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카드 공백'으로 발화한 부산시청 노숙농성
'선불카드 공백'으로 발화한 부산시청 노숙농성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06.02 13:46
  • 수정 2020.06.02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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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본부 "노정협의체 만들라" 부산시청 "절대 안 된다"
전국공무원노조 부산 "대화 요청에 폭력으로 답했다"
1일 부산시청 로비에서 열린 '대화 요청에 폭력으로 응답한 부산시 규탄' 기자회견 ⓒ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1일 부산시청 로비에서 열린 '대화 요청에 폭력으로 응답한 부산시 규탄' 기자회견 ⓒ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16개 구·군 공무원 노조가 27일부터 부산시청 로비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부산지역본부(본부장 박중배)는 노정협의를 제안하고 있지만, 부산시청(변성완 시장 권한대행)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로비 농성을 벌이는 과정에서 폭력사태도 발생했다. 28일 시청 청원경찰이 농성을 체증하고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부산본부는 김재하 민주노총 부산본부장이 넘어져 왼쪽 팔목에 전치 7주의 상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노숙농성은 부산본부가 부산시청 후문에서 벌인 ‘갑질 행정 규탄’ 기자회견에서 비롯했다. 부산본부는 선불카드 지급중단, 구군의 과도한 재난지원금 업무에 대한 부산시 행정을 규탄하고 서명서를 전달할 계획이었다. 부산본부에 따르면, 부산시청이 반말과 폭언으로 평화적인 합법집회를 방해했고 이에 반발한 부산본부가 시청 로비에서 농성을 벌이게 됐다.

부산본부는 △노정협의 위한 면담 △폭력사태 사과 및 책임자 처벌 △선불카드 중단 대(對)시민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다.

부산시는 노정협의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노조법상 교섭 절차가 있는데, 상설 노정협의체를 구성해 정책을 논의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선불카드 중단 사과에 대해서는 28일 부산시청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착한 소비 착한 나눔 붐업 행사'에서 이미 했다는 입장이다. 폭력사태 사과 및 책임자 처벌은 경찰 수사를 통해 책임자가 가려지면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사태와 관련한 부산본부의 입장을 듣기위해서 최성호 전국공무원노조 부산지역본부 사무처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아래는 최성호 사무처장과 일문일답.

부산시가 제안한 면담을 노조가 거부했다.
부산시가 말한 면담은 말장난이다. 오는 25일에 면담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노정협의는 못 한다고 못 박았다. 우리가 면담하려는 이유가 노정협의를 요구하기 위해서인데, 미리 막아선 거다. 면담 한들 무슨 소용인가.

노정협의를 요구하는 이유는?
부산시와 구‧군 노조 간 협의 소통채널을 만들자는 거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서, 일선 공무원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많다. 시가 관료적이고 경직돼 있어서 현장 의견 반영이 잘 안 된다. 구‧군 공무원들은 일방적 행정이 시민에게 끼치는 피해를 너무나 많이 봐왔다. 구‧군의 일선 공무원이 시민의 목소리를 잘 아니까, 현장 목소리를 빨리 반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다. 부산지역 조합원이 1만 여 명인데, 잘 수렴하면 시 정책에도 좋다. 성추행 사건으로 오거돈 시장이 물러나며 변성완 시장 권한대행은 소통 일색 취임사를 밝혔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실상은 어떻다고 보는가?
일방통행이다. 이번 '선불카드 공백' 사태가 대표적이다. 부산에선 22일부터 일주일 넘게 긴급재난지원금 선불카드를 지급하지 못했다. 부산시가 선불카드 수요 예측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부산시가 준비한 것보다 선불카드를 원하는 시민이 많아서 금방 동났다. 문제는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것에 있다. 각 구‧군청에선 선불카드 수요가 많다는 걸 알고 빨리 선불카드를 추가 제작하라고 요청했지만, 시에서 무시했다. 그 결과 구청, 군청에 헛걸음한 주민들 비난은 일선 공무원들이 감수해야 했다. 행정을 하다 보면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면 제대로 사과하고, 방지대책을 세워야 한다. 변성완 권한대행이 실수에 대해서 사과하고 노정협의에 임해야 한다.

부산시는 변성완 권한대행이 이미 시민에게 사과하고 일선 공무원에게 감사를 전했다는 입장이다.
부산시가 말하는 사과와 감사는 진전성이 없다. 28일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지역 행사에 참석한 50여 명 앞에서 모두발언처럼 몇 마디 한 게 전부다. 당사자인 구‧군 공무원이 회의실 바로 옆에서 농성중인 건 무시했다. 이걸 사과라고 할 수 있나. 최소한 부산시청 홈페이지에 사과문이라도 올리는 게 정상 아닌가.

구‧군에 과중한 업무를 ‘갑질 행정’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서, 부산시는 시 담당 부서와 구·군 담당 부서가 각자 맡은 업무를 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사태 중 21대 총선을 치렀다. 구청에선 방역업무와 선거를 동시에 준비했다. 당시 구‧군 직원은 전체의 90%가 동원됐다. 반면 부산시청 직원은 5%에 불과했다. 많은 업무를 구·군에 내려 보내면서, 부산시는 제대로 된 인력충원도 해주지 않았다.

김재하 민주노총 부산본부장 폭력 사태 사과 요구에 대한 변성완 권한대행의 반응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행정자치국장이 '빨리 다친 곳이 나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만 하고 갔다. 행정자치국장 개인 의견일 뿐, 시는 공식입장을 밝힌 바 없다.

노숙농성, 언제까지 이어가나.
이번 농성으로 소통 없고 편의주의적인 ‘갑질 행정’의 문제를 여실히 느꼈다. 바로잡지 않으면 시민 불편도 이어지고, 구‧군 공무원 애로사항이 계속 발생할 것이다. 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도 보수적인 관료주의가 쌓이고 쌓인 결과다. 공무원 사회 전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정권의 하수인이 아니라 국민의 공무원으로서 행정을 바로 세우는 시초가 되겠다는 마음이 자꾸 든다. 부산시청 진입 농성은 부산시 공무원 사회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노정협의가 될 때까지 노숙농성을 할 수밖에 없다. 

최종적으로 요구하는 건?
첫째로, 시민 불편 해소를 위해서 노정협의를 정확하게 실시하라는 거다. 현장에서 주민과 밀착한 공무원의 목소리가 시정에 제대로 반영되도록 우리 목소리를 들으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폭력사태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이다. 
시 행정에 왜 구‧군 노조가 간섭하나 의아해할 수 있지만, 불통행정의 피해는 구‧군에서 발생한다. 시민을 위한 행정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가능해진다. 정권의 하수인으로 살았던 공무원을 국민의 공무원으로 바꾸고자 전국공무원노조가 있다. 이번 농성도 시민과 호흡하는 행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비롯했다. 시민을 위해서라도 갑질 행정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