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국시 거부 대안이 ‘PA간호사’ 합법화?
의대생 국시 거부 대안이 ‘PA간호사’ 합법화?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9.11 10:30
  • 수정 2020.09.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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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간호사 업무 명확히 하고 보호할 방안 찾아야 하지만 합법화가 능사는 아냐
6월 15일 국회 앞에서 진행된 '의사인력 확대 요구 및 대한의사협회 규탄, 국립공공의료대학 조속한 입법추진 촉구'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PA간호사 합법화’가 의대생 국시거부로 인한 ‘인턴의사 대란’을 극복할 묘책이 될 수 있을까? 현장의 반응은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다. 의대정원 확대와 마찬가지로 PA간호사 합법화도 오랜 기간 논의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노동계는 의사의 일은 의사가 하고, 간호사의 일은 간호사가 하는 '기본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대생 국시거부로 ‘인턴의사 대란’ 우려
PA간호사 합법화가 대책?

의대정원과 공공의료 확충 정책을 둘러싼 의-정 간 갈등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보건복지부·더불어민주당은 9월 4일 합의에 다다랐으나 의사단체 내부의 견해차로 합의의 의미가 퇴색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는 4일 공개적으로 합의내용을 비판했고,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이하 의대협)는 6일 국가고시 거부운동을 계속한다고 밝혔다. 2020년 의사 국가고시의 응시 대상자 수는 총 3,172명으로 이 중 446명만 접수한 상태다.

의대생들은 의대 본과 4년 과정을 수료한 이후 국가고시에 응시해 의사자격을 취득한다. 이후 수련병원에 들어가 ‘인턴-레지던트(전공의)-펠로우(전임의)’의 수련과정을 거친다. 국시에 접수하지 않은 2,700여 명의 의대생들은 자동으로 유급 처리된다. 이들은 의대 4년 과정을 내년에 한 번 더 이수해야 한다.

의대협의 국시 거부로 병원에서는 당장 내년 인턴의사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병원 입장에서는 통상 연 3,000명씩 배출되던 인턴의사가 내년에는 400여 명으로 대폭 줄어든 것이다.

의협과 대전협은 응시를 거부한 2,700여 명의 의대생을 구제해달라고 보건복지부에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구제책은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내년도 인턴 의사 대란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정은 전공의에 의존하는 종합병원의 기형적인 인력구조 개편과 함께 ‘PA간호사 합법화’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PA간호사는 누구인가?

현행 의료법상 간호사가 의사의 감독과 지도없이 의료행위를 하면 ‘불법’으로 간주한다. 의료법 2조는 간호사의 업무와 의사의 업무는 명확히 분리한다. 의사는 ‘진료와 보건지도’, 간호사는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보조 업무’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의사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숙련된 간호사에게 일부 의사업무를 알음알음 넘기는 현상이 발생했다. 현장에서는 전문간호사, 전담간호사, PA(Physician Assistant)간호사 등이 의사 업무를 대신하는 직역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간호사는 대학원 석사과정 이상을 요하며, 전문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법적으로 업무 전문성을 인정받은 간호사를 말한다. 보건·마취·정신·응급 등 13개 분야에 전문간호사 자격을 인정하고 있다. 전담간호사는 ‘상처간호사’, ‘주사간호사’ 등 간호사나 의사의 특정 업무만을 전담하는 간호사를 말한다.

전문간호사, 전담간호사가 의사의 지도없이 특정 의사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간호사’이기 때문에 의사업무를 전담하게 되면 ‘불법의료행위’로 간주된다.

백소영 보건의료노조 경기지역본부 본부장은 “전문간호사는 간호사의 업무를 전문화해서 간호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의사업무가 아니라 간호업무만 수행한다”면서, “그런데 보통 의사들의 오더를 받아 의사 업무를 많이 보조한다. 의사업무와 간호업무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13일 오전 10시 서울시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진행된 ‘코로나19 위기극복 보건의료노조 전국 공동행동’ 기자회견 현장.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현직 PA간호사들이 가면을 쓰고 노동실태를 증언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그중에서도 PA간호사는 의사업무와 간호업무의 경계를 가장 많이 넘나든다. PA간호사는 주로 인턴의사, 전공의 1~2년차의 업무를 함께 한다. 병원에서 환자나 보호자가 겉보기로 PA간호사와 의사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의사와 마찬가지로 의사가운을 입고 근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PA간호사는 2017년 전공의 수련시간을 최대 주80시간으로 제한한 전공의법 시행 이후 더 확산했다. 수련시간 제한으로 전공의 인력난이 가중되자 병원에서는 PA간호사를 대거 채용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PA간호사는 약 1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백소영 본부장은 “PA간호사는 전공의법이 만들어진 이후에 더 활성화됐다. 전공의가 채워져야 할 자리에 PA간호사를 암암리에 대거 투입했다”고 지적했다.

전공의 떠난 자리, PA간호사 있었다

실제로 이번 의사단체의 집단휴진에 전공의들이 주축이 돼 참여하면서 PA간호사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났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 한국노총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의료노련),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등 3개 보건의료 노동조합은 각 산하 병원사업장을 대상으로 집단휴진 기간인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PA간호사의 불법의료행위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공통적으로 광범위하고 다양한 전공의의 업무를 PA간호사가 대체하고 있었다. 주로 외과, 내과, 비뇨의학과, 산부인과, 혈관조영실, 중환자실, 응급실 등에서 PA간호사 문제가 심각했다.

ⓒ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구체적인 업무형태로는 ▲각종 동의서 받기(수술/시술, CT/MRI 등) ▲전공의를 대신한 당직 근무 ▲대리처방 ▲창상 소독(드레싱) ▲수동식 인공호흡기 작동(ambu bagging) ▲채혈 업무 ▲수술 기록지 작성 ▲중심정맥압(CVP) 측정 ▲심폐소생술(CPR) ▲중심정맥 삽입관 제거(C-line remove) ▲남성환자 요도관 삽관 (foley insert) ▲식도 내 튜브 삽관(L-tube insert) ▲각종 검사(코로나 검사, 혈액 내 미생물 배양 –blood culture-, 심전도 검사, 동맥혈채취 –ABGA-) 등이었다. 모두 의사가 직접 수행해야 하는 업무들이다.

PA간호사들의 교육 또한 전공의와 함께 받는 실정이다. 백소영 본부장은 “PA간호사를 의사들이 교육시킨다. PA간호사의 업무 교육이 상당히 많고, 때로는 전공의처럼 당직을 서기도 한다”면서, “간호사 중 비교적 학력이 높은 사람이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사람, 임상 경험이 많은 사람이 PA간호사로 자원을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PA간호사 합법화, 현장의 목소리는?

현행법상 ‘불법의료행위’를 수행하고 있는 PA간호사를 합법화하자는 주장에 대한 현장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린다. 찬성하는 편에서는 ‘불법의료’에 대한 불안감을 없앨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백소영 본부장은 PA간호사 합법화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외국에는 전문 교육과정을 거친 레지던트(전공의) 1~2년 차가 할 수 있는 처방권을 줘요. 우리나라는 현장에는 전공의 부족을 간호사의 불법의료행위로 해결해요.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면 의사는 책임이 없고 PA간호사만 죽는 거예요. 그러니까 차라리 외국처럼 PA간호사를 합법화해서 의사업무의 어떤 부분을 PA간호사에게 넘길 지 명확히 하는 게 낫다고 봐요. 사회적 합의를 이뤄서 제도화하면 일하는 당사자에게 안전망이 생기죠. 늘 불안에 떠니까요.”

이민우 의료노련 정책전문위원도 “PA간호사가 없으면 병원자체가 돌아가지 않으니 간호사 입장에서 불법의료행위를 용인하지는 않지만, 이해는 한다”면서, “그런데 사고가 터지면 PA간호사에게 모든 책임을 씌운다. 하지만 이는 의사와 병원이 책임져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3일 오전 10시 서울시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진행된 ‘국민 참여 사회적 논의로 의사인력, 공공의료 확대해야 한다'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반대 의견으로는 간호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PA간호사 합법화를 하면, 간호인력이 더욱 부족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이민우 정책전문위원은 “간호업무가 엉망이 될 수 있다. 간호사는 경력 5년 미만까지 퇴직률이 높다. 1년 차 간호사가 20~30%, 3년 차는 50%에 육박한다”면서, “보통 한 간호사가 5년을 버티면 정년까지 일한다는 게 현장의 정석이다. 그런데 5년 이상, 능력 있고 경력 있는 간호사가 PA직역으로 나가면 간호현장의 인력부족은 악순환 된다”고 말했다.

이렇듯 PA간호사 합법화는 단기적으로 논할 수 있는 의제가 아니다. 오선영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PA간호사 합법화에 대해 양가감정이 있다. 노조에도 PA로 근무하는 조합원이 많다. 이분들은 법적으로 보호 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걸 원한다”면서 “하지만 이를 손쉽게만 볼 수 없다. 의료전달체계나 전체적인 의료체계에 PA 합법화가 도움 될지 아니면 부작용이 심해질지 봐야 한다. 현재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 여러 고민이 되는데 법제화가 답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PA간호사 합법화를 위해서는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분장 문제 ▲PA간호사 지도·수련체계 문제 ▲PA간호사가 담당하는 업무에 대한 수가 논의 등을 거쳐야 한다.

또한, PA간호사 문제를 사회적으로 충분히 논의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오선영 정책국장은 “현재 환자와 보호자들은 PA간호사를 모두 의사로 알고 있다. 환자의 입장에서 ‘의사가 아니더라도 이 정도는 PA간호사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겠다’는 사회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면서, “단순하게 내년에 인턴 의사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PA간호사를 합법화하자는 이야기는 어불성설이다. 쉽게 정리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의대증원-PA 둘 다 안 된다는 의협, 기득권 지키기?

그러나 현장의 갑론을박과는 별개로 PA간호사 합법화에 대한 의사단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의협과 대전협은 수년 전부터 PA간호사 합법화에 대해 반대 입장을 견지해왔다.

의협은 2020년 1월 12일 ‘PA에 관한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에서 “PA에 의한 진료는 불법이다. 그런데도 의료기관은 비용적인 측면만을 고려한 부도덕함과 전공의 수급의 어려움에 대한 잘못된 해결책으로 많은 수의 PA들을 고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는 ▲국민건강권(헌법 36조 3항) 및 최선의 의료서비스 제공 의무(의료법 4조) 위반 ▲국민의 알 권리와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 침해 ▲전공의 수급 불균형 현상 고착화 ▲전공의 수련환경 악화 등을 거론했다.

8월 7일 서울시 여의대로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주최한 '젊은의사 단체행동' 현장.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그러나 전공의 인력 부족과 과중한 노동강도를 인정하는 의협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의대정원 확대’와 ‘PA간호사 합법화’를 동시에 반대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백소영 본부장은 “답답하다. 의대정원 확대도 거부하는 의협을 보면서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의사들도 고령화돼 퇴직하고 있다. 의사인력에 대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반대하는 거로 보인다”고 토로했다.

오선영 정책국장은 “PA간호사 합법화 문제는 의사와의 업무분담과 관련된 문제다. 전공의의 수련환경이 하향될 것이라는 논거를 제시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밥그릇 싸움이라고 이야기한다”면서, “그런데 의사단체들은 그 파이를 나누고자 하는 생각은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간호사 업무는 간호사가
의사 업무는 의사가

다만, PA간호사 합법화는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것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병원현장에서 명확하게 의사의 일은 의사가, 간호사의 일은 간호사가 맡을 수 있게 하는 ‘정공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민우 정책전문위원은 “불법적 대리행위를 없애야 하는 게 맞다. 간호사에게 의사 일을 시키는 것은 원칙적으로 틀렸다”면서, “잘못된 현상을 어쩔 수 없으니까 합법화하자는 주장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선영 정책국장도 “첫째로 PA간호사 합법화가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에 맞는 방향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의사인력은 지금만 부족한 게 아니다. 이전에도 의사는 부족했다”면서, “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PA간호사라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그 부작용을 합법화하는 게 올바른 해결책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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