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파괴범으로 꼽히는 아보카도와 팜유,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
환경파괴범으로 꼽히는 아보카도와 팜유,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20.06.14 00:00
  • 수정 2020.06.1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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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효경 녹색연합 상상공작소 활동가
아보카도. ⓒ Pixabay
아보카도. ⓒ Pixabay

숲 속의 버터로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영양가 높은 과일로 기네스북에도 올라간 아보카도. 하지만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아보카도의 원산지는 멕시코 중동부 고산지대와 중앙아메리카로 이 지역과 재배조건이 비슷한 미국 일부 지역과 뉴질랜드에서 생산된다. 따라서 아보카도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약 1만km를 이동해야 한다. 생산, 유통에서 섭취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2개의 아보카도는 846.36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바나나 1kg 탄소 발자국 수치의 두 배에 가까운 양이다.

더 큰 문제는 물 소비량이다. 아보카도 열매 하나를 키우는 데는 320L의 물이 소요된다. 오렌지 한 알은 22L, 토마토는 5L가 필요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양이다. 1㎏ 남짓인 아보카도 세 알을 수확하기 위해 물 1,000L가 필요한 셈인데 성인 남성의 하루 물 섭취량 2L에 대입해보면, 1년하고도 넉 달 넘게 마실 수 있는 양이다.

칠레 페토르카 지역의 아보카도 재배 면적은 1990년대 20㎢에서 최근 약 160㎢로 8배나 급증했다. 아보카도로 인해 주민들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다. 이 지역 농장 주인들은 많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불법으로 용수 파이프를 설치하고 우물을 파다 보니 주민들이 써야 할 지하수가 고갈돼 트럭으로 물을 배달받아 쓰는 처지이다.

멕시코에서는 아보카도를 재배하기 위해 멀쩡한 산림을 베어내는 일도 있다. 멕시코산 아보카도의 80% 정도는 빈곤지역인 미초아칸 주에서 생산된다. 멕시코 국립산림연구소에 따르면 2001~2010년 미초아칸주의 아보카도 생산량은 3배로 늘었고 수출은 10배 증가했다. 그에 따라 미초아칸주에서만 아보카도 농장으로의 개간을 위한 산림 벌채가 해마다 2.5%씩 증가했다. 아보카도 경작지가 늘어나면서 파괴된 숲의 면적은 한 해 약 6.9㎢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여의도(약 2.9㎢)의 두 배가 넘는 면적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문제들은 아보카도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식물성수지인 ‘팜유’도 아보카도 못지않게 원료 재배과정에서 환경을 파괴시킨다. 팜유는 과자, 아이스크림, 초콜릿, 라면 등 각종 식품은 물론 세제, 비누, 화장품, 바이오연료에까지 쓰이는 범용성 원료이다.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제품에 팜유가 사용된다. 이렇게 전 방위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생산 단가가 제일 싸기 때문이다.

전 세계 팜유 소비량은 1년에 50억 톤 정도인데 이중 85%를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한다. 팜유 생산을 위해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을 비우는 가장 손쉬운 방식은 화재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 안에 살던 야생동물들은 산 채로 불타거나, 살던 곳에서 쫓겨나거나, 인간에게 두들겨 맞고 때로는 총에 맞아 죽게 된다. 팜유 농장 자체는 많은 화학물질을 배출하기 때문에 물과 토양 오염도 문제이다. 산림을 잃어 과거와 달리 토양의 침식·홍수·산사태 등이 자주 발생하게 되는 등 지역주민의 삶이 파괴되고 있다. 팜유가 싼 것은 다국적기업들이 이런 사회적인 비용을 전혀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이 불거지면서 NDPE정책을 내세운 기업들도 나타났다. NDPE정책은 산림과 이탄지 파괴 금지, 원주민 노동 착취 없는 팜유생산이라는 뜻의 정책으로 현존하는 산림파괴금지정책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내용이다. 기업들이 팜유 생산을 하되 이런 내용들을 준수하겠다는 국제적인 약속으로 법정구속력은 없지만 이를 채택할 경우 환경단체가 모니터링하여 정기적으로 회의하고 자료도 받을 수 있다. 한국기업들에게도 몇 년 째 이 정책을 채택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수용하지 않았는데 올해 3월초 국내에서 처음으로 한 기업이 NDPE정책을 따르겠다고 발표를 했다. 나머지 기업들도 변화가 있을지, 실제 정책을 잘 지키는지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아보카도, 팜유는 죄가 없다. 커피, 카카오, 아몬드……. 이와 비슷한 일들은 계속 있어 왔다. 큰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숲과 바다를 파괴하고, 그곳에 사는 주민들과 동물들에게 생존의 책임과 고통을 떠넘긴 것이다. 윤리적 소비, 공정무역, NDPE정책. 이 것들은 내가 산 물건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관심을 가진 현명한 소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었다. 오늘 내가 먹은 음식은 어디에서, 어떻게 왔을까? 환경 파괴의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질문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