업을 해볼까 고민 중이기도 하고요.

녹색병원의 역할 만큼 우리 사회가 노동이 안전한 나라가 되기 위해 노·사·정에 각각의 필요한 역할도 있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노동이 안전해야 한다는 담론이 많지 않았어요. 말로는 다들 이야기하지만 한 번도 이것에 대해 깊게 논의하지 않았죠. 이제는 진짜 노사정 각자가 자기 계획들이 있어야 하겠죠. 정부는 아까도 말했지만, 법이 정말 잘 만들어졌어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필요하지만요. 산안법에서 처벌조항도 강해요. 그런데 검사가 구형을 안 해요. 10년 이하 징역, 1억 원 이하 벌금이면 검사는 5백만 원 벌금을 이야기하고, 판사는 5백만 원 너무 강하니 경감합시다. 그러니 정부는 기존의 법들을 잘 집행하는 계획들을 세우고. 꼼꼼히 점검해야 해요. 만약 현행 구조로 어렵다면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한다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노동안전청을 만들어서 변방에 있는 노동안전을 주요하게 다뤄야죠. 물론 관료사회에 모든 것을 맡기자는 것은 아니고요. 거버넌스를 만들고 논의하는 게 중요하죠.

기업은 오히려 정말 연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대기업이 1차, 2차, 3차 하청들에 대한 노동안전보건을 지도해주고 관리도 하고 해야죠. 그리고 사람이 죽는다는 것, 생명을 잃는다는 것이 자기네들에게 얼마나 큰 손해인지 인식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거고요.

노동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도 연대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취약한 노동자들이 굉장히 많아졌잖아요. 연대하지 않으면 노동운동이 성공하지도 못하고, 안전보건에 대한 문제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봐요. 취약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와 연대의 전태일 열사 정신이 노동 내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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