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자들] 빚으로부터 ‘빛’을 찾아요
[연결자들] 빚으로부터 ‘빛’을 찾아요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1.07.23 00:00
  • 수정 2021.07.23 2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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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곧 연결고리, ‘연결’은 주빌리은행의 원동력
[인터뷰]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

‘연결자들’을 찾아서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연결자들을 찾았습니다. 총 22명을 만나 15개 인터뷰를 전합니다. 인터뷰는 우리 사회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건강─연결의 마음 △교육─연결의 과정 △정치─연결의 확장 △환경─연결의 뿌리 △경제─연결의 포용 다섯 개 파트로 나눠서 진행했습니다. 다섯 개 파트에 노동을 굳이 넣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만난 연결자들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이 ‘연결의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의 키워드로 꽉꽉 채운 인터뷰집을 만든 건 창간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첫 시도가 더 의미 있는 다음 시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아낌없는 격려와 피드백을 부탁드립니다. 독자와의 연결을 기다리며, <참여와혁신>도 연결자로서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참여와혁신> 창간 17주년 기념호)

인터뷰_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

2011년 9월 17일, 세계적인 금융사가 몰려있는 월가(Wall Street)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이후 빈부격차 문제와 금융사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73일 동안 이어진 시위의 중심에 있던 시민단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2012년 11월 채무자의 구제를 돕고자 장기 연체된 부실채권을 사들이는 운동을 하게 되는데, 이름하여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다.

미국에 롤링 주빌리 운동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시민단체 ‘주빌리은행’이 있다. 2014년 활동을 시작한 주빌리은행은 지금까지 부실채권으로 고통받는 채무자를 다양한 방법으로 돕고 있다. 한 줄기 빛을 찾아 문을 두드리는 채무자들의 연결점이 되고 있는 주빌리은행, 유순덕 상임이사를 만났다. 인터뷰는 6월 29일 서울시 성동구 주빌리은행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 ⓒ 남궁경상 포토그래퍼 boriwoll@hanmail.net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 ⓒ 남궁경상 포토그래퍼 boriwoll@hanmail.net

채무자의 희망, 주빌리은행의 출발

시민단체 주빌리은행은 어떻게 출발했나요?

2014년 국내 금융사에게 사회적 책임을 묻고자 출발한 단체입니다. 제윤경 현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님이 2014년 ‘희망살림’이라는 비영리법인을 운영하면서 채무자 자활을 돕는 활동을 하셨어요. 희망살림과 지자체장, 종교단체랑 함께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출발했어요. 미국 월가 점령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빚 탕감을 위해 시작한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에서 가져온 이름이에요. 원래 등록명은 ‘롤링주빌리’예요. ‘주빌리은행’은 애칭이죠.

상임이사님은 어떤 계기로 주빌리은행 활동을 시작했나요?

이전에는 신용정보사에서 채권추심을 했었어요. 지금과는 완전히 정반대죠?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채무자에게 갚아야 할 금액이 얼마나 크게 다가올까 생각하면서 일을 했어요. 하지만 얼마를 회수하느냐가 급여에 반영되는 구조다 보니까, 언제부터인지 스스로 급여를 계산하고 있는 거예요. 또 하나는 회사가 추심원들을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부속품처럼 취급하는 게 답답했어요. 일하면서 회의감이 많이 들었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채권시장에서의 문제점과 신용정보사 소속 추심원의 근로가 잘못됐다는 점을 토로하다가 당시 ‘희망살림’ 대표였던 제윤경 대표님한테 얘기가 닿았는지 만나게 됐고, 시민단체를 함께 해보자고 연락이 온 거죠. 급여는 많이 주기 어렵다고 하셨는데, 제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고 싶다고 했어요.

한국 사회가 채무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다고 생각하나요?

금융사와 개인은 대출 계약 이전에는 동등한 관계로 시작하지만, 개인이 연체를 시작하면 갑을관계로 바뀌어요. 채무자들은 채무 발생의 원인이 모두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금융사도 대출받으러 온 개인에 대한 충분한 사전 조사가 선행돼야 하는데, 그 책임에서 벗어나 있잖아요. 대출자가 많아야만 은행이 이익을 보니까요.

우리 사회가 채무를 바라보는 시선이 채무자들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뺏고 있어요. 가장 안타까운 게 IMF 때 채무자가 된 지금의 50대, 60대예요. 그분들은 채무자라는 이유로 ‘나는 안 돼’라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멈춰있었어요. 채무자들은 신용카드 하나 못 쓰게 됐다고 사회적으로 죽은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크든 작든 채무정리 방법은 다 있어요. 그런데 당장 해결 방법을 모르니까 스스로 근로도 하면 안 된다면서 멈춰있는 거예요. 저는 채무자들이 경제활동을 하도록 도와서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면서 살게 만드는 게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채무자 중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

2016년이었을 거예요. 저희가 빚 탕감을 해드린 분인데, 이 채무자가 예전에 사업을 하다가 잘 안 돼서 가족들하고 헤어지고 노숙자로 살다가, 일용직으로 일을 하면서 주빌리은행 우편물을 보게 됐대요. 처음 전화를 했을 때, “나한테도 이런 기적이 일어나느냐”고 물어보셨어요. 이 분 채무가 두 건이 있었는데요, 채권 하나는 주빌리은행이 채권사랑 협상해서 대위변제(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때 제3자가 대신 채무를 변제하는 일. 채무를 대신 변제한 제3자는 채무자에 대하여 구상권을 획득함)해주고, 한 건은 그 분이 채무조정을 해서 갚아서 채무에서 벗어나게 됐어요. 당시 이 분이 식당 일용직으로 일을 하셨는데, 요리 레시피를 만들었다면서 식당을 개업하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겨우 빚을 갚았는데, 저는 솔직한 말로 사업 안 하셨으면 싶었죠. 그냥 일하면 충분히 살 수 있지 않으냐고 말씀드렸는데, 꼭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소식 있으면 연락 달라고 했는데, 올해 연락이 왔어요. 그분이 차린 식당이 광주에서 굉장히 잘 된 거예요. 잘 운영하고 있다고 하면서 저희한테 부실채권 소각한 게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말씀해주시는데 참 고맙더라고요.

‘모두 사랑’을 실천하는 주빌리은행 구성원들 ⓒ 남궁경상 포토그래퍼 boriwoll@hanmail.net
‘모두 사랑’을 실천하는 주빌리은행 구성원들 ⓒ 남궁경상 포토그래퍼 boriwoll@hanmail.net

금융복지를 위한 주빌리은행의 노력

주빌리은행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금융위원회에서 제시하는 채권시장 데이터에는 바닥금융시장(정부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 장기 채권이 사고 팔리는 시장)이 제외되어 있어요. 바닥금융시장 데이터는 어디에도 없는 거예요. 재작년에 금융위원회와 만나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런 시장이 정말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바닥금융시장에서 채권추심을 당하는 채무자를 상담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등 금융복지를 위해 힘쓰는 게 주빌리은행의 활동이에요. 채무가 오래된 분들 중에는 어디에 어떤 채무가 있는지 몰라서 진행이 안 되는 경우도 많은데 저희가 다 찾아드리고, 상담할 수 있게끔 도와드리고 있어요.

한국 채권시장의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채무를 신용정보원에 등록해야 하는데요, 바닥금융시장 채권 같은 경우 2016년 이후 신규매입 건만 등록하게끔 되어있어요. 어차피 오래된 채권을 찾으려면 찾을 방법이 없는 경우도 많아서 등록된 채권만 추심하게끔 하면 채권시장이 깨끗해지겠죠. 어떤 분은 근로를 시작했는데 압류 당할까봐 연락 오는 곳마다 빚을 갚는 거예요.

예전에 주빌리은행이 소각한 채권이 이중 추심된 사례도 있었어요. 그래서 금융감독원에 이중추심 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지 2년이 넘었는데 어떤 답도 내놓지 않아요. 저희는 이 이중추심 건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까봐 답변을 미루는 거라고 봐요. 이런 채무자들은 빚을 하나로 묶어서 오랜 기간을 두고 갚으라고 하면 갚을 거예요. 또 문제가 있는 게, 불법 사채업자의 불법추심을 금융감독원에 신고하면 금융감독원은 경찰에 연락하라고 해요. 경찰에서는 자료가 남아 있는 게 아니면 방법이 없다고 하고요. 설사 자료가 있다 해도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는데요, 채권자가 형사처벌을 받게 되면, 채무자는 그때 이후로 추심으로 받는 고통이 더 심해지죠. 채무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 과정에서 채권자와 채무자의 협의를 이끌어 처벌 수위를 낮추고 원금 포기를 하게끔 해야 하는데 안 한다는 거죠.

금융복지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요?

금융복지란 채권 소각, 채무자의 희망 회복, 금융 대출 계획, 책임 상기 등을 말해요. 금융과 복지는 떼려야 뗄 수 없어요. 많은 사람이 금융과 복지가 별개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사회적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먼저 금융과 복지를 한데 묶어서 사회적 관심을 갖고 상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채권이 오래되다 보면 사고 팔리는 걸 반복하다가 마지막에는 헐값이 돼요. 채권자 입장에서 실익이 있다면 회수하겠지만, 보통 오래된 채권은 포기채권이거든요. 주빌리은행은 채무자를 위해 채권자와 협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요. 채무조정교섭업이 그래서 필요한 거예요. 지금 변호사들이 채무조정교섭업을 변호사만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요, 파산 관련 경우만 해도 보세요. 파산하고 싶은 채무자에게 변호사들이 변호사 수임료를 또 대출해줘요. 또 대출금이 나오는 구조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진정으로 채무자를 대신할 수 있도록, 채무조정교섭업을 변호사만이 아닌 금융복지상담사들도 함께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한국의 공적 시스템이 채무자 구제에 힘쓰지 못하고, 보호장치가 미흡한 이유는?

업무를 형식상으로만 하는 게 문제라고 봐요. 정부 부처가 관련 사안을 해결한다고 했으면, 책임지고 행동의 과정을 고민해 보는 게 우선이에요. “하겠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한 후 “했다”는 소식도 보도자료를 통해 접할 수 있다면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지금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보세요. 대리인 역할을 맡는 변호사들이 연체 채권을 위임 받아서 채권 추심업을 별도로 하고 있는데 추심업을 하는 변호사가 채무자 대신 연체협상을 하는 게 쉽지 않죠. 변호사들은 채무자를 위해 채권자에게 얼마 감면해주겠냐는 얘기만 할 것이라 봅니다.

변호사들은 채무조정교섭업이 법률행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채무자를 위한 교섭은 법리적으로만 볼 수 없어요. 금융위원회에서 관리감독을 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채무자들을 위해 힘쓰는 금융복지상담사에게 채무조정교섭업 대리인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고 봐요.

채무자가 무조건 약자가 되긴 어려울 것 같은데, 주빌리은행은 어떻게 대응하나요?

우선 상담을 하면서 소득이나 재산, 채권금액 등을 알아봐요. 채무자의 채무변제 능력에 따라 개인회생, 파산, 채무조정 등 해결방법을 결정하는 거예요. 무조건적으로 채권을 소각하고 대위변제하는 게 아니에요.

한 채무자의 경우에는 채권자가 찾아와서 원금이 300만 원이니 총 800만 원을 달라고 했대요. 그걸 들은 채무자가 500만 원까지는 빌릴 수 있다고 하니까, 그 말에 채권자가 더 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더 내놓으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채무자가 주빌리은행을 찾아와서 조회해 봤더니, 원금은 겨우 200만 원이었어요. 게다가 이분이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으로 갚은 것도 있어서 계산해보니까 사실상 원금은 70만 원 정도였던 거죠. 그런데 채권자는 채무자가 모를 줄 알고 원금을 부풀려 높게 부른 거예요. 그래서 저희 같은 금융복지 상담단체가 필요하죠.

기업과 상호협력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채무를 다 갚은 채무자라도 채무가 오래되다 보니 빚을 다 갚았다고 생각할 때 한 건이 남는 경우가 있어요. 채무자는 그 한 건의 채무 때문에 삶을 포기해야 하나 하다가, 주빌리은행에 연락하거든요? 그때 주빌리은행이 그 채무에 대해 채권자와 협상에 나서는 거예요.

채권자에게 전화하면 ‘너 뭔데?’ ‘무슨 자격인데?’ 이 말 먼저 나오죠. 옥신각신하다가 채무자가 갚을 능력이 안 되니, 우리도 시민단체라서 돈이 없지만 그래도 협상에 응해준다면 주빌리은행 후원금으로 대위변제라도 하겠다고 해서 해결한 적 있어요. 그 사례를 가지고 제윤경 대표님이 SK에 사회공헌금 연결을 해주었어요. SK라는 회사에서 주는 사회공헌금 1,000만 원이 기업 입장에서는 작을지도 모르지만, 저희한테는 아주 큰 힘이 돼요. 그래서 마지막 한 건의 채무 협상 금액이 100만 원 이하일 때 사회공헌금으로 채권 대위변제를 하도록 했어요. 채무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죠.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 ⓒ 남궁경상 포토그래퍼 boriwoll@hanmail.net

채권 소각뿐만 아니라 채무자 상담 및 교육도 함께 진행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 이유는?

주빌리은행을 거쳐 간 채무자에게 금융복지상담사 양성과정을 권유하고 있어요. 직접 경험해 봤기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채무자들의 이야기를 더 잘 들을 수 있거든요. 처음에 채무자로 상담했던 분 중에 지금 지자체 금융복지상담사로 활동하시는 분도 있어요.

꼭 금융복지상담사로 취업하지 않더라도 교육을 추천하는 이유는 교육을 듣고 누군가에게는 금융복지 상담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도움을 연결해 주는 고리가 될 수도 있고요. 후원금이 더 충당되면 교육을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시민단체 주빌리은행이 활동하면서 한계가 있다면?

주빌리은행이 시민단체다 보니까 공적으로 즉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아쉽죠. 통신비를 연체하면 통신채권이 생기잖아요? 최근 한 신용정보사에 소멸시효가 완성된 한 채무자의 통신채권을 협상해서 추심하지 않기로 했는데, 갑자기 통신사에서 통신채권을 회수하더니 다른 신용정보사에 배정한 거예요. 그러면 해당 채무자한테 다시 추심이 들어가는 거죠. 이 문제에 대해 금융감독원에 문제를 제기했더니 금융사 채권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는 식의 답변이 왔어요. 시스템의 문제를 논의할 곳이 없다는 점을 마주할 때마다 한계에 부딪혀요.

다가오는 금융환경 변화에 따른 주빌리은행의 내일은?

금융환경 변화 속에서 주빌리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채권시장이 5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어요. 부실채권 시장도 많이 정리되고 있고, 좋은 정책도 많이 나오고 있어요. 신용회복위원회든 금융위원회든 일을 잘하고 있다면 칭찬도 하고, 안 하고 있는 건 짚어준다면 더 잘할 수 있겠죠? 저희가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은데 운영비와 후원금이 적다 보니 활동에 한계가 있어요. 작년에는 저희 인원이 3명이었는데, 후원금이 바닥이라 해야 할 일을 다 못 할 정도로 어려웠어요. 지금은 채무자들이 요청하는 상담만 하고 있는데 더 적극적으로 상담하려면 인력이 필요해요. 다양한 곳에서 후원금이 들어온다면 인원을 늘려서 상담이나 감시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요.

금융복지 환경 변화를 위해 정부, 금융사, 개인이 노력해야 할 점은?

누군가는 정부의 세금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채권 소각을 반대해요. 그런데 채권 소각에는 세금이 들어가지 않아요. 그저 방치되고 실익이 없는 채권을 소각하는 것이고, 있어 봐야 채무자 발목만 잡을 뿐이에요. 정부가 채권 소각에 세금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을 알리고, 채무를 빠르게 탕감하고 정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내면 채무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겠죠. 대출할 때 금융사에도 책임을 묻는다는 걸 제도적으로 명확히 하면 대출 과정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연체가 발생했을 때 채권자와 금융사, 채무자 사이의 협상을 주도해서 유예해주는 등 실효적인 방법을 고민하면 좋겠어요. 현재는 신용회복위원회를 거치지 않으면 방법이 전혀 없거든요.

개개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해요. 관심이 이어지면 사회는 변화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 타인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한 번만 고민해준다면, 힘겨운 상황에 놓인 채무자들이 주빌리은행을 찾기 쉬워지지 않을까요?

주빌리은행을 찾아온 한 채무자는 사채업자에게 몰려서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고, 주빌리은행을 알고 있던 기자는 그 사실을 주빌리은행에 전해줬어요. 문제가 생기면 입 밖으로 문제를 계속 내뱉으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이런 일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거든요.

공통질문 ‘내가 경험한 연결의 순간’
인터뷰가 2시간 반을 넘어 마지막으로 ‘연결’의 의미를 물었을 때, 유순덕 상임이사는 주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며, “결국엔 사람이고, 사람이 곧 연결고리다. 연결은 주빌리은행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빚’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빛’이 된다. 유순덕 상임이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점과 같은 빛을 찾는 사람이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이어져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여담
오전 10시, 사무실을 방문해 유순덕 상임이사를 찾았다. 우선 인터뷰 기사에 담길 개인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하니, 주빌리은행 단체 사진을 찍으면 안 되겠느냐고 먼저 묻는다. ‘모두 사랑’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는 그의 부탁에 못 이겨 단체 사진을 싣는다. 인터뷰 도중 자신이 상담한 채무자의 사연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빚으로 고립된 채무자에게 따뜻한 손을 건네는 그와의 인터뷰가 소중하고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