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 설립, 잔혹한 코미디
국제중 설립, 잔혹한 코미디
  • 참여와혁신
  • 승인 2008.10.0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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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부터 철저한 경쟁 불 보듯 뻔해
손애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대변인
얼마 전, TV에서 개그맨들이 국제중 문제를 토론하는 것을 보았다. 연예인들조차 국제중 문제가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보다는 어린 초등학생들을 입시에 몰아넣고 사교육비를 증폭시킬 거라 걱정을 하고 있었다. ‘국제’를 빼고 ‘그냥’중학교라고 이름 지으면 입시과열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엉뚱한 농담을 서울시교육청도 들었는지, 이후 국제중학교 명칭에 정말 ‘국제’가 빠졌다. 국제중 설립은 ‘교육정책’이 아니라,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아니 400만 초등학생과 800만 학부모를 공포에 떨게 하는 ‘잔혹코미디’라고나 할까?

21세기 살아가는 학생들의 1960년대식 중학교 입시

60년대 여학생들은 고무줄놀이를 할 때 이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중학교에 입학 한 우리 언니는 가슴에 반짝이는 중학교 뱃지, 매일 아침 거울 보며 싱글벙글 웃으며…” 중학교 뱃지가 뭐 그리 자랑스러울까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초등학생이 각성제를 먹어가며 중학교입시를 준비할 정도로 한국사회의 커다란 문제였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의 국제중 설립을 시작으로 중학교 입시가 부활하려고 한다. 국제중 설립 방침 발표 후 강남의 사설학원이 주최한 입시설명회, 강당복도는 물론 밖에까지 학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특수목적고가 어느새 명문대학을 가는 지름길로, 특기적성과는 아무 관계없는 ‘입시고’로 전락하면서 중학교는 특목고 입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제중도 특목고나 자사고를 가기위한 입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 뻔하다. 단지 320명의 학생을 선발하는 국제중학교 때문에 그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의 초등학생이 머리 싸매고, 초등학교 시기에 필요한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입시가 원하는 시험지식이나 쌓는 것이 공교육의 정상화인가?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07년 초중고교생을 무작위로 선발해 정신질환 검사를 실시한 결과 15.8%가 정밀검진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입시와 막중한 공부스트레스로 인해 우리 학생들이 아파하고 있다. ‘경쟁은 이를수록 좋다’는 공정택 교육감의 말 한마디 때문에 400만 초등학생의 삶이 이렇게 졸속적으로 처리되어도 좋은지, 초등학생의 미래가 40년 전 입시망령에 뒤덮여도 좋은 것인지 묻고 싶다.

말이 많았던 국제중 입시전형은 당초 계획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1단계에서 학교장 추천서와 자기소개서, ‘학교생활기록부’로 뽑을 방침이다. 학교장 추천서의 경우 치맛바람을 몰고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자기소개서 역시 각종 경시대회와 토익, 토플 붐을 일으킬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자기소개서를 정형화해 아예 영어공인점수를 쓰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지켜볼 문제다. 자기소개서가 정형화된다 하더라도 수험생들이 기술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현재 서술식으로 기록되어 있는 학교생활기록부는 학생들의 교육과정 이수 정도만을 표현하고 있다. 인성교육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초등학교 교육에서 변별과 서열은 그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기록부를 선발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도 우려스럽지만 향후 국제중 전형이 초등학교 교육과정의 파행적 운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스스로를 노란원숭이라 생각하는 이들의 지독한 콤플렉스

영국유학시절, ‘영어를 못하는 노란원숭이’라는 놀림에 가슴아파하던 이토 히로부미가 총리가 되어 일본 곳곳에 ‘영어수업학교’를 세웠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모리 아리노리는 영어 국어화를 주장했다. 150년 전 일본의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의 ‘어린쥐’ 영어파동이나 영어몰입교육을 하는 국제중 설립을 밀어붙이는 공정택 교육감을 보면 우리사회 지도층의 자기 비하식 영어콤플렉스를 보는 것 같다.

현재 국제중은 영어·수학·과학·세계사 등의 과목에서 이중언어수업을 진행하고 점차 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한다. 영어를 잘하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영어몰입교육에 그토록 ‘몰입’을 해야 한다는데, 가설만 있고 검증된 연구결과조차 없다. 국제중학교 입학생들이 실험용 모르모트가 되는 것은 아닌지….

언어는 사고의 과정이다. 그러나 영어몰입교육이 진행됐을 때, 학생들이 의미와 내용을 파악하기보다는 관련 영어단어 몇 가지만 익히게 돼 좋은 학생을 선발해 놓고, 오히려 학력이 저하되는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영어를 잘하는 것이 과연 글로벌 인재가 되는 길일까? 미국에서 ‘오렌지’ 하나 잘 사는 것을 글로벌 인재라고 하지 않는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 지갑을 털려야 하는가?

캐나다 조기유학 관련 까페에서는 친절하게 국제중에 가는 지름길을 설명하고 있다. “(캐나다로 조기유학을 온)제이슨의 부모님은 한국의 국제중 입학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국제중학교 입학자격이 외국어특기자로 진행될 것이며 … 토플을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네이버 지식인에는 청심국제중에 입학하고 싶어 하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의 질문에 국제중 재학생이 자세하게 준비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신입생들 사이에 수학선생학습 9-가·나는 기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TOSEL은 청심에서 필수로 요구하는 것인데 Junior는 적어도 98~100점, Intermediate는 적어도 3급 이상을 받아야합니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없는 영어 작문과 토플·토셀 그리고 중학교 수학과정을 국제중 준비생들은 어떻게 익힐 것인가? 결국 고액학원과 조기유학 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은 아닌가?

2006년 문을 연 청심국제중학교 입학생 부모의 직업을 살펴보면 제조업, 운송업, 농업, 수산업, 임·광산업에 종사하는 서민 부모는 단 한명도 없다. 반면 전문직 부유층이 86%이다. 입학준비 과정인 조기유학이나 고액의 전문학원 수강을 위해서도 많은 사교육비가 지출될 것이요, 입학 후에도 연간 천만원을 넘보는 수업료와 영어로 하는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고액의 영어과외 등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국제중학교에 과연 어떤 계층의 학생들이 입학을 할 것인가? ‘귀족’이 없는 한국사회에 굳이 귀족학교를 설립하고 어린 학생들을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적 부를 기준으로 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 때부터 교육의 자율성과 다양화를 강조했다. 그동안 우리교육의 획일화와 평균화에 대한 반성하고 자율과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거대학원과 자본의 자율이요,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전쟁으로의 획일화이다. 배우가 코미디를 하면 웃기지만, 정치가나 관료가 코미디를 하면 국민은 괴롭다. 이제는 그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