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인물 : 구교현
[언박싱] 이 주의 인물 : 구교현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8.08 00:00
  • 수정 2020.08.07 2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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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 #대리운전 #배달 #전국노조 #법외노조 #플랫폼노동 #전속성 #도전

언박싱(unboxing)은 말 그대로 ‘상자를 열어’ 구매한 제품의 개봉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언박싱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제품이 나올지 기대하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재미를 얻습니다. <참여와혁신>은 이번주 언박싱을 위해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을 다녀왔습니다. 이 주의 인물, 과연 누구일까요?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이 주의 인물: 구교현(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

2020년 7월 17일은 대리운전 노동자에게 경사로운 날이었습니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의 체제를 지역단위에서 전국단위로 바꾼 지 8년 만에 드디어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설립필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전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왔지만 사실 ‘법외노조’로 활동해야 했습니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은 “눈물을 흘린다. 몇 년 동안 전국단위 인증해달라고 계속 싸워왔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없으니까 뭉칠 수가 없어서 업체들한테 일방적으로 당해왔다”면서,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기본권을 확인받았다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며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관련 기사 : [언박싱] 이 주의 인물 : 김주환)

이러한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의 성공은 아직까지 노동기본권을 완전하게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조합을 자극했습니다. 바로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입니다.

라이더유니온은 7월 30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설립신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습니다. 사실 라이더유니온은 지난해 서울시청으로부터 노조설립필증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단위 노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의 노조설립필증이 필요합니다.

라이더유니온은 30일 기자회견에서 “당초 고용노동부에 신고서를 제출할 예정이었으나, 정부가 ILO핵심협약비준에 있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추진하지 않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서울시로 방향을 전환했었다”면서, “이후 전국단위 노조설립을 검토하던 차 대리운전노조의 사례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기자회견 이후 라이더유니온은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과 함께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8월 7일 1인 시위 당번이었던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을 만났습니다.

7일 낮 12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과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공동투쟁위원회와 함께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중간)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언제 라이더유니온을 전국단위 노조로 확장할 필요성을 느꼈나요?

아직 준비위원회이긴 한데 부산에서 지부를 조직했어요. 인천에서도 지부까지는 아니지만 조합원 모임을 계속 하고 있고요. 지역으로 따지면 경기도, 충남, 충북에도 조금씩은 조합원이 있어요. 이제 규모를 키워나가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어서 자연스럽게 전국단위 노조의 필요성을 느꼈죠.

전속성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어떤 취지인가요?

노조법은 전속성을 따져요. 노조설립신고서를 낼 때 전속성이 있는 조합원만 추려서 낼까하다가 전속성이 없는 조합원까지 포함해서 신고하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현행법에서 정하는 전속성 기준과 관계없이 라이더유니온을 노동조합로 인정하라는 이야기예요.

전속성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전속성이라는 건 한 명의 노동자가 한 명의 사업주에게만 노동을 제공한다는 의미예요. 산재법에서 따지는 전속성은 한 달에 118시간 이상, 120만 원 이상을 한 사업장에서 벌어야 해요.

그런데 사실 전속성은 대단히 임의적인 기준에 불과해요. 과거 노동시장에서는 전속성 개념이 부합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노동시장은 달라지고 있잖아요? 특히 플랫폼 노동시장에서는 여러 사업자가 던져주는 일감을 잡아야 하죠. 그렇게 노동시장이 변화했다면 그에 맞게 법도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노동자들이 전속성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다면 그에 맞게 노동권을 지켜주도록 변화해야 한다는 거죠. 전속성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일부 공무원들도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연구도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현장의 노동자에게는 속도가 많이 늦다고 보이죠. 실제로도 전속성 개념이 여러 군데에 적용되더라고요. 앞서 말씀드린 산재법 뿐만 아니라 고용보험법 개정안, 노동조합법에도 있고요. 심지어 공정거래법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의 불공정 행위를 따질 때 전속성이 유무가 쟁점이 돼요. 빨리 없애야죠.

짧은 시간을 일해도 필요한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거네요

그렇죠. 한 달에 1시간만 일해도 그 시간 동안 일하다 다치면 산재보험이 적용돼야 하는 거죠. 또 필요하다면 노조를 할 수 있는 거고요. 사실 근로기준법은 그래요. 한 달에 1시간만 일한다고 해서 근로계약서를 안 써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을 그렇게 만들어 온 건데 특수고용노동이나 플랫폼 노동 쪽으로 오면 빈틈이 생기는 거죠.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이 설립필증을 받았을 때 다소 놀랐을 것 같아요

맞아요. 지금 법도 바뀌지 않았고, 작년에 정부에서 ILO기본협약 비준과 관련해 개정안을 냈을 때도 노동조합법은 빠져있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도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을 인정했다는 건 전향적인 판단이라고 평가하고 있어요. 대리운전 노동자가 되면 배달 노동자도 돼야 하지 않겠어요? 실제로 대리운전 노동자가 배달 노동자보다 전속성이 더 없는 걸요.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배달 노동자의 고용형태가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최근의 추세는 어떤가요?

배달의민족의 경우, 배민라이더스는 주당 60시간까지 일할 수 있어요. 반면 배민커넥트는 주당 20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어요. ‘커넥트는 부업’이라는 걸 강조한 거죠. 물론 그 기준도 배달의민족에서 마음대로 정한 거긴 해요. 아무튼 최근 추세를 보면 좀 길게 일하려는 사람은 라이더스를 하고, 투잡을 원하는 사람들은 커넥트를 하죠.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커넥트를 하시는 분들이 2만 명 정도에서 5만 명까지 늘어났어요. 자영업자, 해고 노동자도 커넥트를 하고요. 심지어 제 주변 시민단체 활동가도 코로나19 때문에 강의 수입이 없어져서 커넥트를 하기도 해요. 쿠팡이츠는 커넥트와 마찬가지예요. 말 그대로 전속성이 없는 형태의 배달 노동이 앞으로도 많이 늘어날 것 같아요.

만약 고용노동부에서 설립필증이 나와서 전국단위 노조가 되면 ‘전국’라이더유니온이 되는 건가요? 아니면 ‘내셔널’라이더유니온?

굳이 전국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라이더유니온 하면 되죠. 하하하.

1인 시위는 언제까지 진행하실 계획인가요?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의 농성이 끝날 때까지는 진행할 생각이에요. 연대하는 의미도 있으니까요. 이후 설립필증이 안 나온다면 또 다른 투쟁을 할 수도 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오늘 고용노동부 차관이 스파이더라는 배달대행업체를 방문했어요. 현재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면서 디지털 경제, 플랫폼 경제를 성장시키려고 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사람 중심의 플랫폼 경제를 위해 고용노동부가 역할을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스파이더를 방문했더라고요.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도 함께 했고요.

그런데 고용노동부에서 배달 노동자을 위해서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진짜 있다면, 노조설립필증부터 빨리 줬으면 좋겠어요. 배달 노동자들이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 생기는 건데요.

또 노동청에서 출석 요청이 왔어요. 노동조합설립신고서 냈더니 출석을 하래요. 물론 출석을 하긴 할 건데 이해가 가지 않아요. 노동조합 설립제도는 ‘신고제’잖아요? 허가제가 아니고요. 그런데도 출석을 요구하는 건 철저하게 조사를 한다는 취지예요. 고용노동부도 대리운전 노동자, 택배 노동자 등 지난 20년 동안 특수고용노동자의 실태와 최근 플랫폼 노동자의 상황을 모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빨리 개선해야 하는데 오로지 전속성이라는 20세기 산업사회 기준에 사로 잡혀 있는 거죠.

한편으로는 노조할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 업체 찾아가서 좋은 소리 하는 건 황당하지 않나요? 똑바로 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