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되는 ‘시 금고’ 쟁탈전, 위태로운 지방은행
과열되는 ‘시 금고’ 쟁탈전, 위태로운 지방은행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0.08.13 00:00
  • 수정 2020.08.12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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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행, ‘규모의 경제’에 밀려 생사(生死) 오간다
내실 없는 지역 균형발전 … 실효성 면밀히 따져봐야

[리포트] ‘시 금고 쟁탈전’으로 바라본 지방은행의 위기

2018년 1월, 약 34조 원의 서울특별시 예산을 관리하는 시 금고 입찰에 막이 올랐다. 그리고 그 해 5월, 1915년부터 104년 간 서울시 금고 운영을 이어왔던 우리은행을 제치고 신한은행이 약 32조 원의 금고지기가 되면서, 우리은행은 약 2조 원 가량의 부금고 운영을 맡게 됐다. 선정사업 기준은 △대내외적 신용도 △재무구조 안정성 △대출 및 예금 금리 △시민 이용 편의성 △금고 업무 관리 능력 △지역사회 기여 및 시 협력사업 등이었다.
시 금고 유치는 사실상 은행의 수익성 효과를 위한다기보다, 지정된 은행에 상징성을 부여하는 데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시중은행은 입찰 평가 항목에서 높은 배점을 받기 위해 자금력을 동원한 과열경쟁을 서슴지 않았다.

과도한 ‘협력사업비’로 출혈경쟁 부추기는 시중은행

2020년 7월 15일, 약 13조 원 예산 규모를 가진 부산시가 시 금고 지정 신청 공고를 냈다. 일주일 뒤인 22일 부산시청에서는 금고 지정 설명회가 열렸고, 그 자리엔 시중은행 관계자들이 여럿 자리했다. 이번 시 금고 지정은 주금고와 부금고 복수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과 다르다. 주금고로 지정된 은행은 약 10조 원의 부산시 고유 업무 예산을, 부금고로 지정된 은행의 경우 약 3조 원 규모의 특정 사업 예산 등을 4년 동안 관리하게 된다.

부산시의 시 금고는 20년째 부산은행이 금고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부산은행은 고민이 많다. 이번 시 금고 지정 시 ‘형평성’ 명목으로 주금고와 부금고의 복수지원을 가능하게 하면서 은행 간 경쟁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의 뿌리에는 시 금고 지정 평가 항목 중 하나인 ‘협력사업비’가 있다.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 해 3월, 차기 서울시 금고 지정을 위한 공고가 올라왔을 때 우리은행은 조선경성은행 시절부터 시작해 100년 이상 운영했던 서울시 금고 운영을 이어가기 위해 ‘협력사업비’ 항목 배점을 노렸다. 당시 우리은행이 배점을 위해 협력사업비로 쓰려고 했던 액수는 약 1,000억 원이었다. 그러나 신한은행이 서울시 금고 입찰을 위해 3,000억 원 가량을 협력사업비로 쓰겠다고 나서면서, 서울시 금고 쟁탈전은 신한은행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과당경쟁 사례는 당시 은행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시 금고 지정을 위한 경쟁이 은행권에 과도한 출혈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권희원 부산은행지부 위원장은 “과도한 협력사업비를 쓰면 시 금고를 입찰 받아도 손익이 맞지 않다. 그렇게 되면 은행의 수익구조상 예금 고객에게는 금리를 적게 줄 수밖에 없고 대출 고객에게는 금리를 더 받아야만 마진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이어 “당시 행정안전부의 시 금고 유치 관련 예규를 봤을 때, 협력사업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00점 만점에 5점 정도로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BIS비율, ROE(자기자본이익률), ROA(총자산순이익률) 등 다른 항목 배점이 비슷하다보니 (협력사업비 항목이) 큰 판단 잣대로 작용하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시 금고 지정 문제의 원인이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로부터 출발한다고 보고 있다. 금융지주회사가 경영권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지배구조가 은행장들에게 매년마다 ‘보이는’ 성과로 평가돼야 하는 암묵적 KPI 제도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 금고 지정’은 은행장들에게 뚜렷한 성과라는 명분을 준다.

앞선 서울시 금고 입찰 사례와 같이, 시 금고 지정이 협력사업비 출혈경쟁으로 치달을 경우 수십 년 간 지역금융과 지역경제의 구심점에 있던 지방은행은 규모 측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수십 년 간 금융뿐만 아니라 불꽃놀이, 국제영화제 등 시 관련 복지·문화 사업으로 지역사회·경제와 연대하며 실질적 공헌을 해온 지방은행 입장에서는 시 금고 입찰이 시중은행에게 돌아갈 경우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꼴이 된다.

실제로 지방은행들은 지역과 다양한 연계사업을 시행해 왔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S씨(27)는 “부산은행이 지역 야구팀인 롯데 자이언츠와 연계해 예금 사업이나 홈런 시 불우이웃돕기 성금 사업 등을 함께하면서 지역 구성원들의 유대감을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BNK부산은행이 ‘가을야구정기예금’ 판매 수익금으로 부산지역 5개 초등학교 야구부에 후원하는 모습. ⓒ부산은행
BNK부산은행이 ‘가을야구정기예금’ 판매 수익금으로 부산지역 5개 초등학교 야구부에 후원하는 모습. ⓒ부산은행

‘규모의 경제’ 효과에 떠밀리는 지방은행

4년마다 돌아오는 시 금고 지정 평가 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인지한 6개 지방은행(부산·대구·경남·광주·전북·제주)의 노동조합은 2018년 ‘지방은행 발전 TFT(이하 TFT)’를 발족하여 산별노조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과 함께 공동대응을 시작했다. TFT는 시 금고 지정 관련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발전을 목적으로 지방은행 설립 근거를 제공하는 ‘지방은행 관련 법·제도’가 오히려 지방은행에 역차별을 가져다주는 상황 등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우선 시 금고 관련 항목 개정을 위해서는 행정안전부 예규(제71호, <지방자치단체 금고지정 기준>)를 고쳐야 했다. TFT는 당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을 만나 협력사업비 등 시 금고 지정 관련 문제를 제기했고, 이에 관한 2019년 5월 예규 개정을 이끌어 냈다. 개정된 예규의 ‘평가항목 및 배점기준’을 보면 지방은행의 강점으로 볼 수 있는 △금고업무 관리능력(세입세출업무 등) 기준에서 3점, △관내 지점·관내 무인점포· 관내 ATM기 수 기준에서 2점을 늘리고, 규모의 경제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국외평가기관 배점기준에서 2점, 협력사업비가 영향을 주는 △자치단체와의 협력사업 계획(미래계획) 기준에서 2점을 낮췄다. 또한 총 11점에 해당하는 △자치단체 자율항목 중 ‘지역재투자평가’ 관련 배점 기준에는 3점 부여가 명시됐다.

이와 함께 TFT는 시중은행이 협력사업비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을 산출해낸 원인이 직접적 이익 측면이 아닌 시 금고 입찰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 강화 등의 간접 이익의 이유에 있다고 생각해, 협력사업비 산정이 직접 이익만으로 산출됐는지 금융감독원에 산정기준의 적정성을 점검토록 요청했다.

권희원 부산은행지부 위원장은 “시중은행 관점에서 보면 주요 활동 범주는 수도권이고 부산시 금고는 작은 사업 영역의 하나라 전사적 역량을 쏟을 이유가 전혀 없다”며 “(시 금고 지정에 있어) 단순 지출비용 규모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심사를 할 때 과연 이 은행이 부산에 기반을 두고 지역 밀착 사업에 얼마나 활동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은행이 시 금고 지정에서 밀려날 경우, 부산시 사업으로 예치된 1년 평균 잔액 약 7,000억 원 정도를 회수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 부산은행은 저금리 시대에 예금을 끌어오기 어려운 만큼, 예금과 대출 정도를 조율하기 위해 대출을 줄이고, 은행 경영상 경제적으로 어려운 기업에게서 대출금 회수를 독촉하게 된다. 시 금고 탈락의 여파가 중·소상공인을 포함한 부산은행 고객에까지 연쇄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현재 부산은행의 경우 시 자금의 출납·지방세 관련 업무 담당 지점과 사회공헌부서를 포함해 부산시 사업을 지원하는 직원이 약 200여 명이다. 시 금고 탈락 시 시 예산을 받아서 운영하는 구 금고 운영도 축소될 수밖에 없으며, 그만큼 유휴인력이 생기게 된다. 지점 축소와 유휴인력 발생은 지역 내 고용 효과를 반감시킬 수밖에 없다. 또한 지방은행이 대부분 지역인재를 채용하는 반면, 시중은행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점으로도 고용효과에 대한 기대는 어렵다.

예규가 개선됐다고 한들, 지방은행의 앞에는 ‘NH농협’이라는 커다란 복병이 있다. NH농협의 경우 대형은행이라 대외지표에서 앞서 있을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 은행 차원이 아닌 단위농협 차원까지 포괄해 배점의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역민의 편의성 관점으로 바라봤을 때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NH농협이 가진 특성이 배점에 유리하게 작용해 공정한 경쟁이 되고 있지 않다”며 “경쟁 시 단위농협과 농협은행을 분리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전라북도로 봤을 때 전주·익산·군산의 지자체 15개 중 주금고에 지방은행이 지정된 건 전주시뿐이다.

금고지정 평가항목 및 배점기준 개선안 ⓒ행정안전부
금고지정 평가항목 및 배점기준 개선안. ⓒ행정안전부

지방은행의 역할, 지역 균형발전의 다층적 실효성을 보라

지방은행의 생존은 시 금고 지정뿐만 아니라 지역거점의 제조업 쇠퇴로 인한 지역경제 악화, 저금리 기조, AI·핀테크 등 금융기술 확산 등 금융환경의 변화, 현실과 맞지 않는 법·제도적 제약이 맞물려 있다.

조선업이 주력산업인 경상남도의 경우 중소조선소 매각으로 불황이 지속되고 있고, 자동차산업이 지역 내 제조업 비중의 40%를 차지하는 광주의 경우 완성차 생산 감소로 인한 작업 물량 감소와 수출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같이 지역거점의 주요 산업이 불황기를 맞이하면서 지방은행들의 영업 기반은 줄고 있지만, 과거 지역 활성화를 목적으로 갖는 법·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경영에 타격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지방은행의 입장이다.

한국은행 금융기관여신운용규정 제2조를 보면,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에 대해 시중은행은 45%, 외국은행은 25~35%, 지방은행은 60%로 규정하고 있다. 불황기에 높은 의무대출비율을 유지하는 것은 은행권 내에서도 작은 규모를 가진 지방은행이 자본확충을 하지 못해 건전성 측면에서 불리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권희원 부산은행지부 위원장은 “현재 시중은행은 우량한 대기업과 소매금융 위주로 영업하다보니 성과가 나아지는 반면, 지방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이 많으니 당연히 연체율도 상대적으로 높고 대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과거에는 중소기업대출비율의 논리가 맞았지만, 현재는 시장의 상황이 많이 변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지방은행이) 역차별을 받게 된다. 사업 평가 기준에서도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지역 금융기관 활성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하고 있을까. 미국의 경우 지역재투자법(CRA)을 도입해 지역 내 금융소외계층에 대한 자금중개 기능을 강화했고, 호주의 경우 대형 은행그룹의 지방은행 인수에 기인한 독과점 문제 해결을 위해 모든 주에 최소 1개 이상의 지방은행을 둬야한다는 ‘펠스 정책’을 도입했으며, 또한 독일은 지방정부가 은행의 주주로 참여하는 문화와 지역주의 원칙을 동력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권 위원장은 “미국과 호주 등에 도입된 제도가 한국에서는 공정경쟁 가치를 침해한다고 생각해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결국 생존 때문에 균형발전을 하자는 건데 공정경쟁을 보장해야 한다고 하면, 지역균형발전의 취지 자체가 본래 목적만큼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반쪽짜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국회에서는 균형발전을 위한 명목으로 국책은행 지방이전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문제를 근시안적으로 바라보는 탁상행정의 일례이기도 하다. 기업은행의 경우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의 역할을 모두 수행가능하다는 관점에서, 지방이전 시 지방은행의 영향력을 축소시킬 가능성이 높다. 과거 협력사업비 등을 통한 단순 세수 확대의 목적만으로 시 금고 지정의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도 지역에 대한 실효성이 빠진 행정을 증명하는 셈이다.

권 위원장은 “1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있었으나, 이전했다고 해도 회사의 CEO는 여전히 서울에 있기 때문에 그대로 시중은행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이전을 통해 실질적인 금융거래가 지방으로 오고 있는 건 아니”라며 “이번 4월 말 코로나 2차 금융지원을 위해 당시 전체 10조 원 규모로 소상공인 1명 당 1,000만 원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자금의 취급처가 지방은행이 빠진 시중은행 6곳에 한정됐다. 지방은행이 제외되면 지방의 소상공인들이 혜택을 위해 시중은행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지방은행 이탈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정부부처조차도 지방은행이 처한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지방은행의 생존을 위한 실질적인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강다연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연구를 통해 △디지털 금융 활용 △비이자수익 부문 등 업무영역 확장 △지원 대상을 확장시키는 등의 관계형 금융 개선 △지역 내 공공기관의 주거래은행 입찰 기회 제공 △중소기업대출비율 제도 완화 △지역재투자제도 시행 시 지방은행 배점 항목 확대 등을 해결방안으로 제시했다.

강 연구위원은 “경쟁 환경이 변화하면서 지방은행 자체의 설립 취지가 인지되지 않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대형은행과의 역차별, 지역경제 악화로 자금중개 기능이 약화돼 있다”며 “지방은행의 경우 무한경쟁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성장과 건전성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수익성, 지역 내 자금중개, 제도적 차원의 개선으로 지방은행의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19년 3월 27일, 지방은행 발전 TFT와 당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면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2019년 3월 27일, 지방은행 발전 TFT와 당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면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기의 다른 말은 ‘기회’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다가온 전 세계적 경제 위기는 무한 성장을 추구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한계를 보여줬다. 이와 같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 실물경제의 기반을 다져야하며, 이를 위해 지역금융이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한다. 그동안 지방은행은 지역의 혈맥으로서 ‘지역경제 균형 발전’이라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다. 그러나 대량 생산과 대규모 경영을 기반으로 점점 더 큰 이익을 추구하는 ‘규모의 경제’ 효과로 인해, 공공성을 위한 지방은행의 정체성은 약화되고 있다.

윤순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지역 균형발전 관점에서도 그렇고, 지방은행을 키웠을 때 소매금융을 더 잘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누군가 ‘위기를 곧 기회’라고 말하는 것처럼, 지역의 위기가 기회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과 이론의 괴리를 줄이고 문제의 연관성을 하나씩 짚어가며 다층적 대안을 마련해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