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①] 왜 디지털 전환과 숙련인가?
[커버스토리①] 왜 디지털 전환과 숙련인가?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3.21 08:30
  • 수정 2023.04.03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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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질 하락 낳는 숙련의 양극화
​​​​​​​숙련 양극화 해소는 “디지털 경제의 핵심 의제”

숙련의 변화, 노동의 전략

“일은 인생이죠. 이제 와서 발을 뺀다는 건 인생을 망가뜨리는 거랑 다름없어요.”

칼 가는 장인. 지난해 1월 ‘일과나’ 커버스토리 취재로 한칼 전종렬 대표를 만났다. 칼 가는 일은 그에게 인생과도 같았다. 일과 나는 분리할 수 없다. 노동자의 몸에 깃들어 있는 숙련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일이 변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의 여파다. 이제와 발을 뺄 수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발을 빼야만 하는 상황이 예측되고 있다. 노동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커버스토리① 디지털화와 숙련

ⓒ 클립아트코리아

디지털 전환으로 일의 모습이 바뀌고, 이를 상징하는 현상이 바로 숙련의 양극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문제라는 판단은 든다. 디지털 전환으로 일터에서 변화를 느끼는 노동자들에게 물었다. “언제 스스로 일에 숙련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 첫 반응은 같았다. “숙련이요?” 단어를 바꿔야 했다. ‘전문가’, ‘막힘 없이 술술’, ‘일머리가 좋아졌다’···. 그제야 노동자들은 “아~” 기억을 떠올렸다. 숙련의 양극화가 문제라는데, 노동자들은 숙련이라는 단어도 어색해했다.

개인의 능력이자 사회적 구성물 숙련
종합적인 개념으로 봐야

그럼 숙련이란 뭘까? 김안국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명예위원(2021)은 “인간이 어떤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영어로는 스킬(skill)에 해당하는 숙련은 익히고 경험하고 단련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결국 숙련은 시간을 두고 경험을 통해 일 지식을 익히는 것”이라며 “그 익힘은 명시지와 암묵지 형태로 인간의 몸에 체화된다. 명시지는 주로 학교 교육 경험을 통해서 습득된다. 암묵지는 철저히 삶과 일의 경험에서 습득이 된다”고 설명했다.

여기까진 이해가 된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숙련의 개념은 복잡해진다. 숙련은 연구자와 학문 분야에 따라 그 개념이 서로 다르게 정의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보통 숙련을 경제 성과를 위해 투입되는 ‘인’적 자원으로 본다. 반가운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동향데이터분석센터 센터장은 “주류 경제학은 인적자본이론에서 임금함수를 주장한다. 왜 어떤 사람은 임금 수준이 높고, 어떤 사람은 낮은지 설명할 때 ‘개인의 능력’을 강조하면 속‘인’주의 관점에서 숙련을 보는 것”이라며 “속인주의 관점에서 교육 수준만을 숙련으로 본다면 간단하게 중졸, 고졸, 대졸, 박사 등 학력으로 숙련 수준을 저, 중, 고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숙련을 일자리에 체화되는 조‘직’ 자원으로 본다면 속‘직’주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아가 사회학적 논의에선 숙련을 사회적 구성물로 볼 수도 있다. 반가운 센터장은 “숙련은 사회적 구성물이냐, 권력관계의 산물이냐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다”며 “숙련이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 소련과 중국의 차이”라고 했다. 그는 “엘리트 중심으로 혁명이 벌어진 소련에선 농민보다 대학교수의 급여가 높다. 중국은 당시 엘리트들에 대한 반감이 있었기에 소련만큼 급여 차이가 안 났다”며 “중국의 대학교수와 러시아의 대학교수가 능력이 같더라도, 사회적으로 임금 체계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는 주류 경제학자들 말하는 ‘임금은 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에는 대입하기 어려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숙련을 개인, 조직, 사회 중 어느 쪽에서 강조하느냐에 따라 숙련의 정의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이승봉 경북대학교 사회학 박사(2021)는 “30여 년에 걸친 국내외 숙련의 개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근본적인 개념 변화는 없으나 숙련의 범위가 더욱 확대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며 “숙련 개념에 내재한 숙련의 위치는 개인의 특성, 일자리에서의 요구, 사회적 구성이라는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숙련은 종합적인 개념이다. 반가운 센터장은 “숙련은 종합적이다. 숙련은 경제학, 경영학, 사회학, 역사, 철학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숙련 체계를 분석하려면 역사와 맥락을 보면서 대량의 데이터를 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분야에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숙련은 그럼 왜 디지털 전환이라는 산업·사회적 변화 속에 다시 주목을 받게 됐을까?

디지털화로 변하는 일의 모습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노동 수요가 증가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디지털화는 산업전환의 한 축이 됐다. 이에 따른 일자리의 변화도 예측된다. OECD(2019)는 OECD 주요국의 전체 직업 중 평균 45.6%가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변화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자동화 고위험군(70% 이상 직무 대체) 비중 14%와 중위험군(50~70% 직무 대체) 비중 31.6%를 합한 수치다. 우리나라도 일자리 10개 중 4개(고위험군 10.4%+중위험군은 32.8%)가 자동화로 인한 새로운 직무수행을 요구받을 수 있다고 OECD는 예상했다.

이 가운데 디지털화는 일자리 수를 줄이기보단 일의 내용을 변화시킬 거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김안국 명예위원은 “자동화가 전체 일자리의 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실증 결과들은 일부 직종에서의 일자리 감소는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음을 의미한다”며 “결국 자동화는 일자리 수를 줄이기보다는 인간이 하는 일의 내용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봐야 한다”고 밝혔다.

숙련의 양극화가 미치는
노동시장의 변화

디지털화로 인한 일의 내용 변화를 보여주는 힌트 중 하나가 바로 숙련의 변화다. 김안국 명예위원은 “일 자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고, 변화된 일에서 필요한 숙련이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한다”고 제언했다. 황수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2019)도 “근로자 개인의 기술 변화에의 대응력을 평가할 수 있는 핵심지표가 바로 숙련”이라며 “새로운 기술 여건에서 과거에 유용했던 숙련요소가 덜 중요해지거나 쓸모없어지고, 반대로 그간 주목받지 못하던 숙련 요소가 새롭게 각광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화로 인한 숙련의 변화 중 주목할 지점은 ‘숙련의 양극화’ 현상이다. 김종욱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 책임연구원(2019)은 “OECD 가입국 대부분(룩셈부르크 제외 전 국가)에서 중간숙련 일자리가 전체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드는 현상 관찰됐다”며 “2006년과 2016년을 비교해보면 OECD 평균 중간숙련 일자리 비중이 5.3%p 감소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도 중숙련 일자리 비중이 줄었다. 김종욱 책임연구원은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경우 중간숙련 일자리 비중은 6.1%p 줄어든 반면, 저숙련 일자리와 고숙련 일자리 비중은 각각 2.4%p, 3.9%p 증가했다”고 밝혔다.

대체되는 중숙련 일자리는 주로 규칙적이고 구조화가 용이하단 특징을 지닌다. 임운택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2017)는 “(중숙련 일자리 대체) 변화의 전제조건은 구조화가 잘 돼 있고, 규칙적인 특성을 지녀 쉽게 알고리즘화가 될 수 있는 직무들”이라며 “구체적으로 조립, 감시처럼 지금까지 나름 숙련수준에 대한 요구가 있는 생산노동과 중간수준의 숙련을 요구하는 행정, 서비스업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반가운 센터장도 “단순히 중숙련 직무가 대체되는 건 아니다. 루틴한 작업일수록 많이 대체된다. 대졸자의 일이어도 루틴한 작업이면 기계가 대체를 잘한다. 이는 루틴한 사무직이 많이 대체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종합하면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기술이 대체하기 쉬운 중숙련 일자리는 사라지는 반면, 높은 숙련을 요구하는 일자리와 배송·요양서비스 등 저임금 서비스 영역에서 일자리는 증가한다.

이 같은 숙련의 양극화는 또 다른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숙련의 수준별로 임금이 지급된다면 숙련의 양극화는 결국 임금 격차가 확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욱 책임연구원은 “저숙련 노동자의 비중 증가는 일자리 질 하락 문제를 야기함과 동시에 전체 노동시장 차원에서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위협 정도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다는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고 밝혔다.

숙련체계 부족한 한국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더 취약

그렇지만 숙련은 한국사회에서 큰 관심을 못 받았다. 조성재 선임연구위원(2013)은 “우리나라 노사관계에서 숙련은 주요한 의제가 돼 본 적이 없다”며 “우리나라 노동조합들은 존재 인정투쟁과 분배교섭 요구를 넘어설 수 있는 제대로 된 전략도 실천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럴 수 있는 정치사회적 환경이 미진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도 자체 인력 양성보다는 무임승차를 자주 택했다. 박영구 부산외국어대 경제금융학과 교수(2012)는 “(1967년 직업훈련법이 제정되고 1970년대 직업훈련제도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직접 노동수요자인 기업이, 특히 대기업일수록 우수인력을 독식하고 있으면서도 개인과 정부에 교육비용을 전가하려고만 하고 있었고, 정부 역시 이에 동의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히 한국의 현실이었다”고 설명했다.

노사 모두 숙련에 관심을 두지 않은 사이 숙련은 양극화됐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2004)는 이렇게 설명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중화학공업화가 대기업을 중심으로 시작되면서 숙련이 요구되고, 대기업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내부노동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하며, 이에 발맞춰 대기업 중심의 사회보험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추세는 1980년대 가격경쟁이 아닌 품질경쟁을 요하는 생산물 고도화 단계로 진입하면서 숙련노동의 수요가 심화되고, 그 결과 대기업 중심의 사회보험에서 일본식 노사관계와 기업복지가 병행 성장하게 된 것이다.”

1990년대에 내부노동시장의 분화가 심화되면서 숙련 기반은 더 취약해졌다. “자동화와 정보화가 한층 더 진행되는 1990년대 들어서서 전통적 숙련 중 일부는 일상적 기술로 전락하는 등 그 위상은 점차 떨어지게 됐으며, IMF 외환위기 이후 사내외 하도급을 통한 아웃소싱의 확산과정에 도태의 운명에 처하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정규직 숙련의 기반과 기초가 취약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한국의 산업발전과 숙련노동〉(2013)

이는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이 “우리나라에 숙련이 형성돼 있는 업종이 별로 없다”고 평가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김종진 부소장은 “숙련이 형성됐다는 건 일반적으로 노동시장 내에서 이동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뜻이다. 그래서 숙련이 형성된 노동자들은 일자리 상실 위험도 낮은 것”이라면서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자 중 교육훈련을 받는 노동자는 전체의 절반 남짓이고, 중소기업은 4%밖에 안 된다. 전문직종이나 장인의 성격이 있는 직업군을 제외하고 숙련을 붙일 수 있는 직업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종진 부소장은 “지금 디지털 경제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는데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임금과 연결된 숙련체계는 전무하다”며 “고숙련 직무는 기업의 요구든, 노동자의 적극적인 노력이든 숙련이 계속 쌓이는 방향으로 가겠지만 중숙련은 그냥 저숙련으로 내려가는 상황이다. 이 중간층을 어떻게 탄탄하게 할지가 디지털 경제 시대의 핵심 의제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현장에선 일의 변화, 즉 숙련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고 있을까?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일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이야기를 물어봤다. 

참고 자료

〈숙련과 기계학습, 그리고 기술성에 대한 이해와 평생교육〉, 사회경제평론, 김안국, 2021
〈일머리 숙련과 숙련 향상 전략〉, 산업노동연구, 이승봉, 2021
〈기술 진보와 숙련구조의 변화〉, KDI, 황수경, 2019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위험과 저숙련 노동자 재교육의 어려움〉, 한국노동연구원, 김종욱, 2019
〈일터혁신의 현단계의 발전 방향〉, 조성재·오계택·김동배·전우석·임운택 , 한국노동연구원, 2017
〈한국의 산업발전과 숙련노동〉,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박준식·전명숙·전인·김기웅, 2013
《한국의 중화학공업화》, 해남, 박영구, 2012
〈한국의 산업화시기 숙련형성과 복지제도의 기원〉, 한국정치학회, 양재진,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