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일자리와는 다른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기존의 일자리와는 다른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20.06.22 09:51
  • 수정 2020.06.22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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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토 5000 모델 벤치마킹한 광주형 일자리
현대차 투자유치 과정에서 노동계 배제되다

커버스토리 ➊ 광주형 일자리의 현재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스스로 ‘일자리 정부’라고 칭할 만큼 일자리 문제 해결에 온힘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특징짓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광주형 일자리’다. 2017년 대통령선거 당시부터 문재인 대통령은 광주형 일자리의 전국 확대를 공약했고, 정부 출범 이후에는 이 내용이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포함됐다. 이에 따라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를 넘어 전국적인 관심사항으로 떠올랐다. 광주형 일자리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을까?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하다

광주형 일자리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민선 6기 윤장현 광주광역시장 당시다. 윤장현 전 시장은 2014년 선거 과정에서 광주광역시의 일자리 창출 모델로 광주형 일자리를 제시했다. 이는 광주에 신규 자동차공장을 설립하는 것을 염두에 둔 일자리 창출 모델이었다.

윤장현 전 시장이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제기하기 전인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광주에서 ‘자동차 100만 대 생산도시 구축’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당시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연간 62만 대 수준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약 40만 대 규모의 자동차공장을 신설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대통령선거 이후 지켜지지 않았던 이 공약은 2014년 지방선거 때 윤장현 전 시장이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제시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약이 말 그대로 선언적인 공약에 불과했다면 윤장현 전 시장의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당시 광주의 경제상황과 그에 따른 대안을 정리해 보다 구체화된 내용으로 제시됐다.

오주섭 광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국장은 “광주가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어서 지역 인재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상황”이라면서 “지역에서 청년들이 타 지역으로 나가지 않고도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절박함에서 광주형 일자리가 제기됐다”고 배경을 설명한다.

광주형 일자리가 처음 제기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가 박병규 광주형일자리연구원 이사장이다. 아시아자동차노동조합 위원장을 역임했고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광주지회장을 두 차례 지낸 박병규 이사장은 기존의 일자리 모델과는 전혀 다른 일자리 모델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의 일자리 모델을 두루 검토했다. 그 결과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 5000(AUTO 5000)’ 모델에 주목했다.

아우토 5000 모델은 5,000마르크의 임금으로 독일 내에 자동차공장을 신설하는 모델이다. 독일 통일 이후 어려움을 겪던 폭스바겐은 인건비가 싼 동유럽에 공장을 신설하는 대신 기존 임금수준보다 낮은 임금으로 독일에 자동차공장을 신설하겠다는 제안을 2001년에 내놨고, 논란 끝에 독일 금속노조(IG Metall)와 합의에 이름으로써 신규공장을 설립할 수 있었다. 이후 신규공장에 투입한 투우란과 티구안이 시장에서 대박을 냈다. 판매량 증가와 함께 신규공장의 임금수준도 높아졌고, 결국 2009년 폭스바겐 본사와 합병하게 됐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이와 같은 아우토 5000 모델을 참고해 구상됐다. 새로 완성차 공장을 설립하지만, 기존의 완성차 공장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으로는 자본 유치가 어렵다는 판단에서 적정임금이 제시됐다. 문제는 그 적정임금의 수준이 얼마인지를 놓고 의도하지 않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처음 광주형 일자리를 제기할 때 연봉 4,000만 원 수준의 일자리를 예시로 들었는데, 적정임금이라는 문제의식은 온데간데없이 4,000만 원이라는 숫자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기존 완성차 공장의 임금수준과 비교해 절반에 불과하다며 ‘반값 일자리’라고 비판했고, 경영계는 그마저도 너무 높다고 앓는 소리를 했다.

빛그린국가산업단지 조감도 © 광주광역시
빛그린국가산업단지 조감도 © 광주광역시

자동차 공장 설립 본격화

엉뚱하게 반값 일자리 논란에 휩싸였지만, 광주광역시에서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광주형 일자리를 주도적으로 추진할 조직으로 사회통합추진단을 신설했고, 광주형 일자리의 아이디어 제공자이기도 한 박병규 이사장을 단장에 임명했다.

윤장현 전 시장의 임기 동안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신규 자동차 공장 설립에 앞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우선 적용됐다. 비정규직을 공무직이라는 이름으로 정규직화하고 전환된 이들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도록 조례를 제정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우선시했던 것은 해당 노동자들과의 소통이었다. 특히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소속돼 있던 공공운수노조와 논의를 지속했고, 두 차례의 MOU를 통해 노동조합이 정규직 전환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이끌었다.

광주형 일자리를 단지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노사민정이 함께 만들어가는 일자리’로 정의한 만큼, 노사민정의 합의를 통해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추진하는 데에도 주력했다. 그 결과 노사민정의 의결구조로 ‘더나은일자리위원회’를 구성했고, 여기에서 광주형 일자리 기본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기본협약에는 광주형 일자리의 문제의식이 4대 의제로 정리돼 담겼다. 4대 의제는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이다.

2017년 6월 더나은일자리위원회는 “광주에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적정노동시간만큼 일하고 적정임금을 받는 기업(‘광주형 일자리 모델 기업’)을 설립한다” “하청업체에 대해서도 적정한 하청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 “노동자가 경영에 주체적으로 참여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이를 통해 노동자 간, 기업 간 격차를 해소하면서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적용된 자동차 공장의 설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건 2017년 하반기 이후이다. 그 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노사 간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조정 노력을 지속했지만, 새로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이를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적용으로 인식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이 때문에 오로지 자동차 공장의 신규 설립만 광주형 일자리의 적용이라고 인식하고, 광주형 일자리가 반값 일자리라고 비판하거나 2014년에 처음 제기된 이후 잠잠해졌다가 2017년에 불쑥 튀어나온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17년에는 탄핵 이후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대선에서 후보로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광주형 일자리의 전국 확대’를 주요 일자리 공약으로 내세웠다. 공약을 정비해 국정과제를 정리하면서 광주형 일자리의 전국 확대 역시 국정과제의 하나로 포함됐다.

광주광역시는 자동차 공장 설립을 위해 자동차기업 유치를 추진했고, 중국의 전기차 업체와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MOU가 무산되면서 결국 국내 자동차기업 중 투자여력을 갖춘 현대자동차 유치를 추진하게 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했다. 노사민정이 함께 만들어가는 일자리라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투자유치 과정에도 노사민정이 함께 들어갔어야 했지만, 광주광역시는 현대자동차와의 일대일 협상을 진행한 것이다. 이후 광주형 일자리 추진과정에서 발생한 논란의 상당부분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현대자동차와의 투자유치 협상에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설계자라고 할 수 있는 박병규 이사장은 배제됐다.

해가 바뀌어 2018년에는 현대자동차가 광주형 일자리 모델 기업 설립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했다. 그동안 현대자동차의 참여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루어지던 과정이 일단락된 셈이다.

광주글로벌모터스 공장 조감도 © 광주글로벌모터스
광주글로벌모터스 공장 조감도 © 광주글로벌모터스

첫 삽은 떴지만 지속되는 논란

앞서 지적했듯이 광주광역시가 현대자동차 투자유치 협상을 일대일로 진행한 후유증은 이후의 과정에서 드러났다. 광주시노사민정협의회는 2018년 3월 ‘빛그린산단 내 광주형 일자리 선도모델 실현을 위한 노사민정 공동결의’를 채택했는데, 여기에는 광주광역시와 현대차 간의 협상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르면 “상생노사발전협의회를 구성해 그 안에서 노사가 제반 근무환경 및 조건을 협의하며, 결정 사항은 최소 5년 동안 유효성을 보장한다” “임금 인상의 경우 소비자 물가상승률 및 경제성장률 같은 객관적 기준을 토대로 설계한다”는 등의 조항이 들어가 있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논란을 낳았다. 다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임금과 노동조건을 상생노사발전협의회라는 제3의 기구가 결정하는 것을 두고 헌법이 노동3권을 보장한 취지에 부합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더구나 조기 경영안정을 위해 누적생산 35만 대 달성 시까지 상생노사발전협의회 결정사항의 유효성을 보장하는 것이 임단협 5년 유예로 해석되면서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한 조항이라고 비판 받았다.

게다가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가 애초 합의한 초임 수준이 공개되면서 최저임금 위반 논란까지 일었다.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는 주 40시간 기준 기본급 1,800만 원에 직무수당 300만 원, 연장근로수당 720만 원, 연월차수당 100만 원, 성과급 80만 원을 포함해 3,000만 원을 초임으로 합의했다. 그 중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기본급과 직무수당은 2,100만 원인데, 공장이 2021년에 가동될 예정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금액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광주형 일자리와 관련한 논란은 법 위반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2018년 4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은 현대자동차와의 투자유치 협상을 더욱 서둘렀다. 당초 광주광역시는 2018년 6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투자유치 협약식을 열고자 했다. 하지만 앞서 나열한 논란으로 협약식은 무기한 연기됐다.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현대자동차의 투자와 관련해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현대자동차가 광주형 일자리에 투자하면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고,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도 현대자동차와의 협상에 노동계가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의 일대일 협상 기조는 바뀌지 않았고,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 간에 투자협약식이 진행된 2019년 1월 31일까지도 광주지역 노동계는 현대자동차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을 기회조차 없었다.

논란을 거듭한 끝에 2019년 1월 31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 간 투자협약이 체결됐고, 9월 20일에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라는 법인이 설립 등기를 마쳤다. 이어 12월 26일에는 빛그린산단에서 공장 기공식이 열렸고, 2020년 4월 22일에는 자동차 공장 상량식이 진행됐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광주지역 노동계의 협상 참여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광주지역 노동계는 수차례에 걸쳐 협약 이행을 촉구했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법인 출범식과 공장 기공식에 불참하면서 광주광역시를 압박했다. 특히 광주지역 노동계는 광주형 일자리 협약에 포함된 노사책임경영을 위해 노동이사제를 수용하고, 현대자동차 출신의 경영진을 교체할 것 등 5개항의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그럼에도 광주광역시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를 중심으로 한 광주지역 노동계는 2020년 4월 2일 협정 파기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GGM 주주들은 4월 8일 주주총회를 열어 노동계가 참여하지 않으면 투자를 철회할 수도 있다고 결의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다급해진 건 광주광역시였다. 그동안 노동계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광주광역시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지만, GGM 주주들이 시한으로 정한 4월 29일을 앞두고 마침내 이용섭 시장이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을 만나 GGM 내에 상생위원회를 설치하고, 광주광역시 차원의 상생일자리재단을 설립하겠다고 제안했다. 광주지역 노동계는 고민 끝에 노동이사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했던 참여를 위한 최소한의 통로는 확보했다고 판단하고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복귀할 것을 결정했다.

2020년 5월 현재 이용섭 시장의 제안에 따라 GGM 안에 상생위원회가 설치돼 논의를 시작했다. 상생위원회에는 사내에서 박광식 부사장, 사외에서 윤종해 의장, 박병규 이사장, 오재일 전남대 교수,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참여하고 있다. 한편 상생일자리재단과 관련해서도 재단 설립 실무는 광주광역시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 진행하고 있는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