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②] 산업전환 거버넌스 교통정리 필요하다
[커버스토리②] 산업전환 거버넌스 교통정리 필요하다
  • 박완순 기자,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1.11 09:17
  • 수정 2022.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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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능 못한 산업전환 거버넌스, 이해당사자 참여 부족 탓
​​​​​​​중앙과 지역의 산업전환 거버넌스 유기적 구조 갖춰야

산업전환에 더해야 할 것

<참여와혁신>은 지난 12월호에서 노동이 바라보는 산업전환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이번 1월호에서는 정부의 산업전환 대응 정책이 어디까지 왔고, 관련 거버넌스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정리했다. 이를 통해 산업전환 대응 과정의 빈 곳을 찾고 이를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모색해봤다. 노동이 산업전환 과정에 개입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과제와 형식적 수준을 넘어 더 적극적으로 정책 결정과 거버넌스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고민했다.

커버스토리② 산업전환 거버넌스의 현재

4차 산업혁명 글로벌 정책 컨퍼런스 ⓒ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4차 산업혁명 글로벌 정책 컨퍼런스 ⓒ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여전히 공전 중인
디지털 전환 거버넌스

2017년 11월 대통령 직속 위원회 중 하나로 설립된 4차산업혁명위원회(이하 4차위)는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최초의 거버넌스다. 4차위는 정부 위원과 민간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1년마다 민간 위원이 교체된다. 현재 4기까지 진행됐다. 4차위의 설립 취지는 “4차산업혁명의 총체적 변화 과정을 국가적인 방향 전환의 계기로 삼아, 경제성장과 사회문제해결을 함께 추구하는 포용적 성장”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거버넌스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4차위 1~2기(2017년~2020년)에서 위원장을 맡았던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은 2019년 10월 대정부 권고문에 “주52시간제 상한제의 일률적 적용에서 탈피해 다양한 노동 형태를 포용할 수 있도록 노동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담아 논란이 됐다.

4차위 2기 민간 위원이었던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부원장은 2019년 11월 “(해당 내용은) 대정부 권고안의 본문 및 별첨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방향이나 정책 등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 아니며, 4차위에 해당 분야 전문가로 참여한 저의 입장과도 배치된 내용”이라며, “4차위 권고안이 국민의 관심사가 아닌 경영계의 숙원과제인 주52시간 상한제 유예로 이슈가 되는 것 자체가 현재 4차위의 한계를 보여준다. 4차위가 기업의 숙원 과제를 해결해주는 기구가 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당시 4차위에서 논의되는 안건들이 주로 기술혁신과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산업혁신 및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췄을 뿐더러, 민간위원으로 참여하는 이들이 노·사·민 등 각계에서 대표성을 가지지 못하고 개인자격으로 참여한 점에서 4차위가 거버넌스 기능을 수행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4차위 4기에서도 마찬가지다. 4차위 4기에서도 민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황선자 부원장은 “지난해 4차위 4기가 데이터 거버넌스 구축을 목표로 재출범했다. 데이터에 집중하면서 노동을 비롯한 사회정책에 대해서는 논의가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사실 정부의 4차산업혁명 정책방향과 마찬가지로 4차위의 정체성도 애매모호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2018년부터 2년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위원회’(이하 디전노미)가 운영됐다. 위원회 발족의 취지는 “디지털 전환이 고용 등 경제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기회 및 위험 요인을 진단하면서 일자리의 질을 저하하지 않는 포용적 혁신성장으로 이어지게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디전노미는 2019년 2월 ‘디지털 전환에 대한 노사정 기본인식과 정책과제에 관한 기본합의’와 2020년 5월 ‘IT·SW 업종 플랫폼 경제 활성화 및 노동 종사자 지원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 9월 ‘배달노동자의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노사정 합의문’, 10월 ‘사람 중심의 스마트공장 실현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이끌어내면서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 진전된 논의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2020년 5월 27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위원회에서 'IT.SW 업종 플랫폼 경제 활성화 및 노동 종사자 지원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체결했다. ⓒ 경사노위

디전노미에 참여했던 이준희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관계법제팀 팀장은 “앞으로 디지털 전환에 대해 노사정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기초 합의로 보면 될 것”이라며, “논의 출발점부터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보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과 산업생태계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정책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기본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근로자성 문제로 노사의 인식차가 커 구체적인 내용은 담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노동계 위원이었던 송명진 한국노총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사무국장도 “대단히 추상적인 수준의 합의였다. 경사노위에서의 합의가 이후 관련 정부정책에서 형식적으로 반영되고 있다고 본다. 노사정 공동의 산업별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논의 시작 시 기본적인 공감대 이외에 디지털 전환의 종국적인 상을 바라보는 노사정의 인식이 상이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디지털 전환 관련 거버넌스로 2019년 9월 출범한 일자리위원회 산하 ‘플랫폼노동과 일자리TF’(이하 플랫폼노동TF)가 있다. 플랫폼노동TF는 2020년 7월 활동을 종료하며, 그해 말 정부에서는 ‘플랫폼 일자리 종사자 보호에 관한 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그런데 기존 노동법에 플랫폼 종사자를 포함하는 방식이 아닌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이라는 특별법 형태가 정부 대책의 골자가 되면서 플랫폼노동TF에 참여한 양대 노총의 반발을 불렀다.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이 플랫폼 종사자의 법적 지위를 노동법상 노동자가 아닌 제2의 지위를 부여한다는 비판이었다. 양대 노총은 플랫폼노동TF에서 특별법 형태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을 논의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논란 끝에 국회에 발의된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은 2021년 내 입법이 무산됐다.

폭 넓은 디지털 전환
폭 넓은 주제로 논의 필요

지금까지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거버넌스의 성과가 크지 않았던 이유에는 1차적으로 정부의 책임이 크다. 먼저 4차위를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논의가 가능한 거버넌스로 운영하지 못했고, 디전노미 합의 이후 추가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지 않았다. 더불어 플랫폼노동TF에서는 노사정이 논의하지 않은 사항을 정책화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다른 한편으로 디지털 전환이 ‘플랫폼’으로만 이해돼 논의가 폭 넓게 진행되지 못한 점이 있다. 디전노미에서 스마트 공장 관련 합의가 있었으나 이후 정책적으로 발전되지 못했다.

송명진 사무국장은 “2019년부터 스마트 공장에 대한 논의를 집중적으로 진행했다. 중소 제조기업에 디지털 기술을 빠르게 도입해 혁신을 돕는 게 필요하다는 점과 더불어 이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사람을 자르거나 무인 자동화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면서 “기술발전을 통해 노동환경 자체를 개선하는 방향이 돼야 하지만 지금이나 당시나 물량 찍어내기식으로 스마트공장 도입을 독려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는 과정에 노동자들은 배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준희 팀장도 “정부나 여론이나 디지털 전환이라고 하면 배달 라이더만 생각한다. 현장에는 로봇 설비가 스스로 생산과정 상 문제점을 해결하고 상황을 학습하는 단계에 와있다”며 “그런데 경총에는 배달 라이더를 활용하는 기업이 없고, 게임업체도 소수다보니 디지털 전환에 경총은 상관없는 것이 아니냐는 프레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사노위는 디전노미 이후 후속 논의체로 2021년 6월 플랫폼산업위원회를 설립했다. 디지털 전환을 플랫폼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더불어 디지털 전환으로 기존 제조업, 유통업, 운수업, 물류업 등에서도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며 이전에는 보지 못한 갈등이 터져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금융산업과 빅테크·핀테크 기업의 갈등이다. 이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2020년 9월 금융위원회 산하 디지털금융발전협의회(이하 디금협)가 설립돼 노사정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2020년 9월 10일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Front1)'에서 디지털금융협의회 첫 회의가 화상으로 진행됐다. 한국노총 금융노조,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및 금융권과 빅테크·핀테크 전문가 등 노사정 각계 관계자들이 디금협에 참석한다. ⓒ 금융위원회

디금협에 참여하고 있는 김경수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정책실장은 “빅테크, 핀테크 기업의 금융진출에 따라서 동일 기능, 동일 규제 요구가 나왔다”면서 “금융 관련 산업은 금융지주회사법, 은행법 등 7개 법령을 적용 받는다. 그런데 빅테크, 핀테크 기업은 현재 금융소비자보호법조차 지키지 않아도 된다.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금융산업과 유사한 상황이 서비스업종에서는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김성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 원장은 “카카오가 택시, 대리운전, 퀵서비스, 배달까지도 한다. 유통, 물류, 운수 등 산업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기존 유통업체와 물류업체, 플랫폼 기업이 유통물류에서 삼파전을 벌이고 있다”며 “그런데 주로 배송 영역,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정확히 해당되는 법이 없다. 화물운수법, 유통산업발전법,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유령과 같다”고 지적했다. 디금협과 같이 산업 간 경계를 흐리는 디지털 전환으로부터 야기된 갈등을 조정할 거버너스가 여러 산업에 걸쳐 필요하다.

한편 2021년 12월 9일 산업데이터의 생성·활용을 활성화하고 지능정보기술의 산업 적용을 촉진하는 목적의 ‘산업디지털전환촉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으로 ‘산업 디지털 전환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돼 있다. 대통령 직속 기구로 4차위가 곧 종료될 가운데 해당 위원회가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거버넌스로 역할 할 가능성이 있다.

탈탄소전환 거버넌스
민주주의 더 해야

탈탄소전환과 관련한 거버넌스는 2021년 5월 출범한 2050탄소중립위원회다. 2050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는 2020년 12월 정부가 발표한 2050탄소중립추진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연도별 탄소 감축량을 논의하기 위한 거버넌스다. 당연직 정부 위원과 대통령 위촉 민간 위원을 모두 합해 97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탄중위에서의 논의를 통해 2030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를 기존 26.35% 감축에서 40% 감축으로 상향했다. 이어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상향한 NDC를 발표했다.

탄중위에서 논의 역시 많은 문제점이 지적된다. 대표적으로 이해당사자 중 특히 노동계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9월 10일 탄소중립위원회의 의사결정구조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장인숙 한국노총 정책1본부 실장은 “탄중위가 구성되긴 했지만 경영계 위원이 상당히 많은 데 반해 노동계는 형식적으로 1명 들어가 있다.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것”이라며,“탄중위 여러 분과 중 노동계는 공정전환 분과에만 참석하고 있다. 다른 분과에도 참석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공정전환분과를 특별위원회로 재편해 상시적으로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8월 25일 탄소중립위원회 공정전환분과위원회에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참석했다. 탄중위 위원 중 노동계를 대표하는 위원은 김동명 위원장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 ⓒ 한국노총

탄중위 논의가 기술결정론에 치우쳐 있다는 점과 탄소중립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논의가 부족한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2020년 10월 정부에서 탄소중립을 선언한 이후 다음해 1월부터 6월까지 ‘기술작업반’에 의해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초안이 만들어졌다. 향후 기술 발전을 통해 탄소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가늠한 것이다.

장인숙 실장은 “큰 틀에서 기존 정부안이 바뀐 부분은 없었다”면서, “NDC와 관련하여 감축 목표에 따라 사라지는 일자리와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가 나온 바 없다. 폐쇄될 발전소 등 기술적인 수량, 수치에 관한 내용뿐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2021년 4월 산업통상부 산하 ‘탄소중립산업전환추진위원회’가 출범한 바 있다.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정유, 자동차 등 13개 업종별 위원회가 산하에 구성돼 있다. 탄중위에서의 결정사항을 정책적으로 어떻게 이행할지 논의하며, 주로 탄소중립을 위한 업종별 R&D 지원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그러나 해당 위원회에 노동계의 참여는 이뤄지지 않았다. 위원회 출범 당시 금속노조는 “정부는 2021년 2월 2일 그린철강위원회를 시작으로 반도체, 비철금속, 전자전기, 자동차, 기계, 조선 등 13개 업종에서 업종별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다”며, “지난 십 수 년 동안 금속노조가 정부와 자본에 업종별 노사정 협의체를 요구해 왔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았던 것과 매우 대조되는 행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빈틈 많은 ISC

탈탄소 전환 및 디지털 전환에 따라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에 대한 교육훈련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논의할 거버넌스가 이미 마련돼 있지만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한 현실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별 인적자원개발위원회(Industrial Skils Council, ISC)가 운영되고 있다. ISC는 “직업훈련의 수요자인 산업계가 주도하는 현장 중심의 인력양성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며, ▲산업분야에 대한 인력수요 파악 및 조사 ▲산업분야의 NCS 개발·개선 등의 역할을 한다. 근로자직업능력개발법 제22조에 근거한다.

고용노동부는 2017년 ‘인적자원개발위원회 운영규정’ 고시를 통해 ISC 규성을 사용자 및 근로자 단체와 민간 공무원 등 30인 내외로 구성하게 했다. 이에 따라 현재 정보기술, 경영·회계·사무, 조선·해양, 전자산업 등 18개 ISC가 운영되고 있다.

ISC의 목적과 구성을 볼 때 산업전환 시기 효과적인 교육훈련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거버넌스로 운영될 수 있다. 정부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다. 2021년 7월 공정한 노동전환 정책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자동차 ISC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노동의 참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나병호 한국노총 금속노련 정책국장은 “자동차 ISC가 2020년 7월 출범했다. 규정에 따르면 노동조합도 참여하도록 돼 있지만 노동부가 노동조합을 빼놓고 발족 시킨 것”이라면서, “문제제기를 세 차례 하고서야 12월에 연락이 왔다. 노동부에서 최소한으로 발족한 것이고 위원을 구성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같이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노동부의 태도가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고 비판했다.

더불어 ISC의 권한과 역할을 재정의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청한 재계 관계자는 “발족 당시는 큰 규모로 진행됐는데 생각보다 운영이 잘 안됐다. 현재는 산업별 맞춤형 인재를 위한 프로그램이나 산업별 수요 조사를 통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인력개발사업단이나 민간교육기관에 용역을 맡기는 중간 역할 정도”라며, “인력수요를 조사해서 교육훈련을 한다는 콘셉트정도만 남아 있다. 선제적으로 미래에 대응하는 역할은 현재 없다. 다만 조직체가 있으니 고용노동부에서 권한과 역할, 재정적 지원을 준다면 활성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지역 거버넌스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

산업정책에서 지역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의 발달은 최종적으로 지역에서 결실을 맺고, 지역 기반 산업 발달은 지역의 성장과도 연결된다. 마찬가지로 산업전환에서도 지역을 중심으로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산업 전환을 실제로 진행하는 곳은 지역이다. 중앙 중심으로 가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발전 산업, 자동차 산업, 철강 산업 등이 밀집한 충남, 제조업 도시 울산, 자동차 부품사가 밀집한 경북 등 디지털전환 및 탈탄소전환의 당사자가 지역이다. 지역의 주력 산업은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나병호 정책국장은 “기업별 노조는 해당 기업만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지역 노사민정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지역에서 자동차 부품 산업에 문제가 있다면 기업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역 내에 있는 공장, 정비소, 카센터, 주유소 등까지 연쇄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연계된 전후방까지 다 보기 위해서는 지역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역에 맞는 조례를 만들면 오히려 더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며 “지역에 맞는 정책을 생산하는 게 일종의 현장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지역 거버넌스를 마련해야 하는 까닭이다.

충남 노·정, 지역 모범 사례를 엿보다

지역 차원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보인 곳이 충청남도다. 충남과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는 지난해 11월 25일 정책 협약과 산업전환 협약을 맺었다. 전국 최초로 노동조합과 지방정부가 산업전환에 함께 머리를 맞대자고 공식적으로 합의한 사례다.

문용민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 본부장에 따르면, 충남은 다른 지역에 비해 지역 노정 관계가 긴밀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방정부와 지역본부가 여러 정책협약을 맺었던 곳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중심이었다. 충남의 경우는 노·정 간담회를 통해 요구 사항을 전달하는 수준이었다.

2021년 11월 25일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와 충청남도가 정의로운 산업전환 정책수립을 위한 정책협의를 맺었다. ⓒ 노동과세계

문용민 본부장이 이런 상황을 뛰어넘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시기적 절실함 때문이었다. 문용민 본부장은 “충남 경제 지형도가 발전, 자동차, 철강 산업의 임금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대안을 적극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때였고, 충남도(자치단체)도 이것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업장 노사관계로만 해결하긴 어렵다는 고민이 있었고, 지역 일자리를 살려야 지역 경제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노정 교섭을 시작했다. 지방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나 지방정부의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논의를 시작한 배경을 밝혔다.

그 결과 협약에 기술발전과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전환에서 노동이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산업전환 정책 수립을 하고,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의 참여를 보장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노동권이 보장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향이 되도록 ‘노-정’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는 의미도 넣었다.

협약을 바탕으로 이후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와 충남은 ‘(가칭)정의로운 산업전환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운영 주관은 충남 일자리노동정책과가 담당한다. 기술발전 및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전환 부서로 미래성장과, 산업육성과, 에너지과, 기후환경정책과 등이 참여하고 노동계가 참여한다.

문용민 본부장은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지향하고 노동과 함께 산업전환위원회를 구성한다는 합의를 했다는 게 의미있다”며 “위원회에는 금속, 발전 등 해당 주체들이 실제 위원으로 들어가 협의할 수 있도록 참여 구조를 만든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2021년 연말까지 정의로운 산업전환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으나, 협약이 작년 11월 25일 맺어져 올해 상반기까지 정의로운 산업전환위원회 구성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협의를 시도하지 않으면
지역 거버넌스는 없다

지역 거버넌스 구축이 쉽지만은 않다. 우선 각각의 입장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용민 본부장은 “노동자들이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전환에서 고용만 주장하는 건 아닌데, 현실적으로 노동자들에게는 고용이 걸려 있기 때문에 지방정부의 입장과 결이 다를 수 있다”고 전했다. ‘선고용-후전환’이냐 ‘고용과 전환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냐와 같은 순서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다른 이유는 산업전환이 필요한 시기임을 인식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인화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본부장은 “지방정부도, 노동조합도 산업전환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 종합적인 방향 설정이 미진한 단계이지만, 협의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도출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전환에 관한 이야기들은 여론에 많이 나왔지만 담론으로 나아가는 데는 부족했다. 그 사이 전환은 가속도가 붙어 산업을 빠르게 바꿔갔고, 담론형성과 기술진보 사이의 거리는 벌어지는 모양새다.

지역 산업전환을 고민할 전문가 네트워크 혹은 인적 자원 네트워크가 부족한 것도 걸림돌이다. 이문호 소장은 “지역에서 산업전환에 관한 정책이 많이 활성화 돼야 하는데, 현재 지역에 정책을 수행할 만한 인력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지역 차원 논의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협의를 계속 시도하는 게 필요하다. 문용민 본부장은 “전문가와 관련 단체들과 충분히 토론하고 협의를 통해 정책을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협의의 시도 속에서 산업전환의 입장 차가 줄어들고 인식이 제고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역 인재를 발굴하거나 육성할 기회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지역 거버넌스를 만드는 데 직면하는 어려움은 역설적으로 거버넌스 구축의 무수한 시도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지역, 산업전환의
나의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는 곳

지역은 혁신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어쩌면 나은 미래를 먼저 가볼 수 있는 곳이다.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임이사는 ‘실험하는 핀란드’라는 국정 목표로 사회혁신을 만들어가는 핀란드 사례를 소개했다. “핀란드가 기업 경쟁력, 국가 경쟁력, 국가 혁신 속도, 국가별 행복지수를 보면 거의 1등을 차지한다. 다양한 사회실험을 통해 사회에 적절하게 맞아 들어가면 확산을 시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윤호창 상임이사는 지역의 역할을 강조했다. “(국가) 전면적으로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위험도가 높아서 부분적으로, 지역적으로 사회실험들을 해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사회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사회정책을 지방정부에서 우선 실험해보면 좋다. 그런 걸 하라고 지방자치를 하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지역 사회실험이 성공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중앙에 예속돼 있는 국비와 지방비 비율을 조정해 지역에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결국 산업전환이라는 전환기에 혁신과 실험을 통해 적절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타진해봐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지역의 역할, 지역 거버넌스의 나은 협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업전환 거버넌스
교통정리 필요하다

이렇듯 현재 산업전환과 관련한 여러 거버넌스는 이해당사자를 제대로 구조 속에 포함시키지 못하거나 산발적인 형태로 논의가 하나로 모이지 않고 있다. 지역 차원에서 산업전환에 대응한 의미 있는 시도들이 나오고 있으나 중앙 단위와 효과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취재에 응한 이들이 한 목소리로 논의를 종합할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다.

여기서 디지털 전환과 탈탄소전환이 별개로 접근되는 상황도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 황선자 부원장은 “국내외로 탈탄소 전환과 디지털 전환은 쌍둥이 전환이라고 한다. 긴밀하게 엮여서 같이 가는 거다”며 “이런 차원에서 4차위와 탄소중립위원회가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전했다.

앞으로 탄중위는 2022년 3월 25일 시행 예정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따라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로 개편될 예정이다. 해당 법은 지자체 단위에서도 2050지방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 방안 정책에 따라 올해 상반기 ‘선제적 기업·노동전환 지원단’이 구성될 예정이다.

거버넌스의 대대적인 재정비가 이뤄지는 가운데, 노동계를 비롯한 이해당사자의 확실한 참여와 중앙과 지역 거버넌스 간의 연계, 탈탄소 전환과 디지털 전환의 통합 논의 등이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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