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이야기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이야기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05.25 00:00
  • 수정 2020.05.23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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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안재성 작가의 '달뜨기 마을'
달뜨기 마을 표지
달뜨기 마을 ⓒ 도서출판목선재

달뜨기 마을은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출판된 소설집이다.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아홉 명의 사람이 아홉 개의 단편에 담겼다.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 안재성 작가가 쓰고 도서출판 목선재에서 펴냈다. 안재성 작가는 “대부분 본인이나 유족의 직접증언을 토대로 썼다. 따라서 소설의 등장인물과 사건의 줄거리는 모두 실제사실에 바탕을 두었으며 가독성과 익명성을 위해 약간의 각색만을 거쳤다”고 밝혔다.

식민지 시기부터 해방 전후가 묻어나는 ‘이천의 모스크바’, 5월 18일 광주를 풀어낸 ‘팬데믹의 날’, 골프장 캐디 노동조합 이야기인 ‘캐디라 불러주세요’ 등 단편 하나하나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젊은 세대는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20대와 30대 기자가 책을 읽고 얘기를 나눴다. 서평에는 박완순 기자(이하 ), 강한님 기자(이하 )이 참여했다.

1)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 각 단편마다 주인공의 개인사적 이야기로 풀어나가다 보니 몰입감이 있었어요. 개인사에 질곡의 대한민국 근현대사 장면들이 나왔어요. 그래서 심정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었어요.

: 저도 좀 비슷한데.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직접증언이고 개인사가 담겨있으니까 무게감이 느껴져서 읽기 힘들었어요.

2) 단편들이 모인 소설집이다. 어떤 단편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지, 혹은 어떤 단편의 어떤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지?

: ‘팬데믹의 날’ 중 일터에서의 성폭력을 다룬 거요. 노년 시절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 것도 좋았어요.

: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게 왜 좋았어요?

: 뭔가 끝났을 때 마음에 어떻게 남을지 어떤 경험으로 가져갈지가 개인에게 중요할 수 있잖아요.

: 겪었던 일들이 본인에게 어떻게 남는지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거네요. 저는 이천의 모스크바 읽을 때 재미있었어요. 그때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것 같아서 좋았어요. 결국 그 당시 마을에서 평판이 좋았던 사람들은 큰 피해를 보지는 않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념을 넘어서 인간성 자체에 대한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 저도 첫 번째 단편 주인공이 “대한민국이 너무 무서워진 거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당시 이천 사람들이 느꼈던 혼란스럽고 불안했던 마음을 잘 보여줬던 것 같아요.

: 우리 사회가 여성을 둘러싼 환경이 시간이 흘러도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책에서도 나왔듯이 시대는 뒷장으로 갈수록 현대로 향하지만 해방시기의 여성이나, 70년대 여성노동자나, 현재의 캐디나 여성이기에 받는 차별 서사는 같았거든요.

3) 책에 나온 단편들이 각각 개별적인 이야기지만 역사이다. 어떤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더불어서 1부부터 3부까지 역사적 시간 순서로 배열된 것인데, 무엇인가 바뀌는 것들이 있었는지?

: 노조활동이든 어떤 활동이든 개인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나를 확인하는 게 관통하는 메시지 같았어요. 캐디랑 네임텍 이야기에서도 그분들이 노조활동을 하면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인을 받았던 거잖아요. 답답한 심정과 비참한 마음을 활동을 통해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 저는 자존감 이야기까지는 생각을 못 해봤고. 소설에는 아홉 사람만 등장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거잖아요. 요즘에 취재할 때 노동조합들 이름 외우기 바쁜데 결국 다 사람들로 이뤄져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4) 올해가 전태일 열사 50주기인데 올해 돌아볼 전태일 열사 정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그리고 이 책에선 어떤 전태일 열사 정신을 찾을 수 있을지?

: 취재를 위해 최근 전태일다리에 자주 나가면서 전태일 평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제가 인용했던 걸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 책에서 저는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서로 수다 떠는 거, 나중에 회상해보니까 같이 했던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은 거, 이런 게 좋았거든요.

: 그러면서 세상도 바꾼 거죠.

: 서로를 아끼는 마음들. 그게 전태일과 이어지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 연대나 배려 같은 정신이 공동체 역할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공동체 하면 개인들의 헌신과 희생을 강요했던 부분이 있었고.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파편화되기도 했잖아요.

: 저한테는 공동체가 너무 어려운 단어거든요. 책에서는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온 과정들을 담았잖아요. 저는 감히 진짜 애쓰셨다. 이런 말을 좀 하고 싶네요.

: 단편 단편마다 주인공이 자기 공동체 안에서 자존감도 회복하고, 네가 잘 돼야 나도 잘 된다는 정신도 발휘 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공동체가 그렇게 거대담론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네요.

 

즐겁고 슬프게 소설집을 읽으며 마음에 남는 문장들을 옮겨 적었다.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감정들로 채워진 문장들을 볼 때면 다음 장으로 넘기기가 어렵기도 했다. 달뜨기 마을을 읽다 기자가 옮겨 적은 구절 중 일부를 소개한다.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없고, 죽을 만큼 고문을 당하거나 감옥살이를 한 것도 없고... 죽을 날이 가까워지니 조선견직에서 함께 싸운 친구들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한 명이라도 살아있다면,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고 싶구나. 죽어도 잊을 수 없는 그 이름들... 정숙이, 남겸이, 복금이, 소재, 혜정 ... 나의 친구들이 보고 싶다. - 69쪽.

 

“순애야, 너 괜찮니?”
순애 씨도 딱 한 마디만 했습니다.
“아버지, 저 아시지요? 제가 바른 일만 하는 거 아시잖아요?”
아버지는 딸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습니다.
“알았다. 네가 잘 알아서 해라. 너를 믿는다.”
아버지는 그 말만 남기도 돌아서더니 후들후들 걸어 현장을 나갔습니다. 구부정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 191쪽.

 

투쟁 격려를 하러 온 금속노조 위원장은 이런 조그마한 투쟁들이 모이고 모여서 세상이 바뀌는 거라고 말했지만,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거창한 꿈을 가진 조합원도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 일을 나갔다. 일을 다니는 자체가 싸움이었다. - 266쪽.

 

저도 벌써 오래전에 다른 골프장에 들어가 지금까지 일하고 있어요. 비록 회사는 달라졌지만, 우리는 1년에 두 번은 꼭 만나요. 골프장이 노는 겨울에 만나서 웃고 떠들고 술도 많이 마시며 놀아요. 옛날이야기가 나오면 서로 끌어안고 울기도 하는데 이상하게 울면 마음이 풀려요. 왜 우냐고요? 살기 어려운 건 지금도 마찬가지니까요. 생활고를 못 이겨서 자살을 기도했던 친구는 모임에도 잘 안 오는데, 안부 전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울먹이기도 하죠. 그러면 그 친구도 울고...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도 어제 일만 같아요. - 3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