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님의 동선] 비둘기의 입장에서
[강한님의 동선] 비둘기의 입장에서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05.28 19:21
  • 수정 2020.05.28 1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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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 : 움직이는 방향을 나타낸 선] 자주 만나고 싶어요.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요즘은 여러 장소들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겪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인터뷰가 있어 민주노총 기자실에 갔다. 기자실로 들어가는 복도. 내 쪽으로 걸어오는 비둘기와 눈이 마주쳤다.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비둘기가 복도를 산책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아 어떻게 기자실로 들어갈 수 있을지 생각하던 찰라, 위층에서 사람들이 내려왔다. 벌써 세 마리 째라고 했다. 비둘기가 나갈 수 있도록 문 쪽으로 몰았다. 기자는 사진을 찍었다. 나가는 길에 한 마리를 더 봤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몇몇에게 사진을 보여줬다. 누군가 기사를 써 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바로 ‘어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라고 대답했다. 민주노총에 들어온 비둘기는 기삿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걸까? ‘이건 기사가 안 된다’고 판단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혼자 조금 더 고민했다.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혔던 것 같다. 이 해프닝이 즐겁지 않았다. 사람들은 들어온 비둘기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사실 한숨을 쉬고 싶은 건 사람이나 비둘기나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비둘기의 입장을 생각해보지 않았으면 흥밋거리로 소비했을 것 같았다. 비둘기가 어떤 기분이었을지는 모른다. 혼란스러웠을 거라 추측할 뿐이다. 누군가의 불행을 전시하는 글을 쓰는 건 두려운 일이다. 이번에는 비둘기였지만 언젠가는 양보하지 못할 사안일 수 있다. 비둘기 기사를 쓰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이제부터 해내야 할 선택들을 생각했다. 수많은 일들이 앞으로도 벌어질 테고, 또 선택해야 할 터이다.

지난 14일, 전교조 측에게 자료를 받아 기사 하나를 송고했다. 직업계고들은 코로나19 위기에도 기능대회를 위해 학생들을 등교시켜 훈련하고 있었다. 울산, 경북, 전남, 광주 등 지역에서 6개가 넘는 학교들이었다. 고 이준서 학생이 지방기능경기대회 직종 출전 준비 중 사망한 이후에도 훈련은 계속됐다. 고 이준서 학생은 3월 2일, 3월 29일 두 번에 걸쳐 합숙 훈련장을 이탈했다. 4월 1일 온라인 수업의 교재 수령으로 학교에 등교했다가 다시 합숙을 시작했다.

진광우 전교조 경북지부 정책실장은 관련 기자회견에서 “(당시) 특히 공고 쪽에서 8개 학교에서 합숙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파악했고, 교육청은 기능대회가 중요하다며 방관하는 자세를 취했다”며 “고인의 부친과 의견을 나누게 됐는데 학교는 사망을 학생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고 하는 모습이 나타났고, 이태까지 교육청은 사과 한 마디도 없었다”고 말했다.

고 이준서 학생이 다니던 학교도 여전히 기능대회를 준비 중이었다. 기사가 올라가고 학교 측 입장이 누락됐다는 걸 알았다. 뒤늦게 여러 번호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할 수 없었다. 물어볼 수 있는 일에 대해선 물어봐야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개막식 시작 때 날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전 세계 평화를 기원하자는 의미였다. 경기장 주위를 날아다니던 비둘기들은 성화대에 앉았다. 점화는 성공했고 많은 비둘기들이 불에 타 죽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바라고만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선택하는 걸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