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의 노크노크] ‘노조 때문’이라는 혐오 속에서
[이동희의 노크노크] ‘노조 때문’이라는 혐오 속에서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5.31 13:27
  • 수정 2020.05.31 13: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동희의 노크노크] 기자의 일은 두드리는 일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지난 26일 한국지엠 부평공장을 다녀왔다. 올해부터 임기를 시작한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제26대 집행부 김성갑 지부장과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코로나19가 한국지엠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올해 노조의 정책 및 사업 방향은 무엇인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에서 노조의 요구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날 기자의 관심을 끈 건 당장 한국지엠 앞에 닥친 여러 현안보다도(물론 여기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이날 기자간담회가 열리게 된 배경이었다.

노조에서 언론 대응을 담당하는 한 간부는 기자간담회를 시작하며 “노조의 언론 대응팀 구성은 이번 집행부 공약 중 하나였다”면서 “한국지엠의 상황과 관련해 노동조합에서 알릴 수 있는 내용을 객관적으로 알리고 언론과 지속적으로 교감하고 소통해 노동조합의 정책 및 투쟁 방향을 공유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어진 김성갑 지부장의 모두 발언에서는 노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좀 더 자세히 드러났는데, 발언 전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달할 수는 없지만 대략 요약해서 전달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한국지엠 현장에서는 노사 문제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팩트대로 보도되면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사실 팩트가 그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오신 기자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한국지엠 이전 대우자동차는 구조조정 사업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우자동차 시절 엄청난 구조조정이 있었고, 최근에는 군산공장 폐쇄, 법인분할 등 우환이 많은 사업장입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입장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 왜곡돼서 보도되고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게 한국지엠 노동조합입니다. 지난 시간 왜 노동조합이 투쟁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알려주신 언론인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동조합의 팩트를 상호 공유하는 자리를 가지는 게 오늘 이 자리의 가장 큰 의미인 것 같습니다. 기자분들은 글을 쓰는 노동자지요. 우리 모두 같은 노동자로서 해야 할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지엠은 지난 2018년 2월 설을 앞두고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했다. 한국지엠 부도 처리도 불사하겠다는 GM의 최후통첩에 정부는 한국지엠 8,100억 원의 지원에 합의했다. 정부의 지원을 손에 넣으면서 이른바 ‘한국지엠 사태’는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이후 생산공장과 연구개발 기능을 분리하는 법인 분할 이슈로 한국지엠 노사 관계는 한 차례 또 우환을 겪었다. 당시 한국지엠 노조는 “회사를 쪼갠 뒤에 필요에 따라 생산공장을 폐쇄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군산공장 폐쇄에 이은 또 다른 공장 폐쇄 및 구조조정 음모가 아니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지엠 노조는 이 모든 사태가 노조 때문이라는(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냥 노조는 아니고 '귀족노조' 때문이라는) ‘노조 혐오’를 온몸으로 받아야 했다. 당시 내가 경험했던 관련 에피소드는 예전 칼럼에서도 한번 언급한 적 있다.

지난 추석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가족은 매년 큰아버지 집에서 명절을 보낸다. 근데 큰아버지 집이 하필 한국지엠 부평공장이 위치한 인천 부평구다. 차를 타고 부평공장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집안 어른 중 한 분이 뜬금없이 “귀족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한 것”이라며 혀를 차셨다. 지금도 한국지엠 부평공장 담벼락에는 지난 5월 군산공장 폐쇄를 규탄하고 경영정상화를 요구하는 노조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 현수막이 집안 어른에게는 ‘귀족노조가 내는 듣기 싫은 목소리’로 들렸나 보다. - 2018. 10. 06 칼럼 [이동희의 노크노크] 아는 만큼 보인다

우리는 언론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모든 사태의 원인과 결과가 노동조합 때문이라는 보도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노동조합이 절대 선(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 악(惡)도 더더욱 아니라는 걸 언론에서는 종종 잊어버린다. 어쩌면 누군가는 절대 악(惡)으로 규정해 버린 걸지도.

이런 시간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언론도 노동조합이 혐오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노동조합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기레기’라는 말로 언론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혐오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반대로 혐오의 대상이 돼버린 언론은 ‘왜곡된 보도를 하지 말아 달라’는 노조의 당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언론은 어떻게 화답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