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금속노조의 공동결정법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금속노조의 공동결정법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6.13 18:23
  • 수정 2021.06.13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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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산업전환 대응 언론설명회 개최 … “노동은 왜 참여 못 하나”
정의로운 전환? ‘희생과 파괴가 없는 노동참여 산업전환’
​​​​​​​“경사노위, 지역노사민정협의회와는 목적성-참여단위에서 달라”
ⓒ 금속노조
ⓒ 금속노조

금속노조가 공동결정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을 추진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전환 과정에서 노동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호규)은 11일 오후 3시 서울시 중구 금속노조 4층 대회의실에서 ‘희생과 파괴가 없는 노동참여 산업전환! 금속노조의 산업전환 대응 언론설명회’를 진행했다.

코로나19 이후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되고 있다. 또한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 정책을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자리가 점차 AI 기술로 대체되고 있으며, 기존 산업이 축소되고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지는 등 산업전환기에 접어들었다. 가령 화력발전 산업이 친환경화로 사라지고, 그 자리를 태양광이나 친환경 발전 산업이 대체하는 식이다.

변화는 기회이자 위기로 다가온다. 전환에 실패한 기업이나, 전환 과정에서 사라지는 산업에서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여기서 등장한 개념이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다. 거스를 수 없는 산업전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전환과정에서 이해당사자 모두가 전환의 방식이나 시기 등을 함께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의로운 전환에는 산업전환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노동 없는 전환은 정의롭지 않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산업전환 정책에서 노동의 참여는 빠져있다. 금속노조는 “최근 정치권이 발의한 법안들은 정의로운 전환을 노동자 등 취약 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한다거나 노동자 등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면서,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의 산업전환 정책은 철저히 재벌 중심‧노동 배제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2월부터 철강, 에너지, 석유화학 등 13개 업종에서 ‘탄소중립 산업전환 추진위원회 발족을 위한 업종별 민간협의체’를 구성했고, 4월 16일에는 ‘탄소중립 산업전환 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여기에는 산업은행과 대한상의 그리고 석유화학, 시멘트,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 10여 개 업종의 사용자단체가 참여했다. 정작 산업전환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노동의 참여는 빠진 것이다.

더불어 기업이 새로운 산업을 추진할 때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지 않은 자회사를 통하는 경향도 있다. 대표적으로 ▲세종공업(자회사 세종EV) ▲우리산업(우리엠오토모티브) ▲우수AMS(우수TMM) ▲인지컨트롤스(인지디스플레이) 등이다. 산업전환을 추진할 때 노동조합과 함께하기보다는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금속노조는 정의로운 산업전환이 지향할 세 가지 방향을 ▲양질의 일자리 유지·창출 ▲노동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면서 자유롭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산업환경 구축 ▲사회 공공성 강화로 요약했다.

또한 금속노조는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해 두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노동을 포함한 사회경제적 주체들이 대등하게 참여하는 가운데 산업전환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할 수 있어야 하며, 여러 사회경제적 주체들이 합의한 사안을 실질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노동조합의 쟁의권을 보장하는 산별교섭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금속노조가 제시한 공동결정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안에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주체들의 참여
보장하는 공동결정법

금속노조의 공동결정법의 주요 특징은 업종별, 산업별, 지역별 민주적 산업전환위원회를 설치하도록 법제화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참여하는 노동의 단위는 노동조합에 국한되지 않고 ‘일하는 사람’ 모두를 포괄한다.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지 않은 노동자라도 산업전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는 올해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산업전환협약’을 공통 요구안으로 결정하고 교섭에서 이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지 않은 대다수 노동자들은 산업전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마땅한 방안이 없다.

금속노조는 “금속노조에 가입해 있건 그렇지 않건 산업전환 과정에서 누구도 소외돼서는 안 된다”며,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있지 않더라도 산업전환 과정에서 스스로 당사자가 돼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금속노조가 마련한 ‘기술변화 및 기후위기 대응과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공동결정법’에는 ‘노동조합’이 아닌 ‘일하는 사람’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노동을 대표한다고 쓰지 않고 일하는 사람을 대표한다는 표현을 쓴 것은 노사정이라는 계급 대표성이 아닌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있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을 포함하기 위해서”라며, “경남지역의 자동차전문정비사업조합인 카포스도 미래차 전환에 상당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에게 간담회를 요청한 바도 있다. 노동조합이 아니지만 카포스와 같은 단체도 사회경제적 주체로서 대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민주적 산업전환위원회는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에 의해 설립돼 있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지역노사민정협의회’ 등과는 참여 단위(노동조합→일하는 사람)에서의 차별점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지향한다는 목적상 차이도 있다.

김성민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경사노위나 지역노사민정협의회도 협의틀이지만, 정의로운 산업전환이라는 목적과 방향, 의제가 명확하지 않다. 공동결정법을 통해 정의로운 산업전환이라는 방향성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공동결정법은 사업장 단위에서의 노동의 참여도 규정하고 있다. 현행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은 노사협의회를 통해 노사 간 대화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노사협의회에서 논의할 수 있는 의제는 ‘노동조건 및 복지’에 한정돼 있다.

이에 반해 공동결정법은 ▲신기술 도입 ▲탈탄소 정책으로 인한 사업 변경 및 축소 ▲기후위기 및 감염병으로 인한 노동조건 및 고용 조정 ▲직무 전환 및 교육 ▲합병, 영업양도, 국내외 공장 이전 및 신설 ▲업무의 외주화 및 하도급화 등 기존 ‘경영권’의 영역에 있다고 고려되는 사안도 다룰 수 있도록 규정했다.

김호규 위원장은 “노사협의회에서 산업전환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노사협의회에서는 단순히 협의만 할 수 있을 뿐이며, 경영과 관련해서도 보고 받는 수준이다. 근참법에 의한 노사협의회로 산업전환을 논의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전했다.

2021년 3월 2일 금속노조 제54차 정기대의원대회 현장에서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 이 자리에서 금속노조 2021년 사업계획과 2021년 투쟁방침을 세웠다. ⓒ 금속노조
2021년 3월 2일 금속노조 제54차 정기대의원대회 현장에서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 이 자리에서 금속노조 2021년 사업계획과 2021년 투쟁방침을 세웠다. ⓒ 금속노조

산별교섭 실효성 높일
노동조합법 개정

공동결정법이 노동의 참여를 법제화했다면, 금속노조가 주장하는 노조법 개정안은 노동의 참여가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참여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동조합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데 초점 맞춰져 있다. ‘산별노조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금속노조는 “산업전환은 정부 정책을 통해 산업·업종·지역 등 개별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 이뤄진다. 그렇기에 ‘산별노조할 권리’가 온전히 확보돼야 한다”면서 “2021년 7월 5일 시행되는 개정 노조법에서는 국가와 지자체가 기업·산업·지역별 교섭 등 다양한 방식의 단체교섭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산별노조할 권리를 위한 노조법 개정은 정부의 의무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가 제안한 노조법 개정안의 골자는 ▲사용자단체 범위의 확대 ▲교섭의제의 확대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파업권 보장 ▲기업별 교섭을 강제하는 교섭창구단일화제도 폐기 등이다.

입법 위한 금속노조 총파업 예고

금속노조는 공동결정법 제정과 노조법 개정을 위해 기자회견, 토론회와 더불어 국민동의청원, 총파업을 9월까지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6월 24일부터 7월 23일 국민동의청원 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며 동시에 의원입법발의로도 공동결정법과 노조법 개정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더불어 7월 3주 1차 경고 총파업, 8월 3주 2차 총파업을 지역별로 진행한다.

또한 법제화 이전에도 현재 노사정의 논의가 일정정도 진행되고 있는 산업을 중심으로 협의채널을 강화하는 방안이 함께 추진된다. 대표적으로 현재 ‘논의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자동차산업 노사정 포럼’의 위상을 자동차산업 노사정협의체로 올리는 것이다.

정원영 금속노조 사무처장은 “정부가 구성한 탄소중립 산업추진위원회는 노동을 비롯한 관계자를 배제시킨 채 출범시켰다. 여기에 노동을 참여시켜서 재구성해야 한다”면서, “다른 부분도 시급하지만 가장 앞장서있는 자동차 부분에서 이러한 점을 바꿔서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호규 위원장은 “중앙정부와 지자체를 축으로 희생과 파괴가 없는 우리나라의 산업 지도를 짜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면서, “입법 청원부터 시작하여 2021년에는 최소한 틀을 만들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 내년 5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6월에는 지자체 선거도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되는 산업전환에 힘을 실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