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된 현장실습생의 죽음
되풀이된 현장실습생의 죽음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10.08 20:42
  • 수정 2021.10.08 2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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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해양과학고 故홍정운 학생, 요트장에서 현장실습 중 6일 사망
현장실습 계획 내용과 달리 ‘잠수작업’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여수해양과학고 故홍정운 학생이 지난 6일 전남 여수 웅천 요트장에서 현장실습 중 숨진 가운데 “현장실습생 사망사고를 이제는 멈춰야 한다”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앞서 여수해양과학고 해양레저과 3학년 故홍정운 학생은 지난달 27일 요트장에서 현장실습을 시작했다. 6일에는 요트 바닥에 붙은 해조류·패류 제거 작업을 위해 잠수작업을 하다가 장비 점검을 위해 수중으로 올라왔다. 장비를 벗던 중 허리에 매단 납벨트의 무게로 바다에 빠진 故홍정운 학생은 신속히 구조되지 못하고 숨졌다.

해당 요트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이었고, 당시 현장에서는 故홍정운 학생 혼자 작업했다. 현장실습표준협약서 제5조에서는 기업의 의무로 “현장실습을 지도할 능력을 갖춘 현장실습 담당자를 배치하여 현장실습생의 현장실습을 성실하게 지도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현장실습에 기업 현장 교사가 동행하지 않았을 뿐더러, 故홍정운 학생이 하던 잠수작업은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고인이 18세 미만이라면 잠수작업 수행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과 근로기준법 위반이 된다. 근로기준법은 잠수작업을 18세 미만인 자가 수행하기 적합하지 않은 직종으로 정하고 있다.

현장실습생의 현장실습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의 적용을 받는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 제24조에서는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을 준용하는데, 그 중 근로기준법 제65조가 있다. 근로기준법 제64조는 “18세 미만인 자를 도덕상 또는 보건상 유해·위험한 사업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정한다. 보건상 유해·위험한 사업에는 고압작업과 잠수작업이 포함된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와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은이 8일 오전 10시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17살 여수 현장실습생의 죽음 우리는 분노하고 싸우겠습니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이에 노동시민단체들은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이사장 이상현)와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위원장 최서현)은 8일 오전 10시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17살 여수 현장실습생의 죽음 우리는 분노하고 싸우겠습니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특성화고 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현장실습을 하는 것을 원하면서도 그 실습 기업이 안전에 대한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그런데 안전을 비용이라 생각하며, 법을 위반하거나 사업주의 의무를 다 하지 않아 발생하는 수많은 산업재해는 여전히 존재하고, 사업주들은 그 책임을 온전히 지고 있지 않다”며 “현장실습 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처벌 대책이 없다면 안전한 실습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허상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전희영, 이하 전교조)도 8일 성명을 내고 현장실습제도 개선책 마련을 촉구했다. 2017년 현장실습생 故이민호 학생의 사망 이후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 제도가 사라지고, 안전관리를 포함한 ‘학습중심 현장실습’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전교조는 기업의 인식과 근로감독 없는 관리시스템은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우리 사회를 안전한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는 많았으나 실질적인 대책도, 법 개정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의 소중한 제자들이 언제까지 작업대에서, 물류센터에서, 지하철 역사에서, 아파트 외벽에서, 차가운 바다에서 목숨을 잃어야 하는가”라며 “교육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직업계고 교육 정상화 계획을 세우고, 이제 다시는 현장실습생 사망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하게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수 故홍정운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11시 여수 웅천 마리나 요트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전교조 

전남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여수 故홍정운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대책위원회에는 전교조·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민주노총 전남본부·경주S공고 故이준서 학생 사망사건공동대책위원회 등이 참여한다.

대책위원회는 8일 오전 11시 여수 웅천 마리나 요트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여전히 현장실습생을 ‘저임금 단기 노동력’으로 생각하는 기업, 실습기업 근로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관리시스템은 수십 년 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故홍정운 학생의 죽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안전하고 체계적인 교육훈련이 가능한 현장실습 참여 기업을 책임감 있게 선정하지 않는 이상 현장실습생의 산업재해 사고는 다시 되풀이 될 것”이라며 “故홍정운 학생이 현장실습을 나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제대로 된 ‘학습중심 현장실습’이 이뤄질 리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이러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참여 기업에서 현장실습을 하는 학생이 어디 이번뿐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해당 업체에 대한 철저한 수사 ▲안전조치 및 근로감독 강화 ▲5인 미만 사업장 현장실습 참여기업 배제 ▲현장실습 사업체에 대한 지도 점검 ▲유가족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 등을 여수해양경찰서, 고용노동부, 전라남도교육청 등에게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