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우리가 이런 일로 TV에 나올 일 없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
“다시는 우리가 이런 일로 TV에 나올 일 없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05.20 18:09
  • 수정 2020.05.20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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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 열렸다
경비노동자, 입주민에게 편지 낭독
김인준 경비노동자가 전태일 평전을 낭독하고 있다. ⓒ 전태일재단

두 번째 전태일 50주기 캠페인 참석자는 경비노동자였다. 5월 20일 전태일 다리에 오른 김인준 경비노동자는 “저희를 함께 아파트를 지키고 가꾸는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대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은 조진웅 영화배우에 이어 두 번째다.

이수호 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 상임대표는 “아직도 많은 노동자들이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경비노동자가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태는 그 한 분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일”이라고 2차 캠페인의 시작을 알렸다.

오늘 캠페인에서는 김인준 현직 경비노동자가 전태일 평전과 함께 입주민들에게 드리는 편지를 낭독했다. 그는 “일자리를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 하소연도 못 할 때는 참 억울하고 서글프기도 했다”며 “같은 사람끼리, 조금 더 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서로를 괴롭힌다면, 그리고 그런 갑질이 내 일이 아니라고 모른 체한다면, 우리 사회는 금방 지옥으로 변하고, 약한 사람들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정의헌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고용안정권리선언공동사업단 공동단장도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전태일 열사는 50년 전에 어린 여공들의 처참한 현실을 보고 이를 고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며 “경비노동자들이 아파트 현장에서부터 정당하게 대우받고, 나아가 이 땅의 노인들이 더 이상 처연한 처지에서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김인준 경비노동자의 편지 전문이다.

 

경비노동자가 입주민에게 드리는 편지

입주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아파트에서 경비로 일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한 경비노동자입니다. 폭행과 폭력에 시달리다 경비노동자가 돌아가신 이후 참 마음이 무거우셨을 것입니다. 경비노동자인 저도 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6년 전에 비슷한 사건으로 분신해서 사망한 강남의 한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 이만수 님의 동료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자꾸만 발생하는 현실이 너무 속상합니다.

경비노동자로 생활하면서 억울한 일을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입주민들이 많은데 그런 입주민들까지 갑질하는 사람들로 매도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제와 제 주변 동료들이 당한 억울한 사연들이 떠올라 남 일 같지 않고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제가 경비노동자로 생활하면서 만난 입주민 중에는 반갑게 인사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분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반면‘을’의 위치일 수밖에 없는 경비노동자의 처지를 악용하여 갑질을 일삼는 입주민도 소수지만 없지는 않았습니다. 참 안타깝고 어디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일자리를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 하소연도 못 할 때는 참 억울하고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비록 입주민과 경비노동자로 만났지만, 입주민도 출근하면 노동자로 살아가시는 분이 많을 것이고, 경비노동자도 퇴근하면 다른 아파트 입주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같은 사람끼리, 조금 더 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서로를 괴롭힌다면, 그리고 그런 갑질이 내 일이 아니라고 모른 체한다면, 우리 사회는 금방 지옥으로 변하고, 약한 사람들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입주민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드리고 싶습니다. 입주민 여러분들이 일하는 회사의 머슴이 아닌 것과 같이, 경비노동자는 머슴이 아니라 여러분이 살아가는 공간을 지키는 이웃입니다. 저희를 머슴이 아닌 이웃으로, 함께 아파트를 지키고 가꾸는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대다수 입주민께서는 저희를 이웃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보듯이 입주민이라는 이유로 갑질을 일삼는 분도 소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계시면 이번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저희와 함께 잘못을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여름이 다가오는데, 더 이상 여름에 에어컨이 없는 경비실에서 경비노동자들이 근무한다는 뉴스가 나오지 않도록 저희 경비노동자들의 근무여건에도 조금만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저희 경비노동자들도 최선을 다해서 소홀함이 없이 일하겠습니다.

정부에도 요청합니다. 경비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더 책임 있게 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 확산이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함께 사는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입주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입주민 여러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2020년 전태일 50주기 5월 20일

한 경비노동자 김인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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