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동자와 위스키
[기고] 노동자와 위스키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06.10 18:11
  • 수정 2022.06.1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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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강호 페르노리카코리아임페리얼노조 위원장
이강호 페르노코리아노조 위원장
이강호 페르노코리아노조 위원장

어느샌가 대한민국이 G7에 버금가는 국격을 갖고 4만 불 GDP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초고속 성장에 풍요를 누리게 되었고, 노동자의 삶도 조금씩 나아져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문화가 우리 삶 속에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주류 트렌드도 단순히 소주와 맥주만 전부가 아닌 다양한 주종과 문화로, 술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그 어느 때보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위스키 역시 아버지 진열장에서 몰래 꺼내 맛보는 과거의 모습이 아닌 개개인의 기호에 맞게 선택하며 즐길 정도로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노동자에게 위스키는 비즈니스를 위한 술, 고연산 위스키가 무조건 좋다는 생각, 폭탄주의 재료 등 단편적인 모습 속에 갇혀 있지는 않나라는 생각이 여전하다.

이제 이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위스키를 새로운 시각으로 만나보자. 위스키는 만나서 버거운 상대가 아닌 충분히 재밌고 즐거운 주종이기도 하다. 

위스키는 구한말 ‘유사길’이라 소개되며 우리나라에 처음 발을 내디딘 이후, 서울올림픽을 필두로 각종 수입 규제가 완화되어 그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때 위스키를 대하는 성숙한 문화까지 수입이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대한민국 특정 부류의 마시는 방식이 보편화되어 위스키가 조금은 왜곡이 되어버렸지 않았나 생각한다.

위스키는 본디 향을 즐기고, 색을 감상하고, 질감을 느끼며, 목 넘김 이후의 여운까지 즐겨야 제대로 맛을 보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여유이다. 하지만 우리는 약 50mL의 위스키 한 잔을 털어버리듯 마시고, 그저 부드럽냐 독하냐 정도로 평가하는 과정이 친숙하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우상화하는 고연산 위스키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가령, 발렌타인 30년 위스키는 우리를 만나기 위해 무려 30년 이상을 오크통 속에서 빛도 보지 못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이 오래된 세월이 녹아 있는 위스키를 단 1초만에 끝내버리는 상황은 어찌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30년과 1초라는 극명한 대비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위스키를 대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글을 읽고 실험하듯 위스키를 만나보자. 다음 회차에 위스키를 마시는 방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기본만을 말하자면 위스키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노동자도 이제 여유를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더 이상 ‘빨리빨리’ 속에 우리를 가두지 말고 위스키로부터 기다림과 여유를 배워보자. 그리고 그 깊은 풍미를 느끼며 밤을 보낸다면 그 하루는 충분히 잘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