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 완벽보다 시도를!
③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 완벽보다 시도를!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10.30 16:02
  • 수정 2021.11.26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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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및 고용 규모에 대한 부담은 내려두고
​​​​​​​지역 특성에 기반한 다채로운 ‘상생 요소’ 발굴이 중요
결과보다는 ‘과정’ … “지자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점에서 의의”

상생형 지역일자리 이야기

광주형 일자리를 시작으로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OO형 일자리’를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는 ‘일자리 사업에 왜 꼭 상생협약이 필요한지’ 고개를 갸웃한다. 기업은 ‘이 사업하다가 괜히 없던 노동조합이 생기는 건 아닌지’, 노동조합은 ‘양보할 것이 별로 없는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사업은 아닌지’ 우려한다.
그런데도 왜 계속 상생형 지역일자리일까? <참여와혁신>은 올해로 시행 3년 차를 맞은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의 배경과 의미부터 다시 짚어봤다. 이어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의 지원 절차, 심사 기준, 선정된 지역 사례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보려 한다.

지금까지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의 의미와 구체적인 신청 절차 및 평가 항목에 대해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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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왜 ‘상생형 지역일자리’인가?
② 우리도 해볼까?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

하지만 ‘수험생’ 입장에서 평가는 언제나 두려운 법. 실제로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을 준비하는 여러 지자체에서는 “영세업체가 많아서 투자 규모를 맞추기 어렵다”, “앵커기업인 대기업의 투자가 필요한 게 아니냐”, “상생 요소를 발굴하기 힘들다”, “기업 간 밸류체인을 형성하기가 어렵다” 등 각기 다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은 처음부터 고도의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박은경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과 서기관은 “정부의 의도는 상생형 지역일자리 선정 기준을 엄격하게 가져가기보다는 더 많은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례가 나오길 희망하고 있다”며 “지역에서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 추진에 의지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면, 시작단계에서 불충분하더라도 가져가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번엔 사업을 준비하는 각 지자체가 추진 상황을 점검할 수 있도록 상생형 지역일자리로 선정된 사례들의 ‘핵심 요인’을 짚어보려 한다.

투자‧고용 규모
‘부담’ 내려놓기

현재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에 선정된 지역은 총 5곳이다. 2020년 6월 ‘제1호 상생형 지역일자리’로 광주가 선정됐다. 이후 강원 횡성과 경남 밀양(20년 10월), 전북 군산과 부산(21년 2월)이 차례로 선정됐다.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투자 및 고용 규모 등 정량적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여기서 지자체는 광주의 사례처럼 ‘대기업 투자’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정량적 기준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투자와 고용 규모만 집중하다 보면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과 일반 일자리 사업 간 차이점을 놓칠 수 있다.

2020년 10월 20일 경상남도는 밀양형 일자리가 상생형 지역일자리에 선정됐음을 밝혔다. ⓒ 경상남도
2020년 10월 20일 경상남도는 밀양형 일자리가 상생형 지역일자리에 선정됐음을 밝혔다. ⓒ 경상남도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일선 지역에서는 굳이 상생형 지역일자리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 상당히 많다. 기업에서도 어차피 투자를 할 건데 굳이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 있다”면서 “상생형 지역일자리는 지역 내 주체들이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 쟁점이 된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과정에서 도출된다. 이에 관한 내용을 담은 것이 바로 상생협약”이라고 말했다.

서두원 산업통상자원부 지역경제진흥과 사무관은 “3년 내 200억 원 이상의 투자와 100명 이상의 고용이라는 다소 가볍지 않은 기준을 만든 것은 상생형 지역일자리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서 “광주의 사례를 본다면 현대차 등 대기업이 관여돼 있고 투자금도 5,000억 원이다. 대규모 투자도 좋지만 상생 요소가 충분히 담겨있고, 지역에서 노력과 의지가 잘 표현된다면 충분하다”고 밝혔다.

횡성형 일자리의 경우 완성차 기업인 ‘디피코’를 중심으로 한 7개 기업이 총 741억 원가량을 투자할 예정이다. 밀양형 일자리는 2025년까지 총 투자금이 3,403억 원에 달하는데, 26개 중소기업이 힘을 모은 결과다.

왜 ‘우리 지역’에
상생형 일자리가 필요한가

5개 지역의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은 해당 지역마다 구체적인 내용과 추진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일자리 모델이 지역에 기반했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다. ‘왜 우리 지역에서 해당 일자리 모델이 나왔는지’에 대한 답이 탄탄하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주체들의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다. 김주일 한국기술교육대학교 테크노인력개발전문대학원 교수는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준비하는 지역에서) ‘우리 지역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사실 부족하다”고 이야기했다. 

군산의 경우는 2017년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철수, 2018년 한국지엠 군산공장 철수로 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일정 부분 형성돼 있었다. 자칫 무력감과 패배감으로 흐를 수 있는 상황에서 ‘상생형 지역일자리로 돌파해보자’는 공론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김주일 한국기술교육대학교 테크노인력개발전문대학원 교수는 “군산에서 공론화가 잘 이뤄졌다. 청년, 청소년, 한국지엠 해고자 등 군산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이런 일자리가 생기면 군산에 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노사 분쟁이나 갈등으로 논의가 흐르지 않을 수 있었다”며 “공론화를 통해서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과를 내기까지의 계기를 공론화를 통해서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2019년 1월 31일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식 현장 ⓒ 청와대

광주도 투자이행까지 지역 청년 인재의 외부 유출에 대한 문제의식를 공유하고 있었고, 일찍부터 ‘좋은 일자리’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 왔다. 2016년 7월 ‘더 나은 일자리 위원회’에서 도출한 기초협약, 2018년 10월 광주시‧노동계‧현대차 등이 3차 원탁회의에서 마련한 협약서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지역 노사민정 주체들의 대화는 상생형 지역일자리 선정에서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필수적이다. 서두원 사무관은 “노사민정협의회의 동의나 협의 없이는 추진 자체가 안 되도록 상생형 지역일자리 선정 체계가 잡혀 있다”면서 “형식적으로 노사민정 소통을 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내실 있는 소통을 진행했는지 평가할 때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다채로운 ‘상생 요소’
발굴 필요해

일선 지자체들은 지역 경제 주체들 간 대화가 어려운 과제라고 토로한다. 노사민정 각 주체를 특정하는 것부터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노동조합이 없는 중소‧영세기업과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논의할 경우 “노동조합을 만들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동계의 이해대변 주체가 반드시 노동조합이 돼야 하는 건 아니”라, “노동조합이라면 좋지만 지역의 누구라도 일정하게 진성 대표성이 있다면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군산의 경우는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철수함에 따라 실질적인 당사자인 노와 사가 부재했다. 김현철 군산대학교 융합기술창업학과 교수는 “군산은 노사의 대화로 문제를 풀어보자는 방법이 의미가 없었다. 한국지엠이 아예 철수했기 때문”이라고 떠올렸다.

그러나 지역에 존재하는 민주노총‧한국노총의 지역노조, 상공회의소, 경실련 등 노사를 대표하는 단체와 선제적으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는 광주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일자리’가 반드시 고임금으로 표현되지 않고, 지자체 차원의 정주 여건 개선 등으로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을 수년간 노사민정의 논의 속에서 확인했다.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 현장 ⓒ 청와대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 현장 ⓒ 청와대

더불어 상생 요소가 반드시 ‘노사 상생’일 필요도 없다. 박용철 소장은 “지역마다 상생 요소가 다르다. 어떤 지역에서는 노사 간 쟁점을 합의하며 풀어가는 게 필요하기도 하지만, 기업 내부의 조정이나 지역주민과 갈등을 풀어나가는 유형이 있을 수 있다. 노사상생만이 아니라 지역상생, 원하청 상생 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횡성과 부산이 원하청 상생에 중점을 둔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이다. 횡성은 원하청 간 이익공유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횡성형 일자리는 완성차 업체 디피코를 중심으로 6개 부품기업이 ‘협동조합’으로 묶여 있는 형태이다. 6개 부품사가 초기 리스크를 감수하고 전기차 부품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여 안정적인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이후 디피코는 영업이익의 40%를 부품사와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부산형 일자리는 코렌스EM을 중심으로 협력업체 20여 개가 뭉친 형태다. 코렌스EM은 전기차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인 ‘구동유닛’을 생산할 예정인데, 해당 기술을 협력업체와 공유하는 것이 부산형 일자리의 주요 내용이다.

밀양은 지역주민과 상생을 도모한 사례다. 밀양이 유치하고자 했던 뿌리산업이 환경 문제를 야기해 지역주민의 반대가 오랜 기간 상당했다. 이에 대해 밀양시와 입주기업들이 책임감 있게 환경문제를 다루겠다는 약속으로 밀양형 일자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추진하는 지역들이 광주형 일자리를 따라가려고 있다. 올해는 업종 다변화가 일부 이뤄졌다”며 “지역별 업종별 규모별로 같은 잣대로 볼 수 없다. 상생의 방식이 다르다”고 전했다.

결과보다 ‘경험’이 중요

현재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에 도전하려는 지자체를 대상으로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 일자리위원회에서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충실하게 사업을 준비했다고 해서 모두가 상생형 지역일자리에 선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역일자리 사업의 목표가 이전의 일자리 정책처럼 단순히 투자 유치와 일자리 창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에서 주도적으로 일자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 시도한 경험 자체도 중요하다.

박은경 서기관은 “컨설팅 결과가 상생형 지역일자리 선정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해당 지자체에서는 다른 형태로 어떻게든 논의한 모델을 실현하려는 것 같다. 고용노동부의 고용안정 선제대응 패기지나 지역산업 맞춤형 인력양성사업으로 방향 전환을 하기도 한다”면서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 준비는) 지자체가 지역 일자리 정책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지자체가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의 의미를 인식하면서 이를 자기 주제로 삼고 가야 한다. 사회적 대화의 관행과 의미를 체감하면서 더 심화시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이 보다 독자적인 사업으로 자리 잡도록 하고 이에 걸맞게 책임 있는 인력과 자원 배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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