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이드라인 나온 지 3년 됐는데… 시대 역행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정부 가이드라인 나온 지 3년 됐는데… 시대 역행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09.03 20:00
  • 수정 2020.09.03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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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지속 업무에 기간제 노동자 채용, 공무직 등 근로자 인사관리규정 표준안에 배치
사진 및 출신학교·학과 기재는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가이드라인 위배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채용 공고 중 일부. 자료 = 인사혁신처 나라일터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채용 공고 중 일부. 자료 = 인사혁신처 나라일터

공공부문 채용에 대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나온 지 3년이 지났지만, 정부기관이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정책을 수행해야 하는 정부기관에서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반하는 채용절차를 밟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위원장 윤종인, 이하 개보위)의 비서 및 사무보조 업무를 담당하는 기간제 노동자 채용 공고를 확인한 취업준비생 A씨는 첨부파일을 확인하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뉴스에서 익히 들었던 정부의 채용기조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공고였기 때문이다.

개보위는 8월 20일, ‘기간제근로자(비서·사무보조) 채용 공고’를 올려 비서·사무보조 업무를 담당할 기간제 노동자 4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채용 공고에 따르면, 근무기간은 올해 9월부터 내년 9월까지로, 인사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무기계약직 노동자(공무직 노동자)로 전환이 가능하다. 채용 공고에 첨부된 응시원서는 사진과 함께 출신학교와 학과를 기재하도록 돼있다.

A씨는 “인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공무직으로 전환이 가능하다면 상시·지속 업무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며 “단기 프로젝트나 휴직자를 대체하기 위한 채용이라면 표기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1년 기간제로 채용 공고를 낸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정부가 2017년 7월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는 정규직 전환의 기본 원칙을 “상시·지속적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명시했다. 또 정책 추진 배경을 “상시‧지속적인 업무에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당연한 관행이 되어야 하고, ‘사람을 채용할 때는 제대로 대우하여야 한다’는 기본 당위에 입각하여 공공부문의 고용 및 인사관리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가 2017년 12월에 공개한 공무직 등 근로자 인사관리규정 표준안은 상시·지속 업무를 “연중 9개월 이상 계속되는 업무로서 향후 2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업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A씨는 “공공부문은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해 사진과 출신학교, 학과 기재는 불법 아니냐”며 “비서·사무보조 업무가 학력을 확인해야 하는 전문적인 업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2017년 7월,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가이드라인을 발표, 입사지원서에 인적사항 기재를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인적사항에는 출신지역, 가족관계, 신체적 조건, 학력 등이 포함되며 사진 부착 역시 신체적 조건 기재에 해당한다. 다만, 직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학력이나 신체적 조건을 기재할 수 있다. 학력이나 신체적 조건을 기재하는 공고는 대체로 연구직이나 특수경비직 등 특정 직군에 한정된다.

<참여와혁신>이 인사혁신처 나라일터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공기관 채용 공고를 다수 확인한 결과, 개보위와 같은 채용 공고를 올린 기관은 한 군데도 없었다. 응시원서에 사진 부착을 요구한 사례는 없었으며, 연구직에 한해 학력 기재를 요구했다. 또한, 계약 기간이 정해진 경우, 계약 종료 후 심의를 거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안내한 공고 역시 찾을 수 없었다.

개보위 관계자는 “예산 범위 내에서 채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이라며 “내년에는 관련 예산이 확보될 것으로 보이기에 이를 고려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가능하다고 기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블라인드 채용이 맞지만, 업무 내용에 행정업무가 포함됐기에 학력 기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채용권자의 재량에 속한다고 보고 또 채용 절차에서 불이익은 전혀 없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문성덕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변호사는 “해당 내용은 법률적으로 규정된 사안은 아니지만, 정부가 채용 원칙을 가이드라인으로 만든 상황에서 정부기관이 정부 가이드라인에 반하는 채용 공고를 올린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A씨는 “구직자 입장에서 구인공고를 낸 기관에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웠다”며 “이게 채용갑질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개보위는 8월 20일 해당 채용 공고를 게재했고 4일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