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맞선 공무원들] ⑩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24시간 돌아가는 이유
[코로나19에 맞선 공무원들] ⑩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24시간 돌아가는 이유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11.15 10:46
  • 수정 2020.11.15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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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혁신·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공동기획

코로나19가 2020년을 휩쓸었다. 이 ‘팬데믹’의 한가운데 보건의료 노동자와 공무원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지금도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묵묵히 견디고 있다. <참여와혁신>은 특히 최일선 의료진에 비해 한눈에 띄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해온 공무원 노동자를 주목했다. 방역 업무부터 시작해 자가격리자들을 지원하고, 확진자 동선을 파악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도 공무원 노동자들이었다. <참여와혁신>은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공무원 노동자들의 일터와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자 연재기사를 진행한다. 다양한 직무에 있는 공무원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는다. “코로나19가 일터를 어떻게 바꾸었나요?”

코로나19 검체 판정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누군가는 실험실을 지켜야 한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질병연구부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한다고 가정하자. 검사를 받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 대기한다. 결과는 하루 정도 기다리면 문자로 받을 수 있다. 선별진료소는 채취한 검체를 수송용기에 담아 검사기관까지 이송한다. 그동안 검체는 어디에 있었을까?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질병연구부 직원들은 코로나19 양성·음성 검사를 매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많게는 하루에 800건까지 검체를 다룬다. 서울시의 두 번째 코로나19 확진자도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판정했다. 11월 3일,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질병연구부 직원들을 만났다.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마치면, 수송용기에 담겨 연구원에 옵니다. 보통 저녁 6시에 코로나19 검체가 들어옵니다. 우리 연구원은 한 시간이라도 빨리 결과를 알아내야 하는 응급검체들을 주로 받습니다. 의뢰서와 검체가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검사를 진행합니다. 결과는 실시간으로 음성인지 양성인지 판정해 서울시에 보고합니다. 그럼 서울시에서 해당 보건소에 문자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보통 결과 판독까지 4시간정도 걸립니다. 조금 빠르면 자정 전에 끝나고, 8시 넘어서 들어오는 검체들은 더 걸립니다. 하루 800건이라고 하면 감이 안 오실 것 같은데, 튜브가 그만큼 있다는 겁니다. 코로나19 감염에 조심하면서 똑같은 작업을 계속 반복합니다.”

코로나19 검체 판정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질병연구부는 바이러스검사팀 실험실에서 조를 짜서 교대근무 중이다. 이재인 질병연구부 바이러스 분석전문관은 “24시간 신속진단체계를 운영한다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코로나19 검사를 6시간 이내에 완료해야 한다는 의미다. 누군가는 계속 실험실을 지켜야 한다”며 “초반에는 12명이 투입됐는데 직원들이 버티지를 못했다. 상반기 끝날 무렵부터 질병연구부 전원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밤까지 수많은 코로나19 검체를 진단하는 건 육체적으로도 힘든 과정이었다. 보건환경연구원 질병연구부 직원들은 지금까지 3만 800건 정도의 검체를 분석했다(11월 3일 기준). 코로나19 초기에는 12명의 인원으로 검사 업무를 진행했지만, 이제 질병연구부 전체가 동원된다. 이들은 2인 1조로 야근·주말근무를 하고 있다.

가정을 돌봐야 하는 직원들이 특히 어려움을 겪었다. 박정은 질병연구부 바이러스검사팀 연구사는 “3살, 6살짜리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많은데 회사에만 묶여 있어서 부모님 도움을 받는다. 이런 날들이 길어지고 있는 게 문제”라며 “야간근무도 불규칙적으로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어떤 날은 ‘엄마가 회사에서 자고 올게’, 어떤 날은 ‘주말에 가야 해’ 이런 말들을 이해시키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박소현 질병연구부 세균검사팀 연구사도 “처음에는 인원이 많이 투입되지 못해서 12명이 4일에 한번 야간근무를 했다. 하루에 800건, 900건 씩 검체를 처리하고 집에 들어오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며 “가정이 있는데, 아이들이 코로나19로 학교를 안 갔다. 지금은 인력이 좀 늘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검체 판정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그래도 저희가 하는 일이 공적 영역이잖아요. 감염병은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게 막지 못하면 일파만파 전파돼요.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에서 자부심이 있어요. 많은 양을 집중해서 하면 힘들지만 저희 가족들한테도, 아이들한테도 ‘엄마가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야, 엄마가 이거 안 하면 어떻게 되겠냐’ 이렇게요(웃음). 저는 감염병이 터졌을 때만 모여서 하는 게 아니라 그 전에도 충분한 인력을 가지고 교육을 해서 전문성을 기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루에 들어오는 코로나19 검사를 모두 끝내야 한다’는 압박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아는 건 같은 연구원 사람들이다. 정효원 질병연구부 바이러스검사팀 직원들은 “초반에는 기계 같은 것도 많이 안 들어와서 손으로 다 했다. 그럴 때 한 명이라도 자원해서 들어와 주면 그게 너무 고맙더라. 그렇게 서로 도와주고 했던 게 기억난다. 자기 당번이 아니었는데도 같이 밤을 샜다”고 회상했다.

 

단순 진단기관에만 머물지 않도록
새로운 감염병 대응할 수 있는 공적 여건 갖춰야

보건환경연구원은 감염병에 대한 연구·실험 전문기관이다. 그 중 질병연구부는 감염병에 대한 연구·실험을 담당한다. 바이러스검사팀·세균검사팀은 서울에서 발생하는 주요 감염병의 원인을 확인·감시하는 사업을 주로 진행하고, 면역진단팀·미생물관리팀은 곤충에서 감염될 수 있는 질병들에 대한 감시와 더불어 유통식품의 식중독균을 검사한다.

올해 보건환경연구원은 코로나19 검사 외에도 서울시의 ‘클린존(Clean Zone)’ 인증을 위한 환경검사를 진행했다. 확진자 동선에 포함됐지만, 방역작업이 완료된 시설이라는 의미의 클린존은 보건환경연구원의 손을 거친 공간이다. ‘클린’ 하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작업을 한 셈이다.

코로나19 검체 판정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멀지 않은 시기에 또 다른 감염병, 혹은 기존에 알고 있었던 감염병이 재창궐할 수 있습니다. 감염병 관리는 공적인 영역에 있어야 합니다. 감염병의 지속적인 감시와 관리·평가는 우리 연구원의 존재 이유입니다. 감염병 관리를 할 수 있는 국가 조직이 정체가 돼 버리면 빠르게 대처할 수가 없습니다.”

이재인 질병연구부 바이러스 분석전문관은 “연구원은 코로나19 검사를 공무원의 임무이자 사명감이라고 생각하지만, 향후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연구소의 인력과 조직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감염병의 국가적 대응을 위해 공적 조직이 발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홍인석 서울특별시노동조합 보건환경연구원지부장도 ‘응급’조치를 넘어 선제적 대응을 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은 본연의 업무와 병행해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업무들이 장기화되면서 생활 리듬은 깨지고, 계속 반복되는 실험에서 통증을 호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메르스 때도 그랬습니다. 갑작스럽게 터지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공무원으로서의 책임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으로만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국내외 감염병 발생 동향파악, 빅데이터를 활용한 관리를 통해 감염병을 선제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도 연구원에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지역의 방역파수꾼인 전국 16개 보건환경연구원 간의 협의기구를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교류하는 방안도 필요합니다. 보건환경연구원이 단순 진단기관의 한계에서 머물지 않게끔 해야 합니다. 국내 보건환경 전문 기관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비상대응조치는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 언제까지나 공무원들의 초과근무로 감염병 대응을 메울 수 없는 노릇이다. 보건환경연구원은 메르스를 이미 경험했고, 코로나19를 겪는 중이다. 다음 감염병을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다. 박소현 질병연구부 세균검사팀 직원의 말처럼, “감염병은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게 막지 못하면 일파만파 전파”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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