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공동으로 퇴직 후까지 책임진다”
“노사 공동으로 퇴직 후까지 책임진다”
  • 승인 2004.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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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ㆍ생애계획 교육

직무만족도↑

미래불안감↓


 

고령화 사회가 가져오는 또 하나의 문제는 ‘비생산적’ 인구의 증가다.

 

수명은 자꾸만 연장되는데 정년퇴직 나이는 그대로거나 오히려 앞당겨지고 퇴직 후 재취업은 점점 어려워지다 보니 능력 있는 고령자들도 사회의 유휴인력으로 전락하게 된다.
고령화가 우리보다 빨리 진행된 서구 국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별기업 및 산업 단위로 노동자의 퇴직 후 제2의 인생 설계를 지원하는 자기계발 및 생애계획 프로그램이 활성화 되어있다.

국내에서도 몇몇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러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지만 노사가 공동으로 직원들의 생애개발 교육을 실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가운데 (주)삼양사 노사가 공동으로 직원들의 자기계발과 퇴직 후 인생 설계에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3대 제당업체의 하나인 (주)삼양사 울산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는 총 180명으로 평균근속연수가 20.3년 평균연령은 45.4세에 달해 동종업계보다 3~4세 정도 많다. 88년 입사자가 막내, 67년 입사자가 아직도 근무를 하고 있을 정도니 고령화 정도가 매우 높은 수준이다.

 

퇴직 후 ‘제2의 인생’ 위해
삼양사 울산공장 노사가 노동자들의 능력개발 및 생애계획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98년 경제위기 때부터다. IMF를 전후해 명예퇴직, 희망퇴직으로 공장을 떠난 노동자는 전체 조합원의 30%에 달한다. 경제위기가 불러온 인력 조정의 필요성은 자연히 임금이 높은 장기근속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명예퇴직과 희망퇴직을 한 사람들에게는 퇴직금 외에도 일정한 형식의 위로금이 지급됐다. 하지만 상당한 액수의 퇴직금을 가지고 사회에 나가 자립이나 재취업에 성공하는 노동자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짧게는 15년에서 많게는 30년까지 시계추처럼 공장만 왔다 갔다 하던 노동자들이 새로운 삶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심한 경우에는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했다가 퇴직금을 모두날리는 일도 있었다.


이 때부터 노사는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생애개발 지원 프로그램’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연령별로 특화된 프로그램 실행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 한국노동교육원의 ‘노사협력 재정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울산공장 인사팀은 노동조합과 공동으로 노동자들의 요구 파악에 착수했다. 연령 및 직종별 요구 파악 결과 45세 미만의 노동자들은 직무와 관련된 자기계발 요구가 높았고 45세 이후는 재취업 및 창업 등 퇴직 후의 삶에 관한 요구가 높았다.


이에 따라 45세 미만의 생애 계획 프로그램은 정보처리, 환경관리, 보일러 취급, 냉동기계 등 현재의 직무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구성됐다. 반면 45세 이상의 노동자 대상 프로그램은 재산관리 및 조리사, 제과제빵사, 부동산 중개사 등 직무 외의 자격과 면허 취득에 초점을 뒀다. 2003년 5월부터 11월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실시된 교육은 연령 및 세대별로 세분화된 주제로 진행됐다.


이 프로그램에 참석한 제당팀의 한모씨(42)는 “이번 교육을 계기로 경력과 전문성을 더 강화하기 위해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퇴직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만 가지고 있었는데 퇴직 후의 인생 설계에 관한 조언이 마음을 많이 안정시켜 줬다”고 평가했다.


직원 교육이 회사 단독 주관으로 이뤄지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삼양사 울산공장의 노동조합은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초반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거 빨리 나가라는 거 아니냐’는 불신과 반발이 있었던 것. 이 회사 노조의 김종호 위원장은 “초기에는 반발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고용불안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사회적응능력과 자기계발에 힘쓰는 것은 퇴직 후의 삶뿐만 아니라 고용안정에도 기여한다는 점을 설득하고 공감하려 애썼다”고 말한다. 김위원장은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줄어 들면서 ‘있을 때 많이 벌자’는 식의 임금 의존도 조금은 해소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교육훈련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
지난해 많은 성과를 냈던 이 프로그램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프로그램의 기획, 진행을 맡고 있는 울산공장 인사팀의 신혁환 과장은 “생애계획과 자기계발은 일회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부분이어서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에는 직무 관련 경력개발 교육과 직무 외 교육 두 가지를 진행하고 있다. 직무 관련 경력개발은 직무와 관련된 자격증 취득을 지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보일러 운전을 하면서 보일러 자격증이 없는 사람들에게 보일러 자격증 취득을 돕는 것이다. 이 경우 회사가 교육비 전액을 부담하고 교통비는 월 10만원씩 3개월 한도, 1인 2과정까지 지원한다. 지난해와 달리 외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어서 올해에는 회사 부담액이 클 수밖에 없다. 신과장은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된다”면서도 “노동자의 직무 능력과 일상생활에 대한 만족이 증가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기업의 이익으로 이어지므로 당장의 부담을 ‘비용’으로 보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투자’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제당산업은 장치산업의 일종으로 숙련된 기계조작직 노동자가 곧 경쟁력인 업종이다. 때문에 삼양사 울산공장은 장기근속자들은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직무를 오래 수행하는 데서 오는 피로나 매너리즘, 시대흐름에 대한 부적응 등은 재직자나 퇴직자 모두에게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재직자 교육 및 퇴직자 전직지원 시스템은 어떤 사회보장 제도보다도 뛰어난 노후 대책이 된다.


울산공장 전봉길 공장장은 “생애개발 프로그램이 당장 어떤 생산성 향상 지표로 나타나지 않지만 직원들의 만족도 증대와 스트레스 감소가 업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고령화 대비라는 측면에서도 노동자의 자기계발과 미래 계획에 노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