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고민하다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고민하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2.02.07 13:52
  • 수정 2022.02.07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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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노조-사무금융노조, ‘주4일 노동과 금융노동자의 미래’ 토론회 열어
노동시간 단축, 다양한 사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어

[리포트]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가능성에 투자할 때

OECD 통계 자료 편집

2021년 연말에 발표한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주52시간 상한제 시행에 대해 국민 71.8%, 임금노동자 77.8%가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조사 결과에는 국민 55.8%는 여전히 우리나라가 일을 많이 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OECD 2020년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08시간이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687시간으로 평균보다 연 221시간 더 일하는 셈이다. OECD 회원국 순위로는 한국이 네 번째로 길게 일한다. ‘콜롬비아-멕시코-코스타리카’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길다. 꾸준히 노동시간을 단축시켰지만 여전히 오래 일한다.

많은 걸 뒤바꾼 코로나19는 노동시간에도 영향을 미쳤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들이 늘었다. 보건의료노동자 같은 필수노동자의 경우 고된 노동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신규 인력 채용이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20대 대선을 앞두고 ‘노동시간’이 주목받고 있다. 어떤 대선 후보는 주120시간 노동을 이야기했다가 진땀을 뺐다. 노동시간 단축을 말하는 후보들은 주4일 혹은 주4.5일을 공약하기도 했다. 기존의 주52시간 상한제보다 줄인 노동시간 규범을 만들자는 이야기다.

이러한 논의를 확장하기 위해 금융노조와 사무금융노조가 지난 1월 17일 국회로 전문가와 노동조합 위원장을 초청해 ‘주4일 노동과 금융노동자의 미래’ 토론회를 열었다.

유연근무로 노동시간 단축 가능,
그러나 쟁점도 있어

이날 토론회 발제는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소 원장이 맡아 금융권에서 가능한 노동시간 단축 모델을 두 가지 제시했다. 첫 번째 모델은 기존 ‘주5일 영업(월~금), 주5일 근무(월~금)’ 시스템을 ‘주5일 영업(월~금), 주4일 근무(월~금 중 4일 자율선택)’으로 바꾸는 것이다. 두 번째 모델은 기존 시스템을 ‘주7일 영업(월~일), 주4일 근무(월~목) + 주3일 근무(금~일,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다. 각 모델의 특징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점이다. 첫 번째 모델은 2021년 3월 기준 은행직원 수의 20%(2만 3,088명)를 신규 인력으로 채용해야 하고, 두 번째 모델은 같은 연월 기준 8,125명을 추가 채용해야 한다.

다만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지는 쟁점이다. 또한 근본적으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 주52시간 상한제보다 더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규범 자체를 확산시킬 수 있는지도 쟁점이다.

쟁점① 일자리 창출 가능성

김형선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기술 발달로 생산성이 많이 증가하고 있고 4차 산업혁명까지 이야기하고 있지만 노동은 어디에 있느냐”고 말문을 열었다. “GDP에서 노동자(임금) 몫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고 4차 산업혁명을 거치며 노동자 몫은 더 줄 것인데, 이럴 때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노동자를 늘려(일자리를 늘리고 취업자 수를 늘려) 노동의 몫을 유지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코로나19로 은행 영업시간을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까지를 오후 3시 30분까지로 변경해 운영했는데, 시중 은행들이 작년 3분기 기점 2조 원대 수익을 남겼다”며 “노동시간 투여가 생산성 향상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시간 단축의 여지가 있는 만큼 노동의 개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김형선 위원장 말씀은 노동력에 대한 필요가 강하지 않고 생산성에 별 영향이 없다는 것인데, 이처럼 노동 수요가 줄어드는 국면이라면 노동시간이 줄이는 것이 신규고용 창출로 얼마나 이어질 수 있을까 냉철히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현대차에서 미래차 전환을 위해 여러 가지를 도모하지만 자연적으로 고령자들이 나가는 상황에서 신규 충원을 안 한다”며 “이는 고용 없이 기업이 유지가 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로 발달된 기술과 새로운 생산 설비가 도입되면서 노동에 대한 필요를 격감시키는 상황인데, 여기서 노동시간 단축을 사측도 싫어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노동시간 단축으로 사측이 어떻게 일자리 창출하게 할 수 있는지 내용적으로 더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쟁점② 주4일제 확산 가능성

주4일제 도입,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다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쟁점이 됐던 지점은 주4일제 확산 가능성이다. 현재 주52시간 상한제에서 더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정규직 중심, 노동시장의 상층부에 위치한 노동자들에 국한된 의제가 아니냐는 점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4일제 시행에 있어 노동시장 이중구조화 문제와 격차 문제,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프리랜서 등 비임금 노동자 문제, 여성의 육아 돌봄 고착화 문제와 같은 쟁점은 사회적 논의와 대안을 통해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대안 중 하나로 사회보험료 지원 및 노동시간 단축지원자금 등의 이전소득 정책을 노동시장 상층부가 아닌 곳에 위치한 기업과 노동자에게 펼치는 것을 제시했다.

이는 정의당의 입장이기도 하다. 조성주 정의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한국의 노동시간 불평등은 ‘단시간-저소득’ 유형, ‘장시간-중위소득’ 유형, ‘표준시간-고소득’ 유형으로 계층화돼 있다”며 “대기업, 고소득 일자리 경우 이미 사실상 주4.5일제 또는 높은 유급휴가일수 보장, 유연근무가 보장돼 있어 별다른 지원 없이 근무형태 조정으로 주4일제를 충분히 시행할 수 있다”고 전했다.

주4일제 도입을 위해 집중해야 할 대상은 중위소득 구간에 해당하는 중소기업, 중견기업이라는 게 정의당의 입장이다. 조성주 부의장은 “다양한 사회보험료 지원 및 노동시간단축지원자금, 일자리안정자금의 활용을 통해 주4일제를 적용하자는 것”이라며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은 중소기업, 중견기업 일자리를 여가시간과 자기계발의 기회 시간이 많은 일자리로 만들어 청년들이 가고파하는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과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저소득 구간 노동자들의 경우는 최소노동시간보장제, 평등수당 등으로 지원해 생계 문제를 겪지 않는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만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문제는 그들에게 제공되는 일종의 시간단축보조금과 같은 이전 소득 정책의 재원을 어디에서 마련할 것이며, 또 어떻게 언제까지 지급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며 “특히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저항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정책의 시행 의지의 문제보다 시행을 위한 현실적 차원의 고민 지점을 짚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는 뜻이다.

지난 1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주4일 노동과 금융노동자의 미래’ 토론회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가능성 엿보기,
아이슬란드의 노동시간 단축 실험

이날 토론회에서는 해외 사례가 소개됐다. 북유럽에 위치한 인구 36만의 나라 아이슬란드는 두 차례 ‘주4일 근무제’를 실험했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시 차원의 실험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시 차원의 실험을 확대해 중앙정부 차원의 실험으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진행했다.

아이슬란드가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 실험을 진행한 이유는 북유럽 이웃 국가들에 비해 노동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또한 많이 일한다고 해서 주변 국가와 비교해 생산성이 높은 것도 아니었다. 장시간 근무로 아이슬란드의 노동자들은 지치고, 이로 인해 낮아지는 생산량을 보완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해서는 안 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졌다. 결국 시간당 생산성은 더 낮아진다. 이러한 문제 의식으로 아이슬란드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는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했고, 레이캬비크 시의회와 중앙정부 차원에서 정책 실험으로 응답한 것이다.

아이슬란드 전체 노동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2,500여 명의 노동자가 실험에 참여했다. 유치원 교사, 회사원, 사회복지사, 병원 종사자 등 다양한 직군의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정책 실험 결과, 기존 주40시간에서 35시간 또는 36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였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번아웃 증후군 등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거의 사라졌고 일과 삶의 균형이 개선된 지표들이 나타났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자 개인에게 생긴 시간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취미 활동을 하거나 가사 노동을 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기혼자의 경우 남성의 가사 노동과 육아 참여도가 높아졌다.

정책 실험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던 업무 생산성 문제에서 생산성이 높아짐을 확인했다. 정책 실험 기간을 놓고 계산했을 때 노동생산성 연 성장률이 1.7%에서 3.8%로 개선됐다. 실험을 진행했던 각 사업장에서도 생산성과 관련해 비슷한 정성적 결과를 얻었다. 노동시간이 단축됐는데도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지 않고 오히려 개선되거나 이전 수준과 동일했다. 정량적인 결과도 마찬가지인데, 서비스 전화 응답률이나 서비스 문의 처리 건 수 등이 이전과 같거나 높아졌다. 이는 정책 실험에 참여했던 웨스트피오르드 경찰서의 현장 대응, 국세청 로비에 있는 고객 만족 창구 업무 등을 분석한 결과다.

눈여겨 볼 지점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참여해 새로운 업무 패턴과 노동시간을 설계하고 논의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다는 점이다. 정책 실험을 추진하기 위한 노동시간 단축 위원회에 노사가 참여했고, 실무단에도 참여했다. 나아가 일부 사업장에서는 사업장 단위의 위원회도 만들어져 노사가 자기 사업장에 맞는 업무 패턴과 노동시간 재구축을 진행했다.

노동시간 단축,
사회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연다

노동시간 단축이 사회 문제 해결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데 이번 토론회의 참석자들은 중지를 모았다. 일자리 창출, 산업재해나 노동자 건강권 향상뿐 아니라 탄소배출량을 감소시키는 기후위기 대응이기도 하다. 쉬운 예로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사업장 전력 소모가 줄어들면 그만큼 탄소배출이 줄어든다. 게다가 산업전환으로 교육훈련이 중요해진 시기에 노동자의 학습 시간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는 기업의 생산성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오전 10시 출근, 오후 5시 퇴근 등 유연한 근무가 가능하다면 출퇴근 시간이 넉넉해져 좀 더 외곽으로 집을 구하는 등 도심 과열화된 부동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육아 및 돌봄 문제가 완화되고 저출생 문제 해결에도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나아가 여가 활동 증진으로 공동체 혹은 지역 사회가 지금보다 활발해질 가능성도 있다. 물론 확신의 영역은 아니고 가능성의 영역이다. 하지만 사회적 논의를 통한 가능성에 투자가 때론 많은 문제를 경감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