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느끼며 ‘울어보는’ 체험
몸으로 느끼며 ‘울어보는’ 체험
  •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 승인 2008.12.0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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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목표와 경쟁에 ‘창의’는 사라진다
여럿이 몸으로 부대끼는 진한 경험 늘어야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촛불집회를 계기로 청소년들의 자발적 성장 체험을 돕자고 했고, 그 자발적 성장이란 “맘대로 해봐!”라고 되는 게 아니라 어떤 제약과 한계 안에서 몸으로 진하게 깨우치며 비로소 된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그 대표적 사례로 프랑스의 쇠이유협회와 스페인의 벤포스터 마을학교를 소개했지요.

지난번에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주로 대안학교 중심으로 퍼져가고 있다고 살짝 언급을 했었는데요, 아쉬운 것은 입시 중심의 공교육 체제에 있는 대다수 십대 청소년들에겐 교육의 맥락에서 이런 프로그램들이 보급되고 제대로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라는 점이지요.

경험으로 삶의 의미를 체험하다

그럼에도 조금 다행인 것은 인문계 고교 등을 졸업한 청소년들 중에서 대학에 간 다음에라도 기업이나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국토순례 도보여행이나 동북아평화 걷기대회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난생 처음 그런 눈물을 흘려본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례가 꾸준히 늘어나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이들은 몸과 마음에서 일치된 삶의 의지와 의미를 말이 아닌 경험으로 처음 느껴보는 것이에요. 이건 진짜다, 하는 실감 말이지요.

심지어는 가끔 TV 뉴스를 통해서 접하는데요, 서로 냉랭했던 부모 자녀가 해병대 체험을 하며 온갖 몸 고생을 같이 하고는 서로 껴안은 채 엉엉 우는 장면도 보게 됩니다.

핫 세대 어른들은 이상하게 볼지 모르겠군요. 자신들은 살려고 어쩔 수 없이 겪었던 그 몸 고생을 지금은 돈 내고 체험하니 말이에요. 쿨 세대의 부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다른 애들은 방학 중에도 새벽 2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데, 아무리 뜻이 좋아도 그런 데 시간을 썼다가 뒤처지면 어쩌나 하는 셈부터 할까요?

아니면 그런 것은 부모 자녀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비행 청소년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내 자녀는 아니다, 이렇게 생각할까요?

혹시 그렇다면 2007년 7월2일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박진영 씨가 한 말로 대신할게요. “학교에서 판에 박힌 수업, 방과 후에도 학원수업, 과외를 똑같이 사는 우리 애들에게 뭘 기대하겠나? 지금 교육은 창의력을 말살하고 있다. 나보고 최소한 예술 부문에서 미래를 향해 투자하라고 한다면, 학교가 아니라 소년원을 선택하겠다.”

예술 부문만이 아니지요. 기업들도 창의적 인재가 절실하다는 것을 실감할수록 박진영 씨와 같은 이유로 “똑같이 사는 우리 애들에게 뭘 기대하겠나?” 하고 반문할 거예요.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판박이 같은 인생엔 ‘내 것’이 없어

1등, 명문대, 학점, 토익과 토플 점수, 해외 연수, 영어회화, 각종 자격증, 외모 등등. 이런 경쟁만 하느라 자신만의 진짜 경험은 없어지고 판박이처럼 똑같아진 젊은이들에게, 부모가 계속 매니지먼트를 해준들 뭐가 나아질까요?

만일 부모가 자녀의 취직, 업무, 휴가, 결혼, 이혼도 대행한다면, 이는 자녀를 망치기로 작정하고 부모 인생도 같이 멍드는, 한사코 피해야 할 최악의 상황일 거예요. 그 대신 십대 때 나와 다른 몸들과 부대끼면서 울어보는 경험을 하게 하면, 그것이 자녀도 부모도 다 잘 되는 길인데 말이지요.

사실 몸으로 느끼는 것, 그중에서도 여럿이 함께 몸들로 부대끼며 느끼는 것은 동양 사회의 공동체 문화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다 있었던 것이에요. 7~8명이 되는 대가족이 한 방에서 한 이불을 덥고 자보는 경험은, 흥부의 가난한 집에서 불가피했던 처세가 아니라, 근대 서양 사회의 경험으로 치면 여럿이 캠핑을 해보는 그런 문화였던 것이지요.

우리는 가족끼리, 동네 사람끼리 그걸 경험했던 것이에요. 서양의 경우 일찍부터 개인주의 사회가 되었고 더 이상 가족이나 동네 단위로 여럿이 몸으로 부대끼는 문화가 불가능해지고 나니, 보이스카웃이다 뭐다 해서 서로 가족이나 동네 사람이 아닌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다른 빌미로 한데 묶어서 캠프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고요.

자, 어찌 되었든 결론을 대신해 말하자면 이제라도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의 자발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여럿이 함께 몸끼리 부대끼는 진한 체험’을 학교에서든, 가족 단위로든, 이웃끼리로든, 아니면 청소년 단체나 기관에서든, 자꾸 좀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촛불집회가 놀랍고 대단했던 것은 그런 프로그램을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우리 십대 청소년들이 도심 광장에서 그걸 먼저 실현해보인 데 있거든요. 이젠 그 경험이 사라지기 전에 청소년들의 일상에서 더욱 확산되도록 삶의 현장 모든 곳에서 어른들이 적극적으로 거들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