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전력노조 이 경 호 국장
전국전력노조 이 경 호 국장
  • 승인 2004.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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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간부도

이제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

 “공부는 목표와 목적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공부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중도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된다는 불혹의 나이에 대학 졸업장을 손에 거머쥔 전국전력노동조합 이경호 대외협력국장이 말하는 공부의 비결이다.
이 국장은 지난 2001년 국민대 경제학부(야간)에 직장인 전형으로 입학, 올 여름 7학기 만에 조기졸업했다. 그는 학기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마지막 학기에는 모든 과목이 A+인 꿈의 학점 4.5를 받았다.

 

“중학교,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교육비가 만만치 않아요. 게다가 집사람도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어서, 나라도 지출하는 돈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하다보니….”
하지만 이 국장이 공부에 열중했던 건 결코 돈 문제만이 아니었다.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저녁 6시 첫 수업을 위해 직장에서 5시에는 자리를 떠야 하는 그를 위해 주변의 동료들과 조합 간부들이 그의 일을 나눠준 것이다.
“위원장님이 저녁시간이 되면 학교가라고 내쫓더군요. 주변사람들의 격려와 배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경야독’의 생활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아침 7시’, 그가 출근하는 시간이다. 업무에서나 노동조합 활동에서나 평상시에 부족한 만큼 더 일찍, 더 부지런하기 위해서다.

 

이 국장이 끊임없이 공부를 하는 것은 이제 노동조합 간부도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전문성을 높이는 길, 또 스스로 건강성을 유지하는 길이 바로 공부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새로운 것들에 대해 ‘배울게 뭐 있냐?’는 냉소적인 시각이 아닌, 자기 성찰을 위한 계기로 학습이 지속돼야 합니다.”

 

민영화의 논리를 뒤집다
그를 이 힘든 공부에 매달리게 한 계기는 바로 외환위기 이후 진행됐던 한국전력 민영화 문제였다.
“2000년 12월 민영화가 합의됐을 때가 가장 큰 좌절감을 맛본 시기”라는 그는 당시 민영화 당위성을 제기했던 주류경제학의 내용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뜻하지 않게 좋은 결실을 맺었다. 노사정위 공공특위 공동연구단의 노조측 위원으로 참여, 배전 분할의 문제점을 밝힐 수 있었다는 것.
물리학을 공부했던 전문인으로, 현장의 문제점을 잘 아는 노동조합 간부로서의 고민을 모아 학문적 접근이 가능했다.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습니다. 그렇게 목매이던 배전분할을 막으면서 ‘노력하면 가능하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겼죠.”

 

하지만 몇 년간의 노력 끝에 얻은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임단협 교섭을 바라보는 조합원들의 시선에 서운함을 느꼈다.
“올해에는 배전분할 저지와 주5일근무제, 비정규직 문제 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임금부분이 조금 소홀해졌는데 조합원들이 이 부분을 너무 크게 부각해서 보는 게 너무 안타깝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후회하지 않을 삶을 위해
이 국장의 기억 속에 있는 고향(경북 영덕)은 황량한 겨울의 모습뿐이라고 한다. 겨울 포구에 부는 찬바람, 포구 옆에 길게 늘어선 선술집과 흐릿한 불빛, 그리고 아버지를 불러오라는 어머니의 목소리, 그리고 청소년기에 7년 동안 집을 비우신 아버지. 

 

그래서일까. 이 국장은 아이들과 문제가 생기면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대화를 나눈다. 또한 생활 속에서 삶의 기준이 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집에서 항상 책을 놓지 않는 이 국장은 “아버지가 공부하면 집안이 공부하는 분위기가 됩니다. 내가 TV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면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이경호 국장.
“후회할 일은 하지 말자”는 삶의 지표를 지키는 게 맘같지 않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 그는 ‘이제 노동대학원에서 노동경제학을 배우고 싶다’는 목표를 향해 또 한발 내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