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영화제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언박싱] 이 주의 영화제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5.08 00:35
  • 수정 2021.05.08 0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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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공원 #탈시설 #이동권 #장애인 #영화 #예술

[언박싱] 이 주의 영화제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이번 주 언박싱에서는 재미있고 뜻깊은 영화제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바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입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올해로 19회를 맞았습니다. 다음주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13~15일)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영화제가 진행될 예정인데요. 사흘 간 총 14편의 작품이 상영될 예정입니다. 영화제 중간 중간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개막식은 13일 1시라고 합니다.

제1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슬로건은 “1919193B20, 돌아가지 않겠다” 입니다. 다소 난해하지만 궁금증을 키우는 슬로건입니다. 아영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의 설명을 들어보니 이번 영화제의 핵심이 정말 잘 녹아있었는데요. 아영 상임활동가와 제1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언박싱을 함께 해봤습니다.
(*상영일정 및 더 많은 정보를 보고 싶다면 여기로)

자료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아직 낯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간단히 소개를 해주세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미디어를 통해서 장애인 운동을 하는 단체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기존 미디어에서는 장애인의 모습을 굉장히 불쌍하거나 도와줘야 하는 이미지로 비춰왔어요. 그러한 부분을 일차적으로 비판하는 목적이 있고요.

또 한편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같이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함께 바꿔야 할까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영화제가 개최됐어요. 그래서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대부분의 작품이 장애인 당사자가 주인공으로 나오거나 혹은 당사자가 직접 제작에 참여했다거나 그리고 장애인 삶을 주체적으로 그리는 작품을 선정하고 상영해요.

- 올해 영화제 슬로건이 특이해요. “1919193B20, 돌아가지 않겠다”인데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많은 분들이 난감해 하긴 해요. 하하. 여기에는 5가지 주제가 담겨 있어요. 첫 번째 19는 쉽게 유추할 수 있듯이 ‘제1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의미해요. 두 번째 19는 코로나19에 관한 내용이에요. 코로나19로 한국의 장애인이 처지가 너무나 열악해졌죠. 많은 사건 중에 청도 대남병원이라는 정신병원에서 벌어진 집단감염이 대표적인데요. 그때 국가는 코호트 격리 조치를 했어요. 그로 인해서 더 많은 사망자와 확진자가 발생했고요. 이런 상황을 기록하고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세 번째 19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19조에 대한 내용인데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한국 정부도 비준한 국제협약이에요. 이 협약 19조는 장애인의 지역사회의 완전한 통합을 규정하고 있는데요. 어떠한 이유로도 장애인이 지역사회와 분리돼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예요. 장애인 거주시설로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고요. 또 한편으로는 향유의집이 2021년 4월 30일에 마침내 폐쇄됐어요. 앞으로도 시설 폐쇄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밟아 나가야 한다는 의미가 세 번째 19에 담겨 있어요.

- 그러면 3B는 뭔가요?

가장 어려운 3B인데요. 38로 읽기도 하더라고요. 하하. 3B는 빌딩 백 베터(Building Back Better)를 뜻해요. 빌딩 백 베터는 재난 이전의 사회보다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예요. 코로나19 이후 국제사회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죠. 영화제에서는 빌딩 백 베터를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받아 안았어요. 장애인의 현실도 코로나19와 재난 이전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의미죠.

마지막 20은요. 2001년 오이도역에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노부부가 리프트에서 추락해서 사망한 참사가 있었어요. 중증 장애인 중심의 장애인 이동권 운동이 시작된 사건이기도 해요. 올해는 장애인 이동권 운동의 20주년이에요. 20년간 얼마나 많은 장애인 이동권이 확보됐으며 또 여전히 이뤄지지 못한 건 무엇인가. 이를 확인하는 자리를 가져보자는 의미를 슬로건에 담았어요.

- 슬로건에 이번 영화제의 핵심이 다 들어가 있네요!

그렇죠. 하하. 사실 1919193B20가 정해졌을 때 바코드 이미지를 생각하기도 했어요. 바코드가 숫자화되고 규격화된 사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 이미지를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로 뒤엎는 것까지 염두에 뒀는데…. 이거는 그냥 저희 쪽의 콘셉트였던 걸로. 하하.

- 개막작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길 위의 세상
2020 | 21’ 50” | 다큐 | 박주환

<길 위의 세상>은 강원도에서 사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예요. 현재 대부분의 이동권 이야기가 서울 중심으로 다뤄지고 있어요. 지역으로 갈수록 상황이 어떤지 확인하기 어렵고요. 실제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기차 외에 다른 교통수단을 활용하기 어려워요. 특히 강원도는 기차도 잘 안 돼 있고요. 서울 지역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 사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작품이에요.

파리행 특급 제주도 여행기
2020 | 16’ 53” | 다큐 | 김포장애인야학

요즘 저가항공이 많아지면서 제주도 여행이 많이 쉬워졌잖아요? 비장애인은 그냥 어플 한 번으로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서 갈 수도 있고요. 이렇게 손쉬운 여행인데, 이 작품의 주인공 건창 씨는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간 적이 없어요. 배를 타고 간 적이 있지만 그것도 차 안에서 화물칸에 실려 간 형태예요. 건창 씨가 배가 아닌 비행기를 타고 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죠.

그런데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그 과정이 엄청나게 험난해요. 예매할 때 단지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인데, 건강 상태가 굉장히 위중한 사람이 돼버려요. ‘환자’라는 호칭이 생기고요. 결국 6개 좌석을 사서 침대를 올리는 방식으로 제주도 여행을 가요. 실제로 환자 이송용으로 비행기에 탑승하는 방법이라고 하더라고요.

장애인 당사자가 여행을 많이 다녀온 적 없는 이유. 그리고 공항이나 항공사에서 장애인 손님을 받아 본 적 없는 이유는 왜 일까.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는 영화예요.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구조물이나 탈것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돼 있는지 생각하게 하죠.

마로니에 공원.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마로니에 공원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 기획작도 궁금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제: 향유의집, 시설폐쇄의 과정)
2021 | 30‘ | 다큐 | 정민구

이 작품은 장애인 거주 시절 향유의집 폐쇄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예요. 향유의 집은 1985년도 설립됐는데 2007년 인권 침해 사실이 내부고발로 인해 드러나요, 그런데 오랜 기간 폐쇄되지 않고 그 안에 거주인이 사는 상황이 발생해요. 인권 침해가 일어났으면 당장 조치했어야 함에도요. 왜 장애인들이 향유의 집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왜 올해 4월 30일에서야 폐쇄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또 시설 안에 있던 장애인들이 어디로 갔는지. 지역사회에 있다면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더불어 향유의집 종사자 분들의 이야기도 있어요. 향유의집이 폐쇄되면서 종사자 분들은 다 해고를 당한 건지 의문이 들잖아요? 그 분들은 어떻게 됐는지도 다루고 있어요.

- 영화를 보면 이분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나요?!

네네. 실제로 영화제 당일 향유의집에서 나가신 분들도 오실 거예요. 영화 관람 후에 선언문을 낭독하는 이벤트도 기획하고 있어요.

- 마지막으로 영화제에 어떤 분들이 많이 찾아 왔으면 하세요?

당사자 분들이 편하게 오시면 가장 좋을 것 같아요. 또 영화제작자 분들도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작품 선정을 하다 보니 장애에 대해서 너무 이해가 떨어지는 상태에서 영화를 만드는 게 보였어요. 영화 안에서 어떤 장애인지 확인도 안 되게 장애인을 구현하는 경우가 꽤 많이 있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자신의 모습이 그런 식으로 비취진다는 것은 한편으로 차별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경험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이번 영화제가 누군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미디어로 담아내고 싶은 제작자에게 자신이 무엇을 좀 더 확인하고 체크해야 하는지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많이 오셨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