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노사관계 곳곳이‘지뢰밭’
공공부문 노사관계 곳곳이‘지뢰밭’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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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교섭 구조 정착·행정부처 연계 및 전문성 강화


올 하반기에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줄줄이 투쟁일정을 선포해 놓고 있다. 하반기에 휘몰아칠 공공부문 노사관계의 향방이 향후 노사정 관계 및 노동운동의 방향을 결정짓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공무원노조의 행보다. 정부 여당은 지난 8월 23일 당정협의회를 갖고 6급 이하 공무원에 대해 단체행동권(파업권)을 제외한,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공무원노조법안’을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노동부는 ‘공무원노조법안’의 입법에 대해 “공무원 노사관계의 안정을 도모하고 공무원노조의 활동이 행정의 투명화, 민주화 등 긍정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필요성 때문”이라고 천명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단체행동권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공무원노조 김영길 위원장은 “공무원노조가 노동3권을 요구하는 것은 공직사회의 부패를 뿌리뽑고 개혁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제, “오는 11월 법안의 상임위 상정이 유력시될 경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 관계자는 “단체행동권은 직무의 공공성을 감안할 때 국민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우려가 크다”며 법안과 관련해 “노조에 비공식적으로 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니 조만간 논의 자리가 마련되지 않겠느냐”며 자신만만한 입장이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 소속 공공연맹, 공무원노조, 전교조, 보건의료노조, 대학노조 등 5개 산별 연맹 및 산별노조가 참여하는 공공연대는 사회공공성 강화와 노동3권 보장, 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요구하며 10월말 경 5만여명이 참가하는 총력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의 일방적인 예산편성과 경영평가 등에 반발,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조들의 연대활동도 활발히 전개되는가 하면, 한국노총 공공부문 3개 연맹조직이 대정부 교섭력을 높이기 위해 조직통합에 나서는 등 하반기 노정관계를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조직 규모나 파괴력이 큰 것과 비교해 공공부문 분쟁해결 방식 시스템화가 미흡한 데다 노사관계와 관련해 행정기관 간의 연계체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노정 간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일상적으로 정부가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개입하고 있지만 사용자단체가 아직 없고, 사용주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어 하반기에 이 문제가 또 다른 불씨가 될 조짐이다.  

 

임금가이드라인이 편법 부추겨
정부는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법제도 혹은 관례상의 예산, 인력, 인사 등을 통해 일상적으로 개입을 하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결정 과정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예산편성공통지침(이하 지침)이다. 각 기관들은 이 지침을 기반으로 자사의 예산을 편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임금가이드라인이 제시된다.
공공부문 노조들은 이 같은 임금가이드라인이 노사 교섭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급여성, 비급여성 복리비를 통한 직-간접급여 인상이라는 형태로 임금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공건설연맹의 한 임원은 “한 사업장에서 편법이 나오면 다른 사업장들이 따라하고 서로 베끼는 현실”이라며 “결국 임금체계를 왜곡시키고, 지침을 따르는 사업장만 손해본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예산편성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정부 출자금을 조정하는 등 제재를 가한다”며 “정부 지원을 받는 이상 당연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경영평가도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공서비스노련 최동민 정책기획실장은 “선택적 보상휴가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마이너스 2점을 주겠다는 등 경영 평가 내용과 기준이 노사 자율 협상을 침해하고 정부산하기관의 존립목적인 공공성을 훼손하는 내용이 많다”고 주장했다.


각 기관들이 내년에 있을 경영평가에 맞춰 교섭에 임하면서 자율교섭 자체에 회의가 든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미 합의한 사항마저도 재협상을 요구하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 개입이 노사자율 침해
이러한 예산, 인력, 경영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외환위기 이후 인력감원식 구조조정에서도 나타났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의 핵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도 대규모 고용규모 축소와 이에 따른 장기근속자들의 조기퇴직, 명예퇴직을 겪으면서다.


외환위기 이후 업무 외부 위탁, 민영화, 통폐합으로 공무원 8만명, 공기업 15만명, 정부출연 및 위탁기관에서 2만명 등이 줄어들었다. 각 기관은 교섭을 둘러싸고 담합과 편법 등을 동원해 표면상으로 인력을 줄이는 대신 비정규직을 대거 채용해 업무에 투입했다. 지난해 노동부가 추산한 공공부문 노동자는 124만여 명, 이중 23만여 명이 비정규직이다.


공공연맹의 한 간부는 “공공부문의 노조활동이나 교섭이 주로 정규직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비정규직의 이해를 반영하지 못했다”며 “비정규직이 급속히 증가한 상황 속에서 노노 갈등이 증가될 것이고 이 문제가 공공부문 노사관계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킬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이처럼 정부의 상시적인 개입은 공공부문 사용자의 노사분쟁에 대한 전문성과 자율성을 크게 약화시키는 한편, 사용자단체의 필요성과 존재를 계속 부정케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공기업 S 공사의 한 노무담당 임원은 “공공부문 사용자들은 기관의 예산과 인력규모 운영의 제한이라는 한계 속에서 단기적 성과에 급급해, 장기적 관점에서 노사관계 정상화를 바라볼 수 없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협상파트너조차 불명확
하반기 ‘공공대란’을 최소화하고 공공부문 노사관계 안정화를 위해서는 정부와 공공단체의 역할 변화와 전문성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강하게 일고 있다.
공공부문 사업장의 경우 법령 등에 의거해 개별 사업장의 예산과 인원은 기획예산처와 행정자치부가, 사업장의 구체적인 사업이나 조직구조 개편 등은 관련 정부기관의 지도하에 관리되고 있어 노사관계 당사자로 최소 3개 이상의 정부기관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부처 간 협의 구조가 부족해 공공부문 노사관계를 파편화 시키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공공부문 노사문제는 관련 부처가 관리하고 있어 상설적인 논의 공간이 없다”며 “분쟁이 생기면 사안에 따라 관련부처가 논의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교섭의 직접 당사자로 나서거나 개별 공공기관 사용자에게 예산과 인력에 관한 권한을 넘겨줘 자율교섭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은 ‘공공부문 노사관계 안정화 연구보고서’에서 “공공부문 사용자의 낮은 자율성은 개별사업장 사용자의 책임회피를 더욱 부채질할 뿐만 아니라 노사의 대표성을 상실케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밝혔다.

정투노련 장대익 위원장은 “정부가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대화와 교섭에 나서야 하며 산하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대한 행정부처의 연계강화와 노사문제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로 꼽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임상훈 연구위원은 “정부도 노사관계 당사자로 자체 노사관계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며 “정부 각 부처에 노사관계 전문부서를 신설하고 부서원과 공무원 전체의 노사관계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 향상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 시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