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노동자 아님’으로 바뀌는 시간, 5초!
노동자가 ‘노동자 아님’으로 바뀌는 시간, 5초!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05.04 00:00
  • 수정 2021.05.04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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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제11조 리포트①] 기업에 준 자유이용권
근로기준법 적용제외가 만들어낸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제11조 리포트①

딸깍. 사장님이 급여 관리 프로그램에 접속한다. 고용한 노동자 5명이 정렬돼 있다. 그중 한 명을 골라 사업소득자로 바꾸는 데 필요한 노력은 클릭 한 번. 노동자를 사업소득자로 바꾸면 상시근로자 수가 줄어든다. 사업장 규모를 위장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사장님이 노동자를 ‘노동자 아닌’ 사업소득자로 바꾸는 이유는 근로기준법에 있다. 우리나라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근로기준법을 다르게 적용한다. 특히 제11조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과 가사노동자 등에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이 되면 노동자에게 들어가는 돈은 확연히 줄어든다. 마음대로 해고하고 연차를 안 줘도 상관없다. 근로기준법 제11조라는 유혹은 수많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양산했다.

김은수(가명·46)·조민희(가명) 모녀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위장법도 각양각색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파헤치기

① 근로계약서 용역으로 쓰기

김은수(가명·46)·조민희(가명) 모녀는 지방의 한 호텔 프런트에서 일했다. 체인점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큰 호텔이었다. 이들이 사는 지역만 해도 해당 호텔의 체인점이 7개가 넘었다. 원래 호텔업계에 종사했던 은수 씨가 딸보다 먼저 입사했는데, 돌이켜보면 근로계약서부터 수상했다. 계약서에 적혀 있는 소속은 ‘5인 미만의 청소 용역’이었다. 분명 채용공고에는 호텔에서 사람을 뽑는다고 했다.

그렇게 은수 씨는 용역회사 없는 용역노동자가 됐다. 청소업무를 하지도 않는데 소속은 왜 청소였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넘겼다. 사업장에는 5인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월급만 제때 나오면 된 거라고 생각했다.

은수 씨의 일터는 자주 바뀌었다. 지시를 내리던 ‘진짜’ 사장이 있었고, 호텔 체인점 여러 개를 돌아다니며 일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을 감시했다. 24시간 격일제 근무 땐 새벽 2시까지 정자세로 서 있어야 했다. 와중에 한 동료가 “한 달에 하루라도 쉴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가 해고당했다. 그때까지도 은수 씨는 관심이 없었다. 근로기준법이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러니 해고는 사장이 그냥 할 수 있는 거였다.

“이대로 넘기면 안 되겠다” 싶었던 사건이 있었다. 회사는 4대 보험을 월급에서 떼갔지만, 알고 보니 계속 납부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은수 씨는 그렇게 회사를 나왔다. 4대 보험 미납입으로 사업장을 신고한 후에야 회사가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했다는 걸 알았다. 이 호텔의 5인 미만 사업장 위장법은 근로계약서 자체를 용역계약으로 쓰는 형태였다.

그러나 은수 씨는 근로기준법을 알았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거라고 했다. “법에 대해서 알지를 못했어요. 알려주는 구조도 아니고. 그런데 만약 제가 근로기준법을 알았다면 잘렸겠죠? 회사가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애초에 취업이 안 됐을 수도 있고요. 제가 회사에 원하는 건 밀린 4대 보험뿐만은 아니에요. 회사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정확히 알려주고 싶어요.”

 

② 직원을 투자자로 둔갑

디자이너 조가연 씨(가명·38)와 이진미 씨(가명·32)는 어느 주말 갑자기 사장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사장은 카카오톡 메시지로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우니 6개월 무급휴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회사와 같이 갈 수 없다”고 했다. 입사한 지 6개월이 채 안 된 때였다.

사업장은 골프와 콘도, 투어, 스팀케어, 카페이용권 등을 소속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회원제 비즈니스 서비스를 운영했다. 영세 사업장이어서 그런지 노동환경은 열악했다. 디자이너인 가연 씨는 전혀 다른 업무로 배치됐다. 새벽까지 야근은 일상이었다. 사장은 늦게까지 일하는 가연 씨와 진미 씨에게 현금을 건네곤 했다. 그런데 그것도 첫 달뿐, 임금은 밀리기 시작했다.

해고된 것도 서러운데 밀린 임금은 받을 수 있는 건지 불안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일하는 사람이 다섯 명이 넘는 사업장에서는 해고를 함부로 할 수 없다고 나왔다. 회사 카카오톡 단체방에 참여하는 사람은 10명이 넘었지만, 사장은 이 사업장이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반박했다. 같이 일했던 다른 직원을 노동자가 아닌 투자자로 신고한 것이다. 회원제 서비스를 위해 가지고 있는 사업장들도 각각 독립된 사업장이라고 주장했다.

가연 씨와 진미 씨는 지난해 9월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사측이 잘못한 건데 왜인지 모르게 위축됐던” 기억을 떠올렸다. 노무사를 찾아갔지만 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근로감독관은 합의를 유도했다. 실제로 인천지방노동위원회는 가연 씨와 진미 씨의 신청에 대해 각하 판정을 내렸고, 이 사건은 중앙노동위원회로 옮겨진 상태다.

가연 씨는 쿠팡 배송과 음식 배달로 생계를 이어가다 카드 영업직 일을 시작했다. 길어지는 소송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부당해고와 임금체불을 겪고 가짜 5인 미만 사업주를 고발해도 사후 대책일 뿐이다. 개별 노동자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영세하지 않은 가짜 5인 사업장은 변호사나 노무사를 쉽게 선임하고, 부당함을 증명하는 건 노동자의 몫이다.

고용복지센터를 바라보는 디자이너 조가연 씨(가명·38)와 이진미 씨(가명·32)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③ 지인 총동원

배우자, 부모님, 아들, 며느리, 친구까지. 사용자의 아는 사람을 다 동원해 사업자로 등록시켜 사업장을 쪼개는 건 가장 흔한 사례다. 박재민 씨(가명·54)도 이렇게 쪼개진 사업장에서 일했다. 밀가루 공장에서 밀가루를 거래처로 납품해주는 운수회사였다. 차량 5대, 동료기사 5명이 그와 함께 부산공장에서 일했다. 재민 씨는 주로 부산에서 구미까지 밀가루를 실어 날랐다.

채용공고와 실제 노동은 판이했다. 사장은 휴일이나 공휴일에도 무급으로 차량 정비나 세차 등의 업무를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재민 씨는 불만을 말했던 노동자가 해고되는 걸 목격했다. 재민 씨도 불만을 이야기했다 해고됐다. 부당해고로 사업장을 신고했는데,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장이라고 불렀던 사람은 재민 씨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진술했다.

재민 씨는 고용노동부에도 불만이 많았다. 그는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밝히는 과정에서 노동청은 제대로 일하지 않았고, 노동위원회 또한 진실을 밝힐 의지가 없었다. 그래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의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며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은 누군가를 기망해서 이득을 보려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사기죄를 적용해서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골치 아픈 건 고용노동부도 마찬가지다. 유형과 업종이 다양하니 찾아내는 것도 일이다. 한 근로감독기획과 관계자는 “(근로감독 할 때) 상시근로자 수가 몇 명인지 확인하고 실제로 5인 미만 사업장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4~5인이 왔다 갔다 해서 어려움도 있다”며 “5인 미만 사업장 여부에 대해 실태조사도 하고 있지만 근로감독관 수가 사업장 수에 비해 적다”고 토로했다.

근로기준법을 잘만 이용하면 인건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법을 ‘잘 아는’ 사장님에게 근로기준법 제11조는 자유이용권이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법이 아니라 대부분 사용자의 판단이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노동법은 현장에서 쉽게 무력화된다.

 

‘진짜’ 5인 미만 사업주에게 필요한 건
근로기준법 배제가 아니라 지원

반면 5인 미만 영세사업주는 속이 터진다. 법은 잘 모르겠고, 임대료나 좀 줄여줬으면 좋겠다. 인천에서 아파트·상가 관리업체를 운영하는 양성태 씨(가명·51)는 경비노동자들을 고용한 사용자다. 회사를 운영한 지는 5년이 안 됐다. 지금은 열 명이 넘는 노동자가 함께 일하고 있지만, 초기엔 다섯 명이 안 됐다.

성태 씨는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했다는 의혹을 받고 고발당한 적이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 되는 건 몰랐다. 근로기준법엔 관심이 없었다. 고려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고발당하고 난 이후 근로기준법을 우습게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성태 씨는 “법을 좀 알아야 되겠더라. 법도 아는 사람들이 사업장을 쪼개는 건데, 나는 아예 몰랐다. 노동법 교육이 필요하다. 사업자를 낼 때 의무적으로라도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동대문에서 의류도소매 가게를 하는 강세정 씨(가명·50)는 “대기업과 임대업자가 빠진 판에서 소상공인과 노동자를 가지고 대결 구도를 붙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5인 미만 사업장에 주어지는 혜택 같은 거, 진짜 저희는 잘 몰라요.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을 이용하는 대기업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근로기준법은 영세사업주를 보호한다고 하는데 우리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가짜 사업주들한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 같아요. 노동자들은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거고요.”

동대문에서 의류도·소매 가게를 운영하는 강세정 씨(가명·50)도 노동자 한 명을 고용하는 사용자다. 세정 씨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제외는 대기업에 법을 빠져나가는 출구만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자에게는 노동법의 권리를 주고, 영세한 사업장에는 임대료나 카드 수수료 같은 부가세를 감면해주면 훨씬 좋겠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5인 미만 사업주가 힘든 건 임금 때문이 아니에요. 그거 조금 더 준다고 어려워지지 않아요. 저희가 어려움을 겪는 건 임대료예요. 저는 대기업과 임대업자가 빠진 판에서 소상공인과 노동자를 가지고 대결 구도를 붙이는 것 같아요. 제일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거 아니냐고요.”

 

작은 사업장 없는
근로기준법은 ‘거꾸로법’

“그런데요. 5인 미만 사업장에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거꾸로인 것 같아요. 저는 5인 미만 사업장이니까 법을 적용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작은 업체들은 대기업처럼 복지를 해 주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영세한 근로자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에 대한 조치는 전혀 없어요.”

앞에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고발한 가연 씨는 법 자체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서 회사가 사업장을 쪼갰다고 한다. 해고도, 휴가도, 월급도 사장님 마음대로다. 그런데 왜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 될까? 가연 씨가 보기엔 작은 사업장일수록 더 철저하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