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살리기 정책, “오히려 질려요”
자영업 살리기 정책, “오히려 질려요”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02.10 00:30
  • 수정 2021.02.10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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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에 등 돌린 자영업자
​​​​​​​‘우는 아이 달래기’식 지원 벗어나야

커버스토리 : 자영업, 어찌할꼬?

‘자영업 살려야 한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언론은 자영업을 살려야 한다고 말해왔다. 임대 현수막을 붙인 텅 빈 상가를 비추며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 가야 하는 지점이 있다. 자영업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자영업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그들을 ‘시혜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살릴 수 있다. 현장의 자영업자들을 찾아가 ‘자영업을 살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커버스토리⑥ 자영업은 ‘어렵고’ 정책은 무용지물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자영업자에게 정부 정책은 그야말로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은’ 수준이다. 감당해야 할 비용을 부담하고 나면 수입은 통장을 스쳐지나갈 뿐이다. 하루 벌어 하루 쓰기도 만만치 않다. 생계를 유지하려고 자영업에 뛰어든 상황에 교육은 당연히 받아본 적이 없고, 자금지원은 턱없이 적다. 이 와중에 버스 곳곳엔 폐업예정자를 위한 지원 광고가 붙어있다. 폐업을 선택한 뒤 불어날 빚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자영업 정책은 IMF 외환위기 이후 차츰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금지원을 시작으로 현재는 교육·컨설팅, 상권정보 지원 등으로 확장된 상태다. 지금과 같은 산발적인 정책으로는 튼튼한 자영업을 육성할 수 없다. 자영업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K-스타트업이라고?
성공 사례‘만’ 들여다보면 자영업 천국

“선배들이 말합니다. 내가 했으니, 너도 할 수 있어! 선배들은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자신들의 실패담도 아낌없이 창업 씨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창업 씨와 함께 이번에 걸어갈 길은 도전의 길입니다.”

중소기업청과 창업진흥원에서 발간한 소책자 첫머리에 나오는 멘트다. 여기 등장하는 ‘김창업’이라는 캐릭터는 창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선배들에게 조언을 받는다. 정부가 말하고자 하는 자영업은 언급됐듯 도전의 길이다. 김창업 씨가 성공한 선배 자영업자를 보며 희망을 얻을 수 있을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실패담은 정부의 사례집에 없다.

김호연 씨(29·가명)는 서울시 연희동에서 열 평 남짓한 카페를 운영 중이다. 카페 문을 연 지도 세 달이 넘었다. 호연 씨는 특이하게도 코로나19 시국에 가게를 개업했다. 자영업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평소 좋아하던 커피를 업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그 전까지는 커피와 관련 없는 곳에서 일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음알음 커피를 배웠다. 업종을 변경하는 상황에도 당연히 정부로부터의 교육이나 상담은 받지 않았다.

호연 씨는 3개월 정도 창업 준비기간을 가졌다. 당시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은 서울시의 지역사랑 상품권이었다. 지역사랑상품권과 온누리상품권은 문재인정부가 2018년부터 핵심적으로 가져왔던 자영업 살리기 정책 중 하나다. 2022년까지 이 상품권을 18조 원가량 추가 발행해 자영업 활성화를 돕겠다는 것이다. 자영업자에게 직접 지원되기도 하는 이 상품권으로 호연 씨는 우유 같은 재료를 구매한다. 하지만 현금 지원이 아니라 제약이 많다. 원두나 커피머신처럼 카페에 필요한 물건은 재래시장이나 편의점에 팔지 않는다. 결국 생활비를 줄이는 방법 외에는 수가 없다.

호연 씨처럼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자영업자들은 새로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먼저 변경된 업종에 대한 이해와 기술이 필요하다. 세무나 회계같이 창업에 뒤따르는 교육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정부의 교육은 “있으나 마나”한 정도다. “아예 몰랐고, 들어본 적 없기” 때문이다. 호연 씨에게 주변 자영업자들도 “그런 정책은 의미가 없다. 크게 힘이 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가게들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정부가 자영업 통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이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결국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자영업이 난립하는 상황이 됐다.

“회사 때려치고 치킨집 차리지 말아요
그냥 참고 다니는 게 더 나아요”

구조조정·희망퇴직에 놓인 직장인이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례는 흔하다. 자영업이 불안정한 임금노동시장의 마지막 선택지가 되는 경우다. 대기업처럼 소득을 안정적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회사는 한정돼 있고, 퇴직은 다가오는데 생활을 유지할 자금은 부족하다. 이 때 자영업은 생계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 된다. 퇴직 이후 ‘장사라도 해서’ 돈을 벌겠다는 것이다.

자영업에 내몰린 ‘사장님’들은 보호받지 못한다. 가게를 접고 싶어도 빚이 늘어날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장사를 이어가는 자영업자들이 많다.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오희진 씨(52·가명)는 “보호를 받지 못하는 최하급계층이 바로 자영업자”라고 말했다.

“문제점은 기술이 없다는 거죠. 제가 프랜차이즈를 선택하게 된 것도 기술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결국 프랜차이즈 자영업이죠. 음식을 만들 줄 아는 것도 아니고 빵을 만들 줄 아는 것도 아니니까. 여기는 자기 몸하고 운영할 수 있는 자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기업이 중요하고 근로자도 중요하고. 그 중간에 있는 너네들? 모르겠다는 거죠. 머리 아프니까 모르겠다. (우리나라 자영업자가) 선진국에 비해서 비율이 너무 높다고 해요. 비율 높게 내보낸 사람이 누구냐고. 자영업자 왜 해요. 갈 데가 없으니까 자영업을 하는 거 아닙니까.”

궁중족발을 운영하는 윤경자 씨(53)도 IMF 외환 위기로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자영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원래 회사를 다녔지만, 결혼 이후 남편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그는 “사업이 거의 망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큰돈을 가지고 투자하는 게 아니라 작게 시작해서 크게 키울 수 있는 게 자영업이었다. 가진 돈으로 쉽고 빨리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자영업자는 망했을 때 소생할 수가 없다. 폐업은 자영업자에게 빚더미를 안겨준다. 남은 임대료 계약기간과 원상복구비용 등 자영업자에게 폐업은 노동자의 실직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수입이 끊김과 동시에 갚아야 할 빚이 떠넘겨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희망리턴패키지’를 통해 전직장려수당을 지급하거나 점포철거비를 지원하기도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나마 노란우산공제에 가입해 어느 정도 지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임의 가입이고, 실익도 크지 않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도 까다롭다.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고용보험이나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필요하지만 논의는 더디다. 실질적인 출구전략은 없고,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지원정책은 미비하다.

한 자영업자가 정부에게 받은 버팀목자금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한 자영업자가 정부에게 받은 버팀목자금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자영업 육성·보호하려면
‘지원하기 편한 방식’ 탈피해야

코로나19로 폐업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에게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이전 자영업 지원정책의 문제점을 극단적으로 보여줬다. 영세업소에게 먼저 지원하겠다는 정책 기조에는 까다로운 기준이 숨어 있었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됐거나 규모가 큰 가게는 지원에서 쉽게 배제됐다.

지원 기준은 대부분 매출이었다. 하지만 이 기준도 현실과 괴리가 있다. 매출이 영업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기 때문이다. 매출이 높은 가게는 높은 임대료와 인건비 등을 부담하고 있다. 실제 수익은 보통 많이 잡아 매출의 10% 내외다. 영업이익은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 고정비는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마노비어를 운영하는 한문태 씨(64)는 2019년 기준 연매출 4억원이 넘어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는 전세를 월세로 줄이고, 보험을 해약해 부족한 매출을 채우고 있었다.

“정부 지침에서 영세업소 기준으로 사업을 하는 거는 사실은 현실하고 엄청 동떨어진 거예요. 고정지출 많은 업소가 무조건 가장 타격이 큰데 해당이 안 되는 거예요. 언뜻 듣기엔 영세업소, 소규모 이런 게 객관적으로는 그럴듯하잖아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피해가 큰 업종은 임대료가 비싼 업종이에요. 리스크가 크니까 더 버티기 힘들고 고통스러워요.”

“정부에서도 지원금 기준을 정할 때 꼼꼼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무조건적인 매출 기준은 모순점이 많아요. 형평성에 안 맞아요. 또 왜 (코로나19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2019년 매출을 연관시켜서 기준을 두냐는 거죠.”

코로나19 이전 마노비어에는 다섯 명의 직원이 고용돼 있었다. 지금은 한 명의 직원만이 남아있다. 고정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인건비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이 어려우면 구조조정을 하듯, 자영업도 마찬가지다. 알바노동자들도 자영업이 어려워지면서 덩달아 일자리를 잃었다.

지원 금액도 자영업이 입은 피해에 비하면 ‘장난치는 수준’이었다. 성미산알루를 운영하는 명진 씨도 “지원금 200만 원 주는 거 사실 별로 의미 없다.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것 같고, 표면적으로 봤을 때 관리하기 편한 대상한테 그냥 일방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라며 “그냥 가게를 열어놓으면 장사를 하든 안 하든 한 달에 들어가야 하는 유지비가 있다. 코로나19가 거의 1년 가까이 다 돼 가는데 150만 원, 200만 원 준다고 해서 그게 너무 고맙지 않다. 구체적으로 와 닿는 건 한 번도 제시된 적이 없다. 감정적으로 처리할 부분이 아니라 자영업자에게 현실적인 대안을 줘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다”고 토로했다.

자영업자들이 원하는 지원정책을 만들려면 누군가는 흩어져 있는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풀뿌리 소상공인 단체를 만들기 위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영업자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듣고 대변할 자영업자 집단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소상공인 커뮤니티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해요. 소상공인의 목소리를 듣고 어려운 부분을 해결해주는 풀뿌리 단체가 필요하거든요. 그러려면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해요. 풀뿌리 단체의 의견을 모아서 정책으로 묶을 필요가 있는 거죠.”

“또 자영업자나 중소상인과 관련된 정책을 연구하는 부처 자체가 많지 않아요. 중소벤처기업부가 있긴 하지만 기업중심이죠. 그래도 문재인 정부 이후로 소상공인 영역이 좀 들어와 있는데 그동안은 큰 유통점들을 중심으로 정책을 시행해서 소상공인이 배제돼 있었어요. 저는 지자체도 목적의식적으로 자영업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센터 설립이나 연구자 육성이 필요하다고 봐요.”

자영업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이 기준을 세우려면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들이 모이고,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주호 팀장은 “아직 자영업 정책은 수요자 입장보다는 정부가 ‘주기 편한 방식’이다. 공급자 중심의 마인드로 정책을 짜는 것”이라며 “자영업 생애주기·업종별 상황을 고려한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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