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일째 버릴 수 없는 부산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의 꿈, “직접고용”
112일째 버릴 수 없는 부산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의 꿈, “직접고용”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5.20 19:51
  • 수정 2020.05.20 2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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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자회사 말고 직접고용해도 비용 부담 없어”
부산지하철 노사, ‘직접고용-자회사’로 평행선 달려
이른 새벽부터 부산에서 청와대로 올라온 황귀순 부산지하철노조 서비스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이른 새벽부터 부산에서 청와대로 올라온 황귀순 부산지하철노조 서비스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20일 이른 새벽 아침밥도 먹지 못하고 황귀순 씨는 부산에서 출발해 청와대 앞으로 왔다. 부산지하철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를 자회사 방식이 아닌 부산교통공사가 직접고용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 정부의 공공기관 관리감독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올해로 61세인 황귀순 씨는 부산지하철 4호선 고촌역에서 역사 청소노동자로 용역업체에 비정규직으로 고용돼 9년째 일하고 있다. 9년째 계약을 6개월 단위로 갱신했다. 6개월짜리 비정규직 신분이었던 그가 기대를 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상시지속업무는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6개월 단위로 계약을 연장해왔지만 그의 업무는 상시지속업무였다. 지하철 역사 청소는 끊이지 않고 그가 9년째 해왔고, 그 이전부터 그의 동료들이 해왔다.

그런 기대를 품었던 그는 어느새 112일째 부산지하철 시청역 대합실에서 부산지하철노조 서비스지부장으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부산교통공사는 자회사 방식의 고용전환을, 노동조합은 부산교통공사의 직접고용을 각각 주장하며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식 중 자회사 설립 후 자회사에 고용하는 방법이 현재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수단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다만 지난 2월 3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현황’에 따르면 자회사 전환 방식은 공공기관이 주로 택하는 방식이다. 부산교통공사 같은 지방공기업의 경우 직접채용을 90.2% 수치로 택했다.

부산지하철노조는 “자회사 설립을 통한 간접고용은 기존 용역업체와 동일하게 설립비 및 관리비용이 발생해 비용이 많이 들고 그로 이해 청소노동자의 임금과 복리후생비로 돌아갈 재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자회사가 가져가야 하는 중간 관리자의 인건비와 자회사 영업이익 등을 직접고용을 통해 청소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더 많이 사용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교통공사가 직접고용 방식의 정규직 전환에 재정이 많이 든다는 것에 대한 반박이다.

국립대 병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직접고용 방식으로 이룬 몇 곳의 사례를 보면 직접고용 전환 방식에 제기되는 비용 문제는 실제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은 “직접고용은 비용이 더 들지 않는다”며 “국립대 병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시 소요 비용을 2달 간 원가분석하고 이윤과 운영비를 계산한 결과다”라고 주장했다.

부산지하철노조 역시 계산을 했는데, “기존의 1년 전체 용역 예산인 600억 중 일반관리비 10억, 자회사 이윤 20억, 부가가치세 40억만 줄여도 처우개선까지 가능하고 그 중 절반만 처우개선에 써도 연간 35억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접고용 시 이윤과 부가가치세가 발생하지 않아 예산도 절감하고 충분히 직접고용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황귀순 지부장의 직접고용 전환의 꿈도 소박하다. 황귀순 지부장은 “우리는 정말로 직접고용해서 기존 정규직 월급만큼 달라는 것도 아니고, 시중노임단가 적용과 복지 수준만 향상시켜 주면 받아들이겠다는 것인데 자회사로 계속 변함이 없다”고 토로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정규직이 아니고 비정규직이어서 일상적 차별을 받지 않았나 생각하곤 했다. 제대로 된 샤워시설 하나 없어 땀 흘려 일하고 냄새가 나는 데도 씻지도 못하고 퇴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섭을 통해 공사와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이야기는 역무원이 씻는 샤워실을 시간 조정해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남성 전용 샤워실이어서 시간을 조정한다고 해서 될 문제는 아닌데도 말이다. 심지어 휴게공간은 협소했고 에어컨 하나 없어 여름에는 고역이었다. 뜨거운 바람이라도 쐬자고 선풍기를 자비로 구입하기도 했다.

20일 오전 11시 청와대 앞에서 부산지하철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20일 오전 11시 청와대 앞에서 부산지하철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코로나19 발생 이후 차별이 더 드러났다는 게 황귀순 지부장의 설명이다. 마스크도 개인이 구매해야 했다. 희석시켜 써야 하는 소독약도 어떻게 희석하는지, 계량은 어떻게 하는지, 소독약 사용 시 흡입에 대해 어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듣지 못했다. 소독약 원액만 딸랑 받았다.

올해 초 부산교통공사가 자회사 추진단 설치와 운영예규제정안을 예고했다. 노사전문가협의기구를 통하지 않은 결정이라는 논란도 발생했고, 노동조합과 부산시 등의 문제 제기로 공사는 자회사 추진단을 보류했다. 그리고 지난 2월 중순 13차 노사전문가협의기구 회의를 개최했다. 하지만 합의 지점은 도출하지 못했다. 13차 회의 이후 실무진 협의는 계속 이뤄지고 있지만 노사 입장 차가 뚜렷해 실무진 협의도 무색한 상황이다.

황귀순 지부장은 20일 오후 여섯 시가 다 돼가는 저녁 어스름에 KTX 부산역에 도착했다. 다시 그는 농성을 이어간다. 오는 22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공공운수노조 영남권 결의대회를 계획 중이기도 하다. 농성을 이어가는 그의 꿈은 소박했다.

“몸 건강해서 지금 직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즐겁죠. 거기에서 조금만 바뀌었으면 더 좋지 않겠냐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