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잔혹한 노동은 누가 상담해주나?
그들의 잔혹한 노동은 누가 상담해주나?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7.11 00:00
  • 수정 2020.07.10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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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 노동자의 노동실태 증언
민간위탁과 과도한 성과관리시스템에 앓고 있는 노동자
현 시스템으로는 공공서비스 질도 못 올려

 

9일 오전 10시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실태 증언대회, 왼쪽부터 박미경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경인지회 조직부장, 손영희 부산지회 지회장, 윤정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김숙영 지부장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프로필1 : 김숙영, 여, 52세, 12년차, 2009년 입사, 잦은 방광염.
프로필2 : 박미경, 여, 51세, 5년차, 2016년 입사, 최근 협심증 진단.
프로필3 : 옥철호, 남, 47세, 6년차, 2015년 입사, 병은 없음.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다. 흔히 콜센터 상담사라고 불리는 그들이다. 전화기가 본인인지, 본인이 전화기인지 모를 정도로 하루 8시간 꼬박을 적게는 110콜에서 많게는 200콜까지 받는다. 게다가 너무도 잘 알려진 감정노동자이다. 여기까지는 대략 콜센터 상담노동자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이다.

“내가 소변이 마려운지 안 마려운지,
무감각해졌어요“

각각의 프로필을 다시 보면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김숙영 씨와 박미경 씨는 병이 있다. 옥철호 씨는 병이 없다. 왜 그럴까, 좀 더 젊어서? 옥철호 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콜센터에서 일하면 직업병이 다 생기는데, 제가 좀 튼튼해요”라고 말했다.

진짜 이야기는 농담 뒤에 나왔다. “저는 아예 인센티브 이런 것을 포기하거든요. 생산성 콜 수를 달성하기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이 많아요. 예전에는 회사의 성과 관리 압박을 감수했지만 지금은 건강을 해치기 싫어요.”

김숙영 씨와 박미경 씨도 평소 지병은 없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에 입사 후 생긴 '웃픈' 직업병이다. 박미경 씨는 최근 협심증 진단을 받았다.

“건강 검진을 받았고, 신체적 질병이 원래 있었는지 전체 검사를 했어요. 당뇨, 고혈압, 고지혈, 콜레스테롤 없고 간도 깨끗하고 아무것도 없는데 혈관이 좁아졌다는 거예요.”

“도대체 이유가 뭐냐 그랬더니, 이건 스트레스성 밖에 없다고 일할 때 하루 종일 경직돼 있고 스트레스 받다보니 혈관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의사가 진단했어요.”

박미경 씨는 의사에게 직업을 바꾸는 것을 권유받았다. 이대로라면 혈관이 더 좁아질 위험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그는 고객센터에서 계속 일하기로 했다.

“이 나이에 어딜 가겠어요. 입사할 때도 마지막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자고 들어왔고 자부심도 가지고 있어요. 고객들에게 올바른 건강보험제도 정보 전달해줬을 때 고마워하면 보람도 있고.”

입사 12년차 베테랑 김숙영 씨는 좀 더 충격적인 말을 전했다.

“오래 근무하다보니까 요로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소변이 마려운지 마렵지 않은지 무감각 해져요. 오래 참고 일해 와서요. 무감각해지니까 일부러 화장실 가보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김숙영 씨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갔다. 방광염 진단을 받았다. 제때 치료하지 못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신장으로 염증이 올라와 신우신염으로 악화되고 투석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고 진단받았다. 고객센터로 돌아와 주변 동료들에게 병원에 다녀온 사실을 말했다. 돌아온 말에 김숙영 씨는 놀랐다.

“나도, 나도”
“저도요. 저도요.”

무엇이 그들을 아프게 했나?
노동실태를 증언하다

지병 없이 그들은 왜 아팠을까? 돈을 더 벌기 위해서 건강을 희생해야 한다는 옥철호 씨의 말과 김숙영 씨가 주변 동료로부터 나도 그렇다고 들은 말. 단순히 웃어넘기기에는 무거운 직업병이다.

지난 9일 오전 10시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가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노동실태 증언대회’를 열었다.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5일 동안 전 조합원 1,019명 중 78%인 790명이 참여한 노동실태 온라인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현장 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의 현장 증언이 이어졌다.

우선 직장 만족도를 물었다. ‘매우 불만족’과 ‘불만족’을 합치면 전체 응답자의 63%에 달했다. 불만족 사유(2개 응답 가능)는 ‘낮은 임금 수준’과 ‘고된 노동강도’가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진 현재 직장생활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좀 더 구체적인 이유를 살필 수 있었다. 역시 2개까지 응답이 가능했다. 가장 많이 꼽힌 두 개는 ‘성과(생산성) 위주의 평가 시스템’과 ‘상시적 모니터링 및 녹취감시, 업무숙지 및 평가’, ‘과중한 업무량’ 등이었다. 예상외로 민원인의 악성민원은 상위권 원인이 아니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건강관리도 잘 되지 않았다. 입사 이후 새롭게 생기거나 악화된 질병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78%에 달했다. 그들의 앓고 있는 질병은 디스크, 손목터널증후군 등 근골격계 질환과 귀질환, 비뇨기계 질환 등이 가장 많았다.

휴식을 취하기 위한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응답자 대부분이 ‘상담사 본인의 자리’에서 쉰다고 했고 ‘화장실’에서 쉰다는 응답자도 꽤나 있었다. 잠시 걷거나 허리를 돌릴 공간적 여유조차 없는 것이었다. 점심 시간 제외 휴게시간도 5~20분 미만이 전체 응답자의 70%에 달했다.

결국 ‘부족한 휴식’과 ‘고된 노동강도’가 그들의 건강을 해친 셈인데, 그 이유로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민간위탁 구조와 성과관리시스템을 지적했다.

민간위탁된 고객상담,
숨 막히는 성과관리시스템

IMF 이후 기업 혹은 공공기관 내부에 존재하던 고객상담센터 즉, 콜센터는 민간위탁됐다. 직접 사업하던 부문에서 떨어져 민간업체들이 경쟁 입찰을 하는 방식이다. 민간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해당 콜센터 업무를 하게 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업무의 경우도 마찬가지 절차를 밟았다. 현재 12개 위탁운영업체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계약하고 6개 지역 고객센터(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경인)를 운영 중이다.

민간위탁 과정에서 수탁업체들은 경쟁 입찰을 해야 하고 여타 다른 인력 공급 도급업체들처럼 인건비 절감을 통해 경쟁에 우위를 점하려 한다. 또한 콜 수라는 계량화된 수치로 업체의 효율과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숨 막히는 성과관리시스템이 탄생하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평균적으로 책정된 도급비 약 307만 원 중 직접인건비로 220만 원이 산정되는데, 최저임금 수준의 180여만 원을 제외한 40만 원 정도가 (개별노동자로부터) 모여 성과관리시스템으로 측정된 지표에 의한 인센티브로 차별 지급된다”고 전했다.

콜센터 노동자를 극심한 경쟁으로 개별화 시켜 내부에서 임금 경쟁을 시키기 때문에 전체 임금의 파이가 증가할 필요가 없는 구조인 셈이다. 또한 과도한 경쟁이 자연스럽게 구조화되기 때문에 콜 수로 업체의 효율성과 성과를 증명할 수 있다.

박미경 씨는 한 시간에 두 번씩 날라 오는 관리자들의 성과달성 확인 메시지로 인한 스트레스, 옥철호 씨는 1초 안에 전화를 받아야 하는 성과 지표 지침 때문에 항상 긴장된 몸으로 손가락을 수화 버튼 위에 올려놓고 있어야 하는 스트레스가 콜센터 노동자의 건강을 해친다고 증언했다.

사실상 지난 3월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에서 드러난 콜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다시 한 번 동종 업계 종사 노동자들로부터 재확인된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바 있다.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노동환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게 지부의 설명이다.

이미 3월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 집단 감염 사태에서 밝혀졌듯이 원-하청 관계에서 어느 한 곳이 명확하게 책임지지 않는다면 감염 예방 조치를 취하기 힘들다. 쉽게 이야기해 원청은 자기 사업장이 아니고, 하청은 예산 책정 자체가 안 됐다는 것과 ‘닭장’같은 공간 변경 권한 등이 없다는 그 사이에 책임 공백이 생긴다.

“단순히 콜만 많이 받는 것이요?
시민들에게도 안 좋죠“

김숙영 씨는 “콜센터 노동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노동환경의 근본에 자리 잡은 경쟁적 성과관리시스템은 시민들에게도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 제도에 대한 설명과 정보를 충분히 해주고 많은 혜택을 우리 사회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콜 수만을 늘리기 위해서는 길어지는 설명을 중간에 끊든지 애초에 많은 정보를 주지 말든지의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김숙영 씨는 “그래서 항상 딜레마”라고 했다. 또한 “충분한 설명을 못하니 다시 전화가 오고 또 전화가 오고, 그러다 악성 민원인이 되는 것”이라며 돌고 도는 악순환의 고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설명했다.

그래서 김숙영 씨는 “자신들의 업무가 좀 더 전문성을 숙련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교육이 절실하다”고도 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건강보험제도에 관한 모든 대민 업무를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업무만 해도 수백 가지다. 또한 사회보장제도가 날로 발전해 새로운 내용을 숙지해야 하고 제도의 변화까지 캐치해야 한다.

그러나 콜 수라는 수량적 성과에 급급한 도급업체 입장에서는 교육시간을 따로 뺄 이유가 없다. 김숙영 씨는 “우리가 요구하자 업무 시작 전 20분, 그나마 있던 점심 시간을 교육시간으로 쓰려하고 개별로 알아서 하라고 한다”고 증언했다.

더불어 “민간위탁의 이유가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전문 업체 활용이라고 하지만, 도급업체는 인력 제공 업체일 뿐 전문성은 노동자가 알아서 올리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사회공공연구원도 ‘공공부문 민간위탁 제도개선방안’이라는 책을 발간하고 “콜센터 업무는 역할과 비중이 커진다”며 “정보통신기술 발전에 따라 더욱 비중이 높아지고, 휴대폰 보급으로 시민들이 어디서나 문의 전화를 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전산화 시스템 발달로 전화를 받으면서 상담 및 즉각 민원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회공공연구원은 민원 상담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커지는 산업, 중요해진 업무에 비해 민간위탁으로 인해서 서비스 질은 저하됐다고도 평가했다.

따라서, 해당 공공기관이 민간위탁한 업무를 다시 직접고용해 돌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공기관의 고유 업무이기도 하고,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특히나 민원 상담(사회보험과 같은 공공서비스 제도 설명)을 위해 숙련 노동자 양성이 필요한데, 이직을 하지 않고 숙련 노동자가 많아지기 위해서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봤다.

김숙영 씨는 “항상 동료들에게 말해요. 노조가 생겼으니 우리 처우는 개선된다고요. 근데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시민들에게 얼마나 더 좋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느냐이고 그것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인데, 과도한 성과관리시스템이 막고 있으니 바뀌어야 한다고요.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요”라고 목소리를 냈다.

*인터뷰 응해준 김숙영 씨, 박미경 씨, 옥철호 씨는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조합원이다. 김숙영 씨는 지부장이고, 박미경 씨는 경인지회 조직부장이고, 옥철호 씨는 지부 정책실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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