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근로기준법’은 불가능할까?
‘모두에게 근로기준법’은 불가능할까?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05.04 00:10
  • 수정 2021.05.04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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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제11조 리포트③] 모두의 권리가 모두를 살린다
“직종·사업장 규모 따른 차별, 합리적 이유 없다”

근로기준법 제11조 리포트③

근로기준법 제11조에 ‘명시된’ 사각지대를 살펴봤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배제하니 사업장 규모를 위장하는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만연해졌다. 근로기준법 자체를 개정하기 어려웠던 가사노동자들은 특별법으로 권리 보호에 나섰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사람들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가사노동자뿐만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니 노동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법을 회피하는 방법은 다양해진다.

해법은 간단하다. 모든 노동자를 포괄하는 것이다.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는 것.” 근로기준법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노동은 노동을 규율하는 근로기준법에서 다뤄져야 한다.

 

4월 14일 오후 5시 권리찾기유니온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추진을 위한 간담회’가 진행됐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근로기준법 배제,
“작은 사업장은 안중에 없었다는 방증”

노동법 전문가들은 “사업장 규모로, 가사노동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차별하는 것의 합리적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어렵다면, 기댈 건 근로기준법밖에 없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은 노동조합 결성이 어려운 작은 사업장에 필요하다.

왜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적용이 배제됐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사유는 찾기 어렵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함”을 선언하고, 구체적 범위에 대해서는 시행령에 위임한 바 있다. 이후 근로기준법 적용은 차츰 좁혀지기 시작했다. 1975년에는 4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을 전면 배제했고, 1989년에 와서야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에 대해 “5인 이상의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하고, 4인 이하에 부분 적용함”을 명시했다.

이 조항은 변동 없이 견고했다. 여기에 1999년 헌법재판소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제한적 적용은 합헌이라고 판시하면서 그 이유를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현실과 국가의 근로감독 능력의 한계를 고려한 것”이라고 덧붙이며 못을 박았다.

이훈 권리찾기유니온 법률지원단장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완전히 노동자가 아니라고 취급한 것”이라며 “근로기준법은 사람답게 노동할 기준을 정하고 있는데, 그것을 배제한다는 건 취지와 맞지 않다. 근로기준법이 영세사업장에 부담으로 온다면 지원정책을 마련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고발운동을 진행해왔던 권리찾기유니온(위원장 한상균)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폐지 운동’을 4월 제안했다. 사업장을 쪼갤 유인을 없앨 방법은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이 사업주에게 매력적이지 않으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도 없어진다.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노무사는 “이 구조가 유지될수록 이득을 보는 건 대기업이지, 절대 영세자영업자는 아니다”라며 “근로기준법 제11조는 양대 노총에서도 오히려 소외돼 있는 이슈였다. 법을 차별하니까 사업장이 쪼개지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본다”고 밝혔다.

 

가사노동자 법적 보호하려면
노동자·사용자 재정의해야

제11조를 개정해 모든 가사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자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가사노동자의 경우는 조금 복잡하다. 제11조가 전면 개정된다고 해도 같은 법 제2조 1항 1호인 ‘근로자의 정의’를 고치지 않으면 실질적인 보호가 힘들 수 있다.

근로기준법 제2조 1항 1호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나 협동조합에 속해 있는 가사노동자의 경우엔 그 기업이 사용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용자와 직접 고용관계를 맺은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제11조를 개정한다고 해도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기 힘들다. 가정집을 ‘사업이나 사업장’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기업에 속한 가사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그렇지 않은 가사고용형태에는 별도의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편,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정의가 협소하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종훈 민변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실질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노동력 상품을 타인에게 판매함으로써 종속적인 관계에 돌입했다면 모두 근로자로 봐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2조의 근로자의 정의 자체를 확장적으로 규정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기본값을 근로자로 추정해볼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일하는 사람의 ‘최대’가 아니라 ‘최소’ 근로조건을 보호하는 것이니 절대 과하지 않다”며 “더 나아가 사용자의 정의까지 확대해야 한다. 근로계약 체결의 형식적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 등 해당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지배력 내지 영향력이 있는 자를 사용자에 포함하는 개정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계속됐던 지적이다. 노동법 테두리에 포함되지 못한 노동자들은 늘어만 간다. 근로기준법에 포괄되지 않는 직종이 생길 때마다 특별법을 하나하나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목소리를 못 낸다고 해서 존재가 없는 건 아니다. ‘일하는 사람’ 모두가 적용받는 근로기준법에 대한 고민은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