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장에서 보낸 장기분규사업장의 추석
농성장에서 보낸 장기분규사업장의 추석
  • 성지은 기자
  • 승인 2008.10.0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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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청 달은 밝기도 하여라

1년, 길게는 4년이 넘도록 장기투쟁사업장의 도돌이표와 같은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불현듯’, 가끔 그들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흔히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다’고 이야기하지만 장기투쟁사업장의 시간은 그 의미가 다르다. 하루, 100일, 1000일. 그들이 보낸 하루는 가슴에, 오롯이 새겨진다. 절망과 희망,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하루하루의 시간 중 유독 보내기 어려운 하루가 지나갔다. 일상처럼 고요히, 또는 최선을 다 해 즐겁게 보낸 장기투쟁사업장의 추석, 그 하늘에 뜬 보름달은 유난히 밝았다.

 

#1 ‘희망’으로 오늘을 살고

내년 설엔, 엄마가 해 주는 음식 먹고 싶어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의 네 번째 추석

추석 연휴 첫째 날, 가산동 기륭전자 앞 골목은 한산하다. 정규직도 계약직도 파견직도 모두 가족, 친지 품으로 돌아가고, 오늘도 조합원들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1117번째 출근도장을 찍는다.

“이모, 할머니가 보면 울 것 같애”

이번 추석만큼은 모두가 가족과 함께 맘 편하게 보냈으면 했던 소원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컨테이너를 지키고 있는 유흥희 조합원은 100일 가까이 초인적으로 단식을 이어오던 김소연 분회장의 단식이 전날 중단된 것에 대한 안도감이 앞선다.

“매일 집에 가서 울었어요. 분회장님 어떻게 될까봐. 아마 계속 단식하고 계셨으면 아무도 못 내려갔을 거예요. 저도 여기서 곡물 끓여서 병원으로 보내드리고 있고요.”

열 명의 조합원 중 지방에 내려가는 이들을 제외하곤 2명 씩 사수조를 구성해 추석에도 농성장을 지킨다고 설명하는 유흥희 씨. 그녀 역시 얼마 전까지 이어 온 67일 간의 단식을 폐수종으로 중단했다. 가져 간 음료 상자를 받아드는 두 팔이 무척이나 가늘었다.

추석 날 아침엔 5개월 만에 엄마 집에 가는데, 초등학생 조카 말이 떠올라 걱정이란다.

“조카가 그래요. ‘이모, 병원 있을 때 보다는 훨씬 사람 같은데, 그래도 할머니가 보면 울 것 같애’라고요. 너무 살 빠져서. 그래도 얼굴 뵈려고요. 더 하겠다는 게 아니라 (단식을) 푼 거니까.

음식은 못 먹어도 분회장님도 드시고, 저도 먹으려고 식혜 해달라고 했어요. 내년 설이면 복식(단식 후 회복을 위해 음식을 조절하는 기간)도 끝나고 엄마가 해주는 얼큰한 만두국도 먹을 수 있겠죠?”

“4번째 추석, 쓸쓸하지만은 않죠”

2005년, 55일 간의 생활 투쟁 때 공장 안에서 맞은 첫 번째를 시작으로 4차례의 추석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당시는 정말 늘 긴장하고 있었어요. 구사대가 매일 쳐들어와서 점거하는 라인 위에 물건 집어 던지고 사람들 패고. 추석 전날인가도 왔었는데, 저는 워커 발에 밟혀서 엄지발톱이 그 자리에서 빠지고, 다른 한 분은 목이 졸려서 시퍼렇게 멍들었어요. 그때는 그렇게 멍들고 깁스하고 붕대감고, 다들 그런 상태로 송편 만들어 먹고 합동 차례를 지냈어요.

두 번째, 세 번째 추석에도 맘 편하게 가질 못했죠. 계속 순환으로 농성장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이번 추석은 1000일을 넘긴 상태였고, 사장이 직접 찾아와 문제를 풀어보겠다 얘기해 사실 조합원들도 굉장히 기대했었는데….”

담담하게 말을 잇던 유흥희 씨의 시선이 한 곳을 향한다. 두 명의 건장한 청년이 차에 싣고 온 과일박스를 내려놓으며 눈인사를 건넨다. 추석 잘 쇠시라고, 이제 자기들은 KTX로 간다는 말을 남기곤 금세 사라지는 사람들.

“누구라고 밝히지도 않으시고 라면박스, 사과박스 놓고 가시고 그래요. ‘상식이 이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안 통하는 것인가’라고 그동안 수없이 좌절해왔지만, 오늘도 이렇게 함께 지켜주시는 촛불 시민들, 사회단체, 정당들, 학생들 그리고 주변의 시민들이 있잖아요.

어떻게든 자신들이 가진 최대의 장점들을 발휘해서 저희를 도와주시는 거 보면서, 정말 눈물나고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언제 이런 따뜻함을,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래도 밀고나갈 힘, 희망이 있죠.”

유흥희 씨는 그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게 스스로 대견하고 장하다고 하면 웃길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고픈 추석이라고 전한다.

“정말 간절히 빌고 싶어요”

“명절이 그렇게 우리한테 어둡게만 가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희망을 만들 수 있고,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해요. 그래서 그 힘을 모아 명절 넘기는 투쟁도 더 힘차게 가야죠.”  

개인적으론 오랜 단식으로 피폐해진 건강을 돌보고 싶다는 소망을 비춘다. 발목이 너무 아파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두꺼운 양말로 몸을 지지하고, 복식을 제대로 하지 못해 속이 엉망이다. 맘 편하게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도 절박한 투쟁 앞에서 힘을 잃고 만다.

“과연 앞으로 우리가 평범한 직장인, 정상인처럼 살 수 있을까 두려울 때가 있어요. 저희보고 쌈닭이다, 거칠다, 미쳤다고까지 하는데, 정말 미쳤기 때문에 4년을 버텨왔을 거예요. 정말 진심으로, 간절히 빌고 싶은 건 역시 제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이죠.”

함께 있던 조합원은 사장 집 앞 일인 시위에 갔지만, 유흥희 씨 주변엔 릴레이 단식단, 소중한 시간을 이들과 함께 하고자 찾아 온 사람들, 작은 정성을 담아 나누려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추석 전날, 텅 빈 회사 앞의 작은 컨테이너와 천막 안은 희망과 인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라인정 기자 ijra@laborplus.co.kr

 

#2 ‘오늘’이 헛되지 않도록

‘사람’을 얻고, 희망을 나눈다
코스콤 비정규직농성장의 첫 추석

코스콤 농성장이 있는 여의도는 한산함을 넘어 스산하기까지 하다. 농성장을 사수하기 위해 여의도에 남은 사무금융연맹 코스콤 비정규지부 조합원 10여 명이 인터뷰가 있다는 이야기에 함께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야야, 제사도 지내기 전에 이렇게 갖고 오면 어떻게 하냐. 그러니까 니가 집에서 미움을 받는 거야.”

추석 전날, 미리 집에 다녀온 김인호 씨가 들고 있던 쇼핑백을 풀어놓았다. 그 안에는 아직 채 식지 않은 지지미 전과 송편이 들어있다. 말은 퉁명스럽게 하면서도, 저녁 시간이 되어서인지 도시락 통에 들어있던 음식은 금세 바닥을 보였다. 

지키는 사람도, 간 사람도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많이 내려갔죠. 그런데요. 그 사람들이 어쩌면 남아있는 우리보다 힘든 추석을 보낼 거예요. 몸으로 ‘땜빵’을 하러 간 거니까.”

전용철 씨는 오히려 집에 추석을 지내러 간 사람들이 더 걱정이라고 전한다. 언제쯤 끝날 수 있을 것이라는 약속도, 그리고 계획도 속 시원히 말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가족들이 화를 내면 그것을 고스란히 받고, 하소연을 하면 듣고, 당장 때려치우라는 말을 들으면 또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농성장에서 추석을 보내면서 어차피 무슨 소리를 들을지 알기 때문에 전화 한 통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나 친지들, 주변 사람들에게 할 말이 없잖아요. 인사라도 드려야 하는데, 추석 끝나고 나서 좀 조용해지고 난 다음에 통화하려고요.”

같이, 조금만 더

“여기에 있으면서 제일 힘든 건 사람을 보는 것 같아요. 길을 오가며 농성장을 보는 사람들,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들의 출퇴근을 이 자리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지금 농성장에 있는 우리 모습이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내가 패배자 같기도 하고, 그럴 때면 내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면서 ‘조금만, 더’라는 자신과의 싸움을 또 해 나가는 겁니다.”  

누군가는 말했다. 정말 좋아했던 사진을 다시 찍어보고 싶다고, 또 다른 사람은 수영, 사이클, 달리기 3종을 소화하는 ‘트라이애슬론’을 마음 편하게 해 봤으면 좋겠다고, 올 추석에는 전화 한 통 못했지만 그 동안 못했던 효도를 해야 한다고. 그리고 간절히 다시 일하고 싶다고.

전용철 조합원은 “가끔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처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 때도 있다”고 전했다. 그래도, 괴롭고 힘든 투쟁이지만 10년 동안 서로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눠본 적 없었던 동료들을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됐다는 것, 그리고 함께 내일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이 오늘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인터뷰를 마친 사람들은 다시 제각기 천막 안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컴퓨터를 켜고, 읽던 책을 펼쳐들며 코스콤 농성장은 그렇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히려 더 ‘일상’처럼 고요하게 추석을 맞이하고 있었다.

성지은 기자 jesung@laborplus.co.kr

 

#3 다시 한번 ‘내일을 꿈꾼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의 세 번째 추석

추석 전날 저녁, 사람들로 북적이는 떡집에서 송편 한 봉지를 사들고 찾아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천막 투쟁장. 철벽에 붙은 구호들 중에 ‘투쟁 268일 째’란 붉은 글씨가 선명하다. 매주 금요일마다 본사 건물 앞에서 집회를 여는 학습지노조는 건물 뒤 대로변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다. 몇 번의 강제철거를 겪고도 천막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집에서도 안 갈 거라는 것 알아요”

“들어오세요.” 두 명이 눕기에도 비좁은 천막 안, 학습지노조 유명자 재능교육지부장이 반갑게 맞는다. 기륭에 다녀왔다고 하니, 김소연 분회장의 안위부터 묻는 유 지부장. 그 옆에는 전날 철야노숙 투쟁을 한 학습지노조 강종숙 위원장 직무대행이 피곤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3년 전부터 대교, 한솔 해고 투쟁과 지금의 재능 단협 투쟁까지 함께 한 강 위원장 직대는 집에서 걱정 안하냐는 질문에 명절에 안 가는 것도 3년 째 되니 집에서도 당연히 안 오는걸 알고 있다며 웃어넘긴다.

“지난 설 땐 강 위원장 직대 혼자 지켰어요. 그것도 전에 옆에 있었던 대형천막 안에서. 연휴 내내 쫄쫄 굶었죠. 주변에 문 연 식당이 없으니까.”

도시락을 싸왔다는 유 지부장 역시 추석 당일은 편의점에 가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천막 안엔 전기 기구가 하나도 없다. 유 지부장의 말에 의하면, 투쟁 시작한 겨울에 외부에서 지원받았던 발전기는 지난 번 강제철거 당할 때 다 쓸어가 버려 없단다. 선풍기 하나 없이 그 좁은 천막 안에서 여름을 났다며, 낮엔 여전히 더워서 그냥 축 쳐져 있다고. 하지만 금세 덧붙인다.

“그래도 기륭은 더 덥잖아요. 뒤에 공장이 가로 막아 바람도 안 불고. 유달리 덥더라고요. 또, 그(철탑) 위에 올라가 있던 사람들은 그 뜨거운 데 얼마나 더웠겠어요.”

고생한다는 안부전화 한 통 없는 현실이지만…

“따로 살아서 엄마한테는 그동안 어떻게 숨겼는데, 요번에 못 내려간다고 했더니 하시는 첫 마디가 ‘데모하냐?’였어요. 옛날엔 매일 그만하라는 얘길 들었는데, 여기를 못 그만두니까 또 하게 되고, 집에서 말린다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요.”

사진 찍길 좋아했던 유 지부장은 괜찮은 카메라를 사기 위해 시작한 학습지 교사 생활이 어느 새 10년이라고 했다.

“어느 기자가 자기 카메라 하나 줄테니 조합원들 모습이라도 한 번 찍어보라고 했는데, 어디 맘이 편해야지요. 90일씩 단식하고, 철탑 올라가고. 그런 곳에 가서 어떻게 카메라를 들이 밀겠어요. 그 맘을 제가 다 아는데….”

추석에 빌고 싶은 개인적인 소망은 별로 없다고 잘라 말한 강 위원장 직대도 가족들에 대해 물으니 3살 난 아들에게도 아내에게도 미안하다는 속내를 전한다. 추석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든 사업장들에 대한 응원도 빠뜨리지 않는다.  

유 지부장은 “사실 조합원들조차도 이렇게 천막이 있고, 투쟁을 단계적으로 하고 있는데도 명절 때 먼저 ‘고생하네요’란 안부전화 한 통 없는 게 현실이거든요. 투쟁이 정리가 돼 얼른 일상 사업을 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지부장으로서 조합원들의 삶에 더 내실을 기하고 싶어요. 한 명 한 명 얼굴도 보고요”라는 추석 소망을 내비친다.

천막을 걷고 나오니 어느 새 어두워졌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바로 옆 도로엔 차들이 소음을 내며 질주한다. 처음엔 사진 촬영을 쑥스러워하던 두 사람이 철벽 옆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어느 새 일상이 돼버린 투쟁현장 속, 활짝 웃어 보인 두 사람 위로 한가위 보름달이 둥글게 떠 있었다.

라인정 기자 ijra@laborplus.co.kr  

지난 9월 13일, KTX 여승무원이 철탑 농성과 쇠사슬 농성을 벌이던 서울역 농성장에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8월 27일부터 KTX 새마을호 철탑 농성을 하던 KTX 오미선 지부장과 조합원 정미선씨 등 5명이 13일 오후 6시, 18일 만에 철탑에서 내려왔다.

KTX 열차승무지부는 13일 “철탑농성 시작 뒤 가진 교섭에서 진전이 없는데다 철탑농성자들의 건강과 피로도가 염려할만한 정도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철도노조가 9월 13일 오전 9시부로 교섭과 투쟁방침을 모두 종료함에 따라 더 이상 투쟁을 계속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KTX 열차승무지부 김영선 상황실장은 “그렇게 힘들게 싸웠는데 정말 내려오는 게 맞는 건지 고민이 많았고, 또 한편으로는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너무 힘든 상태에서 강행을 한다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하며 “정말 오랜만에 집에 와서 추석 음식도 먹고, 잠시 휴식 기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18일간의 목숨을 건 투쟁이 무위로 돌아간 지금, KTX 투쟁방침을 철회한 철도노조와 KTX 여승무원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현재 철도공사는 직접고용은 절대 불가하며 자회사에 취업을 알선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