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 무역 적자 수렁에 빠져 ‘허우적’
대일 무역 적자 수렁에 빠져 ‘허우적’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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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 모두 내주고…

거꾸로 수직적 분업구조 강화될 판

 

issue in issue ㅣ FTA - 업종별 파장④ 전자  기계  석유화학

 

올 들어 일본과의 거래에서 발생한 무역적자 누계는 약 150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무역협회와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2004년 7월말 현재 대일무역현황은 수출 89억3천만 달러, 수입 187억1천300만 달러로 97억8천300만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해 같은 기간보다 20%나 늘어난 결과다.

 

핵심부품 대부분 일본에 의존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일본으로부터 핵심부품을 수입해 제품을 가공한 후 수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수출이 잘 될수록 부품수입 증가율이 커진다. 반도체 제조용 장비와 기계류와 철강금속제품의 경우 작년 동월대비 매달 평균 30%대의 높은 수입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는 추세다.

 

전자부품뿐만 아니라 정말화학제품, 수송기계, 석유화학제품, 기계류 등에서도 한국 수입시장에서 일본 제품은 상위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한국의 20대 수입품목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일본 품목은 무려 10개나 된다. 결국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 팔아도 다시 핵심 부품을 구입하는데 그 돈을 다 써버린 꼴이다.

 

대일무역적자 ‘눈덩이’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양국 간 무관세가 적용됐을 경우 제품 가격이 하락하여 수출보다는 수입이 늘어나게 된다. 이는 만성적 무역수지 적자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LG경제연구원이 추정한 바에 따르면 한일 FTA가 발효될 경우 섬유를 제외한 모든 공산품 분야에서 수입확대 효과가 수출확대 효과보다 크게 나타날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한국 공산품의 무역적자액은 연간 33억 달러 가량 늘어날 것이며, 이 중 전자, 전기부문과 기계부문에서 10억 달러 이상, 화학은 3억 달러 이상의 적자를 낼 전망이다. 

이는 한국이 핵심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결과다. 2004년 일본경제산업성 통상백서를 보면 비교우위 부품 비율 56.7%로 1위를 차지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15%로 8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메라폰 등과 같이 우리의 수출품이 점차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FTA가 체결되면 일본에서 들여오는 첨단부품이 대폭 증가, 무역적자의 폭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지난해 일본으로부터 약 4억6천만 달러의 기술을 수입한 반면, 5200만 달러에 불과한 기술수출을 기록했다. 기술 수입은 미국에 이어 2위다.

한국산업이 핵심 부품·기술을 중심으로 일본에 종속되어 있는 현실을 볼 때 국내 산업구조가 저부가가치 산업 경로로 고착화되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우려된다. 만성적인 무역적자 속 한일 FTA 체결이 한국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전자산업, 기계산업, 석유화학산업 중심으로 진단해 본다.


전자산업 ...

핵심 기술력 없는 전자부품, 무역적자 비중 가장 커
전자산업은 현재 대일수출의 40% 가량을 점유, 수출 품목의 구성비에서 1/3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2004년 5월 현재 전자산업의 대일 무역적자는 약 26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냉장고, 세탁기, 진공청소기 등 일부 가전제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입특화 제품으로 일본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적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전자부품. 주요장비의 국산화 비율은 23%에 불과한 반면, 핵심전자 소재들의 수입비중은 무려 80~90%에 이른다.

또한, 전자부품의 수입증가율은 2004년 5월 현재 작년 20.8%에 비해 약 5% 가량 늘어난 25.7%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신부품을 제외하면 전자부품의 마진율은 취약하기 때문에 일본의 기업과 직접 경쟁을 해야 하는 단품생산 중소기업들의 경우, 구조조정에 따른 시장철수와 중국으로의 해외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여 있다.

 

LG경제연구원 박재범 연구원은 “경기가 악화되더라도 완제품 업체는 부품 재고량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지만, 부품업체의 경우 핵심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이상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전자부품 업체는 완제품 업체에 비해 경기변동의 영향을 1.5배 정도 많이 받고 있다. 기술 수준도 일본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의 ‘주요 경쟁국과의 기술수준 비교’를 보면 한국의 원천기술 수준을 100이라고 가정했을 때 일본의 원천기술 수준은 130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브랜드 이미지는 한국 대 일본 대비 100 : 120인 것으로 나타나 한국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기계산업 ...

일본과 비교도 안 되는 시장규모… 시장 잠식 시간문제
기계제품은 현재 무관세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관세인하로 인한 이득은 별로 없지만 FTA로 인한 피해는 클 것으로 전망된다. 그 이유는 1998년도 IMF이후 한국 기계산업의 세계 수출시장에서의 점유율은 계속해서 감소해 2%의 시장점유율만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11%에 달해 한국과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은 지속적으로 대일교역에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출발선에서부터 양국 간에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일본 유통장벽의 폐쇄성, 일본의 수입수요 포화, 국내 제품에 대한 일본의 고정관념 등 비관세장벽으로 인해 경제적 효과는 극히 미미할 것으로 해당업계에서는 예측하고 있다.

기계품목은 관행적으로 양국 간 서로 판매할 수 없다는 것이 수출업계 담당자들의 분석이다.

 

국내 기계제조업체 D사의 담당자는 “우리나라는 장비의 힘을 따지는 반면, 일본은 제어성과 크기를 보는 등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제품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기업의 경우 일본에 회사를 두고 딜러를 통해 수출을 하기 때문에 각종 수출장애물을 크게 못 느끼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그럴만한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본의 시장을 뚫고 들어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석유화학산업 ...

일본시장 ‘매력 없어’ - 주변국가 위협 더욱 심각 
일본의 석유화학시장은 우리나라의 생산액 기준으로 2.5배, 국내수요 기준으로 1.6배에 달하는 시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단위설비 규모가 큰 범용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일본시장 접근이 가능하다.

 

또한 일본설비의 70%는 노후화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한국설비가 우위에 있다. 일본시장의 접근을 통해 기술수준이 향상되면 이는 생산성과 실질적인 소득의 증대로 이어져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

 

하지만 석유화학산업 제품은 전체 수출에서 흑자를 기록하고 있어도 일본과의 교역에서는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부문이다. 이런 현상은 일본과 합작계약 때 역수출을 금지하거나 수출권 자체를 가져가는 등의 조항이 수출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

 

우리나라는 석유화학단지 건설 초기단계부터 일본의 메이저 기업의 자금과 기술을 도입, 합작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아크릴산을 포함해 무려 10개의 제품이 무기한 역수출 금지 품목이다.

관세율 차이도 문제다. 한국과 일본의 평균관세율은 각각 5.8%와 3% 수준이다. FTA 체결 후 제품가격이 인하되면 고부가가치 제품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석유화학산업은 무역적자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또한 일본은 현재 내수부진이 지속됨에 따라 수요가 감소하고 있고, 이미 한국의 국내수요도 연평균 1.1% 감소해 시장점유를 위한 양국 간 경쟁구도가 치열하게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 통상협력팀 김평중 팀장은 “일본 유통시장을 뚫기도 힘들고, 기술수준 차이가 확연하고, 일본 시장 내 제품가격도 비슷해 한국은 일본 시장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즉 FTA가 한국에 별다른 이득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각종 첨가제, 엔지니어링플라스틱 등 정밀화학부문의 경우 석유화학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정밀화학은 일본과 중국 모두에게 무역적자 현상을 보이고 있다.

 

주변 동남아 국가의 위협 또한 심각한 문제다. 범용제품이 경쟁력이 있다고 그 분야에만 치우치게 된다면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는 중동과 동아시아와의 경합관계 속에서 산업기반이 붕괴될 수도 있다.

LG경제연구원 홍정기 연구원은 “석유화학산업은 한일 FTA보다 싱가포르와 FTA를 체결할 경우 더욱 위험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의 최대 경쟁국 중 하나로 일본 및 주요 다국적 화학기업의 아시아지역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에틸렌 단위설비 규모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60%, 싱가포르에 비해서도 80% 수준에 그쳐 규모면에서의 경쟁이 불리한 상황이다.