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혁 위원장 "서비스 노동운동의 '전환' 준비하는 한 해 될 것"
강규혁 위원장 "서비스 노동운동의 '전환' 준비하는 한 해 될 것"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5.26 17:52
  • 수정 2020.05.26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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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키워드는 '자주성', 20년은 '전환'"··· "올해는 대산별 전환 위한 로드맵 완성한다"
[인터뷰]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

2001년 2월 3일 조합원 1만 2천 명으로 출발해 10만 명 규모로 성장한 서비스연맹은 지난 12일 '제20년차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성년'을 맞았다. 코로나19로 3개월가량 늦은 정기대대를 개최한 서비스연맹은 이날 ▲코로나 위기 극복 ▲노동자 직접정치와 사회대개혁 ▲업종과 지역으로 단결 ▲간부·조합원 역량 강화 ▲자랑찬 20년&새로운 10년 등을 올해 5대 주요 사업으로 결정했다.

정기대대 이후 강규혁 위원장에게 서비스연맹의 2019년을 관통하고, 2020년을 내다볼 수 있는 키워드를 물었다. 아울러 코로나19 위기 극복, 플랫폼 노동 사회적 대화 포럼, 대산별 전환 로드맵 마련 등 만 스무 살 서비스연맹 앞에 놓인 현안에 관한 생각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18일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 ⓒ 이현석 studio175@gmail.com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 ⓒ 이현석 studio175@gmail.com

"2019년 서비스연맹의 키워드는 자주성"

- 서비스연맹의 2019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꼽는다면?

'자주성'이다. 2001년 2월, 현장과 세상의 주인이 되기 위해 일어선 노동자 1만 2천여 명으로 출발한 서비스연맹은 명실상부 10만 조직이 됐다. 특히 서비스연맹의 성장에서 주목할 점은 2019년 함께하게 된 조합원 1만여 명 중 70% 이상이 특수고용노동자(특고)라는 거다. 지난해 국제노동기구(ILO) 100주년을 맞았는데도 정부와 국회가 핑퐁게임 하다가 놓친, 결사의 자유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특고가 스스로의 힘으로 뭉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 결과 최근 가전통신서비스노조 코디코닥지부는 103일 만에 노조 설립필증을 받았다. 대리운전노조와 방과후강사노조도 필증을 반드시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이다. 이처럼 열악한 처지에 놓인 당사자들이 자주적으로 조직하고 단결해 서비스연맹의 10만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또한 본인들의 힘으로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는 학비노조를 중심으로 지난해 20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공동파업을 해냈고 공무직위원회라는 성과도 얻었다. 이외에도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이해 개최한 제1회 서비스노동자 통일골든벨, 조합원 120여 명이 일본의 경제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해 참가한 20기 민주노총 중앙통일선봉대, 택배노동자들의 유니클로 배송거부와 마트노동자들의 일본 제품 안내를 거부 등은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서비스연맹의 투쟁이었다.

지난 4.15 총선에서 노동자를 대표하는 한두 명이 아니라 서비스연맹 후보 18명이 출마해 노동자 직접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 또한 노동자의 자주성에 근거한 행동이었다. 플랫폼 노동 영역에서 사회적 대화 역시 서비스연맹의 자주적 모색과 구성이 없었다면 정부와 국회, 전문가들이 하는 논의만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지난해뿐 아니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서비스연맹의 키워드는 '자주성'이 될 것이다.

- 반면, 과제도 남았을 텐데.

서비스연맹은 급격하게 양적성장을 해왔다. 이젠 질적성장도 함께 잡는 것이 과제다. 질적성장은 두 측면으로 나뉜다. 하나는 내부 정책역량이다. 서비스연맹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체적인 정책 역량으로 실시간 소화를 해내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외부 정책자문위원 6분을 영입해서 준연구위원제도를 도입했다. 내부 정책인원인 정책실과 정책연구원에 외부 자문단까지 연인원 10~11명이 움직인 셈이다.

다른 하나는 전체 노동자와의 연대다. 서비스연맹은 이제 5년 전 소위 '기타연맹'이 아닌 주요 산별이 됐기에 민주노총 안에서 우리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존경받는 산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산별까지는 가야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 더 어려운 노동자들을 위해 솔선하며 연대의 폭을 더 넓히지 못한 측면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예를 들어 지난해 톨게이트 투쟁이 그렇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은 했지만, 우리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찾고 어려운 노동자들을 엄호해야 했던 거 아닌가 싶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은 장기전,
노조의 사회적 책임도 고민해야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 ⓒ 이현석 studio175@gmail.com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
ⓒ 이현석 studio175@gmail.com

- 코로나19 위기에 서비스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서비스연맹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최전선에 직격탄을 맞은 여행업·관광업 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서비스연맹 조합원이다. 서비스연맹은 코로나19 경제위기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매주 월요일 사무처회의를 통해 코로나19 대책회의를 진행하고 2월부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정부도 초반엔 보건위기에 대한 대책은 세웠으나 경제위기에 대한 대책과 입장은 세우지 못했다. 그러다 2월 말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후 서비스연맹은 면세점업 등 업종별 위기 대응과 더불어 특고를 비롯한 사회안전망 바깥에 선 노동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대책을 속도감 있게 모색해왔다. 이런 노력들이 쌓여 현재 '전국민고용보험' 같은 요구로 발전했다.

- 올해 정기대대에서 밝힌 올해 첫 번째 사업 계획 또한 '코로나 위기 극복'이었다. 앞으로 연맹의 계획은?

올해 초 준비했던 정기대대 사업을 수정보완하면서 '코로나 위기 극복'을 첫 번째 사업으로 올렸다. 코로나19는 한국사회 안전망의 취약함과 고용의 불평등을 낱낱이 드러냈다. 중요한 점은 코로나19는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는 거다. 따라서 같은 위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각지대 없이 고용보험에 가입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최근 20대 국회 마지막 환노위에서 고용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특고는 대상에서 뺐다. 아직도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정치권과 재벌의 인식이 후진적이라는 증거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노동자, 나아가 모든 국민이 함께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서비스연맹이 가장 앞장에 설 것이다. 해고금지·총고용보장을 중심으로 사회안전망 전면 확대 등을 요구하며 투쟁할 생각이다. 다만 우리가 요구만 할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인지를 민주노총 차원에서 논의도 병행해야 한다. 방치된 노동자들의 소리는 어떻게 같이 갈 것인가, 상대적으로 처우가 좋은 공공부문 정규직이나 대기업 영역은 무엇을 할 수 있나 등에 대해 논쟁은 많이 되겠지만 고민해봐야 한다고 본다.

- 서비스연맹 차원에서 사회적 책임을 생각해보자면?

매칭펀드를 상상해봤다. 정규직 조합원들이 급여의 일정 금액을 기부하면 기업이나 국가가 매칭펀드를 조성해 사업장 내 협력업체, 비정규직, 최저임금 받는 노동자들과 공존할 방법을 모색하는 거다. 물론 '우리도 여전히 배고파, 그러니까 그동안 많이 떼어먹은 재벌이 다 해야 돼’ 이런 주장이 있다. 맞다. 그런데 IMF 이후 20년 이상 흘러오면서 우리 사회 대기업, 대공장, 공기업군들은 이미 상위 30%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에게 1년에 월급 3% 인상이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풍족하진 않지만 먹고살 만하니까 내놓을게요. 대신 재벌도, 국가도 내놓으세요' 이런 식으로 협력업체, 비정규직들을 보호해줄 수 있을 거다. 노동조합도 이런 고민들을 구체적으로 뱉으면서 지금 10대4 정도로 벌어진 노동시장 양극화를 10대7 정도로 만들 때까지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 지난 4월에는 서비스연맹이 주도적으로 준비해온 '플랫폼 노동 사회적 대화 포럼'이 출범했다.

1년 동안 플랫폼 산업 노사가 수많은 세미나, 토론 등을 함께 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아온 결과이자 노사 단체가 주도해 이뤄낸 최초의 사회적 대화라는 측면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사회적 대화가 활발한 국가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기존 한국 사회의 사회적 대화는 대부분 정부가 주도하는 형태로 노사 중심성이 높지 않았다. 하지만 플랫폼노동포럼은 노사 양 단체가 사회적 대화의 구성 및 의제 선정을 주도해왔고 앞으로도 해나갈 것이다. 정부와 전문가는 이를 지원하는 형태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만큼 더딜 수 있고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정말로 좋은 결실을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하나 덧붙이자면 민주노총 내부에도 노사가 주도하는 사회적 대화가 되는구나, 노동조합이 유연하게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구나, 이런 선례를 보여주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도 있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 ⓒ 이현석 studio175@gmail.com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 ⓒ 이현석 studio175@gmail.com

서비스 노동운동의 '전환'
준비하는 한 해 될 것

- 그렇다면, 서비스연맹의 2020년을 내다볼 수 있는 '키워드'는?

서비스연맹의 새로운 10년을 향한 '전환'이 키워드다. 올해는 전태일 열사 분신 항거 50주년, 5.18 광주민주항쟁 40주년, 서비스연맹 창립 20주년 등 전환적인 국면을 맞이하는 해다. 서비스연맹도 10만 규모로 성장했는데 이젠 또 다른 10년, 서비스 노동운동의 전환을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민주노총이 100만을 넘어 200만으로 가는 시대에 서비스연맹이 가장 큰 역할을 할 거란 확신이 있다. 산업이 이미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서비스연맹은 양적인 성장뿐 아니라 정말로 한국사회에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가 뭘까? 하나는 재벌 개혁이다. 재벌이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현재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재벌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서비스연맹은 재벌체제를 청산하기 위한 일상적인 교육, 선전, 투쟁을 해나갈 계획이다.

다른 하나는 한반도 평화다. 더는 미국에 종속된 남북관계가 아니라 앞으로는 남북 평화의 시대, 공존의 시대, 통일의 시대를 우리 스스로 열어나가야 한다. 서비스연맹은 가맹조직별로 통일사업주체를 세우고, 연맹 통일위원회를 강화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서비스연맹의 새로운 10년은 노동자가 자신의 힘으로 촛불혁명의 과제인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완수해, '노동존중사회'를 넘어 '노동중심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에서 '전환'이 앞으로 서비스연맹의 키워드가 될 것 같다.  

- 정기대대에서 "올해는 서비스연맹이 명실공히 대산별 전환을 위한 질적, 물적 토대를 마련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산별 전환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서비스연맹은 노정교섭 등에서 서비스산업을 대표하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연맹 체계로는 약하고 하나의 단일화된 대산별체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바 있다. 그래서 6년 전 소산별 위에 대산별 우산이 씌워진 독일의 서비스노조, 베르디 모델을 채택했다. 이 모델을 실현하기 위한 단계로 1단계는 소산별로 전환하면서 연맹이 우산 역할을 하고, 2단계로 연맹이라는 우산을 대산별로 전환하는 목표를 세웠다.

이제 서비스연맹은 산별노조 조합원 비중이 84.1%에 이르렀다. 지난해 소산별인 가전통신서비스노조,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등이 새롭게 깃발을 꽂았다. 또 다른 축인 지역노조로는 제주관광서비스노조가 출범했으며 서비스일반노조를 중심으로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 소산별과 지역노조가 씨줄날줄 개념으로 대산별 전환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이제 서비스연맹 차원에서 15.9%인 기업별 노조에 대한 산별전환 방안을 모색하고, 대산별 노조 건설에 대한 로드맵을 준비할 시점이다.

올해 초부터 연구사업을 통해 가깝게는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등 국내를 비롯해 독일, 스웨덴, 브라질 등 해외 산별노조 사례를 취합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서비스연맹 버전의 대산별 전환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이다. 로드맵 마련을 위한 TF가 5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TF가 8월까지 토론안을 마련하면, 9월부터 12월까지 현장 토론에 들어간다. 당장 올해 안에 대산별 전환을 완료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적어도 방향과 결을 분명히 하는 수준까지 정리하고 내년 초 정기대대에서 로드맵을 확정하려 한다.

- 마지막으로 내년 만 20살을 맞는 서비스연맹의 10년 뒤를 그려본다면?

서비스연맹의 향후 10년은 청년 조합원들의 몫이다. 내가 큰 스케치 정도를 그리면 청년 세대인 후배들이 색깔을 입혀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나는 위원장으로 오래 지낸 만큼 틀에 갇히기를 경계하는 편이다. 후배들에게 자주 '틀에 박혀 있는 집회 하지 말자' '서비스연맹만의 방식 뭐 좀 없나?' 늘 상상력을 더 많이 발휘하길 주문한다. '헉' 소리가 나와도 괜찮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실패하면서 가는 거고,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니까. 이제 또 다른 10년은 후배인 청년 조합원들에게 기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