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법안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언박싱] 이 주의 법안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8.23 08:38
  • 수정 2021.08.23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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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중대재해네트워크 #전문가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1월 27일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국회통과 직후 많은 사람들은 시행령에 주목했습니다. 법의 많은 부분을 시행령에 위임하여 디테일에 따라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이 될지 아니면 반쪽짜리 법안이 될지 판가름 날 것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 12일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안을 입법예고 했는데요. 예상과 다르지 않게 노사 모두의 맹렬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같은 내용을 두고도 한 쪽은 과도한 처벌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다른 한 쪽은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전문가의 고견이 중요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정부의 시행령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19일 중대재해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이하 중대재해네트워크)는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의 시행령안을 비판했습니다. 시행령은 상위 법률로는 세세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사안을 결정하는 법인데요. 비판의 요지는 ‘디테일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디테일이 없고, 디테일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서는 과도하게 디테일했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23일까지 시행령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기로 한 가운데, 전문가들이 바라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안의 비판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봤습니다.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로비1층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사진전 '오늘도 다녀오지 … 못했습니다'에 찾은 관람객이 현수막 앞을 지나가고 있다.<br>ⓒ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참여와혁신DB

이 주의 법안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령으로 위임한 조항은 총 9개입니다. 크게 쟁점인 사항으로는 ▲중대산업재해 중 직업성 질병에 대한 정의 ▲법의 적용 대상 중 공중이용시설 범위에 대한 정의 ▲중대재해 관련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등이 있습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어떤 직업성 질병에 걸렸을 때,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대상이 되는지’, ‘어떤 공중이용시설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대상이 되는지’,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원·하청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는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가 쟁점입니다.

①직업성 질병의 범위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2항다목은 직업성 질병으로 인한 중대재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급성 중독 등 시행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이 1년 내 3명 이상 발생해야 중대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시행령안이 정하는 직업성 질병이 과도하게 한정적이라는 지적입니다. 정부의 시행령안은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일시적으로 다량의 염화비닐·유기주석·메틸브로마이드·일산화탄소에 노출되어 발생한 중추신경계장해 등의 급성 중독 등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하는 직업성 질병자의 질병에 대하여 규정”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급성 중독에 해당하는 유해인자는 24가지에 한정돼 있습니다. 모법에서 급성 중독을 언급하긴 했지만 시행령에서는 급성 중독을 포함해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확대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산업현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수가 어림잡아 4만 5,000여 종에 달하는 점을 고려할 때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입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중대산업재해인자가 논란의 여지가 없어야 형사처벌이 가능하고, 특정 질병요인이 업무로 인한 것인지 명백해야 하는 등 인과관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유사한 법인 산재보험법 시행령 별표3에서는 ▲인과관계 규명이 명확하고 ▲예방가능하며 ▲질병이 미치는 영향이 중대함 등을 고려하여 직업성 질병 목록을 더 폭넓게 정의했습니다. 이미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산재보험법 시행령에서 인과관계를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직업성 질병을 구체화했다는 것입니다.

한 해 추락 사망사고 건수와 과로사 사망사고 건수가 500여 건으로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시행령안에서는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에 포함되기는 어렵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서도 산재보험법 시행령에 준하는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중론입니다.

김현주 중대재해네트워크 공동대표(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중대산업재해에 직업성 질병자는 산재보험법에서 제시한 질병 등을 모두 포함하여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로 정의해야 한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검토해야 할 인과관계는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직업성 질병과 사업주의 안전확보의무 위반사이의 인과관계를 말한다.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한 내용이 산재보험법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②공중이용시설의 범위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3호와 4호는 각각 중대시민재해와 공중이용시설에 대해 정의하고 있습니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를 말하는데, 중대산업재해가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중대시민재해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영향을 주는 재해입니다. 올해 6월 9일 17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광주 학동 해체공사 붕괴사고가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시행령안에 따르면 광주붕괴사고는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는 공중이용시설의 범위를 협소하게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시행령안 제3조1~4항은 도로교량, 철도교량, 도로터널, 철도터널, 주유소 및 가스충전소, 종합유원시설 놀이기구 등 6개 시설과 준공 후 10년이 경과한 시설로 공중이용시설을 규정했습니다. 이외의 장소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중대재해네트워크에 참여한 신희주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 노동위원장은 “중대시민재해 관련 공중이용시설의 시행령안에서 공중이용시설의 정의에 공중을 상대로 교육, 강연, 공연 등이 행해지는 현장과 인접 장소, 건설 또는 철거공사장 및 인접장소로서 공중의 이용에 사용되는 장소, 그 밖에 재해발생 시 생명신체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장소를 추가해야 한다”면서, “현재 시행령안을 적용하면 판교 환풍기 사고 참사, 광주 학동 건물 참사, 구미 불산 누출사고 등이 다시 발생해도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24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에서 ‘구의역 김 군&nbsp;참사 5주기 추모 및 생명안전주간 선포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NO MORE DEATH”라고 적힌 선전물이 바닥에 놓여 있다.&nbsp;ⓒ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mskang@laborplus.co.kr
ⓒ참여와혁신DB

③사업주의 의무 규정

중대재해처벌법 4조는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사업주의 의무규정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4조1항)와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4조4항)은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사업주가 안전·보건을 전담할 조직을 만들고, 실질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 예산을 배정하라는 취지가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시행령안에서 4조1항은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4조4항은 “점검 지시 및 결과 보고, 보고 받은 내용에서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의무”로 구현됐습니다. 앞서 지적한 직업상 질병과 공중이용시설의 범위가 과도하게 디테일을 추구하여 적용 범위가 축소됐다면, 사업주의 의무 규정은 너무나 성기게 구현했다는 것입니다.

중대재해네트워크는 해당 시행령안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수권한 규율대상과 목적의 범위를 임의로 축소한 것으로 위법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모법의 취지를 시행령이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최정학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은 “시행령 제4조와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중대재해법 제4조1항1호에 규정된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의 내용이 빠져 있다”면서,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단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수식하는 예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시행령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재해예방에 필요한 일반적인 인력과 예산, 예컨대 위험작업의 2인 1조 원칙과 같은 내용을 시행령에 포함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더불어 중대재해처벌법 제5조는 원청의 안전 및 보건 의무를 규정합니다. 4조를 준수하라고 돼 있는데, 이는 정부의 시행령안에서 소극적인 의미로 구현됐습니다. 정부의 시행령안 제4조8항 가목과 다목은 ‘수급인의 재해예방을 위한 조치 능력과 기술의 구비 여부를 점검하고, 수급인에게 적정한 안전 및 보건 관리 비용과 수행기간을 보장’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원청의 의무가 하청업체가 시행한 안전 보건 조치에 대한 점검으로 축소됐다는 것입니다.

김민아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사무국장은 “도급인이 직접 부담해야 할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축소하여 해석될 수 있도록 정한 시행령 제4조 제8호는 삭제돼야 한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제5조에서 도급인이 종사자에게 안전보건확보를 위한 조치의무를 직접 부담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런데 도급인이 종사자에 대해 직접 부담해야 할 조치 의무를 시행령에서 정하고 있는 수급인에 대한 의무로만 한정하여 축소 해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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