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윤의 취식로드] 윤리는 조사 대상이 아니다
[백승윤의 취식로드] 윤리는 조사 대상이 아니다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05.26 16:14
  • 수정 2020.06.2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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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윤의 취식로드] 길 위에서 취재하고, 밥도 먹고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며칠 전 채널A 기자라는 제보자의 말을 빌려 "(채널A는) 자정작용이 불가능한 조직"이라는 기사를 썼다. 기사를 쓰고 나선 조금 과했나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적절했지 싶다.

3월. 채널A와 검찰 간 유착 의혹이 불거졌다. MBC가 채널A 법조팀 기자가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VIK) 대표의 지인 지 아무개 씨를 취재하는 과정에 검찰 고위 관계자가 연루됐다고 의심할만한 정황을 보도하면서다. "회사에도 보고를 했지" 등 해당 기자의 발언으로 채널A '윗선'이 취재를 지시했는지 여부도 진상규명 대상이 됐다. 25일 채널A는 자체진상조사위원회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의혹이 제기되고 56일 만이다.

한마디로 조사위는 두 가지 의혹에 대해 규명한 게 없다. 조사위는 '진상 없는 보고서'가 민망했는지, 조사위의 한계를 언급했다. "강제조사권이 없어 한계가 있었다"고 썼다. 당연한 얘기다. 채널A가 자체적으로 꾸린 조사위가 강제조사권을 가지려면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그 한계는 처음부터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바다.

조사위가 '검-언 유착' 의혹에 내린 결론은 '알 수 없지만, 했을 수도 있다'였다. 조사위는 법조팀 기자가 증거자료로 제출한 휴대전화 2대와 노트북 1대를 포맷했기 때문에 "법조팀 이 기자가 검찰 관계자와 논의했다고 볼만한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썼다. 또 "다만 이 기자가 지 아무개와 만나는 과정에 대해 검찰 관계자와 대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썼다. 검-언 유착 관련, 조사위가 규명한 건 실질적으로 '휴대전화 2대, 노트북 1대 포맷 됨'뿐이다.

'윗선의 취재 지시' 여부는 첫 단추부터 문제였다. 김차수 대표이사 전무는 '윗선'에 해당한다. 조사 대상이다. 채널A는 그를 진상조사위 위원장에 임명했다. 조사위는 김차수 대표이사 전무와 김재호 대표이사 사장에 대해 각각 1차례 진술 조사를 실시했을 뿐이다. '관여하지 않는다' '보고받지 않는다'는 몇 마디에 조사가 끝났다. 56쪽 보고서 중 두 사람이 언급된 분량은 대략 1쪽에 지나지 않는다. '윗선의 취재 지시'는 채널A가 단호하게 부정해오던 부분이다. 기자는 직접 겪기도 했다. "채널A 사장도 알고 있다"는 의혹 제기 발언을 기사에 썼다가 채널A로부터 '사장님은 모른다. 민·형사상 소송을 취하겠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토록 민감한 사안인데 1쪽이면 너무 부족한 해명이 아닌가 싶다. 의혹이 여전히 제기될 수밖에 없다.

보고서의 나머지 55쪽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법조팀 기자의 취재 과정, 취재 윤리를 위반한 증거인 녹취록과 메시지, 취재 윤리 강화 대책 등이다. 기자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는지 서술하며, 그 연장선상에서 보고서도 끝맺는다.

채널A 자체진상조사위원회가 밝혀야 하는 건 '유착'과 '지시'이지 '윤리'가 아니다. 이철 전 대표에게 '가족의 안위'를 언급한 이동재 기자의 발언에서 협박성 취재는 이미 드러난 상태였다. 조사위는 '기자 개인의 취재윤리 강화'로 보고서를 끝냈지만, 이는 유착과 지시에 대한 답이 아니다. 모두가 아는 사실만 나열해선 진상조사 결과라고 할 수 없다. 채널A 자체 조사는 "자정작용이 불가능한 조직"이라는 '누군가'의 발언을 떠올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