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게’ 만나는 다른 삶
‘진하게’ 만나는 다른 삶
  •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 승인 2008.11.0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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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과 ‘구걸’이 주는 특별한 경험
실패와 좌절, 인생을 배운 아이들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청소년들의 촛불집회를 통해 그들의 자발적 생각과 행동이 살아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었지요. 하여 어른들이 청소년들의 자발적 성장을 도와준다고 할 때, 좋은 조건을 다 갖춰주고 “자, 마음대로 해봐!”라고 한다고 해서 자발성이 발현되는 게 아니라고도 했고요.

지난 번 글에서는 청소년의 자발적 성장이란 이 세상의 여러 제약과 한계를 적절하게 경험하는 환경에서 잘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잘 기획하고 준비하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고, 교육의 사명이라고요.

그리고는 그 사례의 하나로 <나는 걷는다>(2003, 효형, 총 3권)라는 책을 낸 프랑스인 베르나르 올리비에 씨가 그의 나이 62세이던 2000년에 설립한 프랑스의 쇠이유 협회(Seuil, 문턱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를 소개했어요.

이 협회(www.assoseuil.org)는 프랑스 법원과 협력해서 소년원이나 감옥에 간 청소년을 어른 한 명과 2인1조로 짝 지어서 말이 안 통하는 인접 국가를 4개월 동안 도보여행을 하도록 만드는 게 일이라고 알려드렸습니다.

‘젊은 것들’과 ‘어린 것들’을 위한 마을

이번에는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2000, 보리)의 사례를 소개할게요. 독일의 배우이자 연출가인 에버하르트 뫼비우스 씨가 한 달 동안 벤포스타(위치가 좋다는 뜻의 에스파냐어)를 여행하고 쓴 책이에요. 윤구병 선생이 서문에 쓰기를 “참 놀라운 기록”이라고 한 벤 포스타는 1956년 예술가이자 사제인 실바 신부가 열다섯 명의 소년들과 처음 시작했고 2005년에 문을 닫았다고 해요.

벤포스타는 한 마디로 어린 것들과 젊은 것들을 위한 자율적인 공동체 마을이에요. 여기엔 학교도 병원도 공장도 출판사도 호텔도 그리고 벤포스타를 대표해 세계 곳곳을 누비는 서커스단도 있어요. 저자는 벤 포스터의 인구가 2000명이라고 했는데 한국 출판사에서 묶은 후기를 보니 2000년 당시에는 평균 150명 정도의 주민이 살았다고 하네요.

벤포스타의 주민은 나이든 어른들 일부를 빼면 대부분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이라 하는데, 하여튼 이 마을 학교의 학습 과정이 참 놀랍습니다. 그중 15세 이상이 된 십대들 중에서 “자기 뜻에 따라 신청한 아이들만 참가하는 특별한 교육”이라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이 “특별한 교육”은 1년 동안 진행되는데요, 저자가 1972년에 벤포스타에 갔을 당시에 일곱 차례까지 이루어졌다고 해요. 그러니까 최소한 7년간 진행된 학습 과정이고, 그 뒤로 벤포스타가 문을 닫을 때까지 유지되었다면 훨씬 더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겠네요.

‘큰 모험’을 통해 만나는 ‘진짜’ 경험

이 “특별한 교육”을 실바 신부와 아이들은 “큰 모험”이라고 부른대요. 벤포스타 마을과 떨어진 산속의 오래 된 수도원을 숙소 삼아 1년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래요. 먼저 첫 3개월 동안 십대들은 “딱딱한 나무 침대에서 싸구려 담요 한 장을 덮고, 끼니는 스스로 지어 먹어야 하고, 하루에 30분씩 두 차례를 빼고는 종일 침묵을 지켜야” 하는 생활을 해요.

그 다음 한 달은 병원으로 가서 봉사 활동을 한대요. 그 뒤 한 달은 철따라 다르긴 하나 어부들과 대서양에 나가 고기를 잡거나 사람 발길 닿기 힘든 산골 마을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고 해요.

그 다음에는, 여기부터 깜짝 놀라게 됩니다. 한 달 동안 “소년 교도소에서 죄수의 몸으로 고통스러운 4주를 보내게” 된다는 거예요. 그 뒤 한 달은 스페인의 대도시에 있는 빈민가로 가서 또래 십대들을 돌보고 바른 길로 안내하는 활동을 한대요. 여기까지 셈했더니 7개월이더군요.

그럼 나머지 5개월은 무슨 프로그램이 있을까요? 놀라지 마세요. 한 달 동안 3인 1조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구걸”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기다려요. “실제로 가진 것이 하나도 없을 때 심정이 어떠한지,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얼마나 멸시하는지 체험하기 위해서” 이 프로그램을 한 달 동안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남은 4개월은 부두에서 배 청소부로 일하고 건설 현장에서 잡역부로 일하며 보낸다는 거예요. 벤포스타의 십대들이 “큰 모험”이라고 부르는 그 “특별한 교육”을 1년간 경험하면, 그 뒤 사람이 어떻게 달라질지 느낌이 오지 않으세요?

그렇게 확실하게 진짜 경험을 하고 나면, 자신의 몸으로 다른 몸들을 진하게 만나고 나면, 겉으로든 속으로든 울었겠지요. 하여 자신이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고,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좋은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며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갈지를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게 되겠지요.

그 과정에서 실패하고 좌절해도 그들 십대들은 웃으며 다시 일어나 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