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2020인디다큐페스티발 속 ‘노동’ 다큐멘터리
[프리뷰] 2020인디다큐페스티발 속 ‘노동’ 다큐멘터리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5.28 19:22
  • 수정 2020.05.29 0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돌’ 맞은 인디다큐페스티발, 참여와혁신이 주목한 노동 다큐 4선

[카메라로 보는 노동] 프리뷰! 2020인디다큐페스티발 노동 다큐멘터리 4선

“실험 Experiment! 진보 Progress! 대화 Communication!”

지난 2001년 10월 26일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제1회 인디다큐페스티발을 개최하며 내건 슬로건입니다. “사회적 발언” 속에 “미학적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독립다큐멘터리의 가치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독립다큐멘터리는 우리 사회의 주류가 주목하지 않는 ‘노동’의 모습을 담담히 비춰왔습니다. 2020인디다큐페스티발에 상영될 예정인 ‘노동 다큐멘터리’ 4편을 <참여와혁신> 기자들이 미리 보고 소개합니다.

*2020인디다큐페스티발은 5월 28일부터 6월 3일까지 롯데시네마 홍대 입구역점에서 진행됩니다. 상영시간 및 예매 관련 사항은 인디다큐페스티발 공식홈페이지를 참조해주십시오.

ⓒ 2020인디다큐페스티발

다채롭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인디다큐페스티발이 한껏 힘을 줬다. ‘국내신작전’, ‘올해의 초점’, ‘20회기념특별전’, ‘故이강길감독추모상영’까지 총 59편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될 예정이다.

<참여와혁신>은 상영작 중 노동을 다룬 4편의 다큐멘터리를 미리 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한별 감독의 <일하는 여자들>(2019), 장윤미 감독의 <깃발, 창공, 파티>(2019), 김정근 감독의 <언더그라운드>(2019),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철로 위의 사람들>(2001)이다.

여성노동의 문제부터 시작해 ‘민주노조’에 대한 고민, 비정규직-정규직으로 나타나는 위계 등 노동에 관한 다양한 시선을 담았다. 프리뷰에는 손광모(이하 ), 임동우(이하 ), 백승윤(이하 ) 기자가 함께했다.

방송국과 여성차별에 맞서는
‘일하는 여자들’

<일하는 여자들>은 ‘여성비율 94.6%’ 방송작가들의 이야기다. 지난 2017년 11월 언론노조 방송작가유니온이 출범했다. 다큐멘터리는 출범 이후 2019년 국정감사까지 방송작가유니온의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김한별 감독은 방송작가유니온에서 부지부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방송작가의 노동'에서 끝나지 않는다. ‘일하는 모든 여성’으로 환기되는 지점이 곳곳에 있다. 동시에 김한별 감독이 연출의도에서 “방송이 이야기하는 정의와 내가 일하고 있는 방송 제작 현장에서의 정의가 너무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라고 밝혔듯, 방송국의 권력도 유쾌하게 꼬집는다.

<일하는 여자들 Women Workers in Broadcasting Stations> 김한별 Hanbyeol Kim | 2019 | DCP | Color | 20min 32sec | 한글자막
상영정보 : 국내신작전 12 외계에서 돌아온 여성들 5.29(금) 15:30 @3관_GV / 5.31(일) 20:30 @2관 자료=2020인디다큐페스티발

: 승윤 기자는 <일하는 여자들> 어떻게 보셨나요? 출입처가 언론노조이지 않나요?

: 괜찮은 감상평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상대방의 모습을 좀 더 많이 보여줬으면 한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공평하게 목소리를 전해야 한다는 의도로 말씀드린 건 아니에요. 방송국이 방송작가를 대하는 모습을 좀 더 보여줬으면 동화가 많이 됐을 것 같아요.

: 최근에 고 이재학 피디 취재로 청주방송국 앞에도 갔다 오셨고, 그전에는 대구 MBC 비정규직 직원도 취재하셨죠?

: 그래서 이런 감상이 나온 것 같아요. 방송국은 어떤 입장 표명도 안하잖아요? 그래서 사측의 발언이 궁금했죠. 어쨌든 저는 취재를 하더라도 제3자이니까. 직접 현장의 당사자들이 담을 수 있는 내용이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요.

: 동우 기자는 어떻게 봤나요?

: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여성이 남성에 비해서 사회적으로 고정된 역할을 많이 가지고 있고, 그러한 역할들이 여성들의 권리를 제약한다는 점을 노동이라는 주제로 잘 전달한 것 같아요. 대가 없는 노동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게 했죠.

또, 이런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구성을 잘 하는 것 같아요. 방송작가여서 그런 건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무리 없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저도 공감해요. 김한별 감독이 ACT!(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 저널)에 기고한 글이 있어요.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탄생부터 쭉 훑어봐요. 처음 나올 때부터 방송작가는 ‘여자가 하기 좋은 일’로 소개됐어요. 어떻게 보면 여성차별이라는 구조가 고스란히 노동조건에 미친 직업이라고 생각이 되더라고요

이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요. “남편이 요리를 잘하신다면서요?”라고 물으니까 “남편, 요리 하지. 그런데 남편은 요리 좋아하는 남자고 나는 엄마야”라고 대답해요. 자기는 요리는 좋아하지 않는데, ‘때 되면 밥을 차려줘야 하는 엄마’라고요. 방송작가로서 일하고, 노동조합 간부로서 일하고, 집에서 일하고 이 사람은 언제 퇴근하지? 이런 의문이 함축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 저는 ‘부당함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하고, 지치지 말아야 한다. 그게 노동조합의 일인 것 같다’고 이야기한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미디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렌즈 역할을 하잖아요? 우리가 너무 렌즈 속을 보지 못해서 많이 다루지 못한 이야기가 있지 않았나 생각을 했어요.

: 그것도 기억에 남아요. ‘정의를 말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꼭 정의롭지는 않다’. 방송국의 권력은 침묵에 있는 것 같아요. 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권력이죠.

: KBS에서 최근에 연차수당 횡령한 사건이 있었잖아요? 정규직 직원만 할 수 있는 꼼수횡령이요. 안 그래도 방송국이 적자인데 공공연하게 자기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과연 ‘견제’ 기능을 할 수 있나 그런 의문도 들었어요.

: 저는 약간 다르게 생각해요. 자신들이 공감하지 못함에도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아니면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겠다는 목적이겠죠. 자신이 전한 메시지와 자신의 삶이 다른 것. 그게 정말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요. 사실 청주방송에서도 노동조합이 있는데 안 도와줬잖아요? 같은 맥락이죠.

노동조합, 민주노조란 무엇인가

“KEC, 임단협 8년 연속 평화적 무파업 타결” 기사에 가려진 이야기. <깃발, 창공, 파티>의 짤막하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구미공단 1호 기업인 KEC는 3개의 노동조합이 있는 복수노조 사업장이다. 그 중 장윤미 감독은 금속노조 KEC지회의 ‘조합원’이 되어 2018년 교섭창구단일화 과정을 따라간다.

교섭창구단일화는 소수노조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KEC지회는 소수노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EC지회는 성차별 임금 문제 해결 등 ‘변화’를 위해 불리한 조건에도 참여를 결정한다. 장윤미 감독은 KEC지회의 고민을 쫓으면서 노동자에게 ‘민주노조’의 의미는 무엇인지 담담히 그려낸다.

<깃발, 창공, 파티 Flag, Blue Sky, Party> 장윤미 Yunmi Jang | 2019 | DCP | Color | 159min 34sec | 한글자막.
상영정보 올해의 초점 2 6.1(월) 13:30 @1관 / 6.2(화) 19:30 @1관 자료=2020인디다큐페스티발

: <깃발, 창공, 파티>! 어떻게 보셨나요? 승윤 기자부터 먼저!

: 마지막 즈음에 배태선 국장이 ‘노조 간부 왜 하냐. 조합원들 책임지고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하잖아요? 저는 그 말은 멋있고 좋은데 실제로 노조 간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어요.

: 저는 기자의 입장에서 노동조합에 궁금했던 지점을 많이 해소한 것 같아요. 우리는 매번 정제된 기자회견문을 보고 기사를 쓰잖아요? 기자회견문이 정제되지 않으면 당혹스럽기도 하고요. 그런데 작품에서 기자회견문이 나올 때까지 노동조합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보여주잖아요? 그래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 보도자료인가 소식지인가 어떤 분이 한 문장을 계속 고쳤다 썼다 하는 장면이 있었죠.

: ‘회의 하는 것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사실 노동조합 일이 대표자 혼자 독단적으로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조합원 모두에게 내용을 인지시키고 동의 받는 과정의 응축물이 기자회견문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기자회견문을 바라보는 무게감이 달라졌어요.

: 저는 마지막 장면이 긍정적으로 다가왔어요. 사실 2018년 교섭창구단일화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고 1노조와 갈등이 컸죠. KEC지회에서는 억울한 지점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 직원 투표를 임의로 뒤집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노동조합끼리만 싸우기를 사용자들은 더 바란다, 그래서 사용자에게 놀아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하면서 끝나잖아요? 저는 그 장면이 되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해서요.

: 저는 사실 KEC지회의 이야기를 지난해에 취재한 적이 있어요. 그때 알게 됐는데 2010년에는 노조파괴 사건이 있었어요. 이에 대항하는 파업을 벌였는데 ‘불법파업’으로 해서 30억 원가량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었죠. 그런데 다큐멘터리에서는 세세하게 설명하지는 않더라고요.

: 세세하게 담지는 않았는데 그 장면은 기억에 남아요. 손해배상 가압류 관련해서 조합원에게 설문조사를 한 장면이요.

: 맞아요. 특유의 경상북도 칼칼한 말투로 밝게 문항을 체크하는데, 마지막에는 되게 머뭇거리잖아요.

: 그렇죠. 손배가압류 때문에 힘든 점을 쓰는 주관식 문항에서요. 또 그것도 생각이 나요. 예전에 노조하기 전에 명절에 양말 사다 바치는 게 예의인 줄 알았는데, 노조하고 나서 뭐했나 싶냐고 말하는 장면이요.

<깃발, 창공, 파티> 스틸컷. 자료=2020인디다큐페스티발

: 저도 되게 재밌는 부분이 있어요. 여성 노동자들이 공통점을 많이 찾아요. “수석? 너 나랑 양말 같네.” 이런 장면도 있고요. 3월호 여성노동특집을 만들 때 논문을 봤는데 ‘여성노동자 조직을 위해서 왕언니가 필요하다’, ‘여성노동자는 소통중심으로 조직 단위를 뭉치는 게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정겹기도 하고요.

: <일하는 여자들>과 함께 보자면, 여성노동자가 구조적으로 노동시장에서 저임금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취급받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외에도 약간 ‘프로불편러’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투쟁방식에 대해서 회의하는 장면이 있어요. 여성 조합원이 이야기를 하는데 “쓰잘데기 없는 의견 좀 하지마”라고 남성 조합원이 면박을 줘요. 여성 차별이 직장뿐만 아니라 노조에서도 있구나 생각이 들었죠.

: 그런데 그 자리에서 다른 조합원들이 ‘경고!’라고 말하잖아요? 그 순간에 다 같이 면박을 준 조합원한테 경고를 줘요. 이런 말 경고라고요.

: 이 장면을 저는 좋게 봤는데 여성 노조 간부와 나이 지긋한 관리자 직급인 남성 노조 간부들이 잘 못 지낸다는 느낌은 안 들더라고요. 남성 조합원 분들도 옥수수 까고 설거지하고 엠티에서 같이 놀고요. 막상 현장에 들어가면 직급이 있을 거잖아요? 그런데 조합 안에서는 그나마 평등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KEC지회 안에서 있었던 성별 임금격차에 있어서도 토론하면서 ‘차별를 해소해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지는 것 같았어요. 그런 모습을 보니 노동조합은 여성노동자들이 받는 차별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느껴졌어요.

: KEC지회가 단일호봉제 도입을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교섭창구단일화 과정에서 원래 지회의 요구안이 수정되잖아요? 그때 배태선 국장이 ‘암암리에 남성을 승진시켜주는 게 없어지면서 승진이 아예 안 될 거다’라고 이야기해요. 1노조 안에서도 피해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속출하게 될 수 있는 걸 말해주는 거죠. 그냥 단순히 ‘자기 노동조합’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라, KEC 안의 모든 노동자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노동조합 역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 조합원을 위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간부들의 문제네요. 어쨌든 협상은 테이블에서 노조 간부와 사용자 사이에서 벌어지니까요.

: 마지막 장면에서 황미진 부지부장이 시를 낭송하잖아요? 마르틴 니믤러의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요. 본인이 본인 일이 아니라고 해서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면 불의에 침묵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의 자유’, ‘내 권리’는 타인의 권리부터 시작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언더그라운드의 노동자
그 사람들의 삶

<그림자들의 섬>(2014)에서 한진중공업 투쟁을, <Nowhere>(2016)에서 보쉬전장의 노조파괴를 다뤘던 김정근 감독은 이번에는 부산지하철 노동자를 다뤘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2019)는 전작과 약간 결이 다르다. 그간의 작품이 노동조합의 ‘투쟁’에 집중돼 있다면, 이번에는 ‘언더그라운드’를 움직이는 ‘사람’에 집중한다.

다큐멘터리는 전문계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졸업사진을 찍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천진난만한 모습과 달리 학생들은 ‘비정규직’을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언더그라운드의 노동’은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매표소 직원이 사라지고 무인전철마저 등장해 기관사까지 사라져가는 오늘” 부산지하철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삶은 어떠한가. 김정근 감독은 묻는다.

<언더그라운드 Underground> 김정근 Jeongkeun Kim | 2019 | DCP | Color | 88min | 영어자막.
상영정보: 국내신작전 7 5.29(금) 17:00 @1관_GV / 5.31(일) 20:30 @3관 자료=2020인디다큐페스티발

: 이제 언더그라운드로 가볼게요! <언더그라운드>(2019)는 앞 선 두 작품 약간 다르다고 생각해요. <일하는 여자들>은 카메라와 대상이 밀착해 있어요. 김한별 감독이 부지부장이기도 하죠. <깃발, 창공, 파티>는 외부자의 시선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KEC지회의 편에 있어요.

그런데 <언더그라운드>에서는 거리를 딱 두는 것 같았어요. 거리를 두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어떤 문제가 있나 무던히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임 : 저는 특히 영상미가 좋았다고 생각해요. 잔잔하면서도 인물의 목소리를 기다리게 하는 맛이 있었어요. 그리고 영화에 배경음악은 없지만 소리가 좋아요. 현장에서 금속성 소리요. 가끔씩 화음이 겹치기도 하던데 철 두드리는 소리부터 시작해서 패턴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다큐멘터리가 재밌었던 것 같아요. 영상미도 좋고요.

: <언더그라운드>에서는 다른 세 영화와 딱 구별되는 ‘학생’이라는 캐릭터가 있잖아요? 좀 씁쓸했어요. 다른 길을 찾지 않는다면 철도 관련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아이들이잖아요? 저는 그게 궁금했어요. 이 아이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그 메시지를 잡고 학생이라는 캐릭터를 넣은 걸까 하고요.

: 그 학생이 페이드아웃이 되면서 언더그라운드에 들어가잖아요? 어두운 곳으로요. 가지고 싶은 차로 머스탱이니 뭐니 이야기하다가 ‘드림카일 뿐이에요’, ‘애초에 포기했어요’ 이렇게 말해요. 미래세대가 비정규직은 마치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충도 나타나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 즈음에 승무 노동자가 역량 평가를 보고 지하철을 타고 가잖아요? 그런데 거기가 부산지하철 4호선, 무인철이에요. 승무원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전면 통유리가 있죠.

그게 2005년 해고된 매표소 직원과 오버랩되는 거예요. 승무 노동자 인터뷰에서는 승무는 고도의 기술과 훈련과정이 필요해서 안심했는데 무인화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 거예요. 매표소가 기계로 대체될 때와 똑같은 상황이 승무 노동자한테도 온 거죠. 그때 해고된 매표소 직원과 정규직 노동조합이 함께 투쟁했지만, 현장의 정규직 직원들이 해고된 노동자를 대하는 정서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 <언더그라운드>랑 <깃발, 창공, 파티>의 마지막 부분이랑 맥락이 닿네요.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내용이요.

<언더그라운드> 스틸컷. 자료=2020인디다큐페스티발

: 아까 동우 기자가 이야기했듯이 위계의 내면화라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 중반에 선반 작업하는 곳을 보여주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한 번 비춰주잖아요?

: 맞아요. 그때 학생들이 ‘나는 죽어도 여기 안 갈란다!’, ‘여기는 안 간다’고 이야기했죠.

: 맞아요. 그런데 학생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잘린 손가락을 흉내 내면서 여기서 일하면 이렇게 손가락 잘려서 인사한다고 장난식으로 '천진난만'하게 티격태격하는 부분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정규직, 비정규직 그 밑에 외국인노동자 이렇게 차별과 위계가 내면화 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또 동시에 청소 노동자 분들이 옛날에는 청소한다고 말도 못했는데 지금은 당당하게 말한다고 하는 거 보니까. 생각이 복잡해지더라고요.

: 맞아요. 인터뷰하다가 <보약 같은 내 친구야> 부르잖아요? (진짜 잘 부르셨죠.) 미세한 바이브레이션을 너무 잘하세요. 또 하나 감명 깊었던 장면이 있어요. 하루 운행을 마치고 열차 라이트가 꺼질 때, 그 터널에 정차하는 순간을 담은 장면이 있어요. 살짝 커브 길에 기차가 운행을 하다가 멈춰요. 멈추는 순간 딱 기차 눈이 꺼지면서 바람 같은 걸 내뿜는 거예요. 브레이크 풀면 공기 빠져나가는 것 같이요. 그걸 보면서 언더그라운드의 노동자들이 많이 겹쳐보였어요. 중간에 청소 노동자 분들이 쪽잠 자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열차에서 같이 보이는 거예요. 하루 운행을 다 마치고 쉼에도 불구하고 잘 쉬지 못하는 느낌이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다큐멘터리

2000년 1월 대법원은 당시 철도노조에서 시행되던 ‘3중 간선제’가 위법하는 판결을 내린다. 3중 간선제란 조합원이 대의원을 뽑고, 대의원이 본조 대의원을 뽑고, 다시 본조 대의원이 위원장을 선출하는 방식을 뜻한다.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철도노조에서 53년 간 이어져온 3중 간선제를 폐지하고 직선제를 쟁취하자는 투쟁이 벌어진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이지영 감독은 2002년 2월부터 17개월 간 ‘민주철도노조 건설과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를 따라다니며 취재했다. 길었던 투쟁은 직선제를 주장한 길재익 후보의 당선으로 끝이 난다. 다큐멘터리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2001년 제1회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철로 위의 사람들 On The Right Track> 노동자뉴스제작단 Labor News Production 한국 | 2002 | DCP | Color | 82min 10sec | 한글자막. 상영정보 20회 기념 특별전 7 5.31(일) 11:00 @1관_GV / 6.3(수) 15:30 @1관. 자료=2020인디다큐페스티발

: <철로 위의 사람들> 어떻게 보셨나요? 저는 정말 감독이 ‘참'기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저는 그게 좋았어요. 마지막에 90년대 느낌으로 마무리 되는 장면이요.

: 하하하하. 맞아 그거 좋아요! 같이 바다에 들어가서 좋아하는 그 장면!

: 뭐라고 해야 할까요. 대단하다. 저렇게 힘들게 만든 거다. 어떻게 보면 유치한 장면이긴 한데, 선거 준비하면서 팔도를 돌아가면서 하나씩 단추를 채워나가잖아요? 저렇게 하는 거구나 생각을 했어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구나. 민주노조를 만드는 일이 진짜 어려운 일이었구나. 자부심 가질만하다고요.

: 해고도 당하고 단식투쟁, 고공농성하고요.

: 고공농성 단식도 대단하지만, 저런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어요. 그냥 민주노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단하다. 지금 생각나는 장면은 그거에요. 너무 웃겼어요. 모닥불 피워놓고 캔맥주 마시면서 즐거워하는 장면이요. 하하하.

: 저한테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선거 결과를 기다릴 때, 당선문 담당하는 사람이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쓰고 있으니까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지더라도 이 당선문을 쓰고 싶다’고 말한 게 좀 찡했어요.

: 맞아요. 어떻게 보면 그 시점에는 헛된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헛된 일일 수 있는데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게 저도 멋있었어요. 저는 기억에 남는 게 2가지 정도에요. 하나는 조합원들이 스크럼 짜고 뚫는 거를 운동회처럼 하더라고요. 당시 집회문화의 단면을 본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정부가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니까 당시 철도노조도 반대 투쟁을 하잖아요? 그때 공투본도 철도노조가 여는 집회에 참여해서 같이 연대를 해야 한다고 말해요. ‘철도노조에서 저러는 거 찜찜하지만 우리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민영화 막아야 합니다. 힘 합쳐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연대를 했는데, 그 다음에 배신으로 나타났죠.

: 맞아요. 일정 공유도 안하고 일방적으로 합의해버리고요.

<철로 위의 사람들> 스틸컷. 자료=2020인디다큐페스티발

: 덧붙이고 싶은 말은 <철로 위의 사람들>이 교과서가 되어야 하는 기록들이 아닌가 생각해요. 노조 역사라는 측면에서요. 현재 역사 교육에서도 현대사는 엄청나게 짧게 가르칠뿐더러 노동조합사는 아예 안 가르쳐주잖아요? 그래서 되게 소중한 기록이라고 생각해요.

: 맞아요. 조금씩이라도 올바르게 싸우려고 나아가는 사람이 있잖아요. <깃발, 창공, 파티>와 <철로 위의 사람들>을 동일 선상에 두고 볼 수 있다고 봐요. 노동조합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제시해 준 거죠. <철로 위의 사람들>처럼 정말 힘으로 투쟁해야 하는 상황은 어떤지, <깃발, 창공, 파티>처럼 전략을 짜서 투쟁해야 하는 상황은 어떤 상황인지 두 영화가 이야기가 잘 해주는 것 같아요.

또 이 장면도 기억이 나요. 공투본 간부가 고공농성하고 내려왔는데 조합원들은 아직 투쟁하고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 보면서 조직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됐어요. 단결과 연대요. 조직이 잘 굴러가기 위해서 조합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