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⑥] 저숙련 일자리는 기술이 만들지 않는다
[커버스토리⑥] 저숙련 일자리는 기술이 만들지 않는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3.22 13:14
  • 수정 2022.03.29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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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도입으로 인한 일자리, 숙련, 임금의 양극화
노사정 무관심 속 만들어진 숙련방치형 일터 … 노조의 ‘숙련전략’ 필요

숙련의 변화, 노동의 전략

“일은 인생이죠. 이제 와서 발을 뺀다는 건 인생을 망가뜨리는 거랑 다름없어요.”

칼 가는 장인. 지난해 1월 ‘일과나’ 커버스토리 취재로 한칼 전종렬 대표를 만났다. 칼 가는 일은 그에게 인생과도 같았다. 일과 나는 분리할 수 없다. 노동자의 몸에 깃들어 있는 숙련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일이 변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의 여파다. 이제와 발을 뺄 수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발을 빼야만 하는 상황이 예측되고 있다. 노동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커버스토리⑥ 숙련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기술 발전으로 일터에 자동화 설비가 깔린다. 일부 고도의 숙련을 요하는 일부 직업 이외에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로봇세를 적용해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등 새로운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기술결정론이 말하는 스토리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식당에서 기계가 음식을 서빙하거나 치킨도 튀긴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피할 수 없는 미래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그럴 듯한 이야기가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기술개발≠기술도입

반가운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동향데이터분석센터 센터장은 “특허가 공장을 짓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새로운 기술의 출현이 곧바로 산업현장에 도입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신기술이 산업현장에 도입되려면 기술도입 비용이 인건비보다 저렴해야 한다. 예컨대 스마트 공장은 ICT기술 활용 정도에 따라 1~5단계로 나뉜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제조업 노동자 수가 급속히 줄어드는 건 아니”라면서 “스마트 공장은 대부분 1~2레벨에 머물러 있다. 3~5레벨까지 간다면 상당한 인력 감축 효과가 있을 텐데 아직까지 그 수준에 있지는 않다”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수용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 물류·운송·배송·배달 부문에서 무인화 기술이 연구되고 있지만, 전면화 되려면 현재 교통체계에 혼란을 주는 점이 없는지, 정말로 안전한지 등도 따져봐야 한다.

기술도입=일자리 감소?

다만 하나의 사업장만 두고 봤을 때 기술도입은 대규모가 아니더라도 어김없이 고용의 크기를 축소시킨다. 여기서 도입되는 기술의 성격이 노동자를 대체하는지 혹은 노동을 도와주는지 여부는 단위 사업장 내 고용의 감소를 막지 못한다. 노동자의 숙련 효과와 더불어 설비 투자로 인한 생산성 향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조업에서 기술도입은 단위 사업장의 고용 크기를 줄였지만 동시에 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을 완화시키기도 했다. 영업 노동자의 경우 비대면 영업을 위한 기술도입이 영업 직무를 보완하는 성격이었지만 고용의 축소가 일어났다.

그러나 산업전체로 봤을 때 단위 사업장에서 기술도입으로 인한 고용 감소분과 더불어 산업이 성장하는 만큼의 고용 증감분이 공존한다. 일례로 대면 서비스 부문에서 고용의 감소와 물류·플랫폼 노동 부문에서 고용의 증가는 함께 일어났다.

제조업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 지난 1월 발표한 자료 따르면, 국내 제조업 취업자 수는 2015년 대비 2019년 18만 명이 감소했다. 하지만 이는 기술도입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의 영향 보다는 조선 산업, 자동차 산업 등 전반적인 제조업 경기의 악화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2017~2020년까지의 자동차 부품 산업을 분석하며, “똑같이 전기차 시대를 가는데 해외에서는 오히려 늘었지만 국내에서는 고용이 줄었다”며, “그 원인을 경영성과 부진으로 인한 원가 절감이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생산직에서는 여성 노동자가 감소하고, 생산기능인력에서는 연구개발 투자 미비로 석·박사급 인력이 줄었다”고 밝혔다.

최근 자동차 부품업의 고용 축소는 기술도입에 따른 여파 보다는 오히려 경기 악화로 인한 투자 위축으로 인한 결과에 가깝다. 더 나아가 제조 현장에서 높은 자동화율이 국가 경쟁력을 유지시키는 기제가 되어 ‘탈공업화’를 방지한다는 주장도 있다.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아론 베나나브, 2020. 책세상)는 국가별로 산업용 로봇 대수가 많을수록 고용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음을 지적하며,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로봇화 수준이 높다면, 기업은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따라서 유럽이나 동아시아의 노동자들은 미국의 노동자에 비해 자동화가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p.28)

덧붙여 “서비스 부문과 세계 경제의 노동수요가 줄어드는 원인은 제조업의 침제로 보아야 마땅하다”고도 지적한다(p.67). 제조업에 기반한 경제 성장이 불가능해지면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 창출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기술도입=일자리 양극화

다만 기술도입으로 일자리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가리지 않고 기존 양질의 일자리가 축소되는 동시에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에서 간접고용비정규직(외주화), 직접고용비정규직(단기계약직),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 등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커버스토리③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학습지 시장에서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이 확대하자, 기존 대면 학습지 노동자와는 전혀 새로운 숙련을 필요로 하는 온라인 학습지 노동자가 늘어났다. 그러나 온라인 학습지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기존 학습지 노동자보다 열악하다. 이들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서 기존 학습지 노동자들이 일부 적용받던 사회보험 혜택을 적용받지 못했다.

이와 함께 조성재 선임연구위원은 “현장에 나가보면 예전에 절삭, 선반 등 금속을 가공했던 노동자들의 역할이 없어지고 있다. 기계가 기계부품을 깎기 때문”이라며 “그런 노동자들은 여전히 그러한 기능을 요구하는 중소기업으로 내몰리는 경향이 분명 있는 것 같다. 특히 대기업 중심의 설비 자동화 투자가 가속되면 이러한 대체는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기술도입=저숙련 일자리 증가?

기술도입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으며 급격한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다만 ‘완전자동화 로봇’이 아니더라도 우리 일터에 점진적으로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그렇다면 기술도입으로 저숙련 일자리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노동조건의 저하를 불러온 것일까? 이는 기업별·업종별·산업별로 양상이 다르다.

제조 현장의 경우, 저숙련화에 따라 노동조건의 하락된 것으로 보인다. 〈로봇산업 활성화의 고용효과〉(고용노동부, 2019)에 따르면, 중견기업, 중소기업에서 산업용 로봇 도입 이후 “직무 내용과 지식 숙련 요건이 단순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p82) 하지만 단순히 기술 도입으로 제조 현장에서 노동자에게 요하는 숙련이 낮아진 것은 아니다. 중견 자동차부품업체 노동조합 A 위원장은 6~7년 전 미래차 부품 생산의 외주화에 동의할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생산량이 몇 개 안 되면 자동화가 안 되고 수동 작업을 할 수밖에 없죠. 조합원들의 불만이 많았어요. 미래를 위해서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자회사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죠. 회사에선 기본적으로 단가가 맞지 않았고, 현장에서도 해당 라인에 기본 8시간 일해야 하는데 노동시간이 들쑥날쑥하기도 해서 불만이 컸었죠. 그래서 (미래차부품의) 자회사 생산에 노동조합도 동의하게 됐죠.”

노동자 입장에서는 미래차 부품 생산량이 부족함에 따라 노동시간이 들쑥날쑥했고 그에 따라 임금도 불안정했다. 더군다나 자동화가 이뤄지지 않아 작업도 더 어려워졌다. 굳이 해당 업무를 직접 맡을 유인이 없었다. 반대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고난이도 작업을 맡는 노동자에게 추가적인 보상을 주기보다는 외주화를 통해 비용을 절감했고, 그 비용을 설비에 투자하면서 작업의 난이도를 낮췄다.

요컨대 노동시간, 임금체계 등 일터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노동자의 숙련과는 연결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한국에서는 산업은 있으나 노동자의 숙련과는 미스매치돼 있다”면서 “어느 직업군이나 일을 하면서 자신만의 노하우가 쌓이고 자긍심으로 발현된다. 그런데 개인적 단위에서만 이야기되고 사업장이나 업종, 직종별로 형성된 곳들이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양상은 업종 특성상 아직까지 기술 도입 보다는 노동자의 손끝 기술이 중요한 조선산업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직사업부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나라 조선업이 하청중심 생산구조이면서도 세계적으로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이른바 하청업체 상용직, 본공이었거든요? 2016년을 기점으로 조선업 빅3가 어려워지면서 본공 중심의 생산구조가 무너졌어요. 곧 숙련공을 구하지 못해서 난리가 날 거예요. 기업에서는 당장 숙련공을 구하기 어려워졌는데 어떤 방식으로 채울 거냐. 고용구조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요. 최근 현대중공업에서 20~30명 규모의 물량팀을 단기 프로젝트팀이라는 이름으로 직접고용했어요. 원청에서 물량팀을 양성화한 거죠. 물량팀 입장에서 하청업체가 아니라 원청과 계약을 하니 고용이 안정됐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단기 프로젝트팀이 확대되고, 하청업체 상용직이 줄어들면 고용은 더 불안정해질 수 있어요. 그러면 한국 조선업 미래가 있느냐. 없다는 거죠.”

조선소 노동자의 숙련을 기업 경쟁력 차원에서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기술도입의 속도가 제조업 보다 빠른 서비스업에서 이러한 지점이 직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로 나타난다. 제유곤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지부 사무처장은 “IOT 신제품이 3개월 혹은 빠르면 1개월 마다 출시된다. 신제품 출시 주기가 너무 짧아서 교육을 받기에도 급급하다”며 “교육받는 시간 동안 수수료가 보전되는 것도 아니다. 한 번도 설치해보지 못한 신제품을 들고 가서 고객에게 전문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스트레스가 크다”고 밝혔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숙련방치형 한국 일터

이렇듯 우리의 일터는 “숙련방치형”에 가깝다. 반가운 센터장은 “한국은 숙련 공급은 높을지 몰라도 대표적으로 숙련 수요가 낮은 국가이고 일터”라고 평한다. 제도적으로 노동자의 숙련이 형성되기 보다는 승진 욕구나 일의 만족감 등 개인적 요인으로만 발달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일터에서 마땅히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을 때 노동자들은 “회사에 필요한 숙련을 쌓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기 위한 일반 숙련(General skill)을 쌓는다”라고 반가운 센터장은 지적한다.

김종진 부소장은 우리나라의 일터가 숙련방치형인 이유를 “액터(Actor)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부, 기업, 노동조합조차 숙련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종진 부소장은 이렇게 지적한다.

“독일 등 유럽사회는 1945년 전후 산업화 과정에서 노조 조직률이 늘어난 이후 산별노조 차원에서 일자리 유지, 권익 향상을 위해 숙련에 주목했다. 일례로 한국사회에서는 콜센터 노동자의 숙련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콜센터 노동자의 교육훈련 코스가 6개월에서 길게는 3년까지도 있었다. 정부, 협회, 노동조합 등 모두가 개입해서 만든 것이다.”

노동조합의 ‘숙련전략’

여기서 홍석범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원은 ‘노동조합의 숙련전략’을 말한다. 산업전환이 심화되는 가운데 ‘노동조합의 현장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숙련형성 및 관리제도에 노동조합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부 현장에서는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의 강한 힘을 등에 업고 보다 쉽고 편한 저숙련 일자리로 옮겨가는 사례들, 즉 숙련투자가 아니라 스스로 숙련하락을 유발하는 행위들도 적지 않게 목격된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금 노동조합의 현장장악력과 파업효과를 약화시키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임금 및 보상제도, 승진제도, 평가제도, 교육훈련제도 등 숙련형성과 관리제도가 노동조합의 영향력 내에 있다는 조건만 갖춰진다면, 숙련은 분명 노동조합이 작업장 노사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주요한 무기임에 틀림없다.” (홍석범, 2018, 〈숙련지향적 작업장 체제로의 재편과 노조운동의 미래〉.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조성재 선임연구위원은 “사용자 입장에서 노동조합에서 협조한다면 숙련형성이나 발휘에 대해서 거부할 이유는 별로 없다”며 “지금까지 노사관계 자체가 대립적이고 갈등적이다 보니 사용자가 노동자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숙련이 노사 공통으로 해당하는 문제이기에 충분히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숙련을 강조하는 것이 노동자 개인에게는 업무의 증가 등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누구에게나 새로운 것을 익히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실천적인 사례도 있다.

유용민 희망연대노조 연대국장은 지난해 12월 열린 〈스마트홈 산업과 노동의 변화〉 토론회에서 2016년 LG유플러스가 인터넷·통신 분야에서 IoT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할 당시 노동조합 내부 반발과 대응전략을 이야기했다. 인터넷 설치·수리 직무를 담당했던 조합원들은 IoT 제품이 출시되자 이전에는 다룬 적 없는 전기 작업, 전자제품 간 연결(페어링) 등을 맡게 됐다. 적절한 교육이 없었고, 고객의 불만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의 반발이 커졌다. 여기서 노동조합은 “고용과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해서는 산업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회사의 징계에도 당시 조합원들은 독자적으로 결의해서 설치 작업을 거부하기도 했다. 결국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회사와 만나서 했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산업변화에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조응할 것이며, 조합원을 설득하겠다고 회사에 말했다. 다만 회사도 충분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문제 발생 시 보완책을 노동조합과 협상하여 만들자고 했다. 요구안이 100%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문제 해결의 포인트가 됐다.”

반가운 센터장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디지털 테일러리즘이라는 디스토피아로 갈지 유토피아로 갈지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과 기업뿐만 아니라 정치와 제도가 개입하고 함께 결정해야 할 의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