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운행 단속, 누구를 위해 하나?
버스운행 단속, 누구를 위해 하나?
  • 윤나리 기자
  • 승인 2008.10.0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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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식 서비스맨’ 스트레스 쌓인다 쌓여
'새벽별 인생' 서울시 버스운전기사들의 고충 일지

새벽별이 수놓은 하늘 아래 서울시 버스운전기사는 새벽 첫차를 운행하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을 서두른다. 운행 중에는 꽉 막힌 서울 시내 도로 한복판에서 멍한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오늘도 그는 교통선진국의 기본조건인 ‘백화점식 서비스맨’으로서 최선을 다하지만 그에게는 늘 운전으로 인한 만성 스트레스와 사고의 위협만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버스운전기사들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는 승객들의 닫힌 마음과 무관심이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비교적 규모가 큰 버스회사에서 운전기사 경력 7년째인 A씨. 그는 오늘도 새벽별을 보며 출근한다. 2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출근할 때면 아이들은 자고 있고, 집에 올 때면 학교에 가고 없다. 가족들과 함께 있어본 적이 언제인지. A씨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에 시달린다. 오늘도 무사히 운전할 것을 다짐하며 새벽길을 헤치는 A씨. 오늘따라 유난히 운전대 잡기가 싫어진다. 어제 밤 꿈자리가 좋지 않아 그런가보다.

D씨는 이틀째 일을 못하고 있다. 다산콜센터 120의 민원문제로 서울시청과 구청을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다. 승객이 다산콜센터 120에 무정차 신고를 한 것이다. 그런데 신고한 내용은 이미 한달 전에 일어났던 일이란다. 한달 전에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승객이 전화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승객의 신고가 증거자료라며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구청담당자의 말에 그냥 어이없는 웃음만 나온다. 신고자 제보에 대한 검증을 해보지도 않고 D씨에게 무조건 잘못을 떠넘긴다. 잘못을 했든 안했든 중요치 않다. 이미 시민이 신고를 한 상태이므로 일단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서울시의 대시민 서비스니까. D씨는 경찰서에서 범인을 취조하듯 자신을 대하는 것이 불쾌하기 그지없다. 결국 그는 이틀치 수당, 만기근무 수당과 무사고 보험수당도 모두 포기해야 했다. 하루 동안 그에게 남은 건 과태료 10만 원이 전부였다.

버스 정류장 옆에 택시와 학원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E씨는 버스 정류장 수칙인 정류장 표지판에서 10m 이내, 보도석에서 50cm 이내에 차를 정차시켜야 하는 규정을 어겼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을 구청 단속직원이 찍어 신고를 했고, E씨는 당시 상황을 해명하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진 모르지만 E씨가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F씨는 요즘 단속반 노이로제에 걸렸다. 밤이고 낮이고 언제 어디서든 단속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숨어서 함정단속 할 것을 생각하니 또 속이 답답해져 온다. 그런데 정류장에 11m 대형버스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갑자기 승객들이 저 멀리서 뛰어와 버스 문을 열어 달라 난리다. 여기서 열어주면 F씨는 법 위반이다. 구청단속반원의 카메라는 쉼 없이 F씨를 향하고 있다. 정류장 10m 이내로 들어와 승객들을 태우자 승객들은 왜 문을 안 열어주느냐고 툴툴거리며 버스에 오른다. 혹시나 승객들이 다산콜센터 120에 신고하는 건 아니겠지.

'한탕’ 끝내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R씨는 갑자기 뇨기를 느낀다. 하지만 근처 화장실은 보이지 않는다. 이때 BMS에서 배차간격을 맞추라는 지시가 흘러나온다. R씨는 일단 배차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출발한다. 그런데 광화문 한 가운데 거리집회가 벌어지고 있다. 배차시간이 30분 이상 지연되면 회사에서는 난리가 난다. 일부러 천천히 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시달려야 하는 이유를 그는 알 수가 없다. 그저 슈퍼맨처럼 차를 들고 뛰고 싶은 마음뿐이다. 늦어진 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양쪽 깜박이를 켜고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달렸다. 일단 회사에 도착하면 어서 화장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R씨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

T씨는 버스운전기사로 일한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는 승객들과 나누는 인사가 즐겁다. 또한 핀마이크로 교통 안내방송을 성실히 하고, 차량의 흔들림 없이 안전하게 운전하려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인사를 받아주는 승객은 100중 1명에 불과하다. 심지어 승객들에게 안내방송을 하니 시끄럽다며 짜증내는 승객도 있다. 왜 이렇게 천천히 운전하냐며 바쁘니까 빨리 가자는 승객도 있다. T씨는 승객들의 버스 이용질서 수준이 한참 뒤떨어진다고 느낀다. 사실 이렇게 열심히 승객들에게 서비스하는 T씨로서는 요즘 힘이 많이 빠진다. 교통선진국 수준의 시내버스 운전기사를 강요하지만 승객의식 수준, 교통 시설 및 제도 등의 개선이 밑받침됐으면 좋겠다고 T씨는 생각한다.

S씨는 요즘 위장병에 시달리고 있다. 불규칙한 식사시간 탓이란다. 새벽에 나와 운전을 하다 보니 아침을 거를 때도 많고 점심식사를 겨우 챙겨서 먹는 경우도 많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방광에 문제가 생겼다. 방광염이란다. 휴가도 제대로 못쓰고 근무하는 이 상황이 괴롭기만 하다.

실수로 Y씨는 앞차와 살짝 부딪혔다. 그런데 하필이면 BMW다. 원래 단체협약에는 대물보험 가입이 의무화 되어 있는데 회사는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Y씨는 모두 다 자기가 책임지고 물어줄 수밖에 없다. 회사에 사고 생겼다고 하면 당연히 징계가 들어 올 것이고 불이익을 주려고 난리일 테니. 무사고수당도 날아가는 것보다는 내가 처리하는 게 훨씬 더 속편하다. 이 문제를 빌미로 회사에서 징계를 남발해 Y씨를 해고해버릴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Y씨 동료는 단체협약 위반이라고 노동부에 진정했다가 회사에 찍혀 ‘스피아 기사’(예비기사-스페어를 버스 운전자들이 부르는 은어)로 뺑뺑이 당하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둔 적도 있다. Y씨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참아 넘긴다.

C씨는 요즘 일을 마치고 나면 하루 종일 멍한 상태로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한다. 멍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일도 잦아졌다. 운전을 하면서 과민하게 신경을 쓴 탓이다. 승하차 문열어줘야지, 요금 내는 거 봐야지, 영수증 끊어줘야지, 좌우 백미러 봐야지, 승객 승하차 상태 체크해야지, 차선 변경하려면 교통상황 살펴야지. 정류장에 도착할 때마다 한 번에 해야 할 일을 세어봤더니 28가지가 넘는다. 여기다 승객들에게 인사해야지, 핀마이크로 방송까지 하란다. C씨는 백화점식 기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에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나 보다. 하루하루 멍한 상태로 운전하다가 혹시 사고가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운전만 신경 쓰면 됐던 안내양 있던 시절이 그립다.

L씨는 10년간 회사에서 일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하루아침에 해고자 명단에 있었다. 징계로 인한 시말서를 너무 많이 썼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정차 중 핸드폰 문자 작성이 빌미가 됐다. 회사는 성과급과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경미한 문제들을 꼬투리삼아 징계를 남발한다. L씨는 의도된 해고에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심야버스 마지막 차량을 차고지에 넣고 퇴근하는 U씨. 지금 시각은 새벽 3시를 향하고 있다. 달과 함께 뜬 새벽별이 그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버스는 우리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대중교통 수단이다. 서울시는 교통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지난 2004년 7월부터 버스준공영제를 실시했다. 버스준공영제 실시로 무료환승제와 배차간격 준수, 난폭운전 감소, 승객에 대한 친절서비스 등 버스 이용객의 만족도는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버스 이용객 신혜민(63세, 주부)씨는 “예전에 버스를 탈 때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편리해서 좋다. 버스운전기사들의 서비스도 좋아졌다. 요즘 참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버스준공영제를 실시하면서 달라진 대시민 서비스만큼이나 버스운전기사들이 받는 부담은 점차 커져만 가고 있다. ‘버스 운전실력’은 기본. 현금영수증 단말기 확인, 승하차 개문조작, BMS 정보 체크, 핀마이크 사용 등등 부수적으로 해내야 하는 일들이 증가됐다.

버스운전기사들은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할 때마다 무려 28가지의 동작을 능숙히 해내야 한다. 그들에게 일분일초가 긴장의 연속인 셈이다. 이뿐 아니라 시민들의 민원제기, 불편신고, 구청의 단속, 회사 내 징계 남발, 고용불안, 과도한 노동강도, 교통사고의 위협 등이 운전기사를 하루하루 지치게 한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정류장 질서 단속문제 팽팽한 대립

서울시버스노동조합은 현실을 무시한 정류장 질서 단속에 대해 지난 2004부터 서울시청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왔다. 서울시버스노조의 방선재 차장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류장 관련 법률제도가 현실적으로 지키지 못할 제도이므로 서울시에 단속방침을 변경해 달라고 이미 수십 차례 공문을 보냈으나 여지껏 아무런 답변이 없다”며 “현실적으로 시행가능한 제도와 환경을 먼저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이 문제에 대해 서울시 버스정책담당관 장일진 주임은 “시민들이 차도에 내려와서 버스를 타려고 할 때 절대 문을 열지 말고 버스 정류소 철칙을 지키면 시민들은 자연스레 법을 지킬 것이다. 이것은 지키지 못할 일이 아니라 개인의 의지만 있으면 지킬 수 있는 문제이다. 준공영제 이전의 운전방식을 탈피해야 한다”고 답했다.

서울시는 적극적인 버스 승객유지를 위해 향후 편의와 서비스 향상을 위해서 운행법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도로교통법 제28조 4항에는 시내버스는 정류장 표지판으로부터 10m 이내에 정차해야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에 의한 버스정류장 내 단속과 신고 문제에 대해 서울시버스노조와 서울시가 팽팽히 맞서고 있어 이들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구청의 실적만을 위한 함정단속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억울하게 함정단속에 걸렸을 때에는 시에서도 무리하게 적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 과태료를 부과 받게 될 경우 행정심판으로 재심사를 거쳐 공정하게 판단한다”고 답했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승객 편리함 책임질 합의 도출해야

버스운전기사 K씨는 “소위 교통선진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백화점식 서비스로 승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정작 승객들의 질서의식 수준은 우리의 서비스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기사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승객들의 버스이용 질서의식도 향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서울시는 승객들의 승차질서 향상을 위해 지난 7월부터 매달 ‘Happy Bus Day’라는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으며 앞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다산콜센터 120에는 승객들의 허위민원이나 잘못된 민원, 판단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민원이 제보될 때도 많다.

이에 대해 장 주임은 “100% 운전기사 분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사실 재미삼아 신고를 하거나, 진실인지 거짓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때도 있다. 우리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아 골치가 아프다”고 답했다. 다산콜센터 120은 지난 6월 상담자 수가 2백만명을 넘어섰으며 특히 교통 불편 신고, 버스도착정보 안내 등 교통 분야 문의가 30.1%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도 승객들은 버스 운행제도 및 서비스에 있어 전반적으로 좋아졌다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 미처 버스에 오르기 전에 출발한 경우 ▲ 버스를 향해 뛰고 있는데도 출발해 버리는 경우 ▲ 배차 간격을 맞추기 위해 승객의 안전을 무시하고 달리는 경우 ▲ 혼잡할 때 뒷문 승차를 거부할 경우 ▲ 출퇴근 시간 배차지연으로 인한 혼잡함 가중 등 버스 이용 시 불편한 점들을 지적했다.

승객들이 버스를 가장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방법에 대한 고민과 합의도출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무리 선진적인 제도라도 승객들이 불편해 한다면 그것은 쓸모없는 제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