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부가 나서라”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부가 나서라”
  • 임혜진 기자,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4.12 19:05
  • 수정 2022.04.12 1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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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찾기유니온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제12차 공동고발 기자회견’
사업장 분리, 직원 미등록···근로기준법 회피 편법 만연

“많은 청년들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부당하게 해고당해도 법이 지켜주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5인 미만 사업장은 피해서 취업하기를 권유합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저에게 공포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현우 권리찾기유니온 부위원장)

이현우 권리찾기유니온 부위원장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3차 공동고발 당사자다. 그는 권리찾기유니온(위원장 한상균)을 만나고 자기가 다니던 사업장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걸 알았다.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제11조)를 5인 이상으로 한정한 법 조항을 악용해 사업주의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는 법 위반 사업장이다. 주로 1개의 사업장을 서류상 여러 개의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분리하거나 일부 직원을 노동자가 아닌 사업소득자로 위장하는 형태를 말한다.

이현우 부위원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이 싫은 게 아니다. 근로기준법이 없는 사업장이 싫다”며 “권리찾기유니온에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공동고발을 할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권리찾기유니온이 12일 오전 11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제12차 공동고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부당한 대우를 받은 노동자들이 5인 미만으로 규모를 위장하는 사업장 공동고발에 참여했다. 권리찾기유니온은 12일 오전 11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제12차 공동고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권리찾기유니온은 2020년부터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고용노동부에 진정·근로감독 청원·고발해오고 있다. 12차로 공동고발된 사업장은 커피전문점과 호텔, 영어학원 등 총 11개다.

12차 공동고발 중 7건은 노동자들이 직접 진정인으로 참여했다. 그간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은 정당이나 노동조합을 통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접수해왔다. 또한 이번 공동고발에는 이주·난민 노동자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권리찾기유니온에 따르면, 이주·난민 노동자들이 고발한 ㄷ프라스틱은 한국인 관리자를 제외한 노동자들을 근로계약서 없이 고용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했다.

“사각지대가 아닌 ‘차별지대’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으로 노동자 보호해야”

권리찾기유니온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행방불명된 ‘차별지대’”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노동권이 보호되기 어려운 경우를 말하는 법 사각지대와 다르게,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사업주들은 고의적으로 책임을 회피해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이용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권리찾기유니온은 사업장 규모와 고용의 형태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선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상임노무사는 12차 공동고발 사업장에 포함된 종로구 소재 카페 사례를 소개했다. 해당 카페는 본사와 지점의 대표가 동일하고 본사 직원이 직접 지점의 채용과 근로시간 등을 관리했지만, 대표는 지점을 별도의 사업장처럼 운영해 5인 이상에 적용하는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을 회피했다.

박선희 상임노무사는 “진정인들은 근로계약서를 월급 180만 원, 주 5일, 1일 근무시간은 8.2시간(휴게시간 포함)을 내용으로 체결했으나, 실제 근무는 매월 근무시간표에 따라 상이했으며, 근로계약서보다 미달하는 임금을 받았다”며 “지급받은 임금도 매달 들쑥날쑥해 급여 산정 방법도 파악되지 않는다. 때문에 지점 노동자들은 이를 시정하고자 함께 서울노동권익센터를 찾았다. 이번 공동고발을 통해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권익 침해가 시정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리찾기유니온이 12일 오전 11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제12차 공동고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고용노동부의 조치계획 
위법성 인식 더욱 약화시켜”

또한 기자회견에서 권리찾기유니온은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의심 사업장 근로감독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3일 고용노동부는 5인 이상으로 의심되는 5인 미만 사업장 72개소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72개 사업장 중 ▲사업장을 쪼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만든 8개소에 대한 시정지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 중 일부를 ‘사업소득자’로 관리해 노동자 수를 줄인 12개소에 대한 시정지시 등의 조처를 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감독 결과 적발된 노동관계법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시정지시해 근로자 권리구제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동종·유사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주 단체를 통해 지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결과에 대해 권리찾기유니온은 “72개 사업장 중 공동고발 대응 과정에서 관계 기관(노동청, 노동위)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인정하거나, 사업주가 사실상 불법 위장을 자인하며 5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는 임금을 지급한 사업장만 30개”라며 “이외에도 사건을 취하하거나 조사가 진행되지 않은 사업장 중에서도 위장 사례는 상당수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근로감독은 20개 사업장만 적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용노동부가 적시한 수준으로 대응할 경우, 가짜 5인 미만 위장 및 근로기준법 회피 행위에 대한 위법성 인식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정책실장은 “고용노동부의 부실한 근로감독은 노동자의 권리구제 기회를 박탈한다”고 비판했다. 하은성 정책실장은 “근로감독 과정에서 진정 접수를 한 노동자의 담당 노무사에게 자료 요청만 해도 사업장 실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데 사업주의 답변만 듣고 시정지시를 해 고용노동자의 추가 구제를 어렵게 만드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권리찾기유니온은 오는 18일 고용노동부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감독 및 노동행정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단순 현금 지원 넘어 연대기금 조성으로
노동자 권리 찾기 확대할 것”

권리찾기유니온은 ‘법률구제 재정연대’를 통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공동고발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법률구제를 시도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에게 ‘권리찾기 시작기금(착수금)’을 지원하고, 승소한 노동자는 착수금을 다시 연대기금으로 환원하는 사업이다.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사무총장은 “그동안 피해 노동자 권리구제 방식은 단순히 시혜적으로 최소 금액의 현금 지원 정도만 있었고, 노동자 보호에도 한계가 있었다”며 “먼저 법률구제를 시작한 노동자들에게 착수금을 지원해서 승소하면 지원받은 금액을 기금으로 환원하여 다른 노동자들의 권리구제에 기여하는 재정연대를 계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