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김동명 위원장, "이제 노동의 이름을 찾아줄 때"
취임 100일 김동명 위원장, "이제 노동의 이름을 찾아줄 때"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05.28 00:00
  • 수정 2020.05.27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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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연맹은 지역과 산별의 사회적 대화에 촉매제”
[인터뷰 전문]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지난 1월 28일, 김동명 위원장이 제27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임원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1월 20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김동명 위원장의 임기는 코로나19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취임 후 첫 정기대의원대회마저 온라인으로 치른 김동명 위원장은 최근 고심 끝에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참여를 선언,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책임 있는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100일 넘게 코로나19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김동명 위원장은 코로나19가 촉발한 위기 타개와 이를 위한 사회적 대화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번 인터뷰는 취임 100일에서 조금 지난, 5월 19일 김동명 위원장의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지난 6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조금 늦었지만, 취임 100일 소감을 듣고 싶다.

생각보다 정신없이 지나갔다. 특히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이동이 제한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현장과의 대면도 제한됐다. 그러면서 정기대의원대회 역시 온라인으로 치렀다. 현장 동지들과 노동현안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하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크다. 또, 총선을 겪었고 사회적 대화를 앞두고 있다. 복잡다단한 현장의 여러 가지 문제도 있다 보니까 기본적인 공약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현실과 어떻게 접목해서 공약을 구체화하고 좋은 방향을 설정할 것인지 때문에 정신이 없다.

이번에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현장의 고용안정, 취약계층 보호, 건강보험 확대 적용 등 사회안전망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지난 4월 13일, 한국노총은 ‘코로나19 고용위기 신고센터’ 현판식을 진행한 바 있다. 신고센터가 운영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신고센터를 통해 들어오는 제보 사례가 있나?

신고센터를 통해 제보가 들어오기보다는 한국노총 차원에서 2주에 한 번씩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무급휴직, 임금감소, 구조조정 등에 대한 위기감이 큰데, 특히 국가 간, 지역 간 이동이 제한되면서 항공업, 관광업, 건설업, 시내버스 등 자동차업종과 택시에서 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일감이 90% 이상 줄어드는 등 초토화 상태다. 항공업과 관광산업의 경우,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위기업종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할 수 있도록 경사노위에 관광업, 항공업, 건설업 등의 업종별 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제조업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굉장한 위기가 닥칠 것으로 보고 있다. 위기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강화와 고용안정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노총은 지속적으로 현장의 실태를 살펴보고 이에 대비해나갈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고용보험을 확대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코로나19 진행 및 대응과정을 보면 좀 더 열악한 상황의 노동자, 중소영세기업, 비정규직의 피해가 더 빠르고 크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우리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을 예상하기도 한다. 코로나19는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는가?

양극화나 불평등, 아주 극심한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회안전망의 부재, 취약한 공공의료 등 우리사회는 다양한 구조적인 위기가 있었다. 노동자의 삶은 코로나19 이전부터 구조적으로 위태로웠다. 코로나19라는 겪어보지 못한 강력한 현상이 더욱 취약한 노동자의 문제를 아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고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요즘 흔히 ‘포스트 코로나19’를 얘기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 단어를 언급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입장이 녹아있다. 사용자나 정치인이 말하는 ‘포스트 코로나19’와 노동자가 말하는 ‘포스트 코로나19’는 다를 것이다. 코로나19 극복은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을 국민들에게 찾아주는 것과 불평등, 양극화로 인해 사회적 위기의 직격탄이 사회적 약자에게 행해지는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대책 마련에 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조금 더 나은 위치에 있는, 더 많이 누리고 이익이 많은 강자들이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의 위치보다 더 열악한 위치의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위기상황에서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강화하기 위해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짓밟아서는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 경쟁에 의해 강자는 더욱 강해지고 약자는 더욱 추락하는 수직적인 구조의 사회가 아니라 열악한 상황의 사람들에게 어떤 위기가 닥쳐도 인간 이하의, 절망의 삶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사회적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사회 주체들 역시 책임 있는 논의의 참여로 활발한 사회적 대화를 이끌고, 그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구체적인 법과 제도를 확립해나가야 한다.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취약계층이 아무런 대책 없이 희생되지 않는 좋은 사회, 같이 함께하는 통합과 화합의 사회로 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한국노총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설명해 달라.

항간에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에서 민주노총과 기득권 다툼을 한다’, ‘경영계도 그렇고 다들 각자의 속셈이 있는데 양보가 가능하겠나’는 등의 여러 얘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통해서도 밝혔듯이 사회적 대화에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 그런데 한국노총이 책임과 역할을 다한다는 것을 ‘노동자가 희생하고 양보하겠다’고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한국노총처럼 좀 더 나은 환경에 있는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텐데 그런 과정이 결코 정부나 여론, 경영계의 압박으로 인해 진행돼서는 안 된다. 우리 노동은 주체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책임을 돌아보고 우리의 역할을 다하겠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지난 1월, 한국노총 임원선거 과정에서 “현장에서 신뢰받는 통합의 한국노총”을 핵심 슬로건으로 제시했다. 100여 일이 지난 지금, 핵심 슬로건에 비추어 현재의 한국노총을 진단해 달라.

지금 평가하기엔 이른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다. 현장의 신뢰는 만나서 얼굴을 보고 얘기하면서 자라난다고 생각하는데, 100일 동안 특별히 현장에 신뢰를 보여주거나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도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선거 유세 중에도 말했지만, 지도부가 개인의 이득을 위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렵게 조직의 힘을 모았고, 이번 총선에서도 보여줬듯이 정치의 힘을 모았다. 이렇게 모인 힘이 일부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현장 조합원에게 돌아가고 특히 더 어려운 입장의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지도부가 늘 자신의 원칙을 지키고 이익을 탐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해서 보여준다면 현장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한국노총은 정책, 조직, 대외협력 등 많은 분야가 지역이나 산별보다 중앙에 집중돼있다. 한국노총에 주어진 과제를 지역, 산별과 함께 풀어갈 때 신뢰와 통합의 조직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후보시절, 인터뷰 중 ‘노동의 미래위원회’를 만들겠다고 얘기한 바 있다. 노동의 미래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해 설명해 달라. 또 노동의 미래위원회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지 궁금하다.

취임 100일 즈음해서 전 간부회의를 통해 노동의 미래위원회에 대한 구성과 개략적인 운영방안에 대해 발표한 바 있다. 노동의 미래위원회는 4차산업과 디지털혁명, 포스트 코로나19시대가 몰고 올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비한 노동운동의 전망과 미래 시나리오, 2011년 미래전략위원회에 대한 평가 및 점검, 사회안전망 강화와 재분배 문제, 현장 민주주의와 조직 혁신 및 확대, 정치연대전략 같은 것들에 대한 기존의 전략을 점검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노동정책, 200만 조직화, 정치연대, 조직이미지 제고, 재정 안정성 등 5개 영역으로 전략사업을 편성하고 담당본부 책임 하에 기본계획을 수립해 상임집행위원회 단위에서 이행을 점검할 예정이다. 2022년까지 전략사업 과제 이행결과를 중앙집행위원회나 중앙위원회에 주기적으로 보고해 나갈 계획이다.

5월 마지막 주에는 본격적으로 1차 회의가 시작될 것 같다. 부족한 부분은 외부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완성해나가며 전략사업 과제와 현실의 목표를 결합해나갈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부터 강조해온 것은 “노동은 민원인이 아니라 주체”라는 점이다. 그러나 정치권이나 정부는 노동이 주체가 돼야 한다고 하면서도, 노동계의 양보를 강요할 때만 주체라고 치켜세우는 모양새다. 여전히 노동은 시혜의 대상, 혹은 귀찮은 민원인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노동이 우리 사회에서 당당한 주체로 서기 위한 방안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된다는 시가 있다. ‘노동’ 역시 제 이름을 찾을 때만 주체가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가장 많이 얘기된 것이 노동존중이다. 그러나 여기서 노동이 아직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존중은 그 대상이지 주체가 아니다. 허울뿐인 노동은 아무리 호명돼도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앞으로는 ‘노동존중’이 아니라 ‘노동중심’이 돼야 한다고 본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 주체, 경제를 이끄는 한 주체로서 노동은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사실 그 자체로 이미 주체다. 지금은 노동자의 삶이 흔들리고 압박받고 있다. 또 임금이나 자기 존엄 등에서 자기결정권이 없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면 주는 대로 받는다. 삶은 고단하고 언제 내가 실업자가 될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척박한 현실을 살고 있기 때문에 노동 자신도 우리가 주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삶이 척박한데 어떻게 스스로 주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겠나.

그런데도 노동이 주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스스로 열악하고 힘들더라도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스스로 가져야 한다. 그 생각을 조직의 힘과 연결해서 노동자가 정말 힘을 가질 때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진정으로 주체가 되려면 힘이 필요하다. 조직의 힘이라는 것은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다.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조직의 힘이 하나로 모여야 하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고민도 필요하다. 그런 영향력과 역량이 없다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나. 대화나 정치 역시 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최근에 국무총리실에서 제안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참여를 결정했다. 이미 경사노위라는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이 ‘경사노위를 벗어난 사회적 대화에 응할까?’하는 시선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별도의 사회적 대화에 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대해서는 늘 환영의 뜻을 밝혀왔다. 다만 사회적 대화가 통과의례의 형식으로 진행된다거나 노동에 들러리 역할을 강요할 때는 반대한 것이다.

이번의 경우, 노동자들은 코로나19라는 엄청난 위기에 직면해있는데 대화의 틀을 어디로 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해 고용도, 삶도 위기다. 특히나 열악한 노동자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 형식이나 틀을 떠나서 한국노총이 조금이나마 책임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결단을 내리게 됐다.

사회적 대화의 방향은 사회적 약자를 향해야 한다. 약자에게 고통을 요구하는 대화는 폭력이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이해가 없는 사회적 대화는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사회적 대화의 태도는 역지사지라고 생각한다. 한국노총은 이 두 가지를 견지하면서 사회적 대화에 임할 예정이다.

지난 3월 6일, 경사노위에서 ‘‘코로나19’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 선언’에 합의한 바 있다. 총리실이 제안한 사회적 대화가 3월 경사노위에서의 합의보다 진보하기 위해 한국노총은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정부 관계자들이 “선언적인 의미로 하자”, “원포인트니까 큰 부담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경사노위에서도 했는데 큰 의미도 없고 선언적인 의미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런 부정적인 견해가 내부에서도 많았고 나 역시도 거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이다. 지난번에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의제나 내용을 열어놓고 한국노총은 더 큰 역할을 하기 위해 책임 있는 자세로 사회적 대화에 임할 것이다.

현재 실무논의 중이지만, 명확하게 의제를 어떤 것으로 할지, 합의 수준인지 선언 수준인지도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모든 가능성을 다 보면서 지금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어떻게 덜어낼 것인지에 집중할 것이다. 조금 고통스러운 점이 있더라도 책임 있는 자세로 한국노총이 대화를 잘 견인해보고 싶다. 그렇게 할 거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참여주체를 확대하고 관련법을 개정하는 등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사회적 대화로 개편하기 위한 조치들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진행과정에서 단기적 합의에 급급하거나 정부 정책으로 풀어야 할 사항을 사회적 대화로 넘기는 등 불필요한 논란이 양산되기도 했다. 정부는 여전히 사회적 대화를 정책의 포장지로 여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임기 동안 사회적 대화를 어떻게 풀어나갈 계획인가?

그동안의 사회적 대화는 정부 주도로 딱딱하게 이뤄지다 보니까 정부 정책의 저항을 완화하기 위한 소위 포장지로 활용하는 모습처럼 비쳤다. 그렇다고 해서 경사노위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내부적으로 의미 있는 합의도 있었다.

그렇지만 사회적 대화는 보다 다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는 복잡하고 미묘하다. 그 때문에 중앙 단위의 딱딱한 교섭으로 얼마나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딱딱하게 고정화된 중앙 단위를 떠나 다양한 단위의 대화 채널을 만들고 싶다. 대화 채널이 활발하게 가동될 때 이 복잡한 갈등을 풀어가는 하나의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노동이 매번 요구를 차곡차곡 쌓아놨다가 한 번 강력하게 폭발시키는 것보다는 일상적인 대화의 틀 속에서 상시로 대화를 해나가야 한다. 정부와 경영계의 중요한 파트너로서 상시적인 대화가 이뤄질 때 갈등이 해소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총연맹이 지역과 산별의 사회적 대화에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총연맹의 역할은 산하조직 대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산하조직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토대를 만들어주는 것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 힘, 좋은 무기를 각 지역과 산별로 나눠주면 총연맹이 힘을 쓸 수 있겠냐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총연맹이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풀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 모든 일을 총연맹에서 주도적으로 해결하려면 노동은 민원인이 돼야 한다.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총연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겠지만, 지역이나 산별에서 스스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주고 지원하는, 주도적인 역할보다는 현장을 중심에 놓고 총연맹이 지원하는 방식으로의 역할 전환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자주 만나는 거다. 대화라는 게 의제와 형식을 정해놓고서 할 수만은 없다. 대화의 본질이 서로의 의견을 관철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대화가 꾸준히 이어져야 아주 긴박한 순간에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평상시에 자주 만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이번 4.15총선에서 한국노총은 지난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맺은 정책이행의 이행을 담보하는 노동존중실천단을 공동으로 구성했다. 그 결과 51명의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 의원이 국회에 입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앞으로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의 활동방향과 운영계획에 대해 듣고 싶다.

지난 5월 1일,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은 고위급정책협의회를 개최했다. 여기서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협의를 진행한 바 있다. 21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에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 당선자 간담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또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중 1인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제21대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 준비위원회(가칭)’를 구성해 향후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의 구성 및 운영에 대한 세부 협의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준비위원회는 원 구성 현황을 반영해 노동의제 이행전략에 대한 논의를 기초로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 구성 및 운영 계획을 완료할 것이며 이는 3/4분기에 개최될 고위급정책협의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할 계획이다.

물론 한국노총으로서는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을 완전히 강제할 방법은 없다. 이번 총선에서 우리 한국노총과 정책연대를 맺은 여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했기 때문에 노동존중실천단을 통해 연대한 5대 비전, 20대 약속이 많이 입법화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이 많다. 총선에서의 압도적인 승리와 거대 여당이 좋은 조건이긴 하지만, 우리가 지켜봐야 할 것은 조건이 아니라 노동과 당의 신뢰, 당의 의지다. 약속을 현실에서 구체화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여당은 열악한 조건을 핑계로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열악하면 열악한 대로 그들의 의지와 노동에 대한 신뢰를 보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비판한 것이다. 힘이 없고 의석이 적은 것을 탓한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의석이 많기 때문에 무조건 법안이 통과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나 신뢰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못지키는 것이다.

고위급정책협의회 때 ‘배신의 대가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여기에 우리의 의지가 압축돼있다. 다시 한번 더불어민주당에 기회를 주고 의지를 물은 것이다. 과거보다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 촘촘한 조건,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이나 6개의 업종별 위원회를 만든 것뿐이다. 약속이 지켜지고 실제 법안으로 나타나는가는 여당의 신뢰와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또다시 여러 이유로 거부한다면, 한국노총도 단호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은 잘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너 배신하면 각오해’ 이런 소리를 먼저 하고 싶지는 않다. 한국노총도 그만큼 노력해서 여당에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

한국노총은 이번 4.15총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180여 석의 거대 여당이 탄생했다. 이번 총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배를 띄울 수도, 엎을 수도 있는 민심이 국회의 지형을 싹 갈아엎음으로써 정부여당에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민생 개혁의 속도를 높이라는 준엄한 명령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여당은 180여 석을 만들어준 국민의 명령을 바탕으로 개혁에 속도를 내길 바란다.

야당은 국민으로부터 받은 따끔한 회초리를 자양분 삼아 민생을 챙기는 정당으로 새로 태어나길 바란다. 선거 과정에서 왜 자신들은 거들떠보지 않느냐고 했는데, 거들떠보지도 않은 게 아니다. 자기들이 그렇게 되도록 만든 것이다. 노동조합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노동자를 외면하는 정책으로 일관하는 정당의 미래는 없다. 야당은 이번 총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노동에 대한 자신들의 정체성과 생각을 바꿔야 한다.

물론 한국노총과 정책연대를 맺은 정당이 다수 정당이 됐다고 해서 그 결과가 바로 ‘친노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여당도 친노동을 얘기해왔지만 때로는 여론을 핑계 대고 경영우선논리를 핑계 대면서 친노동을 실천하지 못한 게 있다. 한국노총이 어떻게 견인해나가느냐 역시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노동존중실천단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이번 총선은 어떠한 정당도 노동을 경시하거나 압박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앞으로 3년여의 임기가 기다리고 있다. 어떤 목표를 꼭 이루고 싶은가?

외형적인 성과를 이룬 위원장으로 남고 싶은 것보다는 임기를 마쳤을 때 애초에 내가 품었던 꿈과 의지, 가치를 스스로 저버렸다는 부끄러움 없이 임기를 마치고 싶다. 처음 노총 위원장에 출마했던 그 마음과 약속을 지킨 위원장으로 남고 싶다.

또, 사실 한국노총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노총이 앞으로도 조직된 노동자뿐만 아니라 더 열악하고 아픈 노동자의 편에서 지속해서 가치 있는 역할을 하는 그런 단체가 됐으면 좋겠다.

한국노총이 한국노총의 조합원뿐만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 전체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는 조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