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시혜의 대상인가 파트너인가?
노동계, 시혜의 대상인가 파트너인가?
  • 박석모 기자
  • 승인 2020.06.22 09:52
  • 수정 2020.06.22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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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변함없었던 무시와 노동배제
노동계는 참여할 준비가 돼 있을까?

커버스토리 ➍ 광주형 일자리와 노동

지난 5월 21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금속노조 현대차·기아차·한국지엠지부는 ‘광주형 일자리 반대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지난 5월 21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금속노조 현대차·기아차·한국지엠지부는 ‘광주형 일자리 반대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여러 차례 이야기한 대로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민정이 함께 만들어가는 일자리’이다. 이 말을 반복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노사민정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를 달리 말하면 지역사회의 구성원 모두를 일컫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말에는 어떤 당사자도 배제되지 않고 자기 입장과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당사자 중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일자리가 아니라는 의미다.

참여와 소통 결여된 투자유치 협상

광주에 신규 자동차 공장을 설립하는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전에는 광주형 일자리에 담긴 ‘참여’라는 원칙이 비교적 잘 지켜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혹은 일터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조정과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당사자의 참여가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갈등만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광주광역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일방적으로 추진하지는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소속돼 있던 공공운수노조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고, 공공운수노조의 참여 속에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했다. 그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쳐 광주광역시와 공공운수노조가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광주광역시가 이런 행보를 보인 데는 당시 사회통합추진단장이었던 박병규 광주형일자리연구원 이사장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자동차 공장 설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이 같은 참여는 사라졌다. 한 측면에서는 현대자동차의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 간의 일대일 협상이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광주형 일자리 추진 주체들을 배제했을 뿐만 아니라 협상 내용조차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광주광역시는 사후적으로 현대자동차가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만 알리면서 의결기구인 광주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의결만을 요구했을 뿐이다.

다른 한 측면에서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 노동계 일각에서 신규 자동차 공장 설립에 반대하며 철회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설득하고 참여하게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참여’가 동의하는 사람들만의 참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반대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은 전제라고도 할 수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는 반대까지는 아닐지라도 그 진정성을 의심하던 이들을 설득하고 대화의 자리로 이끌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광주광역시의 태도가 정반대로 바뀐 셈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제안자이자 사회통합추진단장으로서 노동계를 비롯한 이해당사자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했던 박병규 이사장은 현대자동차 투자유치 협상 과정에서 배제됐다. 대신 투자유치 협상에는 광주광역시 일자리경제과의 자동차 담당자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정만으로 광주광역시의 태도 변화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개인의 역할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공적 조직인 광주광역시의 의사결정과 태도가 개인의 참여 유무에 좌우된다는 것은 시스템의 부재라고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행정을 책임지는 조직체로서 광주광역시에는 나름대로의 시스템이 있을 것이고, 그 시스템 안에 녹아 있는 기본적인 인식이 태도 변화의 원인이라고 해석하는 게 보다 자연스러울 것이다.

일자리만 만들어‘주면’ 문제가 해결되나?

이 같은 광주광역시의 행보에 대해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은 “일자리만 만들어주면 되는 것으로 보는 전형적인 관료의 시각이 녹아 있는 것”이라며 “지방정부가 사용자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면서 되도록 노동을 배제하고자 하는 기존의 노사관계 관행이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노동하기 좋은 나라, 노동을 존중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황기돈 원장과 같은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여기에 덧붙여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일자리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정책을 펴는 사람이 없다”면서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집약돼서 나타나는 게 일자리 문제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통찰 속에서 여타의 문제들이 연계돼 이루어져야 하는데 일자리 숫자만 늘리는 방식으로 접근하니 근본적인 철학과 가치가 사라지고 효과도 나올 수 없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적어도 신규 자동차 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광주광역시는 노사민정이 함께 만들어간다는 광주형 일자리의 기본 철학을 무시하고 일자리만 만들어‘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기존의 관료적 마인드로 접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광주형 일자리를 제기했던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처음 논의된 것처럼 참여를 보장하라는 노동계의 요구는 ‘귀찮은 민원’ 쯤으로 치부했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공무원들의 인식이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시각은 관료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자리 문제뿐만 아니라 여타의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도 참여를 통해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보다는 시혜적인 입장에서 베풀어주는 것이 관료들에게는 더 익숙하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어떤 전문가는 ‘무뇌아’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런 점은 광주광역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박용철 부소장의 지적처럼 중앙정부와 청와대 차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면서 맨 처음 한 일이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과정을 보면 문재인 정부 역시 일자리 숫자에 연연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과 같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선언도 도덕적 선의로 포장된 시혜적 조치라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청와대나 정부가 그런 선언이라도 한다는 점에서 무작정 비정규직을 양산해 일자리 숫자만 늘리면 되는 것으로 인식했던 이전 정부에 비해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선의나 그 안에 담긴 진정성도 거짓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를 추진하는 과정은 기존의 관행대로 시혜적인 마인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당장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만 하더라도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하기 위한 노사전협의체라는 형식적인 틀은 갖추고 있으나, 각 기관별로 구성된 노사전협의체가 원래의 취지와 같이 제대로 운영되는 경우보다는 파행을 겪는 사례가 더 많다. 게다가 노사전협의체를 통해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조율을 거쳐 정규직화에 성공한 케이스는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더구나 다음 선거를 고민해야 하는 선출직의 입장에서는 일자리 숫자만큼 확실한 성과가 없으니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인 마인드에서부터 시혜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데다 선거를 고려해 임기 안에 성과를 내야 하는 이들에게 이해당사자를 참여하게 설득하고 함께 해법을 고민하는 것은 시간만 걸리는 비효율적인 과정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문제가 됐든 이해당사자들이 주체로서 참여해 함께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이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안정적인 해법도 도출될 수 있다.

민주노총 군산지부는 왜 참여할까?

광주광역시가 신규 자동차 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노동배제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처럼 노동자를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볼 뿐 파트너로 여기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이 때문에 광주형 일자리 추진과정은 수없이 파행을 겪었다. 심지어 시혜적 시각에서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며 제시한 내용이 최저임금법마저 위반할 수준인 적도 있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었던 투자협정 체결식이 무기한 연기됐던 해프닝까지 있었다.

이런 해프닝을 통해 또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점은 노동 문제에 대한 전문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를 보완하고 있었던 박병규 이사장을 추진 과정에서 배제했으니 노동 문제에 대한 이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신규 자동차 공장 설립 추진과정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 군산형 일자리 추진과정이다. 군산형 일자리는 정부가 추진 중인 상생형 지역일자리의 하나로 광주형 일자리를 벤치마킹한 모델이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중단과 한국지엠 군산공장 철수로 비롯된 군산지역의 일자리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모델로 한국지엠이 철수한 자동차 공장을 전기차 클러스터로 조성하는 사업이다.

광주에서의 신규 자동차 공장 설립 추진과 군산형 일자리가 대비되는 지점이 몇 가지 있는데, 외형적으로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들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또 광주에서는 현대자동차라는 대기업의 투자가 이루어진 반면, 군산에서는 중소기업 위주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군산형 일자리도 광주에서와 마찬가지로 적정임금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그 수준을 처음부터 일정한 액수로 정하기보다는 전북지역 제조업 평균임금을 권고 수준으로 해서 군산형 일자리 참여 기업 노사의 공동교섭을 통해 결정하는 구조를 갖췄다. 개별 사업장에서는 공동교섭 이후 개별교섭을 통해 임금 외의 복리후생 등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했다. 이 때문에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임금과 노동조건을 외부에서 결정해 노동권을 제약한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는 구조다.

군산형 일자리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박용철 부소장은 “전북지역 제조업 평균임금이 높은 수준은 아닌데 참여 업체들 중에서 현대자동차 1차 벤더인 명신은 어느 정도 맞출 수 있겠지만 나머지 업체들도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참여 기업들 중에는 열악한 기업도 있어 공동교섭에서 결정된 임금 수준을 강제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임금인상률이라도 맞출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몇 가지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군산형 일자리 추진과정에 민주노총 군산시지역지부가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은 광주형 일자리뿐만 아니라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기보다는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산시지역지부가 군산형 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군산지역의 일자리 위기가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최재춘 군산시지역지부 지부장은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 중앙에서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하면 지역에서는 무조건 반대할 게 아니라 그걸 수정해서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면서 “어떤 일자리가 필요할지 고민하고 토론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중앙에서 반대한다고 지역에서도 반대만 하고 있으면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남는 게 없는 만큼, 참여해서 하나씩 바꿔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처음부터 한 번에 원하는 걸 모두 얻는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개별사업장 노사교섭에서도 처음에 100을 요구하면 교섭을 거듭하면서 점차 의견 차이를 좁혀 60이나 70의 합의안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지역에서의 참여도 그렇게 가야 한다는 것이다.

비판의 빌미, 광주광역시가 제공했다

노동계뿐만 아니라 이해당사자들이 과정에 참여하고 주체로서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광주형 일자리의 기본 정신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안에도 적용돼야 할 내용이다. 다시 말하면 참여하지 않고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우연히 무임승차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런 행운이 지속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현대·기아자동차지부는 광주형 일자리, 보다 정확하게는 신규 자동차 공장 설립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현대자동차지부는 현대자동차가 광주형 일자리에 투자를 하면 파업을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같은 민주노총 등의 반대에 빌미를 준 건 역설적이게도 광주형 일자리를 추진한다고 하는 광주광역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처음부터 모든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일치할 수는 없으며 하나의 사안에도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힐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사관계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당사자들이 합의에 이르는 건 서로 다름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양보와 타협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매년 이뤄지는 노사교섭은 이런 과정의 반복이다. 때로는 극단적인 갈등으로 치닫기도 하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는 것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자들이 대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규 자동차 공장 설립 추진과정은 첫 단추부터 이런 과정이 모두 무시됐다. 자동차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공장을 짓고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자동차 기업을 투자자로 유치하는 게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설립할 자동차 공장이 기존의 자동차 공장과는 다른 혁신적 일자리여야 한다는 점이 처음부터 전제돼 있었다면, 그런 혁신이 가능한 조건을 마련하는 것은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들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광역시는 처음부터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닫았을 뿐만 아니라 비판하는 민주노총 등을 설득하려는 노력도 전혀 하지 않았다. 간절하게 일자리를 원하는 광주시민들의 염원이 있었다고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결과는 그 목적에 걸맞은 과정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무시와 배제로 일관했던 광주광역시의 태도는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비판을 키웠고, 20%가량 진행된 공사에도 불구하고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가능성에 회의를 품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 6월 3일,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는 대기업노조 간부를 비판했다. ©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지난 6월 3일,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는 대기업노조 간부를 비판했다. ©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비판한다고 정당성 생기나?

광주형 일자리가 삐걱거리는 데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게 광주광역시의 태도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다고 이를 비판하는 노동계를 마냥 옹호하기도 어렵다.

우선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의 다른 축에서 비판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그 안에서 애초에 가졌던 문제의식을 살리는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광주광역시가 일방적 추진을 강행하던 지난해 하반기에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의 요구사항은 처음의 문제의식이 녹아 있는 4대 의제가 아니라 노동이사제와 현대자동차 추천 임원의 교체 등 5개 항이었다. 결국 최초의 문제의식을 살리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광주광역시가 기존의 신뢰를 무너뜨리면서 일방적으로 사업 추진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더 큰 문제는 처음부터 광주형 일자리를 질 나쁜 일자리로 규정하고 비판했던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현대·기아자동차지부 등이다. 민주노총 등이 광주형 일자리를 비판하는 명분은 임금의 하향평준화 우려, 산업정책 차원의 검토가 없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일자리, 제 살 깎기 경쟁, 노동권의 제약 등이다. 각각의 근거들은 모두 일리 있는 지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문제는 일리 있는 근거를 통해 광주형 일자리를 비판하고는 있지만 그 귀결이 모두 지금 있는 일자리 지키기로 모아진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그들만의 리그’라고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있는 일자리 지키기는 결국 ‘밥그릇 지키기’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는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광주에 자동차 공장을 신설하면 울산, 아산, 전주 등 기존의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는 도시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으니, 발목 잡지 말라”는 것으로 비칠 가능성도 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 이후 민주노총 등이 외쳐 왔던 “함께 살자”는 구호는 “(남들이 어떻게 되든 우리끼리만) 함께 살자”는 요구였던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민주노총 등의 비판에는 “이런 문제가 있으니 철회하라”는 요구만 있을 뿐 “민주노총이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이 없다. 예컨대 산업정책 차원의 면밀한 검토가 선행됐어야 한다는 지적은 지극히 당연한 지적이지만,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냐?”는 물음에 민주노총 등이 내놓은 답은 “철회하라”는 것 말고는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규 자동차 공장 설립을 철회했다고 치자. 그 다음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비판해왔던 지적을 받아들여 철회하라는 요구를 수용한다면 환영성명 한 장 내고 말 것인가?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광주형 일자리, 신규 자동차 공장 설립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면서 비판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 광주광역시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비판한다고 해서 자신의 정당성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등의 비판이 밥그릇 지키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시 말해 주장하는 바의 진정성을 인정하더라도, 민주노총 등은 “언제까지 비판만 하고 있을 거냐?”는 물음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한다고 주체로 설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한 시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나는 이렇게 하겠다”는 대안을 내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 민주노총 등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주노총이 어떻게 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각 경제주체들과의 토론을 통해 나아갈 바를 모색하는 자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