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차 돕던 화물노동자, 적재물에 깔려 숨져
하차 돕던 화물노동자, 적재물에 깔려 숨져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3.23 16:12
  • 수정 2021.03.23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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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본부, “화물 안전하게 결박 안 한 원청도 중대재해 주범으로 조사해야”
ⓒ 화물연대본부
19일 오전 석고보드 하차를 돕다 적재물에 깔려 숨진 화물노동자 A씨의 빈소가 울산 국화원에 마련됐다. ⓒ 화물연대본부

경남 진주에서 화물차에 싣고 온 석고보드 하차를 돕던 화물노동자 A씨가 쏟아진 적재물에 깔려 지난 19일 오전 숨졌다. 화물노동자들은 원청 화주인 한국보랄석고보드가 적재물을 파레트(팰릿Pallet·화물운반대) 위에 결박해서 포장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23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위원장 이봉주)의 설명과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종합하면 19일 오전 7시 50분경, A씨가 이동식 농막 제작업체에 석고보드를 싣고 도착했다.

업체 사장은 지게차를 이용해 석고보드를 하차하려던 중 A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팰릿 없이 적재된 석고보드와 화물차 바닥 사이에 충분한 공간이 없어 지게차 포크를 잘 삽입할 수 있도록 나무를 더 끼워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어 지게차가 석고보드 네 다발을 한 번에 싣고 후진하자, 적재물이 위에서부터 쏟아지며 근처에 서 있던 A씨를 덮쳤다. 앞타이어 공기압이 부족했던 지게차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린 탓이다.

ⓒ 화물연대본부
19일 사고 이후 현장 모습. (붉은상자 왼쪽부터) 결박이 안 된 채 쓰러진 석고보드, 팰릿 없이 목재 위에 적재된 석고보드 ⓒ 화물연대본부

화물연대본부는 지게차 정비에 앞서 적재물이 안전하게 포장됐다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석고보드가 팰릿 위에 적재됐다면 A씨가 애초에 하차를 도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적재물이 제대로 묶였다면 석고보드의 추락속도를 늦춰 A씨가 피할 시간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화물연대본부는 A씨가 노조 지회장으로 활동하며 한국보랄석고보드에 화물 밴딩(결속)처리를 지속적으로 요청했으나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거부돼 왔다고 주장했다. A씨는 화주(한국보랄석고보드)와 운송사(한진), 화물노동자로 연결되는 다단계 구조 아래 일해 왔다. 

화물연대본부는 “밴딩처리가 안 돼도 한국보랄이 상차할 땐 괜찮지만, 하차 장소에선 다양한 지게차를 사용해서 위험하다”며 “화물 적재 후 하차는 하차업체의 책임이 되기에 (원청이) 위험을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173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화물의 붕괴 또는 낙하에 의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화물에 로프를 거는 등의 조처를 해야 한다. 

화물연대본부는 “고용노동부는 지게차 정비에 책임이 있는 가해자 회사뿐만 아니라 화물을 안전하게 결박하지 않은 원청 화주 한국보랄석고보드도 중대재해 주범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지난해 태안·영흥화력발전소 사망 사건처럼 화물노동자가 고유 업무가 아닌 상·하차 작업에 관여하다 발생한 사고”라며 정부에 상·하차 전담 인력 배치와 사업장 전수조사를 요구했다. 

현재 고인의 빈소는 울산 국화원에 마련됐으나 화물연대본부와 유족은 사고 관련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을 예정이다. 사고 현장엔 고인의 차량도 그대로 멈춰있다. 

정종배 화물연대본부 교선국장은 “사고가 난 업체에 피해보상과 안전조치를, 사고의 근본적 책임이 있는 원청 보랄석고엔 화물 밴딩처리, 화물노동자 상·하차 업무 금지 등의 재발방지 대책 관련 합의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