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사내하청 문제, ‘자회사’는 꼼수
제조업 사내하청 문제, ‘자회사’는 꼼수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9.09 00:10
  • 수정 2022.01.1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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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사내하청으로는 ‘직접 업무 지시’ 나올 수밖에 없어
​​​​​​​논란의 현대제철 자회사 방안, 근본적 해결 될 수 없다

[리포트] 제조업 사내하청 문제, 변곡점이 온다

금속노조와 현대자동차그룹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2021년 8월 24일 ‘현대제철 불법파견 해결 촉구와 자회사 전환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현대차그룹에게 직접고용을 촉구했다. ⓒ 금속노조

장면 1. 7월 7일 현대제철은 자회사 현대ITC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ITC는 현대제철이 100% 출자한 자회사이며, 현대제철 충남 당진, 인천, 경북 포항제철소에서 근무하는 1차 사내하청 노동자 7,000여 명을 정규직 임금의 80%로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단,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취하가 전적 조건에 있었다. 이에 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크게 반발했다. 현대제철당진비정규직지회는 현대제철을 상대로 4차에 나누어 3,228명 규모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중에 있었고, 순천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심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현대제철의 자회사 방안이 일방적일 뿐더러, 불법파견 문제를 꼼수로 해결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자신들의 사용자는 현대제철이지 현대ITC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8월 23일 전면 파업에 나섰다.

장면 2. 7월 8일 대법원은 금속노조 현대위아평택비정규직지회가 집단으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불법파견 사건과 관련해 자동차부품사에서 대법원 판결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번 판결은 현대위아 평택2공장이 ‘100% 사내하청 공장’이었다는 점에서 파장이 컸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공간에서 업무를 수행하지 않아도 ‘직접적인 업무지시’가 있다면 불법파견이라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약 1년 전, 현대위아평택비정규직지회는 현대위아가 독립회사(현대위아 지분 일부 출자)로 전적하든지 혹은 울산공장으로 근무지를 변경하라고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현대위아평택비정규직지회는 독립회사로 전적할 시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취하 각서를 받은 점을 들어 불법파견 리스크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왼쪽 바퀴는 정규직이, 자동차 오른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조립한다’는 차별로부터 시작된 제조업 사내하청 문제는 변곡점에 다다른 듯하다. 비정규직으로만 운영되던 현대위아 평택2공장이 불법파견으로 인정받은 것은 ‘공정 분리’를 통한 불법파견 리스크 해소가 더는 어려워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 가운데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서 자주 등장했던 ‘자회사’라는 말이 민간영역에서도 나왔다.

적법도급과 불법파견 가르는
‘직접 업무 지시’

사업주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은 직접고용, 도급, 파견 세 가지로 나뉜다. 직접고용은 노동자를 고용하여 직접 일을 시키는 방식이다. 도급은 일의 일부를 다른 사용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여기서 원청 사용자(도급인)는 하청 사용자(수급인)에게 직접적인 업무 지시를 할 수 없다. ‘일의 완성’을 맡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견도 도급과 유사한 구조이지만, 파견 사용자의 직접적인 업무 지시가 가능하다. 단 파견근로자보호법에 따라서 파견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업무는 32개로 제한되고, 기한도 최대 2년이다.

여기서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이 발생한다. 위장도급은 도급계약을 맺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하청 사용자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고 원청에 종속돼 있는 경우를 말한다. 하청업체의 사용자성이 부정되기 때문에 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하는 의무가 부과된다.

불법파견은 파견이 허용되지 않는 업종에서 파견근로관계로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원·하청 간 도급계약을 맺고 있더라도, 원청 사용자가 하청 노동자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할 경우 파견근로관계로 간주한다. 이 경우 해당 업종의 파견허용 여부에 따라 불법파견이 결정된다. 적법도급과 불법파견을 가르는 핵심은 원청 사용자가 하청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지시를 하는지 여부다.

분리되기 어려운 흐름공정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직접 업무 지시

완성차 제조 공정은 크게 프레스-차체-도장-의장 공정을 거친다. 이를 직접 생산 영역이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자동차의 핵심부품인 엔진, 범퍼를 제작하는 공정과 조립 부품을 순서에 맞게 정리하고 이를 공급하는 생산관리업무, 출고 전 자동차의 상태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업무 등이 있다. 이를 간접 생산 영역이라고 부른다.

직접 생산 영역과 엔진과 범퍼 공정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인 최병승 씨가 2005년 3월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이후 점진적으로 불법파견이 맞다는 판결이 나왔다. 2016년 3월 15일 현대차, 금속노조, 사내하청대표단, 금속노조 완성차지부, 비정규직지회가 직접 생산 영역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특별채용’ 형식으로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현재 완성차 공정의 간접 생산 영역에서 불법파견 시비를 다투고 있다. 생산관리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원청(정규직), 1차 하청업체, 2차 하청업체 등으로 고용형태가 다양하다. 2차 하청의 대표적인 사례로 현대차와 도급계약을 맺은 현대글로비스와 다시 도급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있다. 김현제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전 지회장은 “주로 현대글로비스 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투쟁을 하고 있다”면서, “정규직 노동자도 똑같이 생산관리업무를 한다. 사람만 하청이냐 아니냐 그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윤상섭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직접 생산 영역과 간접 생산 영역을 가르는 것보다 완성차업종이 흐름공정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상섭 지회장은 “컨베이어 시스템에서 부품을 공급하지 않으면 라인은 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의 업무가 차를 생산하는 데 직접적이지 않다는 말도 어폐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상섭 지회장은 간접 생산 영역에 있는 1, 2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수시로 정규직 노동자의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반장을 통해서 무전기로 업무지시를 하죠.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고요. 조반장의 지시를 카톡방을 통해 다시 작업지시를 전달해요. 그런 증거들은 차고 넘쳐요. 지금도 현장에 들어가면 정규직 사원들이 이거 이렇게 놔두라고 지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단적으로 자동차 라인이 섰을 때 우리는 운반을 할 수 없어요. 천천히 넣어 달라는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죠. 그런 구조이기 때문에 작업지시를 받지 않는다고 볼 수 없어요.”

자동차 부품사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은 2000년대부터 자동차 부품 모듈생산 방식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전에는 완성차 공장에서 모든 부품 조립을 수행했다면, 모듈생산 방식에서는 기능적 유사성을 띠는 부품을 한 덩어리로 묶고 해당 공정을 분리하여 생산한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위아가 대표적인 모듈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다.

자동차부품사의 고용구조는 사내하청 비율이 월등히 높다. 현대위아는 직·간접적으로 고용된 인원 3,100여 명 중 2,000명이 사내하청 소속이다. 하청 노동자 중심으로 생산이 이뤄지는 것이다. 김영일 지회장 역시 원청의 계획에 따라 생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동차업계의 구조상 사내하청업체의 자율성은 미미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직접적인 업무지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내하청업체는 완성차에 맞춰서 생산물량이 정해지잖아요? 하청업체에서 계획을 짰다고 해도 완성차에서 생산 물량이나 서열이 변동했다면 그 계획대로 생산할 수 없잖아요? 원청이 ‘바꿔라, 이거를 생산해야 한다’고 하면 계획표가 수정돼서 내려와요. 이런 부분들은 하청업체가 할 수가 없는 부분이잖아요?”

제철소의 공정도 자동차 못지않게 유기적인 연속성을 가진다. 제철소는 일반적으로 제선-제강-후판-열연-냉연 등의 공정을 거친다. 각 공정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 원료나 반제품을 수송하는 업무도 있다. 여기서 정규직은 설비를 운용하는 등 컨트롤 센터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비정규직은 컨베이어 벨트, 용광로 등 각 공정에서 실제 생산을 담당하거나 각종 지원업무를 수행한다.

제철소 역시 하청 노동자 중심의 생산구조다. 민주노총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2019년 5월 발표한 ‘대기업 비정규직 실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포스코의 사내하청 노동자 수는 1만 5,496명(정규직 대비 90.7%), 현대제철은 1만 2,847명(정규직 대비 112%)에 달한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하청업체 일하는 A씨는 “원청의 지시를 100% 받는다고 봐야한다. 포스코에서 자체 개발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에 의해 모든 것이 움직여야 한다. 또한 설비나 장비도 모두 포스코가 가지고 있다. 당연히 포스코의 지시를 받지 않고 일할 수는 없다”면서 “가령 어떤 공정이 취소됐거나 트러블이 났을 때는 전체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원청사의 지시를 받지 않고 하청업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대제철 순천공장 노동자들이 현대제철에 제기한 근로지지위확인소송에서 광주고등법원은 2019년 9월 20일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내협력업체가 작업시간, 작업방식, 작업속도, 작업장소 등에 관하여 피고(현대제철)의 생산공정의 흐름과 연동되는 범위를 벗어나 독자적인 방식으로 일의 결과만을 완성하도록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재량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속노조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조합원들이 2020년 7월 21일 현대위아 평택 1공장 앞에서 자회사(독립회사) 전적을 거부하며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 금속노조
금속노조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조합원들이 2020년 7월 21일 현대위아 평택 1공장 앞에서 자회사(독립회사) 전적을 거부하며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 금속노조

불법파견 소송의 전제조건,
비정규직 노동조합

제조업 중에서도 조선업은 하청 노동자 비율이 전체 인원수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그럼에도 불법파견 소송이 잘 제기되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3명이 2015년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2021년 6월 최종적으로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자동차처럼 표준화된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선주가 원하는 선박을 건조한다는 수주산업의 특성,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 아닌 특성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조선업에서는 사내하청업체가 하나가 블록을 통으로 만들어서 납품하는 방식이다. A하청업체가 만든 블록, B하청업체가 만든 블록, C하청업체가 만든 블록을 D하청업체가 다시 조립한다”면서, “그렇기에 원청 조선소에서 하청업체에게 블록을 만들어달라고 도급계약을 했다는 말이 먹힌다. 원청에서도 2000년 초반 이후 직접적인 업무지시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김춘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직사업부장은 “선박을 하나 만드는 데 소요되는 기간이 길고 표준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조선소의 공정 관리, 인력 투입 계획 등 하나에서 열까지 원청의 지시에 의해서 이뤄진다. 자동차, 철강, 조선이나 근본적인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불법파견의 소지가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조선소에서도 원청의 지시에 의해 하청 노동자들이 일한다는 것이다. 이김춘택 조직사업부장은 불법파견 소송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조직 여부라고 지적했다.

“제일 큰 원인은 노동조합의 조직 여부예요. 불법파견이라고 하는 게 보통은 소송 중심으로 진행되잖아요? 소송은 결국 자료 싸움인데 현장에서 노동조합이 자리를 잡지 않으면 확보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요. 현실적인 문제죠. 자동차도 하청노동조합이 생기면서 불법파견 소송이 진행됐어요. 노동조합이 자리를 잡고 있느냐 아니냐가 제일 큰 이유예요. 아직 조선하청노동조합은 자리를 잡지 않아서 소송을 할 수 있을 만한 내용적 축적이 안 돼 있어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은 형사소송이 아닌 민사소송이기 때문에 입증 책임이 전적으로 소송당사자에게 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까지 길게는 10여 년이 걸리고, 현장에서 수시로 업무 방침이 변경돼 개인으로서는 증거 확보가 한계가 있다. 또한 법원에서 불법파견으로 인정받을 만한 증거도 사업장에서 줄어들고 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는 B씨는 이렇게 말했다.

“20년 전에는 원청과 거의 같은 일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고로 쪽 일부를 제외하면 원하청 직원들이 현장에서 마주치지 않아요. 원청사에서 불법파견 관련한 요인을 많이 없애고 있는 거죠. 원청 직원이 작업하는 곳은 출입카드를 찍고 들어갈 수 있게끔 차단을 해놨어요. 15년 전에는 포스코 직원이 직접 무전기로 관제를 봤었어요. 그런데 불법파견 문제가 생기니까 하청업체를 두고 대리 관제를 보게끔 했죠. 지금은 PD라고 해서 태블릿 PC 있잖습니까? 거기다 시스템을 띄워서 실시간으로 지시를 하죠. 그 시스템은 포스코에서 컨트롤하고요.”

이는 비단 제철소의 문제만은 아니다. 윤상섭 지회장은 완성차의 간접 생산 영역에서도 불법파견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소지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하청업체 사무실이 사내에 있었는데, 2~3년 전부터 사외로 사무실을 빼고 사업장 주소지도 옮기고 있어요. 또 원래는 사내에서 자재를 서열하고 공급하는 업무를 했는데, 지금은 서열은 밖에서 사외 직원들이 하고, 사내 직원들은 운반하는 작업을 해요. 그런데 서열하는 작업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정규직이 맞다 아니다 따지는 게 웃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50% 정규직이고 50%는 정규직이 아닌가요? 이런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이렇듯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불법파견 소송의 전제조건이다. 다만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활동이 반드시 불법파견 소송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실제로 금속노조 현대모비스지회는 전략적으로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불법파견 소송 제기는 사측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에게도 생존 여부를 다투는 사안이라는 게 정유림 금속노조 정책국장의 설명이다. 정유림 정책국장은 “불법파견 소송에 들어가는 순간 노동조합이 생존이냐 아니냐 이런 관계로 치닫게 된다. 그렇기에 노동조합 확대 강화를 우선 과제로 설정한 측면이 있다”며 “또한 운동적 관점에서 불법파견 소송은 정규직을 쟁취하는 것보다는 법원 판단에 기대는 측면이 있다. 반드시 불법파견 소송이 답이 아니라는 결론이 있었다”고 밝혔다.

자동차부품사에 조직된 비정규직 노동조합 중에서는 현대위아평택비정규직지회만 불법파견 소송에 나섰다. 김영일 지회장은 “노동조합 설립 초기에 60~70명 정도가 조직됐는데, 하청업체 폐업 등으로 10여 명으로 줄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활동이라는 것이 법적 대응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노동조합을 사수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불법파견 소송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 겨냥한
현대제철의 자회사 방안

따라서 현대제철에서 내놓은 자회사 방안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개선보다는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를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법파견을 제기하는 당사자가 사라지면 불법파견 소송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먼저 현대제철은 자회사의 임금수준을 정규직의 80%로 설정했다고 하지만, 정규직이 받는 각종 수당이 사라져 실질적으로 정규직의 65~70% 수준을 예상하고 있다. 또한 현대제철은 자회사 현대ITC로 전적할 수 있는 대상자를 1차 하청업체 노동자로 한정했다. 자회사 추진 과정도 노동조합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14개 하청업체와 계약을 종료하는 방식이었다.

이강근 금속노조 현대제철당진지회 지회장은 “불법파견 소송 진행 중인 사람들 중에 1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 가까운 미래의 리스크가 1차 협력사가 크다고 판단해서 1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자회사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현대ITC가 거대한 인력공급업체 이상이 되기는 어렵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할 지점이다. 이강근 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회사의 대표이사가 현대제철 상무예요. 운영의 독립성이나 자율성이 전혀 보장이 안 되는 거죠. 현대제철의 지시·지배 아래 놓여 있을 수밖에 없어요. 덩치만 커진 협력업체죠. 더군다나 기존 하청업체 대표들이 그대로 수평이동 했어요. 별도의 설비를 보유하고 있는 게 아니고 전적으로 인력만 제공하면서 운영을 할 텐데, 나중에 현대제철소에 일감을 줄거나 하면 고스란히 피해는 노동자가 보게 될 겁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투쟁하고 있어요.”

또한 법원에서도 2심까지 현대제철순천공장의 사내하청업체 노동자의 사용자가 하청업체가 아닌 원청인 현대제철이라고 판단한 만큼, 현대제철의 자회사가 현대제철의 사용자성을 대신할 수 있냐는 문제도 발생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직접고용이라는 조치에 자회사가 들어가느냐가 문제일 것인데, 직접고용의 범주에 들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직접고용의 범주 안에는 정규직과 동일한 형태로 가야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라면서, “공공부문에서는 무엇을 강제해야 할 의무가 없는 상태에서 자회사 방안을 추진했지만 현대제철은 법적으로 의무가 발생했다. 발생한 의무에 대해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형태로 자회사 중심으로 간 것은 편법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은 “순천공장은 하이스코에서 합병해서 현대제철에 들어왔다. 라인정리가 안돼있어서 근로자지위에 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었다”며 “당진공장은 2010년 새로 만든 제철소다. 당진은 설립할 때부터 직접운영, 협력업체 운영 부분을 명확히 나눴다. 순천공장의 일은 당진에 그대로 가져다 두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제조업 사내하청 문제 해법은?

제조업 사내하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사의 직접 고용 혹은 파견 허용 업종에 제조업을 포함하는 방안이 있다. 전자는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는 것이며, 후자는 제조업에서 비정규직을 전면적으로 사용한다는 취지다. 각각 노동계와 경영계에서 취하는 기본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노사 모두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오기 때문에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노동계에서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통해서 직접 고용을 쟁취할 수 있지만 최종 판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쉬운 과정이 결코 아니다. 경영계에서는 적법도급의 형식을 갖추더라도 파견법 위반을 제기하는 노동계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가야 한다. 홍종선 한국경영자총연합회 근로기준정책팀 팀장은 “현재는 파견법상의 업무지시와 도급상의 협력관계를 동일하게 보고 지시라고 부를 만한 행위가 있으면 불법파견으로 규율하는 구조”라면서, “도급계약상의 협력관계를 인정을 하고 그다음에 사내하도급이 목적에 맞게 잘 활용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제조업 사내하청 문제의 핵심은 하청업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자회사 방안 역시 제대로 된 사용자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종속적인 원·하청 관계 아래에서는 원청의 직접적인 업무 지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청업체가 맡은 일이 전체 생산구조 아래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제철이 설립한 자회사 현대ITC는 독립성과 자율성의 의심될 수밖에 없다. 제철소의 일부 공정을 독립하여 맡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회사의 본질적 성격이 인력공급업체, 인력파견업체라는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제조업 사내하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불안과 차별을 해소한다는 원칙 아래 적법도급이 무엇인지 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막고 고용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동의한다는 전제로 이해관계자 당사자들의 논의를 통해서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신속한 문제해결 방안이라고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