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련을 인정하지 않는 일터… 산업전환, 숙련은 어떻게 변화하나?
숙련의 변화, 노동의 전략
“일은 인생이죠. 이제 와서 발을 뺀다는 건 인생을 망가뜨리는 거랑 다름없어요.”
칼 가는 장인. 지난해 1월 ‘일과나’ 커버스토리 취재로 한칼 전종렬 대표를 만났다. 칼 가는 일은 그에게 인생과도 같았다. 일과 나는 분리할 수 없다. 노동자의 몸에 깃들어 있는 숙련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일이 변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의 여파다. 이제와 발을 뺄 수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발을 빼야만 하는 상황이 예측되고 있다. 노동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커버스토리② 숙련의 변화 : 자동차와 조선
“예전에는 소비자들이 차를 살 때 정비소에 물어봤어요. 그러면 우리가 ‘대우차 절대 사지 마라. 회사 망한다. 고장 잘 나고 수리비도 많이 나간다’ 이렇게 이야기해줬죠. 우리는 매일 보니까 자동차 품질이나 내구성 이런 걸 평가해 줄 수 있잖아요?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었죠.” 고안수 한국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연합회 본부장의 말이 ‘과거형’으로 끝났다. 이제 소비자들은 차를 살 때 멀리 있는 정비소를 찾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구한다. 자동차 정비사의 위상은 예전과 달라졌다.
숙련 경험이 많은 노동자가 필요할까요?
자동차 운전자는 사용하면서 평소에는 나지 않는 소리나 떨림 등이 있으면 이상을 느끼고 정비소를 찾는다. 정비사는 손님이 전하는 ‘증상’을 토대로 원인을 찾는다. 어떤 부품에 이상이 있으면 그러한 증상이 나타나는지 정비사들은 매뉴얼을 비롯해 여태까지의 경험을 기반해 알아차린다. 이러한 과정을 트러블 슈팅(Trouble Shooting)이라고 한다.
진단 이후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수리할 수 있는지는 정비사에 손끝에 달려있다. “수리할 때 포즈나 공구 사용방식을 보면 숙련공인지 아닌지가 나오죠. 잘하는 사람은 에어 임팩트 렌치 쓸 때 소리가 일정해요. 각 부품마다 얼마나 힘을 줘야 하는지 근육이 기억한 거죠.” 이러한 정비사의 숙련은 학력이나 자격증 유무로 판단되지 않는다. 다양한 고장 유형과 대처 방법 등은 책이나 교과서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안수 본부장은 정비사의 숙련이 점점 필요하지 않은 방향으로 자동차가 변한다고 말한다.
“사업주의 입장에서 보면 기능적으로 숙련 경험이 많은 노동자가 필요할까요? 질문하면 아닐 수도 있죠. 이를테면 전기밥솥,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을 예전에는 전파상에서 수리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트레이닝 센터에서 6개월 정도 교육받은 젊은 분들이 하잖아요? 자동차도 비슷해요. 매뉴얼이 잘 갖춰지고 있고, 아주 높은 난도의 고장이 잘 안 생기죠. 생기더라도 모듈로 부품을 교체하고요.”
자동차의 발전, 손끝 기술의 축소
자동차 기술은 지난 30여 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자동차 정비사들은 설계, 소재, 가공 기술에서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고 말한다. 정비사가 손 댈 일이 적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동차 문과 문틀에는 틈(단차)이 있어요. 과거에는 딱 안 맞았는데 지금은 빈틈없이 잘 맞아요. 설계 능력이랑 설계대로 금속을 가공하는 기술이 그만큼 좋아진 거죠. 또 과거에는 문이랑 문틀이 경도에서 차이 났어요. 문틀을 바꾸기 어려우니까 일부러 문에 약한 재료를 썼죠. 그런데 지금은 재료도 좋아졌어요. 과거의 기술 수준에서는 비전형적이 고장이 너무 많으니까 경험이 더 중요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고장이 났다고 해도 고장의 유형이 딱 정해져 있어요.”
그렇다면 자동차 기술의 발전이 실제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보다 먼저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몇 시간 교육받으면 할 수 있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자동차 공장 노동자에게 숙련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지엠에서 30여 년 동안 일한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조합원 정주교 씨는 이렇게 말한다.
“자동차 공장 안에서 숙련도는 꼭 필요해요. 작업을 해보면 알아요. 설계가 제대로 된 것인지,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볼트 조이는 소리만 들어도 알아요. 용접이 제대로 안 되면 소리부터 달라지거든요. 오랫동안 생활해보면 감으로 나와요. 바로 캐치하죠. 이 부분은 나중에 어떻게 해서든 개선이 돼요. 또 일반인들은 모르겠지만, 도장 입히고 나서 녹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은 부분이 숙련공 눈에는 보여요. 당장 티는 안 나는데 5~6년 지나면 그 부분이 뜨거든요?”
설계로부터 시작해서 실제 제품이 생산되기까지 발생하는 여러 오류를 잡아내는 기술이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의 손끝에 서려있다. 하지만 지금은 숙련 기술이 활용될 여지가 많이 줄어들었다. 단적인 예로 정주교 씨는 현장 개선 활동의 축소를 말한다.
“2015년 이후 현장 개선 활동이 많이 줄었어요. 산업성장기에는 현장 개선 활동이 많이 필요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럴 단계가 아니죠. 요새는 파일럿카를 만들 때 1차적으로 시뮬레이션 룸에서 작업을 다 해봐요. 거기서 오케이가 나야 파일럿 테스트 1단계가 완료돼요. 그러니까 예전에 파일럿 테스트 3단계가 지금 1단계가 되는 거죠. 시험생산 해보고, 그 과정에서 개선점이 걸러져요. 이후에 또 시뮬레이션 룸에서 작업을 해보고요. 그리고 예전에는 모듈부품 비중이 30% 미만이었는데, 지금은 40~50%대예요. 현장에 로봇도 많이 들어와 있죠. 옛날처럼 조립할 때 밀고 치고 이런 일이 지금은 거의 없어요.”
이러한 변화는 자동차 공장 노동자의 숙련이 활용될 여지를 줄임과 동시에 일자리 규모가 점점 감소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자동화와 모듈화를 쉽사리 반대만 할 수 없다. 업무 난이도는 노동자의 건강 문제와도 직결된다.
정주교 씨는 “모듈화를 해체할 수 없으니 일상적으로 전환배치가 이뤄진다. 그런데 여기서 신규 채용이 안 되니 일자리가 줄어든다”며 “하지만 노동조합에서 이를 하지 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상당수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이 된다. 없어지는 만큼 일자리를 만들라고 요구하지만 쇠귀의 경 읽기”고 밝혔다.
일터에서는 숙련을 인정하지 않는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손끝 기술은 확실히 자동화나 로봇이 도입되면서 줄어드는 것 같다. 기계 중심의 제조 사업장이 많아지면서 기존 숙련공보다는 단순한 오퍼레이터가 많아지는 추세”라며, “공정 흐름을 매끄럽게 하는 노하우도 스마트 팩토리가 확대하면서 IT기술로 대체되는 면이 있다. 새롭게 생겨난 공장에서는 엔지니어가 주로 역할하고 기존 숙련공들은 퇴직까지 기다리거나, 전환배치 돼 품질관리 부서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자동화나 스마트 팩토리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곳은 어떨까. 전북 익산의 서연인테크는 버스, 건설기계 등 상용차에 납품되는 시트를 만드는 회사다. “적자 사업장에 설비 투자를 하겠어요?” 황의택 금속노조 서연인테크분회 분회장은 상용차 산업의 지속적인 하향세로 회사가 투자를 고려할 상황이 아니라고 말했다. 서연인테크 노동자에게 숙련은 어떤 의미일까.
“숙련이 된다는 거는 한 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 시트가 더 늘어난다는 거죠. 불량률도 줄고요. 그런데 회사는 하나라도 더 나오면 돈이 되기 때문에 더 빨리 시키려고 해요. 그런데 노동자 입장에서는 돈은 같고, 근골격계나 이런 위험에 더 노출되는 거죠. 잘해봤자죠. 몸은 더 힘든데 또 많이 만들었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숙련 기술을 보유했다는 점이 노동자 개인에게 별 이득이 되지 않는 구조다. 이러한 경향성은 조선소 하청노동자에게도 발견된다. 조선업은 제조업 중에서도 자동화가 어려운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소에서 숙련 기술은 선박의 구조상 노동자가 작업하기에 불편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공정에서도 정해진 시간을 지키면서 일정 정도 이상의 품질이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예전에는 숙련공들이 일은 조금하고 돈은 많이 벌었다. 숙련공만이 할 수 있는 공정이 있었고, 그 작업을 할 수 있는 게 자랑거리였다”며 “그러나 지금은 그냥 앉아서 시간 빼는 게 최고”라고 말했다.
한국 조선산업은 하청중심 생산구조라고 불린다. 타 산업에 비해 하청 비율이 월등히 높지만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하청업체 상용직이라고 불리는 ‘본공’에 있었다. 본공은 업체가 폐업해도 다른 업체로 고용승계를 보장받았다. 상여금과 자녀학자금, 성과급 등은 본공을 붙잡아 두는 매개였다. 한국 조선업은 본공의 숙련 기술을 보호하면서 품질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7~8년 전 불어 닥친 조선 경기 악화로 본공들에게 주어지던 대부분의 혜택이 사라졌다. 이들이 보유한 숙련도 자연스레 무의미해지고 있다.
“제가 입사할 때만해도 임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기공(숙련공)이 빨리 되려고 선배들한테 혼나가면서 일을 빨리 배웠어요. 동료들끼리도 누가 이만큼 할 수 있다. 누가 저만큼 할 수 있다. 자랑도 하면서 일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20년 된 사람이나 당장 한 달 배우고 온 사람이나 임금이 똑같은 거예요. 예전에는 잘한다고 하면 너도 나도 데려가려고 했는데, 이제는 잘한다고 소문나면 고생밖에 안 해요. 다들 잘한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하죠.”(진성현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노안부장)
조선소의 숙련공들은 인접 산업으로 떠나고 있다. 숙련을 인정하지 않는 일터를 자연스레 벗어나는 것이다. “파워공 팀장까지 지냈던 동생도 나와서 건설 쪽에서 비계 일하거든요? 조선소에서 기량공 소리 듣다가 여기 와서 조공 소리 듣는데도 단가 차이가 많이 나니까 안 돌아가죠.” 2017년 조선소를 떠나 건설업에서 일하고 있는 A 씨가 말했다.
산업전환, 숙련은 어떻게 바뀌나
자동차 산업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는 고안수 본부장은 기존 정비업의 사업모델이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엔진오일 교체 때문에 정비소를 가는 것”이 아니라 일본, 호주처럼 “정기적으로 내 차를 건강검진 받는 것”으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후자의 경우는 전기차로의 전환에도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오히려 전기차의 안전성 문제가 거론되는 가운데 검사 수요가 늘어날 수도 있다. 이러한 그의 고민은 정비사가 갖춰야 하는 숙련 기술의 변화를 수반한다.
“기능직 출신 사장님들은 정비사의 기술은 보는데, 기능직 출신이 아닌 분들은 고객 관리 능력을 보죠. 정비업이 서비스업이니까 고객 관리 능력을 직무로 봐야 하잖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업계가 상당히 허술해요. 고객이랑 커뮤니케이션 하는 능력은 상당히 중요해요. 그런데 이 부분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던 숙련 기술이랑은 전혀 다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